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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3:14-22
영국에 파라데이라는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신문배달을 하며 학비를 조달했다고 합니다. 한 번은 어느 부잣집에 가니 신문함이 문안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문의 구멍을 통해 상체를 집어넣고 신문을 신문함에 꽂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상체를 안으로 집어넣고 신문을 넣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집 안에 있는 것인가, 집 밖에 있는 것인가?\" 골몰히 생각하다가 다른 사람이 오는 소리를 못 들었습니다. 그 사람도 파라데이가 끼어 있는 것을 모르고 문을 확 열었습니다. 그 바람에 파라데이의 목이 부러질 뻔했습니다. 파라데이가 혼이 나 목을 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상태가 문안에 있는 것인지 문 밖에 있는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히 알게 된 것은 그러한 상태는 목이 부러지기 딱 알맞은 상태라는 사실이다.\" 그렇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 어중간한 상태는 가장 위험한 상태입니다. 병균은 뜨거운 음식에서나, 얼음같이 찬 음식에서는 번식을 못하고 뜨뜻미지근한데서 가장 잘 번식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미지근한 상태에 있을 때 온갖 유혹이 틈타고 불평하게 되며 마귀가 역사 하는 법입니다. 본문에 보니 라오디게아 교회의 교인들이 이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생활이 편안하고 안정되다보니 신앙생활에 생동감이 없었습니다. 뜨뜻미지근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이렇게 변질 되어가는 것은 아닙니까? 믿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열심을 내는 것도 아니고 안 내는 것도 아니고, 헌신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고, 교회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하지 않는 것 도 아니고, 중간상태에 있는 어정쩡한 모습입니다. \'난로 속의 불\'이란 책이 있습니다. 난로라는 틀이 있는데 그 속에 불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라는 틀만 가지고서는 도무지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난로 속에 불이 있어야 하듯이 우리의 심령도 미지근한 상태가 아닌 불이 붙는 뜨거운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미지근해서,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미온적인 신앙생활을 하면 주님이 토해 내치겠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나에게 12명의 진지한 신앙인을 달라. 그리고 나를 어느 지역이든지 내려놓아라. 그러면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즐거이 노래 부를 것이다. 마음에 열정이 없는, 관심이 없는 여러분 전체를 나에게 주어본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며 도전을 했습니다. 열정이 없는 사람들은 오히려 열정이 있는 사람까지 싸늘하게 만드는 방해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에 불이 붙어야 합니다. 미지근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주님과 복음에 불이 붙어야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심을 내야 합니다 미국 뉴욕에 가면 브루클린 다리를 볼 수 있습니다. 브루클린에서 맨하탄 섬을 연결하는 공중에 달려 있는 다리입니다. 공중에 다리를 가설하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조롱을 했지만 한 사람의 건축가는 그 계획을 세웠고 아주 열심으로 그 일을 추진을 했습니다. 그런데 건축가는 공사를 진행하다가 사고를 당해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중단하지 않고 자기 아들에게 모든 공사를 계속하게 했고, 자기는 집에서 망원경으로 다리 공사를 지켜보면서, 일일이 지시를 하고 감독하며 일을 끝내게 했습니다. 드디어 14년 지난 뒤 1883년에 아름다운 다리가 완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열심이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에머슨은 \"역사에 나타난 온갖 크나 큰 업적은 열심이 가져다준 승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즉 열심히 일하는 사람, 열심히 노력하고 연구하는 사람만이 승리하는 법입니다. 최고경영자(CEO)들은 땀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부흥시키려는 비전을 가지고 인내하면서 열심을 증폭시켜 나가시기 바랍니다. 열심의 불꽃이 성령 안에서 여러분들의 가슴에 활활 타오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심령에 항상 불이 있어야 합니다. 가슴에 뜨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 교회는 출석하고 있지만 냉냉한 자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복음에 대해 감격하지 않습니다. 모임에 열심도 내지 않습니다. 울면서 부르짖지도 않습니다. 전도에 열심도 없습니다. 주님이 생활 속에 개입하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무엇을 하시려는지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교회는 나오는데 그냥 나옵니다. 주님과 복음에 대하여 진지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하고 결단력이 없고 대충 대충 믿고 삽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마치 환자가 병을 고치기 위하여 병원엔 열심히 들락거리고 있지만 병을 고칠 마음이 없는 상태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오는 믿음의 사람이라면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이 향상됩니다. 열심을 가진 성도가 될 때 신앙의 불이 붙어 죄악과 정욕을 이기고 마귀 권세를 이기게 됩니다. 열심이 없이는 영적 세계에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열심이 있어야 삽니다. 