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나의 전부를 보시는 하나님 (7월22일 주일) | |
| 누가복음 21장 1-4절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인 로이드 존스의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농부가 소를 기르는데 그 소가 송아지를 두 마리 낳았습니다. 농부가 너무 기뻐서 자기도 모르게 할렐루야 찬양했습니다. 송아지 새끼 두 마리 낳고서 너무 감사해서 자기 부인에게 말하기를 \'여보 송아지 새끼가 두 마리야. 우리 하나는 주님의 것으로 하고 주께 드리십시다.\' 그 농부의 부인도 \'아멘\'했습니다. 얼마 후에 송아지 새끼 한 마리가 비실비실 앓더니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농부가 울상이 되어 방안에 있는 자기 아내를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큰일났어\' \'뭐가 큰일났어요?\' \'아 글쎄 주님의 송아지가 죽었어.\' 주께 드리려고 작정한 송아지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의 판단이었습니다. 사실은 두 마리 다 주의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앞의 뜰에 헌금함이 13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헌금통에 헌금을 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헌금을 드리는 모습을 지켜 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수 많은 무리가운데 예수님의 눈에 들어온 이가 있었습니다.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그 과부는 단지 두 렙돈을 헌금하였습니다. 우리 돈으로 하면 약 600원정도 되는 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돈 소리만 나오면 신경이 날카로와 지시는 분이 있는데 마음 놓으시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오래 전에 종교 개혁자 캘빈은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우리 교회의 문제는 돈에 대해서 너무 많은 얘기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돈에 대하여 바른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요한 웨슬레 선생도 비슷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의 회개를 신용할 수가 없다.\" 오늘 이 헌금하는 광경으로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안목과 하나님의 안목이 다름을 교훈하고 계십니다. 즉 사람들이 보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일부분을 볼뿐이나 하나님은 우리의 삶 전체를 보시고 계십니다. 겉과 속을 다 보시는 주님 앞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삶을 보여드려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의 희생을 보여 드려야 합니다. 수 많은 무리 가운데 그 과부가 예수님의 눈에 들어 오게된 정확한 동기가 있습니다. 희생 때문입니다. 그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많이 바친 액수를 보시지 않고 그 사람에게 남은 액수를 보시는 분이셨습니다. 사람들은 드리는 헌금을 계산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헌금을 드리고 남은 우리 지갑의 돈을 헤아리고 계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과부는 전부를 바쳤습니다. 돈이 많은 자들은 나머지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과부는 두 렙돈을 바치고 나니 나머지가 없었습니다. 희생은 남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남아 있음은 전적인 희생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국의 캠브리지대학의 시티 스터드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공부도 잘 했읍니다. 학교에서도 톱을 달리는 학생이었고 크리캣 운동선수였습니다. 그 운동으로서 영국 전체의 금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보장된 출세의 길이 그 앞에 열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캠퍼스집회에 참석했다가 복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는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가기로 선포했습니다. 학교 교수들이 아깝다고 생각 했습니다. 보장된 출세 길. 돈과 그리고 명예와 권력과 그 앞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교의 길에 나서자 모두 그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보게, 이것은 자네에게 지나친 희생이 아닌가\" 이때 시티 스터드는 모든 시대를 사는 크리스챤들에게 굉장한 도전이 되는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위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그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내가 그를 위해서 바치는 희생은 그 어떤 것도 지나친 희생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희생입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포드 목사님은 엄청난 교회 건축을 3년만에 마치고 나서 온 교인들과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담임목사인 포드는 그 동안 성전 건축에 노고가 많은 이들을 위하여 한 분 한 분 이름을 부르며 골방에서 축복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헌금을 많이 한 이들의 명단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우체국장 헨리, 지서장 존슨, 광산업 사장 오웬, 초등학교 교장 맥밀란 .... 그는 그들을 축복하여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조용한 가운데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내 집을 지을 때 형식적으로 일부분을 내놓은 사람만 위해 기도하고 있구나! 그러나 난 너와 다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주님 그 사람이 누구 입니까?\" \"너희들이 거지라고 부르는 짐이다. 너희들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짐은 성전을 지을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안 빠지고 구걸하여 매일 몇 장씩 벽돌을 사다 놓았다. 이 성전을 짓는 데 가장 내가 기억하는 사람은 짐이다.\" 예수님은 희생하는 사람을 보시고 계십니다. 나머지가 없는 희생을 주님께 보여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의 최선을 보여 드려야 합니다. 이 과부가 예수님 눈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자들은 많이 바치기에 당당하게 드렸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을 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하여 드리기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내가 가진것은 두 렙돈밖에 없습니다. 