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민족의 형성, 성조 시대(BC 1800-1600)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온 발자취는 구약 성서상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는데,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그 민족 구성원들만의 인간적인 기록뿐 아니라 대부분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성격을 지닌다. 즉, 하느님의 부르심, 선택, 계약, 약속, 예언, 성취, 상과 벌 등의 주제들과 결부되어 그 역사가 전개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여 그들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의 과정으로 전개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원사(救援史)라고 한다.
[1] 아브라함
이스라엘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브람부터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아브람은 노아의 세 아들 중 셈족에 속하였는데, 셈의 9대 손이다. 이스라엘 조상들은 시리아 초원을 떠도는 유목민 생활을 하였다. 아브람의 이야기는 기원전 19세기-17세기에 해당한다. 하느님은 아브람을 부르시어 그를 통해 큰 민족을 형성할 계획을 말씀하신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네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 주는 이름이 될 것이다. 너에게 복을 비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내릴 것이며,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저주를 내리리라. 세상 사람들이 네 덕을 입을 것이다\'(창세 12, 1-3).
아브람은 하느님의 이 말씀을 듣고 어디로 가야 할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느님을 믿고 길을 떠났다. 아브람은 하느님을 믿었으며, 하느님은 아브람이 99세 되던 해에 계약을 맺으시며 그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을 통해 후손을 많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시고 그의 이름을 \'아브람\'(존귀한 아버지)에서 \'아브라함\'(많은 사람의 아버지)으로 바꾸어 주신다(창세, 17, 4-8).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의 증표로서 그 남자 후손들은 모두 할례를 받도록 했다(창세 17, 9-14). 그리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어 주시며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당시 사라의 나이는 99살이었으므로 늙은 몸으로 어찌 아들을 보겠느냐고 웃었으나, 약속대로 그 다음해 아들을 낳아 \'이사악\'(하느님께서 나에게 웃음을 주셨구나)이라 하였다(창세 21, 5-7). 한편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얻기 전 86세 때 사라의 이집트인 몸종 하갈로부터 아들 이스마엘을 얻었는데, 사라가 이사악을 낳자 그를 내보내었다. 그후 아브라함은 백살 때 약속의 아들로 받았던 사랑스런 아들 이사악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라는 신앙의 시련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전적으로 그 말씀을 순종하여 오히려 이사악을 구하고 하느님의 신임을 두텁게 받게 된다(창세 22, 1-18).
그후 이사악은 아내 리브가를 맞아 쌍둥이 아들 에사오와 야곱을 둔다. 에사오는 야곱에게 장자권을 팔고 야곱은 이사악의 축복을 받는다.
[2] 야곱
야곱은 레아와 라헬 두 딸을 가진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라헬을 아내로 맞기 위해 칠 년을 일하였으나 그 외삼촌의 계략에 의해 레아를 아내로 맞았다. 그의 외삼촌이 야곱의 결혼 첫날밤에 라헬 대신 레아를 신방에 들여보냈던 것이다. 야곱이 항의하자 라반은 일주일 간의 초례 기간이 끝나고 칠 년 간을 더 일하는 조건으로 둘째 딸 라헬을 주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야곱은 도합 14년 간 일하여 외삼촌의 두 딸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아들였으며, 레아에게는 몸종으로 질바를 라헬에게는 빌하를 주어 돌보게 하였다.
그리하여 야곱은 두 부인 레아와 라헬 그리고 그들의 몸종 질바와 빌하 사이에 모두 열두 아들을 두게 된다. 레아에게서 여섯 아들을 두었는데 루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이싸갈, 즈불룬, 그리고 라헬의 몸종 빌하에게서는 단, 납달리가 태어났다. 그리고 레아의 몸종 질바에게서 가드, 아셀이 태어났으며, 라헬에게서는 요셉과 베냐민을 두게 된다. 이제 야곱은 외삼촌 라반과 헤어져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브니엘이라는 곳에서 하느님의 천사와 씨름하여 이기고 복을 받게된다. 그리고 여기서 사람이 하느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야곱은 두 부인과 그의 두 몸종들로부터 모두 열두 아들을 두었다.
