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는 욥이 당한 고난으로 시작하여 욥이 그 고난을 훌륭하게 극복하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욥이 졸지에 10남매를 잃었습니다. 욥이 재산은 약탈당하거나 불에 타고 몸은 병이 드는 불행을 겪게 되자 친구들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욥을 위로 한다는 것이 그 명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차례로 욥을 찾아와 위로 대신 공격의 화살을 쏘아대면서 까닭 없는 고난이 있겠는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라고 일렀습니다. 자식을 잃고 병 까지 들게 된 욥에게는 이중 삼중고가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욥의 친구 빌닷이 욥을 찾아와 주고받은 대화의 한 토막으로 욥이 한 말을 반박하는 대목입니다. 물론 그 동기나 이야기의 전개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깊이 새겨야 될 뜻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교훈을 찾으려고 합니다. 특별히 5~7절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 빌닷은 욥이 할 일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①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라고 합니다.
이유는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마귀를 구하면 마귀를 만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7:7에 “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종교심 내지는 종교 본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인간에게는 막연하긴 하지만 초월적이나 절대적인 어떤 대상을 경외하고 숭배하려는 신앙심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샤머니즘으로 나타나고 어떤 사람에게는 우상숭배나 정령숭배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한다는 것은 찾는다. 필요로 한다. 대화한다는 뜻을 갖습니다.
② 욥이 할 일을 전능하신 이에게 빌라고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기도의 대상이 분명해야 헛수고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지식의 유무와 지위의 고아를 막론하고 기복심리가 있습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흉몽을 꾸고 나면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③ 빗단을 욥에게 청결하고 정직하라고 하였습니다.
첫째 : 왜 청결해야 합니까?
그 이유를 주님께서는 마 5:8에서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 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마음도 청결도 중요하고 생활의 청결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마음의 청결은 하나님을 보고 만나는 조건이기 때문에 더욱 더 중요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은 결례 (깨끗하게 되는 법)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살려면 항상 깨끗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결례가 제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필로 깨끗함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결례를 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한 계시록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 어린양의 피로 그 옷을 희게 한 사람들”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 : 왜 정직해야 합니까?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 하나님께서 정식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역대상 29:17을 보면 “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 하나님께서 정직하시기 때문입니다. 사 26:7을 보면 “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셋째 : 정직은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시 15:1~2를 보면 “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 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라고 하였습니다.
넷째 : 정직은 흥하는 비결입니다. 잠 14:11을 보면 “악한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다섯 번째 : 정직은 기도 응답을 받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잠 15:8에 “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정직해야 될 이유는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빗닷은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전능하신 이에게 빌라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고 비는 자의 결과는?
① 정녕 돌아보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돌보시고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결국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셔야 형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갓난아이는 엄마의 돌봄이 있어야 합니다. 고장 난 자동차는 견인차의 견인으로야 공장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훌륭한 선수에게는 훌륭한 코치가 필요합니다. 하물며 우리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평안한 삶을 사는데 하나님의 절대적인 돌보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 17:8에 시인은 “주의 날개 그늘아래 감추사” 라고 노래 한 것입니다.
②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고 비는 자의 결과는?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처음보다 나중이 시작보다 끝이 더 크고 좋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희망과 믿음으로 전진하십시다. 우리 교회가 처음보다 나중이 좋았던 것처럼 지금보다 내일이 모레가 또 그 이후가 더 창대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축복받은 교회이기 때문에 성도 여러분들도 처음보다 나중 더욱 창대 하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