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이름으로 사십니까?

제목 : 누구의 이름으로 사십니까 (9월16일 주일)
           사무엘상17장 41-49절    

 미국 조지아대학안의 노인의학센터의 레오나드 푼 소장이 \"유전이나 금식은 장수와 별 상관이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지난 1988년부터 10년 동안 100세 이상 장수한 157명을 포함해서 총 350명을 연구한 결과입니다. 즉 \"장수의 비결은 유전이나 음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소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보약을 먹고 운동을 하고 맑은 물을 마신다고 해도 심기가 불편하고 인생관이 부정적이면 건강도 장수도 보장이 안됩니다.
  소년 다윗이 어떻게 물 맷돌 하나로 거인 골리앗을 넉넉히 이길 수가 있었습니까?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그가 넉넉히 이기고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누구의 이름으로 나아가느냐의 결과는 엄청난 것입니다. 즉 내가 가진 믿음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구원과 멸망이 결정됩니다. 골리앗이 너무 크기에 이길 수 없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다윗을 향해 충고하였습니다. \'골리앗은 너무 크고 강하다\' 그러나 다윗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몸집이 너무 커서 돌팔매가 빗나갈 수가 없다\'. 사람들은 골리앗의 큰 몸집에 겁을 먹었지만 다윗은 큰 체구가 오히려 좋은 타겟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믿었습니다. 과연 다윗의 물매돌은 골리앗의 이마에 명중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우리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는 주의 이름을 앞세우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언제나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승리하시는 주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는 신앙은,