[3] 요셉
야곱은 열두 아들 중 사랑하는 아내 라헬에게서 얻은 요셉을 다른 아들들보다 더 사랑하였다. 그러자 다른 아들들이 요셉을 시기하였다. 하루는 요셉이 \'해와 달과 별 열 하나가 절을 하더군요\'(창세 37, 9)라고 꿈꾼 이야기를 하자 형제들이 더욱 질투하게 되었다.
결국 요셉은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미디안 사람들에게 팔려 이집트의 경호대장에게 넘겨지게 된다.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은 정직하고 근면하게 살면서 많은 신임을 받았으며, 특히 꿈을 잘 해석하여 크게 성공하게 된다. 나중엔 파라오가 꾼 꿈2)을 잘 해몽하여 이집트 왕국의 재상까지 된다. 요셉은 파라오의 꿈대로 7년 간의 풍년 동안 곡식을 잘 저장하여 그후 이어질 7년 간의 흉년에 잘 대비하였다.
이때 흉년이 들어 곡식을 구하러 왔던 그의 형제들을 만나고, 부모님과 가족들을 이집트로 모셔오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집트의 가장 좋은 곳인 고센 땅 라므세스 지방에 살게 하고 요셉의 첫 두 아들 므나쎄와 에브라임을 야곱의 아들 항렬로 올려 축복을 주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는 속하지 않는다. 야곱은 이집트 땅에서 열 두 아들에게 마지막 축복을 주고 세상을 떠났으며 가나안 땅 막벨라라는 곳에 묻혔다. 이곳은 아브라함과 사라, 이사악과 리브가 그리고 그의 아내 레아가 묻혀있는 곳이었다(창세 49, 28-33). 요셉도 이집트 땅에 와 있는 형제들과 가족들 그리고 이집트 사람들에게 선정을 베풀다가 110세에 죽어 이집트 땅에 묻혔다. 그러나 나중에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실 때 자기 뼈를 가지고 가도록 유언을 한다.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가나안 정착 (BC 1290-1020)
1.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 들어온 지 400년이 지난 후 요셉의 사적을 모르는 이집트 왕이 등극하자 그는 히브리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사내아이를 낳으면 이집트 강물에 던져 죽게 하였으며(출애 1, 22), 히브리 사람들을 강제 노동에 동원하고 종살이를 시켰다(출애 1, 9-14).
이때 히브리 레위 가문에서 탄생한 모세는 이집트 강물에 던져졌으나 구출되어 이집트 공주의 궁전에서 성장하였다(출애 2, 1-10). 성년이 된 모세는 밖에 나갔다가 동족이 고생하는 광경을 목격하였으며, 이집트인 하나가 동족인 히브리인을 때리는 것을 보고 그를 죽였다. 이 일이 탄로 나게 되자 미디안으로 도망갔으며 그곳에서 이드로(르무엘) 집안 시뽀라를 아내로 맞이하고 양치는 목자가 되어 살게 되었다.
1) 모세의 하느님 체험과 소명
어느 날 모세는 양떼를 이끌고 호렙산에 갔다가 불꽃이 이는 떨기 가운데 나타나신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이집트 땅에서 고생하고 신음하는 백성을 이끌어 오라는 사명을 주고(출애 3, 1-12), 하느님의 이름을 야훼 즉 \'나는 곧 나다\'라는 분으로 계시하신다(출애 3, 13-15).