다 드립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에 내 심정을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 부자들은 용돈을 드리지만 나는 생활비입니다. 부자들은 돈이 남아있지만 나는 남아있지 않는 최선임을 아실 것입니다. 작습니다. 그러나 받아 주소서!\" 과부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부끄럼이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께 드리고 나면 부끄러움이 없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좀더 드릴 것을 하고 후회하는 모습이 되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최선을 다하여 드린다는 의미는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에서의 정치헌금이나 뇌물은 모두 드리는 자기 중심입니다. 자기에게 돌아올 열매를 기대하고 힘있는 자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드리는 삶은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드린 것으로 자기 만족, 자기 자랑이 있는 헌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드리는 신앙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외식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드림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자신을 포기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포기하는 자세를 가지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는 마음을 품을 때에 최선을 다하는 바른 헌신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진 것이 적다 해도 하나님께 잘 드릴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습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도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습니다. 힘이 없고, 병든 사람도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작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도 하나님의 일을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람들이 보기에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사람들, 세리 마태 등 이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삶 전체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일을 잘 해 나갈 수 있었음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풍부한 중에 일부를 드리는 것이 사람들에게 많아 보여도 실제적으로 주님이 인정하시는 것은 자기의 삶 전체를 드리는 최선을 보고 계십니다. 셋째로 우리의 믿음을 보여 드려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과부가 예수님 눈에 들어온 것은 믿음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이 여인은 남편이 돈을 벌어다 주는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벌어야 하는 과부입니다. 사도 되고 안 사도되는 옷값을 넣은 것이 아닙니다. 먹어도 되고 안먹어도 되는 과일값을 넣은 것도 아닙니다. 꼭 필요한 없어서는 안되는 생활비를 드린 것입니다. 일부를 남기고 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부를 드렸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헌금이었습니다. 이런 믿음을 예수님이 보신 것입니다. 한 경직목사님 일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여 성전 건축을 하여야 했습니다. 한 목사님은 이렇게 광고했습니다. \"내일 성전 기공 예배를 드립니다. 재산의 반을 성전 건축에 바칠 믿음이 있는 사람만 기공 예배에 참석하십시오\" 이튿날 보니 39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그들은 재산의 반을 성전 건축에 드렸습니다. 30년이 지나고 보니 39명이 모두 한국의 500대 재벌에 들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믿음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어느 환자가 병원에 누워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심방가서 기도하기 전에 물었습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께 당신을 낫게 하여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내일 아침에 어디에 있을 것입니까?\" 그 환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하였습니다. \"내일 아침 나는 이 침대에 누워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그러면 기도하여도 소용 없겠군요. 난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이 때 그분은 믿음이 없음을 회개하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믿음이 없음을 용서하여 주십시요. 기도를 받기 전에 사장님에게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그러더니 침대옆에 있는 전화를 들고 말했습니다. \"사장님! 저 내일 출근할 것입니다.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하십니다.\" 목사님은 이 믿음의 전화를 듣고 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그 분은 고침받고 이튿날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을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분을 살피기보다는 삶의 전체적인 면을 살피시는 분입니다. 사람의 육체를 고치는 의사들은 사람의 얼굴과 그 외모를 보고, 그리고 청진기를 갖다대 보고, 안 되면 내시경이나 엑스레이까지 찍어서 사람을 살핍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전체적으로 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만 모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의 모든 면, 그의 내면까지도 보시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헌금을 드린 액수를 보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사람이 어떤 처지에서 어떻게 드렸는지 그 상황을 이해하시고, 그를 전체적으로 살피고 계십니다. 두 개의 렙돈 그것은 결코 작은 헌신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전부를 보고 계심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의 남다른 희생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아낌없는 최선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뛰어난 믿음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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