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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8:35-43
아쉽게도 어제 저녁 월드컵 3,4위전에서 우리나라는 4위를 했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하지 못했던 집중력 부족과 수비의 허점으로 3골이나 내주면서 터키에 져 결국 4위를 하고 말았던 아쉬운 밤이었습니다. 현상유지를 하려는 안일한 자세는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주는 한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시각장애 등반가인 에릭 바히헨마이어는 8천 8백 50미터의 에베레스트산 등정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에릭은 선천성 망막염으로 13살 때에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후, 아버지와 함께 하이킹을 시작하였고, 16세에 산악인으로서의 길을 걸어 킬리만자로산을 정복하였습니다. 산을 오르는 내내 지팡이를 의지해서 동료 셀파의 배낭에 달린 종소리를 들으며 방향을 잡아갔습니다. 정상인도 90% 이상이 등정에 실패한 에베레스트 등정은 그야 말로 고난이었습니다. 결국 등정 중 부상을 당하였고 짐을 셀파에게 지우고 그를 끌고 올라가려 했지만 \"나는 정상까지 물건처럼 운반 당하고 싶지 않고 사람들이 마치 나를 공을 차듯이 정상까지 올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며 거부했습니다. 끝내 그는 정상을 정복했고,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최초의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당신이 단지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홀로 설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깊은 시름에 빠지지 말라, 당신은 다른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비록 앞을 보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눈을 뜬 우리보다도 더 놀라운 것을 보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현상유지를 벗어난 사람이었습니다. 현상유지는 기독교의 정신이 아닙니다. 현실안주는 성경적 인생이 아닙니다. 성경은 현상유지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변화와 도전을 추구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현상유지를 거부하고 인생을 새롭게 도전해 가는 한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소경거지입니다. 여리고 큰 광장 길가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길가가 웅성거립니다. 무슨 일이냐고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이 때 소경거지가 갑자기, \"나사렛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칩니다.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꾸짖습니다. 소경거지는 더욱 소리를 지르며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합니다. 이때 예수께서 그의 간청소리를 들으시고 데려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묻습니다. 41절에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때 소경거지가 외치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곧 보게 되었습니다. 이 소경거지는 곧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사건은 현상유지를 거부하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한 기적입니다. 소경 거지는 예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현실 안주를 단호히 거부하고 인생의 역사를 바꾸어나갔습니다. 오늘은 이 소경거지의 모습을 보면서 보다 나은 인생과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때 성령께서 함께 하는 시간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현상유지를 강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현실상황은 어떻습니까? 현재의 상황이 좋습니까? 현실로 만족하십니까? 아니면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합니까? 더 나은 인생을 꿈꾸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현상유지를 강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축구도 현상유지를 해서는 안됩니다.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안일한 태도의 현상유지를 강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그래야 선진축구의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을 것입니다. 본문의 소경은 거지인생입니다. 거지의 삶은 무슨 삶입니까? 구걸하는 인생입니다. 빌어먹는 인생입니다. 35절에 보면, 거지가 여리고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앉아있다는 말은 현상유지입니다. 현실안주입니다. 적당히 살지 하는 것은 현실안주입니다. 그러나 소경거지는 인생의 현상유지를 거부했습니다. 이대로만 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빌어먹는 인생으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 빌어먹는 인생을 종결시키기 위해서는 눈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회가 왔습니다. 예수님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거지인생의 현실유지가 싫습니다. 더 나은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하며 외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현재에 앉아있으면 현상유지입니다. 인생의 현상유지는 손해입니다. 삶의 위치에서 일어나 외치며 현상유지를 거부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외치며 현상유지를 강하게 거부하시기 바랍니다. 송명희 시인을 아십니까? 의사가 태아의 뇌를 집계로 잘못 건드려 소뇌가 손상되어 평생 뇌성마비로 지내야 하는 그녀는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노래합니다. 7살 때까지 꼼짝못하며 누워지내야 하며, 집이 너무도 가난하여 분유 살 돈도 없습니다. 17살 때에 가서야 비로소 자기 손으로 숟가락을 처음 들 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죽더라도 하나님을 만나고 죽자 하고 결사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기도응답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나를 믿으라! 