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서로 사랑해

제목 : 우리 서로 사랑해 (12월1일 주일)

      요 13장 34-35절

  이집트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 상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감화를 주며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군목의 부름을 받고 갔습니다. \'상사, 당신이 요새 갑자기 전우들의 좋은 이웃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고 목사가 물었습니다. 이유는 최근까지만 해도 상사는 억세고 거친 군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부대에 한 크리스챤이 있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그를 구박하고 모욕했습니다. 어느 날 밤에 그가 기도하기 위해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을 때 내가 군화로 그의 머리를 후려갈겼습니다. 그는 잠자코 있었어요.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 군화가 깨끗이 닦여 침대 옆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이 나의 잔인한 행동에 대한 그의 응답이었습니다. 나는 그의 행위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들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인간을 버티게 하는 것은 사랑의 힘에서 나옵니다. 사랑의 힘으로 가정을 세우시기를 원합니다. 사랑의 힘으로 교회를 세우고, 사랑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카미첼여사는 동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것은 치명적인 독과 같습니다. 그것은 암입니다. 그것은 서서히 마침내 반드시 죽이고 맙니다. 코브라를 기르기를 두려워하듯 사랑하지 아니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것은 코브라 보다 더 무서운 독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사랑하지 않는 미움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모두에게 퍼지는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 발견되면 가능한 즉시 모든 것을 멈추고 그것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갈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눈앞에 둔 마지막 설교의 내용이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첫째로 서로 사랑은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인간적인 관계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의 수직적 관계로부터 옵니다. 사실 우리는 사랑할 힘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만듭니다.그러므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결과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사제이며 심리학자입니다. 그는 자신의 풍요로움에 대한 죄책감과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스스로 대학 강단을 떠나 페루의 빈민가로 가서 민중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하버드 대학에서 교편을 잡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안식을 느낄 수 없어 다시 강단을 떠나 카나다 토론토에 있는 정신박약장애인의 공동체에 들어가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다 1996년 9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납니다. 하버드대학의 교수라는 최고의 지성을 떠나 말도 거의 하지 못하는 정신 장애인들과 어울려 새로운 삶을 살면서 나우웬은 기독교 사역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우웬이 정신박약 장애인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었겠습니까? 그의 뛰어난 학문도, 미래를 꿰뚫어 보는 판단력도, 그의 명쾌한 논리와 문장력도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실감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그들을 위한 뜨거운 사랑뿐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에게 오직 필요한 것은 하나님 사랑입니다. 자신을 아끼지 않고 목숨까지 내어주신 그 구속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한 성도님이 교회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인격적인 모욕을 당했는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차라리 예수 믿지 않는 사람에게 욕먹었더라면 견딜 수 있지만 같은 교인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 견딜 수가 없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너의 원수를 사랑하며 너의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독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말씀이 그러니 어떡합니까? 자기에게 모욕을 준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눈에서 눈물이 납니다. 너무너무 억울해서 잘못은 저 사람이 했는데 왜 내가 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줘야 하나. 참 말씀도 너무하시다. 그렇지만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고 억울해서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기도하는 가운데 앞에 십자가가 나타납니다. 주님이 얼마나 크신 사랑을 내게 베풀어 주셨으며 주님께서 얼마나 크신 용서를 내게 베풀어 주셨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어느덧 원망과 억울함의 눈물이 감사의 눈물로 바뀌어집니다. 그리고 그 기도 후에 상대방을 바라보니 전에는 극히 미웠는데 이제는 사랑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전에는 내 마음이 지옥 같았는데 이제는 삶이 천국으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구속의 사랑으로 사랑할 때 나도 행복하고 상대방도 행복하고 우리 모두가 행복하고 하나님도 행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서로 사랑은 주고 또 주는 사랑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인 알프렛 아들러에게 여자 우울증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의사는 그 여인의 환경을 조사해 보았지만 흠 잡을 데가 없는 유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남편문제 자식문제 경제문제 모든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병의 원인은 “나누어주지 못함”에 있었습니다. 