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감사 지수는 어떠 하십니까?

제목 : 당신의 감사지수는 어떠합니까 (11월11일 주일)

 에베소서 5장 19-21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사람이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학교에서 한 번 옆 자리에 앉은 것이 평생의 친구가 되고, 기차 여행 때 우연히 옆에 앉은 것이 인연이 되어 배우자가 되기도 합니다. 배를 탈 때도 함께 타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자동차를 탈 때도, 비행기를 탈 때도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중에 요나 같은 사람이 있으면 고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함께 옆에 앉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부부끼리 앉아 있어도 \"우리가 만난 것이 감사합니다. 옆에 앉은 것이 감사합니다.\"라고 서로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두 가지가 있답니다. 하나는 가장 낮은 죄인이 갇히는 아주 나쁜 사람만 들어가는 가장 불행한 장소인 교도소의 삶이 있고, 가장 높고 거룩한 영광스러운 수도원의 삶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도소의 삶이냐, 수도원의 삶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입니다.  교도소에 살면서도 사랑과 감사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천국이 될 것이고, 수도원에서도 원망과 불평하고 괴로워하고 고민하면 그곳은 바로 지옥이 됩니다. 아무리 좋은 교회에 나와도 마음 고치지 않고 나오면 교회라고 좋은 것도 아니고, 여러분이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가도 여러분의 마음 고치지 않고 살아가면 여러분은 결단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가지려고 하면서도 내 마음을 채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 주머니는 채우려고 하면서 마음은 비워놓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손해나는 것은 민감하고 예민하면서도 내 마음이 잘못되어서 영적인 손해나는 것에는 별로 큰 피해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주의 자녀를 기르실 때 특별히 감사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심을 아시기 바랍니다.
  불쾌지수란 날씨에 따라 인간이 느끼는 불쾌감의 정도를 기온과 습도를 조합하여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그렇다면 감사지수란 상황에 따라 인간이 느끼는 감사의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라고 봅니다. 불쾌지수는 높을수록 짜증이 나지만 감사지수는 높을수록 기분이 좋습니다.  당신의 감사지수는 어떠하십니까? 어떻게 하면 감사의 지수가 높아질 수 있습니까?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름으로\'라는 말을 \'때문에\'로 바꾸어도 전혀 잘못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한분 만으로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지금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영감 있는 시인이 있습니다. 송명희 여사를 여러분이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 의사가 집게로 소뇌를 잘못 건드려서 뇌성마비가 되어 한번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로 온 몸이 비비 꼬여서, 말 한마디를 하려고 하면 죽다 살아나는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해야 할 정도로 일급 장애인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얼마나 많은 시를 썼는지 모릅니다. 그 시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가슴에 저미어 오는 감동이 있지 않습니까? 그가 쓴 시 가운데 \'나\'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못하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보는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무엇을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감격하고 있는 것입니까? 뇌성마비로서 남이 가진 것의 90%를 못 가진 자매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마음을 가득히 채웠습니다.    그러자 무엇이라고 감사합니까? 남이 갖지 못한 것 내게 있고 내가 가진 것 남이 없는 것을 비교하면서 오히려 \'주님, 나는 세상 사람이 가지고 즐기는 것 없어도 예수님 한분 그분의 사랑을 받고 그분을 눈으로 보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항상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이런 수준에까지 올라가기를 원합니다. 진짜 감사는 누구에게서 나오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을 아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면 진정한 감사가 나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때문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나의 하나님께 나의 감사로 드려져야 합니다.
 감사란 타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나의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겐 매사가 감사로 귀결되나 불평하는 자에겐 모든 일이 불만으로 끝납니다. 기독교인들의 생은 불만 속에서 피폐한 삶으로 종지부를 찍어서는 안 됩니다. 감사는 은혜의 산물이요 신앙의 표현이며, 축복의 열매요, 천국 생활의 상징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최고의 제사입니다.
