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천사 가브리엘이 나사렛 동네에 살고 있던 처녀 마리아를 찾아가 아기를 낳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는 말씀이 나타나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천사장이 일곱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우리엘천사, 라파엘천사, 라구엘천사, 미가엘천사, 사리엘천사, 라미엘천사, 가브리엘천사 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일곱 천사장 가운데 가브리엘 천사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천사였습니다. 가브리엘천사는 사가랴 제사장을 찾아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여 세례요한을 낳을 것이라는 것도 전해준 일이 있었습니다.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와 눅 1:28에 “ 은혜를 받은자여 평안할 지어다.” 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인사는 그 당시 헬라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면서 세상에서 흔히 하는 인사말을 했을 것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 라는 인사말 속에는 높고 깊은 의기마 함축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고대 헬라인들은 “은혜” 라는 말과 “매력” 이라는 말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은혜 만큼 말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은혜만큼 매력적이고 매혹 시키는 힘이 없기 때문에 “ 매력” 을 “ 은혜 ” 의 동의어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신약 성결을 읽어보면 예수는 자신을 은혜라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은혜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구원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이십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 바울 사도의 은혜 론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의 은혜의 성격은?
①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족합니다.
바울 사도에게는 불치의 고질이 있었습니다. 어떤 주석가는 그것을 눈병과 심장병이라고 하였습니다. 눈병은 다메섹도상에서 얻은 것이고 심장병은 유대인들의 박해와 그 충격 때문에 얻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가 하는 것은 바울이 고후 12:7에서 “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 라고 표현한 점으로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육체의 고통스러운 가시 같은 질병을 고쳐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하였습니다.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을 듣고 난 후 “ 도리어 크게 기뻐하였다.” 고 하였습니다. 고후 12:9에 “내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만족한 은혜를 건강, 성공, 출세, 치부, 번영 쪽에서만 찾으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가 말한 만족한 은혜는 그런데 있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벧전 1:24에 베드로의 표현을 빌면 마르고 떨어지는 풀과 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가 받고 소유한 그 은혜는 구원에 은혜이기 때문에 언제나 만족한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족한 줄로 아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고 찬송 할 수가 있습니다. 은혜를 족하게 여기지 않으면 원망과 불평이 떠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 사건 하나만으로도 만족한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이 은혜를 깨닫고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② 하나님의 은혜는 넘치는 은혜입니다.
롬 5:20 을 보면 “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가 큰 곳에 더욱 은혜가 넘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로운 사람들과 깨끗한 사람들과 죄 없는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롬 5:20 죄 많은 사람, 죄 많은 집 더러운 사람 불의한 사람이 있는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깨끗한 그릇은 씻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릇을 씨는 이유는 더럽기 때문에 깨끗해지라고 씻는 것입니다. 손을 씻는 것도 손이 더러워졌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같은 이치입니다. 죄 없는 사람들이나 자신을 의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는 은혜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 많은 곳에 넘치는 은혜입니다.
③ 하나님의 은혜는 거저 주시는 은혜입니다.
엡 1:6에 “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 거저” 라는 것은 무조건, 값없이 공짜로 라는 뜻입니다.
산모는 아기를 낳기 위해 돈을 내고 산부인과에서 해산합니다. 그러나 태어나는 아기는 돈을 내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또한 산모는 돈 뿐만 아니라 생명을 내건 고통과 아픔을 겪은 후에 아기를 낳게 됩니다. 거저 주시는 은혜도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나야 구원도 영생도 축복도 거저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그 은혜를 주신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피를 쏟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로서는 거저지만 주님으로서는 가져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가져 주신 은혜라고 해서 싸구려 상품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돈을 들여 인공적으로 하는 난방보다 돈을 들이지 않고 받는 자연적인 태양이 더 귀한 것입니다. 이것은 돈으로 따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값없이 나를 영원히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를 돈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왜 거저 주십니까? 그것은 싸구려 이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귀하고 비싸서 값을 지불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피로 값을 대신 지불하시고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를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2. 이 은혜를 받은 후에 오는 것은?
① 평안이 찾아옵니다.
오늘 본문 28을 보면 “은혜를 받은자여 평안할 지어다.” 라고 하였습니다. 평안은 은혜 받은 증거입니다. 불안은 은혜 받지 못한 증거입니다. 세상적인것 때문에 오는 평안이나 기쁨은 변덕스럽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짧습니다. 그러나 은혜 받았기 때문에 오는 평안은 크고 오래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시간이나 시험도 그 평안과 기쁨을 빼앗아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행 16: 에는 “ 바울과 신라는 빌립보 옥중에서 깊은 밤에 하나님을 찬미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감옥도 평안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구약에 보면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사자 굴과 풀 무불 속에서도 기뻐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들도 그들의 평안과 기쁨을 삼켜 버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돈을 주고 사는 평안 사람이 만들어 주는 평안은 질그릇과 같아서 쉽게 깨집니다. 그러나 은혜 받고 얻은 평안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참 평안을 누리려면 은혜를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② 은혜 받은 후에는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28 절을 하반 절을 보면 “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즉 임마누엘인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나면 주님께서는 날마다 순간마다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나와 함께해 주십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동반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진정한 의미의 동반자는 없습니다. 부모님도 부부도 자식도 친구도 영원한 동반자는 아닙니다. 주님만이 나의 영원한 동반자가 되십니다. 그러니까 동반자가 필요한 사람들과 동행자가 필요한 사람들은 은혜를 받고 주님과 동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③ 은혜 받은 후에는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30절에서 천사는 마리아에게 “ 무서워 말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의 뜻은 은혜를 받은 사람은 두려워하거나 무서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로 가기 위해라고 가던 무역선 알렉산드라 호가 풍랑을 만나 파선 직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승객들은 저마다 아우성이었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배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구원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세계에는 두렵고 떨리는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터지고 있습니다. 지구촌 안에 사는 사람들은 공포 속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바울 사도처럼 폭풍에 시달리고 있을 때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 내니 두려워 말라”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기 원한다면 창조적인 사람이 되기 원한다면 은혜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④ 은혜 받은 후에는 말씀에 순종합니다.
38절 보면 “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지니이다.” 라고 마리아가 대답하였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처녀 마리아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사양했습니다. 마리아는 남자를 모르는 동정녀였습니다. 만일 정혼한 남자를 놔두고 아이를 낳는다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천사가 “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라고 했을 때 그녀는 “ 말씀대로 순종하겠다.” 고 대답한 것입니다. 누가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까?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 말씀을 사모하고 경청합니다. 그리고 실천하고 순종합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면 깨닫기도 어렵고 순종하기도 어렵습니다. 은혜 받지 못하면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투정과 짜증이 많아지게 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너그럽게 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풍요와 집니다. 그는 평안하고 담대하고 순종합니다. 그러므로 이 귀한 은혜가 충만하여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