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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1장 25-30절
중국의 당태종이 외적과 전쟁할 때 어떤 신하가 이렇게 간했습니다. \"오늘은 왕망일입니다. 금일에 출전하면 패망을 자초할 것입니다\"라고 하자 당태종은 \"금일은 적에게 왕망일이다. 내게는 왕흥일이 될것이다\"라고 대답한 후에 적을 공격하여 대파하였습니다. 운명론자들은 연월연시를 가지고 사주가 나쁘다느니 팔자가 세다느니 하지만 사주팔자가 인생에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이 세월을 바로 쓰지 못하고 자기의 행로를 개척하려는 바른 의지가 없을 때 악운은 절로 임하는 것입니다. 세월이나 시간에 무슨 길흉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인생이 자기의 본분과 책임을 다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흥망이 결정됩니다.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된 것처럼, 답게\' 살기는 어렵습니다. 교인이 되는 것은 쉽습니다. 특별한 시험을 치르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 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교인답게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집사, 권사, 장로, 목사가 되는 것도 어떻게 생각해보면 쉽습니다. 그러나 그 직분에 합당하게 사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 어려운 이 세대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사는 것은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바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살려면 바보 취급받는 것을 당연히 알고 살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의 손에 한 해라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은 한 해를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모습은,
첫째로 믿음에 진보가 있는 삶이어야 합니다 고사성어 중에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을 비비고 상대방을 본다는 말입니다. 오랜만에 상대방을 보니 사람이 발전하고 성장하여 전혀 다른 사람같이 보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대장부는 삼일 후에 보면 뭔가 달라 보여야 한다고 하는 말도 있습니다. 진보를 나타내라는 말입니다. 어느 음악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하루만 연습을 쉬면 내 실력이 퇴보한 것을 내가 안다. 이틀을 쉬면 선생님이 안다. 사흘을 쉬면 나의 관객 모두가 안다.” 참 무서운 말입니다. 우리는 경건의 연습, 훈련으로 우리 믿음 생활에 진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한 주일만 교회 예배에 빠지면 다음 주일에도 가기 싫어집니다. 또 한 주일 빠지면 교회가 멀리 보입니다. 그 다음 주일쯤에는 하나님에 대해 의심이 생깁니다. 몇 번 빠지면 신앙을 잃어버립니다. 부모가 자녀의 성장을 기대하는 것처럼 주님도 우리의 믿음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가 뒤로 물러가는 것을 결코 원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진보해 가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성장해 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본문에서는 전심전력을 다하여 진보를 보이라고 했습니다. 전심전력(全心全力}이란 말은 마음과 힘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인간문화재 한 분인 박동진이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TV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제까지 저는 매일 아침 하루 4시간 이상 소리 연습을 했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몸이 아프거나 피곤하거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리 연습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자가 너무나 신기해서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삽니까?\' 그 질문을 받은 이 박동진 씨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소리를 연습 한다는 것은 내가 왜 살아 있는가에 대한 본질을 알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이 내가 사는 삶의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까?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진보가 있는 신앙생활 하는 것이 판소리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만큼도 되지 못한다면 신앙생활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입니까? 한 해 동안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습니까?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오늘 이 시간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 신앙은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진보를 향하여 하고 있는가?\" 오늘 이 시간 우리의 삶을 반성하고 새로운 결단을 하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신앙에 협력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어떤 가난한 서민들이 사는 동네에서 한 집은 이사를 가고, 한 집은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이사를 가는 사람에게 묻기를 \'왜 이사를 갑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사를 가는 사람은 \'나에게 도움을 줄 좋은 이웃을 찾아 떠나갑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이사를 오는 사람에게 묻기를 \'왜 이사를 옵니까\'라고 하자, 그는 \'나는 이 동네 사람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어 주기 위해서 이사를 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며 사느냐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될 수만 있으면 한 마음과 한 뜻을 품으려 함은 복음에 합당한 태도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단결하기를 원했습니다. 외적으로 불어오는 박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내적으로 단결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지체로서 다른 지체들과 유대관계를 맺으며 일치 단결하여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종교 개혁하면 마틴 루터 한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마틴 루터와 더불어 짝을 이루어 함께 동역했던 친구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종교 개혁사에 등장하는 필립 멜랑흐톤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마틴 루터보다 15살 아래였습니다. 