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새은 달음질 입니다

제목 : 인생은 달음질입니다 (8월26일 주일)
          사무엘하 18장 19-30절

 얼마 전 증권회사 간부가 자살하면서 남긴 유서가 신문에 실린 적이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들아! 아빠는 지금까지 성실하게 온 힘을 다해서 살아왔단다. 누구보다도 빨리 승진했고 누구보다 빨리 출세했고, 누구보다 빨리 돈을 벌었단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다 사라진 지금 아빠는 너무나 허전하기만 하다. 살아야 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해 목숨을 끊으려고 한다. 너희는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절대 걷지 말아라.\" 인생을 빨리 달려서 성공하고 출세하고 돈을 벌었지만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난 다음 자신의 인생의 달음질이 헛된 달음질이었다고 하는 것을 깨닫고 뒤늦게 후회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의 달음질이 어떤 성격이고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달음질인가를 깊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쪼록 여러분의 인생이 헛된 달음질로 마쳐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달음질이 나타납니다. 때는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고 에브라임에서 반란군을 일으켜 전쟁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 때 다윗 왕은 요압의 군대를 통해 반란군을 섬멸하도록 했습니다. 이 싸움에서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살해되고 반란군은 진멸되었습니다. 요압 장군은 승전보와 함께 압살롬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다윗에게 전하기 위하여 전령을 보내게 되었는데 요압 장군은 구스 사람이라고만 밝혀진 무명의 용사에게 이 사명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구스 사람이 전령으로 출발하고 난 직후에 아히마아스라는 사람이 요압 장군에게 자기도 전령으로 구스 사람의 뒤를 따라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요압 장군은 의아해서 \'왕의 아들이 죽은 슬픈 소식을 전하는 것인데 왜 뜻 없는 달음질을 하려느냐. 이번 일은 슬픈 소식을 전하는 것임으로 상 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히마아스가 계속 간청하여 요압은 그에게 가도록 허락했습니다. 아히마아스는 지름길을 택하여 달음질하여 먼저 떠난 구스 사람보다 앞서서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아히마아스가 오는 것이 왕에게 보고되자 왕은 급히 그를 접견하였으며 그로부터 전승보고를 받고 이어 가장 궁금한 것, 즉 압살롬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다윗은 전쟁의 결과보다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생사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압살롬은 무사하냐고 물은 것입니다. 아히마아스는 29절에 나타나 있는 대로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으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즉 그는 진짜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화가 난 왕은 그만 물러가라고 호령했습니다. 아히마아스는 전령으로서 상관의 뜻을 바로 전하지 못하므로 자기 맡은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뒤이어 구스 사람이 왕궁에 도착하였으며 전승보고와 함께 압살롬에 대한 슬픈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 왕은 승전의 기쁨 보다 사랑하는 아들이 죽은 것을 애통해 하며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 하면서 통곡하였습니다. 달려간 전령이 두 사람이지만 구스 사람에 비해 아히마아스는 부끄러운 달리기를 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실패 같지만 영적인 면에서 보면 승리의 삶이 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달리기는 어떠합니까? 성공도 못하고 승리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모두는 성공도 하고 승리도 하는 달음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과정을 무시하고 빨리 달리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어지는 중요한 달음질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결과에만 집착할 때 사람이 어떤 불행을 겪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결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정 또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과정은 뛰어넘고 결과만 얻으려고 발버둥치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에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생각에서 인생을 달음질하고 있지 않느냐 하는 말입니다.
 조선일보 논설위원 이규태씨가 쓴 책 가운데 <한국사람들이 버려야 할 것들> 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물가에 가서 숭늉 찾는다\' 는 우리의 속담을 인용하면서 한국사람들은 우물가에서 쌀을 씻는 중인데 숭늉 달라고 요청하는 조급증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숭늉을 만들려면 일단 쌀을 씻어서 밥을 해야하고 밥을 퍼내고 눌은밥에 물을 부어 끓여야 숭늉이 되어지는데 우물가에 가서 쌀을 씻는 사람 앞에서 무작정 숭늉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사람들의 빨리빨리 근성입니다.
 세계사람들이 한국사람을 구별하는 방법은 얼굴색, 생김으로 구별하는 것이 아니고 걸음걸이가 빠르면 한국사람일 가능성이 80%이상이라고 합니다. 외국사람들이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놀라는 것은 한국사람들이 왜 그렇게 분주하게 빨리 다니냐는 것을 묻는다고 합니다. 서양사람들은 과정을 중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즐기면서 삽니다. 그것을 process enjoy라고 합니다. 한국사람들은 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과만 중요한 것입니다. 결과만 좋으면 다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과정을 무시하면 무질서해집니다. 한국의 교통질서가 무질서하고 복잡한 것은 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나만 목적지에 도달해서 내 일을 보면 그만이다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목적지에 얼마나 빨리 도달했냐가 아닙니다. 가는 과정에 얼마나 성실하게, 남에게 피해를 안주고, 신사답게 운전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운전하는 것을 보면 서로 끼어들기 하고, 욕하고 복잡합니다. 과정이 무시될 때 무질서가 나오고 무질서할 때 졸속이 나오고 졸속이 나올 때 부실이 나오고 부실이 나올 때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과정이 무시되면 결코 바로 설 수 없습니다.
