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 으로 가는 목자 처럼

제목 : 베들레헴으로 가는 목자처럼 (12월22일 주일)

       눅 2:15-20

  제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와 독일간에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포탄이 터지는 참혹한 전쟁터에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습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병사들은 빛나는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저마다 고향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성탄의 낭만과 추억을 더듬었고 그 중에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아기로 오신 주님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프랑스군의 참호에서 한 병사가 벌떡 일어나더니 총을 내던지고는 아름다운 테너의 목소리로 하늘을 향하여 감격에 찬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오 거룩한 밤 별들 반짝일 때 거룩한 주 탄생한 밤일세 오랫동안 죄악에 얽매어 헤매던 죄인을 놓으시려…\" 이 찬양을 듣고 있던 맞은편 진영의 독일군 병사 한 명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총을 던지고 우렁찬 베이스 목소리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이 사건 때문에 전쟁터에는 잠시 휴전이 되었습니다. 다음날 크리스마스에는 아기 예수님 때문에 전쟁 중에도 평화를 누리는 시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 진정한 평화는 주님 안에서만 있습니다. 하나님은 평화의 왕으로 에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어 주셨습니다. 성탄절은 사랑의 사건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가 성탄절을 통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이 천년전 예수께서 탄생하셨다는 기쁜 소식이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제일 먼저 전해졌습니다. 위대한 정치가나 종교지도자들, 그리고 많은 신자들이 아니라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소식이 가장 먼저 전해진 것입니다. 목자들은 천사의 음성을 듣고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고 말하며 베들레헴으로 달려갔습니다. 오늘 우리도 베들레헴으로 달려가는 목자들처럼 참된 성탄을 맞이하여야 합니다.