그러나 굉장히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얼마나 친했느냐 하면 두 사람은 죽은 다음에도 유언을 따라서 부부지간도 아닌데, 비텐베르크 교회의 한 무덤 안에 묻힐 정도였습니다. 마틴 루터가 일종의 행동주의자였다면, 필립 멜랑흐톤은 이론적인 학자였습니다. 사실 루터는 종교개혁을 하다가 종종 실망했습니다. 좌절하기도 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때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자기의 어린 후배이자 친구였던 멜랑흐톤은 늘 루터 곁에서 말하기를 \"당신이 성경에서 발견한 진리를 진리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그 진리는 반드시 이길 것을 믿어야 하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멜랑흐톤은 편지를 쓸 때나, 개인적으로 말할 때나, 기회가 닿는 대로 루터에게 성경 말씀 한 구절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구절이 바로 롬 8장 31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결국 마틴 루터는 필립 멜랑흐톤의 격려와 사랑과 중보를 통해 종교개혁을 계속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솔로가 아니었습니다. 나 홀로 경주자가 아니었습니다. 교회사에서 하나님의 일을 능력있게 감당했던 사람들은 자기 은사와 능력만을 믿고, 겁 없이 달리던 솔로 경주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훌륭한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기도로 돕던 중보자들이 있었습니다. 함께 달리던 믿음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은 패하거니와 삼겹줄은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영적 싸움에서는 솔로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소영웅주의자 보다도, 비록 부족해도 \'함께 기도하며, 함께 땀흘리며 합심하는 자\'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중에 한 사람도 솔로가 되어 사탄에게 넘어가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나 홀로 장군이 되어 영적 싸움에서 패하는 패잔병이 이 자리에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복음으로 하나되고, 사랑으로 하나되시기를 바랍니다. 일심으로 협력하여 사탄의 공격을 괴멸시키는 주님의 강한 영적 군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한 목적, 한 뜻을 가지고 서로 협력할 때 우리 교회의 장래는 밝아지게 됩니다. 서로 협력하는 일에 힘을 다하는 신앙적 삶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고난에 동참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미국의 발명가였던 토마스 에디슨은 모든 시간을 발명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여행하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기차 안에 작은 실험실을 만들어 놓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차 안에서 연구를 하던 중 기차가 덜컹거리는 바람에, 화학 약품이 든 약병 하나가 떨어졌고, 이것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연구실에 불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 동안 연구한 내용들이 순식간에 불에 탔고, 에디슨도 위험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때 차장이 급히 달려와 에디슨을 차창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다행히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으나 그 사고로 에디슨은 귀를 다쳐 청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귀머거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난 후, 그는 평생을 수많은 연구를 전념했고 그 결과로 1000여종이 넘는 발명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에디슨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당신은 그렇게 많은 연구를 할 수 있었습니까? 당신은 천재중에 천재입니다\" 그 때 에디슨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귀가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주위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나는 그 시끄러운 소리를 잘 듣지 못하니까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내가 하는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귀머거리가 된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만약 에디슨이 \'귀가 멀었다\'고 불평하고 한탄만 했다면, 그는 \'발명왕\'이라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 중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참고 인내했고, 도리어 이것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29절 말씀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감수고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단 것은 받아들이고, 쓴 것은 뱉어 버린다는 뜻입니다. 진실한 사람이라면 좋은 때만이 아니라 나쁜 때에도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는 성도라면 고난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 값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통과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이처럼 크신 은혜와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종종 어렵다고 힘들다고 고난을 피하려 하지 않았습니까? 성도는 일생을 살아가면서 고난이 닥쳐와도 변함이 없이 예수님을 따라야만 합니다. 힘이 들어도 마음에 안 들어도 예수를 따라가야 합니다. 성도들에게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어떠한 위험이라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최후의 승리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다 더 가까이 해야 합니다. 고난은 불행이 아니라 도리어 축복이 됨을 믿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피하지 마시고 기꺼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분명 주님은 감당할 수 있는 시험과 고난을 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피할 길을 주셔서 능히 감당케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주어지는 새해에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여 천국시민답게 사시기 바랍니다. 복음신앙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일에 귀하게 쓰임 받고, 진보된 믿음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음도 은혜로 알고 잘 감당함으로 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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