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나를 보리라

제목 : 거기서 나를 보리라 (4월20일 부활절)

       마태복음 28장 7-10 절

   엘리자베스 퀴버 워스는 죽음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한 사람입니다. 한 번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자들의 병동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많은 환자들이 죽음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흑인 간호사가 환자들의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삭이면 모두들 얼굴이 환해지고 기쁨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죽을 때도 평안하게 임종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는 궁금하여 그 흑인 간호사에게 물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환자들에게 무슨 말을 했기에 저들이 기쁘게 임종을 맞이할 수가 있었습니까?\" 그때 흑인 간호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나의 좋으신 예수님은 당신의 부활을 약속하셨습니다\". 옳습니다. 좋으신 주님은 우리에게 부활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과 소망이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길에서 만나 하는 인사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였습니다. 그러면 상대방도 \"그 분은 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라고 화답하였답니다. 우리도 옆에 있는 분들과 인사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 분은 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
  오늘은 절망과 죽음의 무덤 문을 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신 날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절망을 말하는 날이 아닙니다. 오늘은 죽음을 말하는 날이 아닙니다. 오늘은 소망을 말하는 날입니다. 오늘은 승리를 말하는 날입니다. 오늘은 부활을 말하는 날입니다. 오늘은 영생을 말하는 날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먼저 가신 곳은 어디입니까? 본문 말씀에 보니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이 말씀은 마태복음 26:32에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 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수 차례 예언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셔서 예루살렘에 오신 것이 아니라 갈릴리로 먼저 가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릴리는 어떠한 곳입니까? 예루살렘이 붙잡혀 고난 당하고 죽임 당한 비극의 현장이라면 갈릴리는 주님을 만난 은혜의 현장입니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셔서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갈릴리는 처음 사랑이 있던 곳입니다
  가이드 포스트지에 킬링거 부인의 간증이 실렸습니다. 이혼한 지 만 1년이 되던 날, 그녀는 모든 것이 먹구름에 싸여 자살하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우연히 딸의 책상에서 딸의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숙제물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여덟 쪽인데 매 쪽에 한 살부터 여덟 살 때까지의 사진 한 장씩을 붙이고 자기의 삶을 설명한 숙제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쪽에 End(끝)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의 글씨 옆에 담임선생님의 \'Your beginning\'(너의 시작이다)이라는 글씨가 \'End\'라는 글씨를 내리 누르듯이 크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이 킬링거 부인이 새 출발하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여덟 살 난 아이가 이야기의 끝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마흔이 된 자기도 결코 끝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예수 믿고 부활을 믿는 자에게는 끝이 없습니다. 여덟 살의 어린아이가 자신의 숙제에 \"끝\"이라고 썼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던 것처럼 마흔살이지만 킬링거부인은 내 삶은 이제 시작이라는 믿음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의 고향이었습니다. 고향이 그리워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심이 아니었습니다. 갈릴리는 열 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난 곳입니다. 갈릴리는 제자들이 주님을 처음으로 따라나섰던 감격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겠다는 첫사랑이 있었던 것도 갈릴리였습니다. 3년 동안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을 위하여 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결단했던 곳이 바로 갈릴리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의 모습은 십자가 사건을 전 후로 해서 모두 절망하고 끝이라고 생각하며 좌절하였습니다. 열정은 식었습니다. 감격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불안과 두려움만 있었습니다. 처음 열정과 감격과 사랑이 다 사라져 버리고 비겁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갈릴리에서 가졌던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처음 감격을 회복하라, 처음의 열정을 회복하라\"는 주님의 뜻이 이 명령을 통하여서 내리신 것입니다.
  갈릴리에서 그들에게 처음 사랑과 감격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끝입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생각이지, 하나님에게는 시작점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시작을 가능케 하는 예수님을 향한 첫 사랑을 회복시켜주는 갈릴리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갈릴리는 진정한 회개가 있는 곳입니다
