네손을 내밀라

날짜 : 2008.03.09
예배명 : 주일예배
설교자 : 권 다니엘목사
제목 : 네 손을 내밀라
본문 : 막 3:1-5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 한편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공생애 3년 동안 하신 일은 가르치시고 전하시고 고치시는 일이었습니다.

마 4:23에 “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라고 하셨습니다. 한편 손 마른사람을 고쳐 주신 곳은 회당이었습니다. 고치신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간단한 기사 속에 우리가 찾고 받아야 할 교훈은 크고 많습니다.

1.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은 회당이었습니다.

회당을 헬라어로 “ 쉬나고게” 라고 합니다. 쉬나고게는 헬라어 쉬나고라는 말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쉬나고란 모아들이다. 모이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회당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자 예배를 드리며 그 곳에서 자녀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 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회당 제도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여러 곳에 회당을 만들고 예배와 교육의 장소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가르치는 회당에 한편 손이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회당은 오늘의 교회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 성전의 경우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부정한자, 이방인, 몸에 심한 병이 있거나 흠이 있는 사람은 성전 출입이 제한되었습니다. 그러나 회당의 경우는 그런 제한이 없었습니다. 회당 안에 한편 손이 마른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현대 교회가 안고 있는 고민의 그림자로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고민을 안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병든 사람, 속상한 사람, 사업이 어려운 사람, 슬픔을 당한 사람, 가정에 시험이 있는 사람, 고민이 있는 사람, 그런가 하면 행복한 사람, 꿈에 부푼 사람, 성공한 사람, 건강한 사람들도 섞여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욕구를 가지고 모인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다양한 욕구에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찾아야 합니다. 회당은 건강한 사람만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유식한 엘리트 그룹만 모이는 곳도 아닙니다. 성경에 능통하고 신학에 능통한 사람들만 모이는 곳도 아닙니다. 병들고 상처 받은 사람들과 무식하고 분별력 없는 사람들이 모여 치료 받고 배우는 곳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2. 회당에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손 마른 사람은 석공이 있었다고 합니다. 석공이라면 손으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석공 일을 하다가 팔을 다쳤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한편 손의 기능이 마비되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생계의 수단이며 노동력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오른손이 말랐기 때문에 살아가는 일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불행 중 다행한 것은 두 손이 다 마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한편 손이 말랐기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었고 또 자신의 전문직인 석공 일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두 손 중에 한편 손이 말랐다는 것은 균형의 상실을 의미 합니다. 신앙적으로도 균형을 잃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 출석은 잘하는데 봉사는 안하는 사람, 성경을 읽는데 기도를 안 하는 사람, 낮 예배는 나오는데 밤 예배는 나오지 않는 사람, 십일조는 하는데, 감사헌금을 안하는 사람, 노는 것은 잘하는데 일을 안 하는 사람, 기도는 하는데 전도는 안 하는 사람, 저 혼자는 잘하는데 함께는 못하는 사람, 이 모두가 균형이 깨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육체도 정신도 신앙도 교회생활도 한편 손 마른 사람처럼 되어 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물건도 두 손으로 들어야 힘이 있습니다. 두 발로 뛰어야 오래 달릴 수 있습니다. 두 손, 두 발, 두 눈, 두 귀를 주신 데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영적 불균형과 신앙의 불균형에서 빨리 벗어 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손 마른 사람을 고칠 때 바리새인들의 시비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라고 하였습니다. 6절을 보면 그 사람들은 곧 바리새인들로서 예수를 어떻게 죽 일꼬 의논 했다고 하였습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남 이하는 일을 엿보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우리나라 옛날 결혼 풍속 가운데 결혼한 신랑 신부가 들어간 신방 문에 구멍을 뻥뻥 뚫고 그 구멍으로 들여다 보며 웃으며 엿보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결혼식 후 폐백이 끝나면 훌쩍 제주도나 외국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때는 종이 문을 단신 방에서 초야를 맞아야 했기 때문에 신랑 신부가 곤욕을 치러야 했습니다. 들여다보고 엿보는 사람들은 흥미로울지 모르지만 신랑 신부가 그날 밤 어떻게 잠을 잘 수가 있겠습니까?

심술이 심한 사람들은 밤새도록 신방의 호롱불이 꺼져도 문구멍으로 들여다보며 엿보고 있는 것은 얼마나 좋지 못할 풍속입니다. 미행이나 전화도청까지 한다니 결코 좋은 일일 수가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경우 그들은 예수가 안식일에 한편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고 그것을 빌미삼아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했습니다. 좋은 일 하시는 예수를 엿본 그 자체도 나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 사람아 죽일 방도를 찾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그 그릇된 생각 때문에 주님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자기들의 언제나 주관적인 생각만 가지고 자기들만이 옳은 생각이요 사고를 가졌다고 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일을 그릇 친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어떤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인지 한번 생각해 보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4.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의 손을 내 밀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4절을 보면 “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5절을 보면 “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 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정신은 안식일이라고 살리는 일, 고치는 일, 구하는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 네 손을 내밀라” 바리새인들의 계율은 안식일에는 손을 내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쳐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나 예수의 계명은 생명을 구하고 살리고 고치는 일은 하셔도 된다는 것입니다. 손을 내밀라 믿음으로 내 밀어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만일 그때 그가 주춤거리고 “ 설마” 라며 머뭇거리거나 불순종했다면 그는 고침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손 마른 병을 않고 있습니다. 사랑의손, 봉사의손, 헌신의손, 섬기는 손, 열심의 손이 다 말라가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 손이 말라가고 있다는 자각 증세 마져도 없습니다.

네 손을 펴라

병든 손을 펴라 사람의 손을 펴라 이웃을 향해 손을 펴라 주님을 향해 손을 펴라.

달라고 조리기만 하지 말고 손을 펴라 주여 나의 병든 손을 고쳐 주옵소서. 나의 병든 마음을 치료하여 주옵소서. 나의 삭막한 영혼을 치료하여 주옵소서. 지금 내 병든 손을 내밀고 고침 받습니다. 주님께서 거쳐 주실 것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