모세는 기적을 행할 힘을 받고 형 아론을 대변인으로 하여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가서 히브리인들을 내보내 달라고 청하였다. 모세는 파라오에게 아홉 가지 재앙, 즉 ① 물이 피가 됨, ② 개구리 소동, ③ 모기의 습격, ④ 등에 소동, ⑤ 가축들이 병에 걸려 죽음, ⑥ 피부병이 전국에 번짐, ⑦ 우박, ⑧ 메뚜기 소동, ⑨ 어둠이 온 땅을 덮음(출애 7, 14-10, 29)을 차례차례 보여주며 청하였다. 그러나 파라오는 계속 마음이 완고해져 고집을 부렸다.
2) 파스카 사건
마침내 열 번째 재앙은 과월절에 치른 것이다. 히브리인들의 문설주에는 양의 피를 발라 두었는데 하느님의 천사가 이것을 보고 \'거르고 지나 가셨으며\'(파스카),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지 않은 이집트인들의 집안에 들어가서는 처음 난 자식과 짐승의 맏배를 죽였다(출애 12, 29).
이를 본 파라오는 마침내 히브리인들을 석방하여 히브리인들은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탈출하게 되었다. 히브리인들은 마침내 홍해 바다를 건너, 추격하던 이집트인들을 홍해 바다 속으로 따돌리고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출애 15, 1-21).
2. 광야 생활과 시나이 계약(BC 1290-1250)
1) 십계명
그후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충고대로 장로들을 세워 통치하였으며,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는다(출애 20, 2-17). 이 십계명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계약의 조건이었다(출애 24, 1-11). 즉,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이 되고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는 계약이었다.
그밖에 모세는 하느님의 분부대로 여러 가지 법령들을 제정하고 성소와 성막, 증거궤, 제단, 제복, 사제복, 친교제, 제사 규정을 정하였다(출애 25-31장).
2) 신앙의 시련과 모세의 죽음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경배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기도 하였다(출애 32, 1-29).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인도로 40년 간 사막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시련과 도전을 통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정화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행군하게 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향해가다가 모압 광야에서 예리고 맞은편에 있는 \'느보산 비스가\'라는 봉우리에 올라 가나안 땅을 바라다보며 120세에 죽는다(신명 34, 1-6).
3. 가나안 정착과 판관 시대(BC 1250-1020)
1)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과 정착(BC 1200)
모세의 후계자로 지정된 눈의 아들 여호수아(신명 31, 1-8)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을 나섰다. 그리하여 요르단강을 건너 예리고를 점령하고 가나안의 여러 땅들을 차지했다(여호 1-12장). 그리고 각 지파별로 땅을 나누어 각 가문별로 유산을 차지하였다(여호 13-19장).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섬기도록 다짐하는 뜻으로 열두 부족의 대표들이 세겜에 모여 큰돌을 세우고 야훼의 성소 앞에서 맹세하였다. 여호수아는 110세에 죽었으며, 그의 생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줄곧 야훼를 섬겼다(여호 24, 29-31).
2) 판관 시기
그러나 여호수아가 죽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살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곳의 발달된 농경 문화와 그 주민들이 섬기던 바알(Baal)신과 토속신, 풍요신(아스다롯신, 아세라신 등)들의 유혹에 끊임없는 신앙적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 신앙을 버리고 가나안의 바알신과 토속 신앙에 빠지거나 외세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판관들이 나타나 이스라엘을 구하고 야훼 신앙으로 되돌려 놓곤 하였다.
판관들(BC 1200-1020)은 이스라엘이 아직 나라의 형태를 갖추지 않은 과도기에 일정한 기간 동안만 통치했던 정치적 민족적 지도자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판관 형태의 통치 시기는 200년 간 지속되었다. 오드니엘, 에훗, 삼갈, 드보라, 기드온, 돌라, 입다, 입산, 엘론, 야이르, 압돈, 삼손 등 12명의 판관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 (BC 1020-586)
1.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사울(BC 1020-1000)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사울은 주변의 이민족들을 무찌르고 왕위를 굳혔다. 그러나 전리품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아 하느님의 눈밖에 났으며, 하느님의 영이 그에게서 떠나자 사울은 길보아 전투에서 죽는다(1사무 15, 1-35, 31, 1-13).
