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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2:22-30
어떤 초등학교 교실에 박제된 꿩을 창가에 놓아두었습니다. 어느 날 교실에 들어가 보니 꿩의 털이 다 뽑혀서 흉측한 모습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쥐가 이렇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조사해 보니 털을 뽑은 장본인은 아주 예쁘게 생긴 여학생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왜 그랬냐고 묻자 그 아이는“재밌잖아요.”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초등학생 세 명이 가게에서 쵸코렛을 훔치다가 학교에 잡혀왔습니다. 주인이 노발대발하며 하는 말이“물건을 훔친 것 보다 더 괘씸한 것은 아이들의 뻔뻔한 태도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잘못했다고 하면 타일러서 보내려고 했는데 무얼 그까짓것 가지고 야단이냐는 표정으로“먹고 싶어서요”라고 아이들이 말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원조교제를 하던 어떤 여중학생들이 경찰서에서“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묻자 그들의 대답은“메이커 옷이 입고 싶어서요”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경찰관이“너희들 도대체 이 다음에 무엇이 되려고 그러느냐”고 말하자 그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요즘 아이들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하며 이것도 하나의 아르바이트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아이들의 부모였습니다. 꿩털을 뽑은 아이의 부모는 이 이야기를 듣고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습니다. 쵸코렛을 훔친 아이들의 부모는“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지, 물어주면 되지 뭐 그렇게 난리냐”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경찰서에 잡혀온 여중생들의 부모는 \"우리 아이는 절대 그런 짓을 할 아이가 아니다”라고 했답니다. 세상에 보면 잘된 자녀들도 있지만 잘못된 자녀들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정 가운데 엘리 가정의 자녀들처럼 잘못된 가정도 드뭅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이 전쟁터에 나아가 그만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아버지 엘리 제사장이 듣고 의자에 앉아 있다가 쓰러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불행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밴 며느리는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며느리 역시 아이를 낳고 죽고 말았습니다. 며느리는 죽어가면서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었습니다. 이가봇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란 뜻입니다. 한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던 가정이 졸지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리고 하나님의 버림받은 비참한 가정으로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비참한 가정이 되었습니까? 왜 자식들이 이렇게 불행하게 되었습니까? 우리 가정의 자녀들은 어떻게 하면 잘되게 만들 수 있습니까? 자녀가 잘 되는 길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녀로 만들어야 합니다. 한번에 두 아들이 사법고시에 합격한 분이 신문에 났습니다. 작은 시골 교회 장로님으로 계시는 분입니다. 아들만 6형제를 두었는데 다섯째 아들은 행정고시와 공인회계사 시험에도 합격하였습니다. 막내는 사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기자가 자식들이 그렇게 잘된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 때 김진성 장로님은 \"어려서부터 자식들에게 한 번도 공부하라고 재촉해 본 적이 없어요. 그저 주님을 바라보며 신앙생활 열심히 할 것만 당부했고, 우리 부부는 아이들 앞에 기도의 본을 보이려 힘썼을 뿐이지요.\" 그들의 기도제목은 자식들이 꾸준한 신앙생활로 모두 장로 직분을 맡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합니까? 자녀를 큰 인물로 키우길 원합니까? 아이들에게 신경 쓰는 것보다 더 큰 신경을 하나님에게 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상급이고 방패이십니다. 자녀를 학교 석차로 평가하지 마십시오. 신앙으로 평가하시기 바랍니다. 부모의 우선순위가 바뀌지 않는 한 자녀의 우선순위는 잘 바뀌지 않습니다. 우선 순위를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이 잘되고 자녀의 미래가 보장받는 길은 여호와를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본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는 존중히 여기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도 그를 경멸히 여긴다\'라고 했습니다. 엘리 가정이 불행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 보다 아들들을 더 중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부모가 그러니 그 자녀들도 하나님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불량자가 되어 악한 자들의 행실을 좇았습니다. 성전에서 죄를 짓고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고 아비의 책망을 무시하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여러분의 자녀들을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녀들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자녀가 잘되게 하는 최대의 비결입니다. 적당히 하나님 믿게 만들려고 하지 마십시오. 자녀가 잘 믿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교회 생활하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신앙 생활에 우선순위를 안 두면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참 곁길로 간 뒤 후회하면 그 땐 이미 늦습니다. 이왕 믿을 바에는 잘 믿는 자녀들로, 하나님만을 존중히 여기는 자녀들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향한 사명감을 가진 자녀로 만들어야 합니다. 어느 가난한 청년이 권투를 시작하면서 그의 꿈이 챔피온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밤낮없이 노력한 결과 몇 년만에 챔피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목표가 없었습니다. 