다 있는 것 같은데도 오는 영혼의 공허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받기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주는 사랑입니다. 거기에 삶의 의미와 보람이 있고 생명력이 있는 것입니다. 의사는 두 주간 복용할 약을 처방해 주면서 말하기를 이 약을 복용하면서 꼭 지켜야 할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두 주일 동안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해 줄 수 있을까’를 열심히 생각하고 그 사람들을 사랑해주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 환자가 그 의사의 말대로 그대로 했더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울증은 치료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사랑을 받지 못하면 정신적으로 병이 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만큼의 사랑을 부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의 반쪽만 본 것입니다. 사랑을 주지 못하고 사랑을 베풀지 못하는 것도 큰 병이 됩니다. 진정한 사랑의 힘이란 내가 상대방에게 받는 것 이상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며 사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사회심리학의 대가인 에릭 프롬은 사랑은 기술 또는 예술이라고 했습니다.
  중세시대의 예술가 미켈란젤로는 버려져 있는 못쓰는 대리석을 보면서 저기 천사가 하나 버려져있다고 했습니다. 울퉁불퉁한 대리석처럼 아무리 쓸모 없는 돌이라도 미켈란젤로의 마음에 담기면 그 사랑의 능력 때문에 그의 손에만 가면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사랑은 주고받는(Give and Take)사랑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주고 또 주는 사랑(Give and Give)입니다. 보통 암과 같은 중병은 스트레스로 생긴 병입니다. 우리말로 화병이고 한이 맺힌 병입니다. 그런 병은 어떤 종류의 약을 먹어도 안 듣습니다. 그런데 그런 환자가 하나님을 향해 \"나는 당신을 정말로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나는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 백 번 6개월만 해보십시오. 그 암세포가 떨어져 나갈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사도는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고 말씀했습니다. 열심이란 단어의 원어는 ‘엑테네’로서 ‘잡아 늘인다’는 뜻입니다. 고무줄이나 스프링을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잡아늘이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의 고무줄이 늘어났기 때문에 허다한 죄를 덮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에 눈이 멀면 추운 것도 모르고 더운 것도 모르고 뭐 작으면 작은 대로 좋고, 크면 큰 대로 좋고, 실수하면 실수하는 대로 예쁘고, 그냥 무턱대고 마냥 좋기만 한 때가 있었다면 이것이 바로 잡아 늘여진 사랑입니다. 그 순간에는 허물이란 없고 실수도 없고 죄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고 또 주고 싶어하는 사랑입니다. 그것이 바로 열심으로 사랑하는 것이며 열심으로 사랑하는 자는 피곤함이 없고 허물이 보이질 않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행복한 것입니다. 잡아늘이는 베푸는 사랑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교회는 이 세상 사람들이 찾고 있는 사랑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의 해답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교회가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싸우는데 교회까지 서로 싸우고 갈등한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교회에 올 수 있겠습니까? 미국 이민 교회가 잘 갈라짐을 풍자한 말이 있습니다. \"중국 사람 세 사람이 모이면 음식점을 차린다. 일본 사람 세 사람이 모이면 건물을 산다. 한국 사람 세 사람이 모이면 교회를 한다. 그러다가 그 교회는 곧 세 개가 된다.\"
  초대교회 시기에 소아시아 지역의 비두니아 총독으로 있던 플립이 당시의 로마 황제 트라이얀에게 보낸 편지가 지금까지도 보관되어 있습니다. 아마 황제가 소아시아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활동을 감시하라는 명령에 대해서 보고서 형식으로 기록된 편지입니다. 그 내용인즉 “황제시여! 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제 부하 중 몇 사람을 완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교회 공동체에 들어가게 하여 세례도 받게 하였고 오랫동안 그리스도인들에 일거수 일투족을 면밀하게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부하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들은 밤이건 낮이건 모일 때마다 그들의 신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한다고 합니다. 또 많은 양을 소비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자주 빵을 때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한다고 합니다. 참으로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황제시여! 그들은 로마의 관리들을 위해서 그리고 황제폐하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 공동체로 비춰질 때 바로 그 때 주님이 영광 받으시고 바로 그때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1세기에 그들이 숨어 지냈던 카타콤의 어느 벽면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므로 천국을 경험한다.” 어둡고 습기 찬 지하감옥 동굴 속에서 어둠 속에서 그들은 천국을 경험했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함으로 아름다운 천국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