네가 믿지 아니하면 죽으리라, 내가 너를 버리지 않으리라\" 그 사건 이후로 그녀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그녀에게 하나님은 시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녀의 시는 극동방송에 소개되고 \"나\"라는 시에 최덕신은 곡을 붙여 노래를 하였습니다. \"나\"라는 찬양은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소망과 감격을 주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현상유지를 거부했습니다. 현실안주를 거부했습니다. 누어있어야 하는 인생이 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병상인생이 뛰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의미 없는 인생이 이웃에 도전을 주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현상유지를 벗어나야 합니다 현상유지를 거부하는 데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더 나은 미래를 보아야 합니다. 현상유지를 거부하기 위해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신다는 확신과 용기와 담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역사적인 농구 선주중에 행크 루이세티가 있습니다. 루이세티는 농구선수로 활약할 때 절묘한 슛 동작은 관중으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그런데 루이세티가 등장할 무렵, 거의 모든 농구코치가 두 손으로 하는 슛 동작만을 고집하고 선수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루이세티는 그럴 때 한 손으로 하는 점프 슛을 고안해 시도했습니다. 다른 코치들이 그것을 비능률적이라고 반대했지만 루이세티의 코치만은 한 손 슛 사용을 허락하고 개발하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농구의 새로운 장이 열렸고 지금은 많은 선수들이 한 손 슛으로 승부를 가늠하고 있습니다. 현상유지를 거부할 때는 비난과 조소가 뒤따를 수 있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현실안주를 거부하며 인생을 도전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기다리고 있음을 믿고 나가야 합니다. 소경거지가 현실유지를 거부하고 인생을 도전할 때 보는 인생으로 변화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현실안주를 거부하고 앞으로 나갈 때 하나님은 놀라운 인생을 펼쳐 주실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더 나은 인생의 삶을 위해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더 나은 인생의 삶을 추구하기 위해 주님께 외치기 바랍니다. 많은 성도들이 주님을 믿는 것으로만 안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원만 받고 구원만 유지하고 있지, 구원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소경거지는 구원의 믿음에만 안주하지 않고 능력을 체험하는 믿음으로 도전했습니다. 단지 교회에 나와서 예수 믿고 세례만 받고 믿음생활의 현상유지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현상유지를 단호히 거부하고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믿음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변화를 통해 현상유지를 벗어나야 합니다 유명한 안소니 멜로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청년 시절에는 세계를 변화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중년이 되어서는 내 이웃을 변화시켜 주소서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칠십이 된 오늘 난 오직 \'하나님이여, 나를 변화시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고 했습니다. 변화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인생은 미완성이기 때문에 중단 없는 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치시고 은혜를 베푸셨는데, 하루는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시고자 몸소 방문하셨습니다. 어떤 곳에 갔더니 말도 못하며 축 늘어진 주정뱅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주정뱅이가 되었나?\"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원래 절름발이에다 거지였소, 그 때에는 손만 내밀면 얻어먹을 수도 있어서 편했지요, 아 그런데 예수를 만나 두 발을 고침받고 나니 아무도 안 도와줍디다. 스스로 벌어먹고 살다보니 힘들어서 술을 먹게 되어 주정뱅이가 됐지요.\" 또 한 곳에 가니까 아주 추한 창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시 본 것 같아서 \"너는 어떻게하다 비참해졌느냐?\"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본래 창녀였어요,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게 되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그리고 새 사람이 되었지요. 하지만 막상 새 사람이 되어 깨끗이 살아보니까 너무도 따분하고, 재미도 없고, 행복도 없고, 영 진저리가 나서 도대체 살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 다시 창녀가 되어 지내다보니 이 꼴이 되었지요\" 또 예수님께서 다른 곳에 가보니 불량배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었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이렇게 되었나?\" 그는 대답하기를 \"나는 본래 장님이었어요. 그런데 주님께서 제 눈을 뜨게 해주셨지요. 그 때는 너무도 감사했지요. 하지만 막상 눈을 뜨고 보니 세상이 어떻게나 더러운지 몰라요. 못된 놈들도 많고, 부조리한 것도 많고, 내 신경을 건드려 화나게 하는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 어쩌다 보니 그만 깡패가 됐습니다.\" 계속해서 변화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현실안주 속에서 퇴보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나는 그 날 까지 현실안주를 거부하고 계속해서 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물살을 역류하려면 물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역류해야 합니다. 내려오는 속도보다 빨라야 올라갈 수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내려갑니다. 인생의 현상유지는 낙오자입니다. 믿음의 현상유지는 타락입니다. 거지 인생이 인류의 소망되는 나사렛 예수라는 그 말을 듣는 순간에 보는 인생이 된 것처럼, 여러분의 인생도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함께 놀라운 인생이 되어지시기 바랍니다. 현상유지를 박차고 일어나 더 나은 인생을 창조하려 할 때 가로막는 장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무너지지 마십시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현상유지를 박차고 더 나은 인생을 살기를 원하는 자들을 도우시며 기회를 주십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십시오. 주님이 오실 때까지 현상유지를 거부하고 계속해서 변화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