   첫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신앙입니다.
  비록 체구는 작을 지라도 골리앗의 몸이 크고 힘이 장사라고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와 같은 신앙으로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비록 휠체어에 의지하여 살더라도 여러분은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완전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십니다. 조지 에버렛 로스 선교사는 31년간 선교활동을 하고서 믿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하나는 \".... 이라면\" 이라고 말하는 신앙이고 다른 하나는 \"...이라고 할지라도\" 라고 말하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라면\" 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든 일이 잘 풀리면, 내 인생이 번성하면, 내가 성공한다면 그 때 나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교회에 출석하고 헌금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라고 할지라도\" 라고 하는 사람은 비록 악한 자들이 번창한다고 해도, 갈보리에서 나의 잔을 마신다고 할지라도,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 순간에도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나를 죽이시더라도 나는 주님을 믿겠다는 것입니다. 즉 죽어도 믿고, 죽여도 믿고, 죽어가도 믿고, 죽어서도 믿겠다는 믿음입니다. 다윗을 만류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골리앗 앞에 나선 것입니다. 죽어도 좋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는 이와 같은 승리의 믿음을 간직하는 주님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991년, 세계적인 패션잡지 <엘르>의 편집장이 된 장 도미니크 보비는 유명한 저널리스트이며, 두 아이의 자상한 아버지 그리고 누구보다 자유를 좋아하고 즐길 줄 아는 멋진 남자였습니다. 그러나 1995년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예기치 못했던 병마는 그의 모든 걸 바꿔 놓았습니다. 뇌와 신체를 잇는 신경망이 끊어져, 말할 수도, 먹을 수도, 혼자 힘으로 숨을 쉴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오로지 움직일 수 있는 건 왼쪽 눈꺼풀이 전부였습니다. 캄캄한 병실에 혼자 누워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볼 때면 제 아무리 의지 강한 보비도 어쩔 수 없이 눈물짓곤 했습니다. 어린 딸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이전에 활동했던 자신의 모습들… 그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싸움을 싸우고 있었으나 그러던 중 친구들이 눈을 깜빡여 의사 소통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본떠 책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그는 드디어 자신의 슬픈 마음과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 해 보자!’ 프랑스어의 각 알파벳을 눈 깜빡거리는 횟수로 표시하기로 했습니다. E나 S처럼 자주 사용하는 문자는 가능하면 눈을 적게 깜빡이도록 순서를 재배열했고, 마침표는 눈을 아예 감아 버리는 것으로 약속했습니다. 하루에 원고지 반 쪽, 한 문장을 만드는 데 꼬박 하룻밤을 새는 기나긴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그는 대필자인 클로드 망디빌에게 20만 번 이상이나 눈을 깜빡거려야 했습니다. 그가 오로지 움직일 수 있는 왼쪽 눈이 빨갛게 충혈 되어 가는 동안, 마음만은 자신의 현재 상태를 잊어버리고 훨훨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로, 예전의 일터로, 한 번쯤 다시 가보고 싶은 곳으로…. 그리하여 드디어 1년 3개월만에 <잠수복과 나비>라는 책이 탄생했습니다. 이 책은 불과 열흘만에 17만 부가 팔리는 프랑스 출판사상 유래 없는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1997년 3월 9일, 보비는 그를 가두고 있던 잠수복을 벗어 던지고 나비가 되어 하늘나라로 올라갔습니다. 그의 투병생활은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방송됐고, 그의‘희망’과 사랑’을 지켜본 사람들은 아름답다”는 말을 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게임이 되지 않는 상황인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서는 믿음!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는 승리의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어도 믿고 죽여도 믿고 죽어서도 믿겠다는 신앙으로 언제나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역경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입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일지라도 신뢰의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신뢰 이것이 성서의 주제입니다. 신뢰를 잃지 않는, 신뢰를 놓치지 않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에 올랐습니다. 아브라함의 시련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에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준비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승리하였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만났습니다. 자신의 위기이기도 했고 민족의 위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양칠 때에 함께 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담대하게 칼과 단창 앞에 홍안의 소년이 설 수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 신뢰가 승리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고 외치며당당히 승리를 향해 나아갑니다. 하나님 신뢰를 선택함이 곧 승리였습니다.
   본래 성 프란체스코는 돈 많은 직물상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아버지 덕에 사교계를 드나들며 사교와 파티를 즐기면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해 버렸습니다. 파티도, 사교도, 지위도, 재산도 다 포기한 채 아버지의 직물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당황한 아버지는 아들을 집에 가둔 채 제 정신이 돌아와야 한다며 매질을 했습니다. 그러나 프란체스코의 정신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아버지는 홧김에 아들을 끌고 법정에 가서 판사에게 고소를 했고 판사는 아버지에게 진 빚을 변상하라는 판결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셨음을 확신한 성 프란체스코는 끝까지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버리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기로 결단하고 그 법정에서 판결을 받은 그때 프란체스코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 심지어 입었던 옷까지 벗어서 되돌려주고 알몸으로 법정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 후 프란체스코는 신앙의 고행과 구제, 경건으로 사는 운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 어떤 것도 그를 그리스도 신뢰에서 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신뢰! 바로 그 믿음으로 성 프란체스코는 나무와 대화를 하고 새와 대화를 하고 그의 팔에 어깨에 새들이 앉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는 신앙은 항상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으로 나타납니다. 그 하나님에게 우리의 인격과 삶 전체를 내어 맡기고 의지하는 신뢰의 신앙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신뢰! 이것이 성서가 더 크게 증거하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 신뢰를 결코 버리지 않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미래의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당하지 않아도 될 사건을 만나 쓰린 가슴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번 미국의 테러참사 사고는 너무나도 끔찍하였습니다. 잘 서있던 두 개의 110층건물이 1시간이내에 무너져버렸고 그안에 혹은 주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죽고 가족을 잃는 사건 등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것을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나님의 벌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성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성서는 그런 사건을 두고 왜라고 묻지 않고 어떻게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는 미래의 구원을 이루는가에 초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을 좀더 구체적으로 해석하면 발생하는 모든 일속에서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시기 위해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과 함께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사랑하는 그 아들과 함께 사막을 여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막은 불같이 뜨거워졌으며 아무리 걷고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답니다. 두 사람의 목은 타는 듯 마르고 지쳐 버렸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원망하듯이 아버지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입니다. 더 이상 걸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이 자리에 주저앉아서 편하게 죽음을 맞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얘야, 조금만 더 가면 틀림없이 맑은 물과 마을이 나올 것이고 오아시스가 우리를 만나줄 것이다. 용기를 내라. 힘을 내렴\" 하고 아들을 권면했습니다. 이렇게 조금 더 가는데 그 앞에 커다란 무덤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을 보는 아들은 더 절망에 부르짖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처럼 죽은 거예요. 우리도 이 사람들처럼 죽어서 여기에 묻히고 말 거예요. 이제는 절망입니다\" 라고 할 때 그 아버지는 생각이 전혀 달랐습니다.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얘야, 무덤은 희망의 징조다. 무덤은 마을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확증해 주는 것이다. 시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덤이 있다는 것은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묻어주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심해라. 용기를 내라\"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고난의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당한 고난과 역경에서 왜를 묻지 말고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 가실 것인가를 물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고난과 역경은 미래에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과정이라고 믿으시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에 모든 역경과 고난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그 승리의 신앙을 굳게 간직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신앙으로 불신앙의 골리앗을 넘어뜨리는 승리하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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