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땅에 씨를 뿌렸는데 좋은 땅에서 떨어진 씨가 잘 자라서 100배 60배 30배로 결실했다는 말씀입니다. 농사가 안 되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종자는 좋은데 땅이 박토여서 안 되는 경우 땅은 옥토인데 종자가 나빠서 안 되는 경우 종자도 땅도 좋은데 기후 조건이 나빠서 안 되는 경우 들이 있습니다.
1. 각각 토질이 다른 땅이 한 곳에 모여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길가, 돌밭, 가시떨기, 그리고 한 곳에 인접해 있거나 같은 공간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다양성과 집합 성을 의미합니다. 많이 모이든 적게 모이든 교인의 성분은 다양합니다. 그들의 심성과 심상도 다양합니다. 생각하는 것, 기대하는 것, 그리고 요구하는 것이 각각 다른 것입니다. 교회 나오고 예수를 믿는 동기도 각각 다른 것입니다.
예를 들면 ① 길가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길가란 사람의 통행이 잦고 노출된 장소입니다. 그래서 시끄럽고 산만합니다. 종자는 땅에 떨어진 후 흙속에 묻히고 덥혀야 합니다. 그런데 길가는 그것이 어렵습니다. 종자는 땅에 떨어진 후 흙속에 묻히고 덮어야 하는데 길가는 그것이 어렵습니다. 거기 떨어진 씨는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고 아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을 보면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린 것을 빼앗아 버리고 만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길가에 뿌린 씨앗입니다. 교회 생활은 차분하게하고 정진해야 합니다. 동네에 있는 식당과 역이나 터미널에 있는 식당의 차이점은 손님을 대하는 태도라고 합니다. 즉 서비스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동네 식당 손님은 단골로 드나드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가 없습니다. 역이나 터미널 식당 손님은 대부분이 한번 스쳐 지나가는 뜨내기손님들이기 때문에 서비스가 형편없다는 것입니다. 교회 선택을 위해 이곳저곳 다녀 볼 수는 있습니다. 그것 자체를 나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일생동안 교회를 옮긴다면 그것은 습관성이기 때문에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길가 신앙이나 교회 생활은 좋지 않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가 가장 좋은 교회입니다.
② 돌밭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흙이 없는 곳 그래서 강퍅한 곳입니다. 돌밭에도 씨는 떨어집니다. 그리고 싹이 납니다. 그러나 곧 마르고 시들어 버립니다. 흙이 얇기 때문입니다. 21절을 보면 “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라고 돌밭에 떨어진 씨를 설명하였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는 스스로 우리네 마음을 돌밭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돌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용도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돌 같아선 안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태초에 흙을 굳어지고 다져져서 된 것들입니다. 사람의 마음도 본래부터 돌처럼 강퍅한 마음은 없습니다. 이런 도전과 저런 사연들이 쌓이면서 마음이 굳어지고 강퍅해지는 것입니다. 어쨌든 돌 같은 마음에는 복음의 씨가 자라지 못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환난이나 핍박 때문에 쉽게 포기 하거나 넘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두께가 두터 운가 얇은가 하는 것은 환난이나 핍박을 당했을 때 그리고 고통과 절망적 사건 앞에 섰을 때 드러나는 것입니다.
③ 가시떨기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22절을 보면 “ 가시 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7절을 보면 “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다.” 고 하였습니다. 가시는 찌르는 것입니다. 가시는 기운을 막은 것입니다. 그러니 찌르고 막는 것이 가시가 하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가시도 자란다는 것입니다. 가시란 작든 크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손톱 밑에 들어간 작은 가시도 염증의 원인으로 작용하는가 하면 큰 가시는 생명을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가시는 자신을 찌르고 남을 찌릅니다. 가시 같은 사람은 말과 행동으로 남을 괴롭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리기도 하고 맞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지만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말 때문에 받은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가시는 한번 꽂히면 깊이 파고드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의가 됐던 실수가 됐던 가시로 남을 찌르는 것은 부도덕한 일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가시는 가로 막습니다. 나쁜 것은 가로 막는 긍정적 역할이 아니라 좋은 것을 가로 막습니다. 은혜를 가로막고 말씀을 가로 막습니다. 남의 성공과 행복을 가로 막고 아프게 합니다. 길을 터주는 사람,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일하는 사람을 가로 막지 말고 박수를 쳐 주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마23:13에서 말씀하셨습니다. “ 화 있을 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 자기도 안하고 남도 못하게 막는 것 자기도 안 들어가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하는 것 이것은 화 받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박수가 세계 최고 화해가 세계 최고 격려가 세계 최고 신앙이 세계 최고가 되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땅이 좋아야 결실이 가능합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100배 60배 30배로 결실했다는 23절을 보면 “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라고 했습니다.
시49:20을 보면 “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기억해야 합니다.
① 좋은 땅도 여러 형태가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좋은 땅인데 결실은 다릅니다. 어떤 땅은 100배 어떤 땅은 60배 어떤 땅은 어떤 땅은 30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땅이기를 원하십니까?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100배입니까? 60배입니까? 30배 입니까? 좋은 땅 아주 좋은 땅 가장 좋은 땅이 있습니다. 이 비유의 중심 교훈은 종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땅에 관한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땅이 좋아야 100배의 결실이 가능 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땅만 좋으면 최소한 30배는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자기반성과 성찰의 좋은 자료가 되는 것입니다.
왜 믿음이 자라지 못합니까?
왜 30배, 60배, 100배의 수확이 없습니까? 그것은 내 마음 밭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길가이거나 돌밭이거나 가시 떨이기 때문에 씨가 자라지 못하는 것입니다.
② 또 기억하는 것은 좋은 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토질을 바꿀 수가 있습니까? 호 10:12 “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 시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묵은 땅을 갈아엎어 토질이 바뀝니다. 그리고 무든 잡초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호세아가 말한 묵은 땅을 기경하라는 것은 마음 밭을 고치라는 것입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활동하고 있을 때 여리고 지방은 토질 때문에 진통을 격고 있었습니다. 왕하 2:19를 보면 어느 날 여리고 지방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하소연 했습니다.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 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라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엘리사가 그릇에 소금을 담아 물 근원에 뿌렸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 찌니라” 땅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물이 나빴기 때문입니다. 그 물을 고쳤을 때 땅은 자연히 고쳐졌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 내가 이 물을 고쳤다.” 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물도 땅도 역사 인간도 하나님이 고치십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능력과 새롭게 하시는 역사로 우리가 고침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분명합니다. 100배가 되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토양을 고치면 됩니다. 다시 말하면 내 마음 내 정신 내 영혼의 밭을 고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복을 받고 성공을 못하고 믿음이 자라지 못하는 이유를 밖에서 찾는다고 골몰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그 원인을 씌우기 위해 시간을 낭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깨달았습니다. 100배 결실 못하는 까닭은 내 밭이 나빴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신앙과 100배의 결실을 위해 고쳐 나가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나 교회 생활의 나쁜 태도를 고쳐야 합니다. 그것이 묵은 땅을 기경하는 것입니다. 전통은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쁜 전통일 때는 빨리 고쳐야 합니다. 소신과 고집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소신은 굽히지 않아야 하지만 고집은 죽일 줄 알아야 합니다. 나쁜 것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은 백해무익 합니다. 금년 한 해 갑절이 되는 축복과 성공적 삶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신앙의 갑절을 위하여 묵은 땅을 기경합니다. 잡초를 제거 합시다. 하나님께 내 터전을 맡겨드리십시다. 그러므로 금년 표어대로 갑절의 역사가 사업, 직장, 신앙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