2. 다윗 왕(BC 1000-961)
다윗은 사무엘 예언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하느님의 영을 받아 날로 지혜와 용기가 커졌다. 청년 다윗은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돌팔매질로 쳐부수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의 인기를 시기하여 그를 죽이려고 했으며 다윗은 망명 생활을 했으나 그는 점차적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사울이 죽은 뒤 유다의 왕이 되었다.
다윗은 기원전 천 년경 여부스인들의 성읍인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그곳에 도읍을 정하고 주변의 이방 민족들을 제압하여 이스라엘 왕국을 강력하게 발전시켰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 나단을 시켜 다윗에게 왕권을 든든하게 해주시겠다는 말씀을 전했다(2사무 7, 11-13, 16). 다윗은 계약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고(2사무 6, 1-23), 남쪽과 북쪽의 이스라엘 부족들을 통일시켜 하나의 강력한 왕국을 형성했다.
그러나 다윗은 어느 날 바쎄바라는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반하여 그녀를 궁전으로 데려와 잠자리를 같이 했다. 그리고 그의 남편 우리야를 전쟁이 치열한 곳으로 보내어 죽게 하였다(2사무 11, 1-27). 이 일이 예언자 나단에게 알려지자 나단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다윗을 꾸짖었다. 다윗은 참회하여 용서를 받았으나, 이 죄로 인해 다윗의 집안에는 칼부림이 가실 날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 죄로 태어난 아이는 중병에 걸려 죽게 되고 그 아들 대 이후에 왕국이 분열되리라는 예언을 받는다. 나단 예언자의 말대로 바쎄바와의 첫 아들은 중병에 걸려 죽었으며(2사무 12, 16-23), 다윗 집안 당대에도 왕자들간에 칼부림(압살롬의 반란, 아도니야의 음모 등)이 그치질 않았다.
3. 솔로몬 왕(BC 961-922)
다윗은 다시 바쎄바와 잠자리를 같이하여 둘째 아들을 얻었는데 그가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왕국을 굳건히 하고 발전시킨 솔로몬 왕이다(1열왕 1, 28-40).
솔로몬은 지혜로운 판단과 슬기로 명성이 세상에 알려졌으며(1열왕 5, 9-14), 하느님께 성전을 지어 바쳤고(1열왕 5, 15-6, 38), 그의 재산과 위용은 대단하였다. 하지만 솔로몬은 외국 여인들을 후궁으로 두고 그들의 신당을 지었다. 그리고 시돈의 여신 아스도렛과 모압의 신 그노스, 암몬의 신 밀곰에게 분향 제물을 올려 하느님의 분노를 샀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솔로몬 이후 왕국을 둘로 쪼개어 그중 한 지파를 통해 다윗 왕가가 예루살렘에서 다스리게 하였다(1열왕 11, 11-13). 솔로몬은 예루살렘에서 40년 간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4. 왕국의 분열(BC 922)과 남북 왕국 시대(BC 922-586)
솔로몬이 죽자 이스라엘 왕국은 남북으로 분열하게 된다(BC 922).
1) 북이스라엘 왕국(BC 922-722)
북왕국은 솔로몬의 신하였던 에브라임 지파 출신의 여로보암이 열 지파를 규합하고 세켐을 임시 수도로 하여 북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 북이스라엘의 수도는 세켐, 브누엘, 디르사, 사마리아의 순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종교적으로도 분리하여 단(Dan)과 베델(Bethel)에 성소를 세워서 예루살렘에 가지 않고 예배를 보게 하였다.
북이스라엘은 그후 200년 간 지속되다가 주변 강대국으로 부상한 앗시리아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게 되었다(BC 722). 호세아 왕 때 앗시리아에 매년 바치던 조공을 바치지 않고 이집트 왕에게 사절단을 보냈다. 이렇게 호세아가 반역하는 것을 보고 앗시리아 왕은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다(BC 722, 2열왕 17, 1-23).