타이틀을 지켜야 한다는 두려움과 더 이상 목표가 없다는 허탈감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이는 점점 먹어가고 능력은 쇠하여 갑니다. 점차로 그의 성격은 내성적이 되어갑니다. 그는 그의 친구들, 신문, 잡지, 심지어는 가장 친한 친구까지도 피했습니다. 마침내는 우울한 사람이 되었고, 그의 아내도 그와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왜 이러한 인생의 파국을 만났습니까? 인생의 목표가 고작해야 참피온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의 목표는 영원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한나는 사무엘에게 어린 아이 때부터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는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다. 너는 이 민족의 영적 지도자가 되라\'는 사명감을 계속 넣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그의 아들들이 다 제사장이 될 위치에 있음에도 제사장의 중대성을 철저히 심어주지 못함으로 자녀들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카릴 지브란은 \'부모가 되는 법\'이란 책에서 부모들에게 귀한 글을 남겼습니다. \'당신의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딸들입니다. 비록 아이들은 당신과 함께 있지만, 그들은 당신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당신의 생각을 아이에게 주려고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사명감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영국 스콧틀랜드 선교사로서 아프리카 탐험과 전도에 크게 헌신한 인물인 리빙스턴입니다.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는 훗날 고백하기를 \'나의 오늘 이러한 업적을 이룬 것은 어머니 애그너스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세 아들과 두 딸을 훌륭하게 길러낸 분입니다. 어머니의 경건과 믿음으로 우리 자녀들은 어릴 적부터 어머니로부터 깊은 감화를 받았습니다. 그러한 감화 때문에 내가 아프리카 토인들에게 깊은 사랑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력이고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명감입니다. 사명감 있는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면 사명감이 생기게 되고 그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면 반드시 이 땅에서 잘 되게 되어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셋째 신앙적 가치관을 가진 자녀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란 성경공부 교재를 저술한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이 이런 간증을 하였습니다. \"나는 세 살 짜리 아이를 둔 한 부부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부모가 \'이리 온\'이라고 말할 때, 그 아이는 언제나 불순종하듯 반대편 방향으로 뛰어가곤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는 책망을 하기는커녕 \'허허, 아주 귀엽죠?\'라고 말했습니다. 하루는 그 아이가 앞마당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대문은 열려 있었고 아이는 두 대의 차가 주차된 사이에서 뛰어 놀았습니다. 차가 오는 것을 본 엄마가 \'얘야, 이리 온!\'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웃으면서 평상시대로 반대편 방향으로 뛰어가 막 달려오는 차 앞으로 뛰어들어 그만 현장에서 즉사하였습니다. 그것이 제가 처음으로 집례한 장례식이었습니다.\" 바른 길을, 바른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바른 가치관은 기독교적 가치관입니다. 상황과 이유 때문에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지 못하면 곧 집안의 몰락을 초래할 것이요, 하나님 앞에 범죄 하는 것이 되며,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과 삶을 엄하게라도 가르치면, 자녀들 때문에 눈물이 찾아드는 집안이 아니라 기쁨과 축복이 깃 드는 주님의 가정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무조건 사랑이라는 이상한 병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 기죽이지 않기\"가 유행합니다. 그로 인해 어른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잘못된 행동과 고집을 묵인합니다. 기를 죽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교사가 체벌을 가하면 검찰에 고소해 버리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자신의 자녀 반을 망원경으로 감시하는 부모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바른 가치 있는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엘리는 당시 존경받는 민족 지도자이며 대 제사장이었습니다. 사무엘의 스승으로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와 그의 자녀들은 말년에 인생이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정에서 기독교적인 삶이 실제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부터는 형식적으로 밥 먹을 때 기도하고 형식적으로 주일이면 예배당에 억지로라도 나와야 하는 하나님을 알게 할 것이 아니라 자녀 삶을 지배하는 하나님을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가 하나님이 계시는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나도 우리 아버지처럼 우리 어머니처럼 살아야지\' 하는 비젼을 심어주는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날마다 술에 취하여 부부가 싸우고 자녀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면 자녀들이 하나님을 바로 믿겠습니까? 하나님을 따를 때 잠시 틈을 내어 하나님을 따르는 모습을 보이지 말고 하나님이 삶의 전부가 되어 사는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잃어버리지 않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공부 잘하고 출세하고 돈 잘 버는 사람이 되면 무엇하겠습니까? 누가 뭐라 해도 분명한 신앙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자녀가 참으로 잘사는 자녀입니다. 자녀가 잘 되는 길은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녀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명감이 있는 자녀로 만들어야 합니다. 기독교적 가치관이 분명한 자녀들로 만들어야 복된 자녀, 형통한 자녀들이 될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