  1999년 4월 20일 히틀러의 생일날 미국 콜로라도의 리틀톤이라는 마을에서 두 학생의 총기 난사로 13명의 학생과 교사가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히틀러 신봉자인 두 학생은 학생들을 한 곳에 몰아 놓고 총구를 들이대고 한 사람씩 물었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느냐?\" 대부분의 학생들이 살기 위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두 학생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살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캐시 버낼이라는 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신다. 그리고 너희들도 역시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 한다\" 화가 난 두 학생은 \"너는 네가 믿는 하나님 곁으로 가라\" 말하여 총을 난사하였습니다. 캐시 버낼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거룩한 순교의 순간입니다. 이 사건이 끝난 뒤에 학생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캐시 버낼의 순교 앞에 자신들의 비겁함이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그 후 그들의 부끄러움이 신앙의 각성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캐시 버낼의 담대한 신앙 고백의 장면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었고, 잠자던 많은 심령 속에 부흥의 불길을 지피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미국 전역의 학교에서 \"우리도 캐시 버낼을 따르자\" 는 신앙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캐시 버낼의 부활 신앙은 그를 담대하게 만들었고, 담대함 가운데 맞이한 그의 순교는 놀라운 회개의 역사를 일으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갈릴리로 가라는 명령은 \"지금 가고 있는 것이 죄악의 길이고, 잘못된 길이기에 거기서 떠나라\"는 주님의 절대적 명령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서 옛날의 그물을 붙들고 고기를 잡고 있는 베드로를 찾아 오셨습니다. 밤새도록 한 마리 못 잡은 베드로에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리게 하시매 153마리의 고기를 잡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기적을 체험케 하심은 베드로를 회개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나를 부인하고 나를 버리고 도망간 죄를 다 용서하시며 내가 너희들을 믿는다 하시며 진정으로 회개의 기회를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갈릴리로 가라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 역시 가지 말아야 곳인 죄악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서지 말아야 할 곳인 잘못된 곳에 서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가야할 곳은 예루살렘의 출세와 세상적인 자리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의 은혜를 주시는 갈릴리로 가는 회개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을 잃어버렸다면 그것은 잘못된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잘못된 곳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시간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용서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하시는 \"갈릴리로 가라\"는 주님의 명령 앞에 순종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갈릴리는 새로운 사명이 있는 곳입니다
  목화는 두 번 꽃을 피웁니다. 세상의 모든 식물들은 한 번 꽃을 피웁니다. 그러나 목화는 두 번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가지와 줄기가 건강할 때 예쁜 꽃을 피웁니다. 두 번째 꽃은 온몸이 시들어서 말라 죽어가면서 솜꽃을 피웁니다. 목화가 마지막 솜꽃을 피울 때는 말라비틀어지면서 아름다운 솜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갈릴리로 가는 사람은 모든 것을 희생함으로 헌신하면서 주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내 몫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일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걸어갈 때 그곳에 진정한 부활의 기쁨이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마치 목화가 마지막 솜꽃을 힘들어 죽어갈 때 아름답게 피어내듯이 힘들고 어려워도 마지막까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면 주님께서 아름다운 삶으로 승화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주님께서 갈릴리로 제자들을 부르심은 그들의 감격과 열정을 되살려 부활의 주님 안에서 믿음의 확실한 근거와 소명을 얻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갈릴리에서 사명을 확인하고 받은 제자들은 후에 모두 다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로마에서 순교 당하였습니다.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죽었습니다. 열 제자 모두가 주님을 위하여 순교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습니다. 톱에 짤려서 죽습니다. 맹수의 밥이 됩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헌신하였습니다. 부활의 진정한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내게 맡겨진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사명은 기억하고만 있는 과거에 속한 것이 아니라 현재 움직이며 일하는 미래에 속한 것입니다. 사명은 비젼입니다.
 한 사람이 교통사고로 머리와 눈을 다치고 눈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시력은 회복되었으나 이번에는 기억력이 저하되기 시작했습니다. 기억력을 회복하는 치료를 장기간하여 기억력이 많이 좋아졌으나 다시 시력이 떨어졌습니다. 그는 담당 의사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과거에 집착하는 기억력을 찾으시겠습니까? 아니면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시력을 찾겠습니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미래의 사명을 선택하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무덤에서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서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출발지인 갈릴리에서 만나야 합니다. 갈릴리에서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갈릴리에서 잘못된 신앙을 회개해야 합니다. 갈릴리에서 식어진 사명감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갈릴리에서 세상을향한 복음의 비젼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갈릴리로 갑시다. 그곳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부활의 증인이 되어 역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