신앙의 열심을 회복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유명한 작곡가 리스트가 어느 날 독일의 조그마한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에 마침 피아니스트 아가씨가 피아노 독주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방에 광고를 써 붙이고 소문을 내었습니다. 신문에 \"피아노 독주회를 가집니다. 독주자는 리스트의 제자입니다\"라고. 리스트의 제자라면 명예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독주회 바로 전날 리스트가 이 마을을 방문한 것입니다. 이 여자는 리스트의 얼굴도 본 일도 없습니다. 당황한 이 여자는 이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리스트가 여기 왔으니 이제 난 죽었다.\' 그래서 숙소에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저는 혼자서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선생님의 고귀한 이름을 도용을 하고 선생님의 제자라고 광고를 내어 독주회를 하려고 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회개를 했습니다. 리스트가 웃으면서 \"큰 실수를 했구먼요. 그러나 누구나 실수는 한답니다. 이리 오세요. 피아노에 앉아서 한 곡을 치세요.\" 그래서 잠깐 피아노를 쳤습니다. 리스트는 말했습니다. \"여기 이렇게, 이렇게 조금 달리 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리스트가 하는 말이 \"분명히 내가 당신을 가르쳤습니다. 그런고로 이제는 당신은 분명히 내 제자입니다. 그리고 연주회에 내가 참석하겠습니다. \'마지막 곡은 제 스승 되시는 리스트 선생께서 하시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세요. 제가 한 곡 쳐드리겠습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거기서 눈물을 흘리고 진정으로 회개합니다. 그 회개가 참다운 회개입니다. 회개할 때에 비로소 자유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비로소 얼굴이 밝아질 수 있습니다. 참으로 회개할 때에 병도 치료받을 수가 있습니다. 환한 얼굴 온전한 인격을 다시 세우게 됩니다. 탈무드에 보면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처럼 마음 가벼운 일은 없다\"고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자기가 옳다고 고집하는 것처럼 마음 무거운 일은 없습니다. 회개가 있었기에 기독교가 있었고, 회개가 있었기에 교회가 있었고, 회개가 있었기에 부흥이 있었고, 회개가 있었기에 희망이 있었고, 회개가 있었기에 기쁨과 행복이 있었고, 회개가 있었기에 천국이 있었습니다.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을 꼭 붙들어야 합니다. 왜 기도 안 합니까?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기도 안 하는 것은 피곤하기 때문이 아니고, 힘들어서가 아니고 하나님 없어도 살수 있다는 교만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만과 게으름과 안일함을 벗어 던지는 참된 회개로 나아오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어느 아버지와 아들이 교회를 갑니다. 오늘도 같이 교회를 갑니다. 그 교회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벽에 그림이 한 장 걸려 있습니다. 그 그림은 여러분들도 자주 보시는 그림인데 예수님이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는 모습으로 서있는 홀만 헌트의 그림입니다. 하루는 어린 아들이 아버지한테 묻습니다. \"아버지, 저 그림은 무슨 내용 이예요?\" 아버지는 \"예수님이 문밖에 서서 두드리는 그림이지\" \"그래요. 그런데 왜 문이 안 열려요?\" 아버지는 무심코 대답했습니다. \"저것은 그림이란다. 그림이니까 안 열리지\" 그런데 아들이 말합니다. \"틀렸어요. 아빠, 집안이 너무 시끄럽기 때문에 예수님이 문 두드리는 소리를 못 들어서 문을 못 여는 것 이예요\" 여러분 가정이 시끄럽습니까? 그렇다면 은혜의 소리가 안 들립니다. 부부간에 시끄럽습니까? 사랑의 소리가 안 들립니다. 교회가 시끄럽습니까? 은혜의 소리가 안 들립니다. 내 영혼이 시끄럽습니까? 주님의 음성이 들릴 리가 없습니다. 시끄러우면 은혜의 문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모습을 보니 전부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의 문을 꼭 닫고 있었습니다. 무슨 소리를 해도 열지 않습니다. 그들은 삶 속에서 하나님 생각이나 예수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예수님은 \'문을 열어라, 열면 내가 들어가서 너와 교제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생명, 엄청난 축복을 너에게 나누어주겠다\'고 하십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중앙에 모시는 자만이 주님으로 인한 기쁨과 감격을 맛보게 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기게 됩니다. 지금 이 시간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내 생애를 향하여 두드리십니다. 우리 교회를 향해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이 시간 마음 문을 열고 미지근한 모습에서 뜨거운 신앙의 모습으로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난로만 있고 불이 없으면 주님이 탄식하십니다. 주님이 구토할 정도로 역겨워하십니다. 그러나 난로 속에 불이 있으면 주님과 교제하는 삶의 맛을 누리게 되고 주님께 함께 다스리는 능력을 맛보게 됩니다. 이제 열심 있는 마음으로 나아옵시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아옵시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님과 함께 동거하십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채우십니다. 우리의 영혼을 복되게 하십니다.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십니다. 우리의 영혼을 평안케 하십니다. 시끄럽습니까? 산만하십니까? 조용히 문 두드리는 주님의 소리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의 어떤 맛보다도 더 좋은 주님의 맛으로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어떤 세력보다도 더 좋은 주님의 세력으로 만족하면서 땅위에 사는 동안 주님의 역사를 힘있게 이루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