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망의 새해를 감사하는 마음과 믿음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새해를 맞은 우리들의 마음가짐입니다.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달력은 바뀌지 않으면 의미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공산주의자가 뉴욕에 있는 콜럼부스 광장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공산주의를 찬양 하는 연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염을 토하며 외치고 있었습니다. “공산주의는 인간에게 새로운 옷을 입혀 줄 수 있습니다.” 그의 연설을 듣고 있던 그리스도인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 옷을 입을 새 사람을 만드십니다. 새 옷보다는 새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제 아무리 값 비싼 새 옷을 입어도 도둑놈은 도둑놈입니다. 새 옷 을 입는다고 도둑놈이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잘못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옷만 갈아입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엽 4:24 바울사도는 “ 새 사람을 입으라.” 했습니다. 시 131편은 시인의 소박한 열망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삶의 다짐이기도 하고 소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윗의 그 소박한 다짐을 새해를 맞는 나의 소망과 다짐으로 삼으시기를 축원합니다.
1. 새해에는 겸손하게 살겠습니다.
1절에서 다윗은 “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다윗의 후기 작품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칠 때 불렀던 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고 통치자인 왕으로 재위하는 동안 읊었던 시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라고 자신의 겸손을 고백한 것입니다. 겸손은 내적인 것입니다. 인격적 사건입니다. 겸손은 자포자기나 체념이 아닙니다. 겸손이라는 원문의 뜻은 누르다, 낮추다, 괴롭히다, 라는 것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누르고 낮추고 괴롭히는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눅 18:13-17 어느 죄 많은 세리의 기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는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죄를 사하셨고 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이고 무가치한 존재이며 얼마나 잘못 한 것이 많은 사람인가를 깨닫게 될수록 겸손의 부피는 많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신학자 풀리처에게 어떤 젊은이가 물었습니다. “ 어떻게 하면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풀리처는 대답했습니다. “ 만일 당신이 영국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대를 들어 써 주실 것입니다.” 주석가 베이커는 “ 인생을 계단과 같다. 위로 올라가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밑으로 내려가면 자신을 알게 된다.” 고 하였습니다. 체코슬로바귀아가 낳은 작곡가 드보르작은 민족주의 낭만파 음악인으로 명성을 떨친 사람입니다. 특히 2가 작곡한 “ 첼로 협주곡 ” “신세계 교향곡” 은 음악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 날 드보르작을 존경하는 프라하의 시민들이 그에게 꽃다발을 증정하였습니다. 그 꽃다발에는 “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에게” 라는 리본이 매여 있었습니다. 몇 칠 후 사람들이 드보르작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들이 주었던 꽃다발은 드보르작의 작곡 실 한쪽에 있는 베토벤의 흉상 밑에 놓여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에게 드보르작은 시민들의 찬사와 꽃다발을 받고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고민하다가 자신의 음악 세계에 결정적 영향력을 주었던 베토벤에게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가 취해야 할 겸손은 삶의 태도는 주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께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받으셔야 된다는 것을 믿고 사는 것이 최고의 겸손인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금년 한 해도 겸손하게 살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금년 (새해) 과욕을 버리겠습니다.
1절 끝을 보면 내가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지나친 욕심으로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이란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허영 된 삶이나 욕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3. 새해에는 평안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2절을 보면 “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땐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땐 아이와 같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아이가 엄마의 품에 안겨서 실컷 젖을 먹고 난 후 만족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을 모사하고 있습니다. 숟가락으로 이유식을 먹었을 때 아이의 표정과 엄마의 젖을 먹을 때 아기의 표정을 비교해서 관찰해 보세요. 이유식을 받아먹고 있는 표정은 만족한 표정입니다. 그러나 엄마의 젖을 먹고 있는 표정은 행복하고 평안한 표정입니다.
외국 미술 단체에서 “평화”를 주제로 미술 작품을 공모했습니다. 많은 작품이 공모했는데 소재가 다양했습니다. 구름 한 점도, 바람도 없는 망망대해에 떠있는 배한 척 한적한 시골의 전원 풍경 꽃핀 들녘에서 가족들이 소풍을 즐기는 모습 노을 지는 석양을 배경으로 한 쌍의 연인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 푸른 초장에서 양떼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 등 평화를 상징하기에 아주 적절한 그림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공모의 당선작은 다른 것이 아니라 “ 거친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의 작은 오두막에서 엄마의 품에 안겨 밖에서 일고 있는 풍랑이나 소란에 아랑곳없이 젖을 빨고 있는 갓난아기의 미소”였습니다. 아기의 최대 요람은 엄마의 품입니다. 집안에 돈도 있고 TV도 있습니다. 만화집도 있습니다. 언니도 장난감도 옷도 신발 냉장고 침대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서럽게 울더랍니다. 엄마라고 부르며 웁니다. 아이의 최대 행복과 평화는 엄마의 품입니다. 그 곳에는 평안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다윗은 고백하기를 “ 나는 하나님의 품 거기서 젖 땐 아이처럼 행복하고 평안을 찾겠노라” 다윗은 시 17:8에서 하나님의 품을 “ 주의 날개 그늘” 이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우리는 주의 품 그 날개 그늘에서 쉬고 평화를 찾고 평안을 추구해야 합니다.
주 날개 밑 내가 평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불어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키시리니 거기서 평안히 쉬리로다 주 날개 밑 즐거워라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리 주님 안에서 그 날개 아래서 평안을 누리며 금년 한해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4. 금년도 영원히 하나님을 바라며 살겠습니다.
3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3절의 의미는 나는 내 일생 하나님을 높이며 겸손히 살겠다. 헛된 일에 나의 건강이나 정력이나 소유를 낭비하지 않겠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품속에 살면서 젖 먹고 난 어린 아이처럼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이스라엘아 내가 그렇게 살기로 한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 통치자로서의 바람을 피력한 것입니다. 바란다는 것은 원한다.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복음서 가운데 “ 사람을 보면 세상을 볼 땐 만족함이 없었네.”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면 세상 것을 얻을 수 있지만 만족과 행복은 얻지를 못합니다. “ 나는 하나님 그분을 볼 땐 나는 만족하였네.” 라는 노래처럼 하나님을 바라면 참 만족과 행복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스라엘아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라고 한 것입니다. 영원까지 바라면 내가 누릴 만족과 행복도 영원까지 계속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새해의 태양이 밝았습니다.
겸손하게 삽시다.
욕심을 버리십시다.
평안을 누리며 삽시다.
영원히 하나님만 바라며 살므로 금년한 해는 가정도 갑절의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 마음은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