북이스라엘에서 예언자로 활동한 이는 엘리야와 그의 제자 엘리사가 유명하다. 엘리야는 아합 왕 때 활동하였으며, 엘리사는 여호람 왕 때 활약하였다.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가 함락당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앗시리아 사람과 결혼하였는데, 그래서 생긴 후손은 사마리아인이라고 불렸다(2열왕 17, 24-41). 이들은 야훼 하느님을 공경하면서도 각자 자기 선조들의 풍습을 지키는 혼합 종교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2) 남유다 왕국(BC 922-586)
왕국 분열 후 남유다 왕국은 솔로몬의 뒤를 이어 르호보암이 왕위에 올라 다윗 가문의 유다 왕국의 명맥을 유지하였다. 그리고 북이스라엘보다 136년이나 오래 지속되어 그 후 총 336년 동안 왕권이 계승되었다. 요시아 왕 때 야훼의 법전이 성전에서 발견되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종교 개혁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바알, 아세라, 하늘의 별신 숭배를 척결하고 그 사제들을 추방시켰으며, 또한 아스다롯 여신상, 모압인의 그모스 신상, 암몸인의 밀곰 신상을 철거하였다.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키야 때 신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침공하여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 왕족과 귀족, 사제들이 처참하게 바빌론으로 유배되었고 그리하여 남유다 왕국도 멸망하고 말았다(BC 586).
남유다 왕국에서 활약한 예언자는 히즈키야 왕 때의 예레미야, 이사야 등이 있다.
이민족 지배하의 이스라엘 (BC 586-AD 70)
1. 바빌론의 유배 생활(BC 586-538)
신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의 침공으로 남유다왕국이 멸망하고(BC 586),유다인들은 정복자의 땅 바빌론에서 60년 간의 유배 생활을 하였다.그들은 바빌론 유배 생활을 통해 그들이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이러한 재앙이 초래되었음을 뼈져리게 반성하였다.
2. 페르시아 치하의 이스라엘(BC 538-333): 유다이즘의 형성
그 후 새롭게 중동의 강국으로 등장한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무너뜨렸다.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중동의 패권을 잡자 이스라엘은 페르시아 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레스 왕은 종교 정책에 개방적이었으며 기원전 538년에 이스라엘 포로들을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칙령을 내렸다(에즈 1, 1-11). 그리고 그곳에서 성전을 짓고 살도록 허락했다.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즈루빠벨의 지도하에 기원전 520년부터 515년에 걸쳐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하였다.
그러나 율법을 준수하는 일에 게을러지고 신앙의 유혹에 자주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유다 총독으로 있던 느헤미아는 기원전 430년경 유다인들에게 율법과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하고 외국인과의 결혼을 금했다(느헤 13, 1-22). 그리고 선비이며 사제인 에즈라도 사람들 앞에서 모세의 법전을 읽어주고 해설해 주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율법을 공부하도록 깨우쳐 주었다(느헤 8, 1-18).
이때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을 연구하고 준수하는데 큰 의의를 두었으며, 모세 오경도 이때 최종적으로 집대성되었다(기원전 400년경). 국가와 통치 제도도 없이 페르시아 치하에 있었으면서도 유다인들이 존속될 수 있었던 것은 율법을 중심으로하는 공동체로 철저하게 결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자 유다이즘이 형성되고, 예언자들의 역할은 감소하고 차츰 사라지게 되었다.
3. 그리스 치하의 이스라엘(BC 333-63)
이스라엘은 기원전 333년 새로이 강대국으로 부상한 그리스 치하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BC 356-323)은 대제국을 건설하고 곳곳에 그리스 문화와 언어를 유포시켜 헬레니즘 문화를 형성시켰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젊은 나이에 열병으로 죽게 되자 왕국은 셋으로 나뉘었다. 그리스 지역은 안티고니드 왕조, 이집트는 라지드 왕조, 시리아는 셀레오쿠스 왕조가 들어섰다. 이스라엘 지역은 이집트의 라지드 왕조에 속하여 100 여 년 동안 그 지배를 받았다. \'프톨레메오\' 라고도 하는 이 라지드 왕조는 민족의 다양성을 인정하였기에 유다인들도 이 기간 동안에는 독자적으로 종교 생활의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었다.