  첫째로 베들레헴으로 가는 목자들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성서주석가 메튜헨리는 천사가 예수 탄생의 소식을 목자들에게 전한 이유를 대제사장, 장로, 서기관들은 기쁜 소식을 받을만한 준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목자들은 양떼를 지키기 위해 깊은 밤에도 깨어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본문의 \"지키더니\"의 헬라원문은 현재분사로 계속적인 동작을 나타냅니다. 곧 목자들은 줄곧 깨어서 양떼를 계속 돌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목자들이 밤에 자고 있었거나 자기 양떼에 무관심했더라면 주님의 탄생소식을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성탄과는 무관한 사람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1943년 영국의 빈민가에서 한 소년이 태어났습니다. 그 소년의 아버지는 별 볼일 없는 유랑 서커스단의 단원이었습니다. 이 소년이 12살 되던 해 그 아버지가 속한 서커스단이 파산되는 바람에 집안이 풍지박산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영국의 빈민가 브리스톨의 낡은 아파트로 옮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소년은 열 두살 되던 해에 그래머스쿨의 장학생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소년의 가정은 먹고살기도 어려웠기에 그래머스쿨에 다니는 동안 소년은 가난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 소년은 세 가지 삶의 좌우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치우치지 말 것, 둘째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것, 셋째로 순수하고 정직할 것이었습니다. 이 소년은 이 세 가지를 늘 마음에 지니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결과 1979년 헌팅턴 지역구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외무부 장관을 거쳐 대영제국의 제 52대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죤 메이저 총리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에서도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 결과로 성공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원칙은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목자들에게 예수님 탄생의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는 것은 가난하고 천박한 직업에 있을지라도 최선을 다해 자기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주님은 자신을 나타내시며 좋은 소식을 주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금번 성탄에도 맡겨진 직무에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심으로 신앙의 도약을 삼는 기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베들레헴으로 가는 목자들은 체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라고 16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목자들은 빨리 갔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던 메시야가 아기 예수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는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의 \'빨리가서\'의 공동번역은 \'곧 달려가서\', 영어 성경은 \'전속력으로(With full speed)달려갔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즉시 이뤄지는 순종 속에 하나님은 신앙의 체험을 허락하십니다. 신앙은 확고한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신경은 \"내가 믿사오며\"로 시작됩니다. 신앙고백을 라틴말로는 \'크레도\'라고 합니다. 크레도는 \'내가 믿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다는 것은 내가 확실히 체험했다는 뜻입니다. 목자들은 천사의 소식을 들었을 때 누가 양떼를 지켜줄까? 누가 양떼를 보호할까? 염려하지 않고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순종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양을 지키는 일보다 더 우선순위로 여겨진 것이 자신들에게 들려진 천사의 음성을 빨리 가서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즉 말씀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나는 보았습니다\', \'내가 믿습니다\' 라고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힘이요 소망이며 승리인 것입니다. 만약 목자들이 천사의 메시지를 들은 후에 그냥 그대로 들판에 머물러 있으면서 짐작만으로 아기 예수가 태어나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들은 관념으로만 예수님을 만났을 것입니다.
  신앙은 사색과 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들은 바를 찾아가야 합니다. 찾아 만나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예수님을 안다\"라는 차원에서 \"나는 예수님을 찾았다\" \"나는 예수님을 만났다\"라는 체험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건축가는 먼저 머리 속에 집을 그립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집이 되지 않습니다. 머리 속으로 그린 건축도면대로 집을 지어 나가야 합니다. 화가는 먼저 머리 속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그것만으로는 작품이 되지 않습니다. 머리 속으로 그린 그림을 그 다음에는 캔버스 위에 붓으로 물감을 칠해가며 손으로 그림을 그려야 작품이 됩니다. 체험 없는 신앙은 관념에 불과합니다. 금번 성탄절에는 우리 위해 오신 주님을 찾고 만나는 영적 체험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베들레헴으로 가는 목자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린 사람들입니다
  1346년 전 유럽은 흑사병이라고 하는 페스트의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전 유럽인구의 1/3이 페스트의 공격을 받았으며 영국과 프랑스는 절반 가량이 이 전염병에 쓰러져 갔습니다. 지구의 종말인 온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은 런던은 조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청년 몇 명이 거리에 나와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는 찬양을 힘차게 부르며 행진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삽시간에 수 십명, 수 백명으로 불어나 합창이 시작되었습니다. 공포에 떨던 런던 시내는 우렁찬 찬양으로 가득 찼습니다. 결국 런던 시민들은 희망을 되찾게 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탄절 찬양이 죽음의 현장에 있는 그들에게 소망을 준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목자들은 베들레헴에 가서 보고들은 일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송하며 돌아갔습니다. 다시 양치는 목자로 돌아갔지만 베들레헴 말구유를 다녀온 후 저들의 삶은 소망으로 차고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기다리고 사모하던 메시야가 탄생하셨으니 이제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답답하고 안타깝던 저들의 마음속에 소망이 자리잡게 되므로 찬송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들의 생활은 베들레헴에 가기 전이나 갔다 온 후에나 달라진 것이 없지만, 저들의 마음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어둠으로 꽉 차 있던 마음속에 빛이 비취기 시작한 것입니다. 불평과 한숨이 변하여 찬송이 된 것입니다.
  금번 성탄에 우리도 이와 같은 소망을 얻기 위해 영적 베들레헴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말할 수 없는 답답함과 절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제대로 되는 것을 볼 수 없고, 희망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전해질 희망의 소식은 우리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소식이며 아기 예수가 계신 베들레헴에 소망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임마누엘의 주를 만나야 합니다.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뵈올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처럼, 우리도 삶의 어려움속에서 아기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심이 성탄의 은혜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탕자가 일어나 아버지 집을 향하여 돌아가듯 베들레헴을 향한 순례의 길을 떠납시다. 베들레헴은 아기 예수님이 나신 곳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믿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겸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소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잃었던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거기서 얻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우리의 상처받은 마음을 싸매 주며 낙담한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이제 베들레헴으로 갑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 희망을 얻어 어두움과 절망을 걷어내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시는 가장 복된 성탄절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