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립보서 1장 20-21절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에서 큰 부흥집회가 있었는데 난치병과 불치의 병이 고침 받는 기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소문은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져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 오는데 그 중에는 병을 고침 받으러 온 사람도 있고, 호기심으로 구경나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끄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전쟁에 나가 부상으로 다리 하나를 잃고 목발을 짚고 나온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수군거렸습니다.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다리를 주시기를 원하나보다.\" \"저 사람은 한쪽 다리를 붙여 달라고 나왔나?\"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만 좀 지나 친데\" 하고 말입니다. 집회를 인도하시던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청년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내가 청년을 위해 무엇을 기도해 주기를 바랍니까?\" 그때 청년은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잃어버린 한쪽 다리를 주시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한쪽 다리로 두 다리 못지 않게 굳게 서서 열심히 일하며 사회와 국가를 위해 보람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새 힘을 얻으려고 나왔습니다.\" 누구보다도 참된 소원을 가진 이 사람은 후에 프랑스 상공부 장관을 지낸 르홍이라는 분입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복 있는 사람이겠습니까? 미래에 대한 소원이 있는 사람입니다. 소원이 없는 사람은 그 존재 가치를 상실한 사람입니다. 그럼으로 사람에게 있어서 앞날에 대한 소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하는 것은 실로 아름답고 귀중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소원은 참된 소원이어야 합니다. 희망사항에 그치는 소원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믿음의 소원들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았던 바울은 참된 믿음의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도 사도바울이 가졌던 이러한 참된 소원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모든 일에 부끄러움 없기를 소원합니다 어떤 종교 잡지에 ‘그렇지만 주님’이라는 제목의 기도문이 실려 있습니다. ‘주님, 주님 말하라고 하신 그대로 말을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장사 할 때만은 예외로 봐 주십시오. 주님이 가라고 하시는 대로 가겠습니다. 그렇지만 교회만큼은 매 주일 가라고 하시지 마십시오. 주님이 바치라고 하시는 대로 바치겠습니다. 그렇지만 체면 유지 정도로 조정해 주십시오. 주님이 지라고 하시는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그렇지만 짐꾼을 사서 대신 지게 해도 되겠지요? 주님이 사랑하라고 하시는 대로 사랑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하라고 말씀하지 마시고 내일로 미루어 주십시오’. 오늘날 성도들의 부끄러운 신앙적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을 복음에 몸바쳐 오다가 말년에 투옥된 사도 바울의 기대와 소망은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함이라고 했습니다.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하게 감옥에 투옥된 사도 바울의 소망은 출감하는 것이 아니고 일편단심 오직 부끄럽지 않은 생활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사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 앞에 떳떳하기 위해, 사람들 앞에 떳떳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떳떳하기 위해 양심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인데, 나는 주일날 교회에 가야 하는데, 나는 신앙생활 하는 사람인데, 나는 집사인데, 권사, 장로, 목사인데\"하는 자기 자신의 속에서 들리는 양심의 소리를 분명히들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양심을 통하여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며 그 소리를 듣게 하는 순간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설교 들었던 말씀, 성경을 읽었을 때 보았던 말씀들이 생각나고 깨달아질 때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매사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찬양대원들이 입는 까운도, 목사가 까운을 입는 것도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기 위함입니다. 성도들도 세상에 나가서는 화려하게 입고 다녀도 괜찮지만, 예배의 자리에는 자신의 모습을 가리고 단정한 모습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며 사람 앞에서도 부끄럼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사람이요, 복음의 증거자요,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는 사명자로서 모든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부끄러움을 당하는 신앙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전도 문을 가로막게 되고, 많은 사람을 실족시키는 무서운 죄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과 자신은 물론 원수 마귀에게까지도 인정받는 떳떳하고 참된 신앙,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온전한 신앙을 소유하여 모든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로 모든 일에 담대하기를 소원합니다 바울은 부끄러움 없이 살면서 누구에게나 담대했습니다. 옥중에서도 담대하여 찬송과 기도를 하며 전도하였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믿음은 있는데 용기가 없어 주님을 기쁘시게 못할 때가 많습니다. 주일을 잘 지켜야 되는 줄은 아는데 유혹을 물리칠 용기가 없어 문제입니다.