그후 기원전 200년경 파네아 전투에서 안티오쿠스 3세가 프톨레메오를 무너뜨렸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199년 이후 시리아의 셀레오쿠스 왕조의 통치를 받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차츰 종교적 박해를 받게 되었다. 특히 기원전 175년에 왕위에 오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기원전 167년 이집트와 전쟁을 벌여 프톨레메오를 축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성전에서 금은으로 된 성물들을 약탈했다. 그리고 유다교를 박해하며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고 이교 신전을 짓게 하였으며 유다인들이 싫어하는 돼지 고기를 먹게 하였다(1마카 1, 16-64). 이에 유다인들은 분개하여 저항 운동을 일으켰다. 특히 마타디아와 그의 다섯 아들이 봉기하여 이교 제사를 거부하고 투쟁하였다(1마타 2, 1-70).
마타디아가 죽자 마카베오라고 불리는 그의 아들 유다가 그의 아버지를 계승하여 여러 이스라엘 사람과 합세하여 그리스와 투쟁하였다. 마카베오 형제들의 독립 전쟁은 차츰 승리를 거듭하여 독자적으로 독립 체제를 유지하면서 마카베오 가문을 중심으로 한 하스모네 왕조(BC 152-63)를 수립하였다. 그리스 치하 유다인의 독립 왕조인 하스모네 왕조는 기원전 63년 로마에 의해 패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런데 하스모네 왕가는 너무 욕심을 부려 정권과 대제관직을 다 차지하여 독립 운동에 가담했던 경건자(하시딤)가 바리사이파와 에세느파로 분리하게 된다.
4. 로마 제국 치하의 이스라엘(BC 63-AD 132)
이스라엘은 하스모네 왕가의 지도하에 나름대로 독립된 생활을 했으나 기원전 63년 로마 폼페이우스 장군에 의해 점령당하고 로마의 식민지가 된다. 로마의 식민 정책은 그 지역의 유력한 사람을 내세워 통치하게 했는데, 팔레스타인 통치는 유다인이 아닌 이두매아인 안티파텔을 임명하였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때에는 이두매아 출신의 헤로대 왕(BC 43-4)이 다스리던 때였다.
헤로대 왕이 죽자 팔레스타인은 그의 세 아들에 의해 세 지역으로 분할 통치 되었다.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은 헤로데 아르켈라우스(Archelaos, BC 4 - AD 6)에게, 갈릴레아와 베레아 지역은 헤로데 안티파스(Antipas, BC 4 - AD 39)에게, 그리고 팔레스타인 북부 지역은 헤로데 필립(Philippos, BC 4 - AD 34)에게 할당되었다. 헤로데 아르켈라우스가 유다와 사마리아를 다스리다가 서기 6년에 죽자 그 지역은 로마에서 파견한 총독이 체사레아에 머물며 직접 통치하게 되었다.
유다인들은 로마 제국의 식민 통치에 끊임없이 대항하였으며 특히 열혈당원(젤로떼)들은 폭력으로 저항하였다. 유다인들은 조직적으로 규합하여 제1차 독립 운동(66-73)을 전개했으나 예루살렘 성전이 무참히 파괴되었고, 70년에는 사제직도 폐지되고 잔인하게 진압된다. 그후 유다인들은 서기 132-135년에 제2차 독립 전쟁을 일으켰으나 이때에도 처참하게 진압되었다.
그리하여 로마는 유다인 분산 정책을 써서 유다인들을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게 하였다.
유다인들은 나라 없이 1800년 간을 유랑 민족으로 떠돌면서 수많은 박해를 받았으며 1948년 독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