  스피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속도에 중독이 되어 있습니다. 남보다 앞서가고 먼저 가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시간의 길이보다 그 내용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즉 한 시간에 대한 평가는 그가 달려온 시간의 길이나 속도 보다 그 내용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삶의 내용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것으로 가득 채워지는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스 사람은 발걸음은 느렸지만 진정으로 전해야 할 내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히마아스는 지름길을 달릴 줄 아는 약삭빠른 수단과 방법은 지니고 있었지만 진정으로 전해야 할 내용은 가지지 못한 부끄러운 전령이었습니다. 중심을 바로 잡고 승리의 달리기를 새롭게 시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자신의 명예와 자랑보다는 주어진 사명을 위해 달려야 합니다.
   20절에 요압은 분명 왕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라고 했지만 아히마아스는 자기 본위로 달렸습니다. 자기 본위로 보고하였습니다. 즉 그는 승전의 소식을 빨리 왕에게 전하면 상이라도 탈 줄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구스 사람은 요압의 명령에 충실히 따랐고 왕이 듣기 원하는 소식이 무엇인지를 알고 달렸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향하여 달려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히마아스는 자신의 출세와 명예만을 생각하고 왕이 원하는 바를 알지도 못하고 달렸습니다. 아무리 빨리 달려갔다고 하더라도 왕이 원하는 바를 준비하지 못했기에 \'물러가라\'는 책망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 앞에 선다고 할지라도 칭찬 받는 성공적인 달음질, 승리의 달음질을 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기 본위로 살지 않고 하나님 본위로 살아 칭찬 받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리교를 창시한 요한 웨슬리 목사님이 한참 역사를 일으키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지방에 가서 연합 집회를 열고 있는데 사람들이 구름 떼 같이 모였습니다. 첫날 \'여러분, 할 수 있는 한  많은 복을 받으십시오\' 사람들이 아멘 아멘 난리도 아닙니다. 대단히 좋아들 합니다. 둘째 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에게 설교하기를 \'여러분 할 수 있는 한 많이 저축하십시오\' 아멘 아멘 교인들이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셋째 날은 더 많이 모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것을 줄 수 있는 한 많이 주십시오\' 그런데 설교 중간쯤 되니 양조장을 하여 돈을 제일 많이 번 사람이 얼굴 색이 달라지더니 슬그머니 일어나 나갑니다. 그러자 여기 저기 사람들이 빠져나가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 본위의 신앙입니다. 내 입맛대로 믿는 신앙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입맛대로 믿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본위의 신앙을 기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본위의 신앙을 회복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주님께 칭찬받는 달음질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칭찬 받는 달리기 인생을 향해 결단해야 합니다. 출발선에서 우리를 출발시키신 주님께서 결승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께 칭찬 받는 신앙의 경주를 인내로서 달려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우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가장 강한 사람입니까?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누가 제일 부자입니까? 현재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까? 모든 조건 속에서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결국 승리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끝까지 인내하고 진리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만 바라보고 끝까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믿음으로 굳굳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앤더슨이 미국 서부 철도회사 사장으로 부임하여 현장을 순시하는 중에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많은 직원들이 새로 부임한 사장을 환영하는데 그 중에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이 그의 손을 덥석 잡고 \'자네 앤더슨이 아닌가. 날세 나야 자네와 나는 같이 텍사스에서 20년 전 하루 임금 5달러를 받기 위해 같이 일하지 않았는가. 정말 반갑네.\'  앤더슨 사장도 그를 알아보고 \'정말 오랜만이군. 그러나 그때 자네는 5달러 임금을 받기 위해 일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철도를 위해 일 했다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5달러를 위해 일한 사람은 여전히 인부이지만 철도를 위해 일한 사람은 사장이 된 것입니다. 인내를 가지고 주님을 위해 일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셔서 칭찬 받는 신앙의 경주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심판주 되시는 하나님 앞에 보여질 자신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이루는 승리의 주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내로 달리기를 하시기 바랍니다. 내 본위가 아니라 주님 본위로 달려가시길 바랍니다. 중심을 잃지 말고 우리 주님을 중심으로 달려가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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