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기도의 자리에 나오는 용기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시작하는 용기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전도해야 하는데 입을 여는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내일을 염려하지 않고 사는 반면 어떤 사람은 근심과 걱정 속에서 두려워하며 삽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도 안심하고 담대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신학자 가운데 본 훼퍼가 \'옥중서신\'이란 유명한 책을 남겼습니다. 그는 독일의 젊은 신학자로서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죽이고 기독교까지 핍박하는 상황에서 저항하다가 옥중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옥중에서 그가 썼던 편지들이 옥중 서신이라는 책으로 엮어져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 편지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인간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확실히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그는 옥중에 있으나, 히틀러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손안에 있음을 확신한다는 말을 남긴 것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의 담대함이 있습니다. 1921년 4월 17일 마틴루터는 챨스 5세 앞에 섰습니다. 챨스 5세는 눈을 부라리며 루터에게 호령을 하였습니다. \"네가 쓴 모든 책을 너의 손으로 불살라라. 그렇지 않으면 네가 불사름을 당하게 될 것이다!\" 루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 \"너의 책은 교황을 무시하고 교황을 욕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쩌겠나? 대답을 해!\" 그 때야 루터는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답할 수 있도록 하루 동안의 시간을 주십시오.\" \"좋다. 꼭 하루 동안이다. 내일 이 시간에 대답을 해라.\" 루터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밤을 새우며 기도하였습니다. 루터는 새벽에 확신을 얻었습니다. 루터는 시를 썼습니다. 384장 찬송입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곡을 붙여 노래하였습니다. 그리고 담대히 챨스 5세 앞에 섰습니다. \"나는 내 글이 잘못되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성경으로서 나의 책이 잘못된 것을 증명해 주기 전에는 나는 나의 책을 불사를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루터의 이 담대한 대답을 막을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를 시인하고 증거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드리는 데 담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과 사명에 담대한 사람을 사용하셨고 기적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담대할 때 우리의 믿음은 더욱 확고해 지고, 의심과 두려움이 물러가며, 핍박과 조롱과 장애물과 고난도 물러가고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모든 일에 그리스도만 존귀케 되기를 소원합니다 보통 사람은 자기 잘난 맛에 삽니다. 그래서 돋보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자기를 돋보이려다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자기를 쓰는 사람보다 더 돋보이면 제거 대상이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높이는 삶, 주님을 높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도 자기의 몸은 어떻게 되든지 그리스도만을 존귀히 되게 하려 함이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19세기에 아프리카 우간다에 선교사로 가 있던 어느 목사님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선교사가 시무 하는 교회에는 ‘선물의 날’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물의 날이 되면 온 성도들이 교회에 올 때 크고 작은 선물들을 가져오기 때문에 교회 안에는 많은 선물이 쌓이게 마련입니다. 예배가 끝난 후 이 선교사가 선물 꾸러미를 바라보고 서 있을 때,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예배당 안을 돌아보니 의자 사이에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그 소녀를 보고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소녀는 \"선교사님, 저도 드릴게 있어요.\"라고 하면서 초라한 옷 속에서 지갑 하나를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그 속에서 금을 꺼내어 선교사에게 주었습니다. 선교사는 깜짝 놀라며 ”너 이것을 어디서 가져왔니? 이런 짓 하면 안돼! 이것을 누구에게서 가져왔는지 말해라! 돌려줘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 아이는 울면서 \"선교사님 이것은 모두 다 내 것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너 같이 가난한 아이가 이렇게 금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고 말하자 이 소녀는 교회에 헌금을 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의 몸을 노예로 팔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즉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말한 사도 바울은 회심한 이후에 오직 그리스도만 존귀케 하기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매맞음과 갇힘과 환난과 핍박과 곤고와 굶주림과 생명의 위협과 많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주님을 향한 기쁨과 사랑의 마음으로 그 모든 것을 감수했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의 소원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변함 없이 주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무슨 일에나 부끄럽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항상 담대하게 살기를 소원합니다. 언제나 주님만 높이며 사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꼭 가져야할 이 소원들이 분명하게 이루어지는 복된 삶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