  미국의 실업가 중에 스탠리 탠이라는 박사가 있습니다. 그는 회사를 크게 세우고 돈을 많이 벌어서 유명하게 되었는데, 1976년에 갑자기 병이 들었습니다. 척추암 3기였습니다. 당시 척추암은 수술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약물로도 고칠 수 없는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절망 가운데 죽어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에 그는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스탠리. 병이 다 나았나요?” “네, 병이 다 나았습니다.”“어떻게 병이 나았습니까?”“나는 하나님 앞에 감사만 했습니다.” 그가 회복하게 된 것은 ‘감사’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병들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병들어 죽게 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는 죽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살려 주시면 살고,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는 매일매일,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랬더니 감사할 때마다 암세포가 물러가고, 물러가고, 물러갔습니다. 그래서 몇 달이 지난 후에는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대개 병든 사람들은 건강한 사람보다 원망·불평이 많습니다. 또한 우울증이 있고, 시험에 잘 들고, 제멋대로 생각하고, 사고가 부정적인 사람이 대개 병에 잘 걸립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요즘 미국의 정신병원에서도 환자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감사’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감사’의 치료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감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하고 있습니까? 불행합니까? 감사하면 행복해집니다. 실패했습니까? 감사해 보십시오. 다시 성공하게 됩니다. 버림 받았습니까?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존귀하게 됩니다. 외롭습니까?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사랑을 받습니다. 지금까지의 원망·불평을 돌이켜서 감사, 감사,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감사하면 부모님이 도와주시고, 감사하면 남편이 도와주고, 감사하면 친구가 도와주고, 감사하면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지금 내게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나의 감사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내가 낮아짐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감사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림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와 감격이 없이는 하나님을 높일 수가 없습니다.   영국의 어떤 학교에서 무신론자 과학 선생이 무신론을 주장하고자 칠판에 \'No where is God(하나님은 어디에도 없다)’이라고 썼습니다. 그러자 한 학생이 벌떡 일어나 나가 칠판에다가 ‘Now here is God(하나님께선 지금 여기에 계시다)’라고 고쳐쓰더랍니다.   하나님을 알고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높임에 있어 언제, 어디서, 누구 앞에서도 당당하고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주저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선 우리가 높이는 만큼 높아지십니다. 오늘날 기독교인의 수가 늘지 아니하고 있음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땅에 떨어뜨리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높인다는 것은 내가 보잘 것 없는 낮은 존재임을 시인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아니시면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놓치지 않으려면 나를 낮추고 내가 숨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높이려 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내세우며 나를 포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포기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누릴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원인이 있습니다.
  성 프란시스의 제자 중에 마태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겸손의 덕을 영원한 생명으로 알고 겸손의 은혜를 얻기 위해 불붙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늘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마태오야, 마태오야, 네가 간구하는 은혜를 내가 주면 너는 그 대신 나에게 무엇을 바치려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주여 저는 저의 가장 귀한 눈을 빼어드리겠나이다.”“나는 네가 원하는 은혜도 주고 네 눈도 보존되기를 원하노라.”이것이 바로 여호와 이레의 축복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절).”      감사는 조건에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자세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느냐, 어떤 눈으로 인생의  일들을 보느냐에 감사는 달려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조건이 아닙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그의 마음가짐입니다. 사람의 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세상의 눈으로가 아니라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면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라도 감사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할 수 없는 사람들이 감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제 감사의 지수를 높이시기 바랍니다. 의식적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예수님 믿는 사람이다. 예수님 때문에 나는 무조건 감사할 수 있어.\' 하면서 감사하면, 지금까지 불평하던 것을 감사하면, 지금까지 남을 원망하던 것을 거꾸로 뒤집어서 감사하면, 지금까지 만족하지 못하던 것을 감사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사할 것들을 찾아 하나님 앞에 감사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의 믿음이 좋아집니다. 우리가 행복해집니다. 우리가 강해집니다.  이제 감사의 지수가 높아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