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참된 부자가 되길 원하십니까(7월15일 주일) | |
| 누가복음 12장 13-21절 비행기로 여행을 하던 중에 만난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첫눈에도 매우 부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매우 부요해 보이는 그 사람은 정말 대단한 재산가였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재산과 사업의 번창에 대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하였습니다. 한참 동안 자기 자랑에 도취해있던 그 부자가 미안한 듯 “이제 당신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말씀 좀 해보십시오.”라고 청하였습니다. 드디어 말할 차례가 온 또 한사람이 입을 열었습니다. “사실 말이지 제 아버님은 엄청난 부호이시랍니다. 이 비행기를 포함한 이 동산이나 부동산을 소유하신 분이랍니다.”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잘 믿어지지가 않아서 “그래요?” 하고 의아스러움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은 다시 말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물론 그것뿐이 아닙니다. 이 존재하는 모든 피조세계가 다 내 아버지의 것이랍니다. 그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도 그 아버지의 공동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세계 그 어느 곳에 가더라도, 무엇을 먹고 마셔도, 어떤 것을 가져도, 그 모든 것이 다 내 아버지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언제나 부자의 기분으로 살아갑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은 그제서야 그 사람의 말이 영적인 부요함에 대하여 말하는 것임을 눈치채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그의 확신에 넘치는 자랑과 행복감에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마침내 그는 그 큰 부자에게 “당신도 예수를 믿으면 나처럼 참 부자의 행복을 갖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전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부자는 “지금까지 내게, 단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영적인 부요함에 대하여 당신처럼 확신에 차서 이야기해준 사람은 없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얼마 후 저들이 여행의 목적지에 도착하여 비행기에서 내릴 때는, 이미 그 부자도 부요하신 하나님의 공동 상속자가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참 부자가 되어버렸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부자 소리 한 번 들어보는 것이 소원이신 분이 이 중에 여럿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벌 줄도 모르고 쓸 줄도 모르는 부자는 천치노라고 하고, 벌 줄은 모르고 쓸 줄만 아는 부자는 허영노라고 하며, 돈을 벌기는 잘하나 쓸 줄을 모르는 부자는 수전노라고 하며, 벌 줄도 알고 쓸 줄도 아는 부자는 천재노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부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은 본문의 비유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어떤 부자가 되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을 보면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께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본문의 시작입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더불어 나누게 하소서(13절)\'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재산이 두 형제에게 나란히 나누어져야 할 터인데 아마도 그 형이 동생 몫으로 돌아갈 유산까지도 아마 자기가 착복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 나와서 그 억울함을 호소하게 된 것입니다. 내 형을 명령해서 유업을 나와 더불어 나누게 하소서.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은 보다 중요한 문제에 대한 해결자로 그들 앞에 다가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형이 못됐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하는 그 동생의 마음속에도 동일한 문제 곧 탐심을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15절)\'고 하시면서 어리석은 부자 비유를 말씀하시고 그 후에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참된 부자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입니다. 그는, 첫째로 모든 것의 주인을 바로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인이시고 우리가 소유한 물질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주인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입니다. 주인을 바로 알아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인을 알 때 탐심을 물리 칠 수 있는 것입니다. 탐심은 부자들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부자가 되지 못해 안달을 하는 가난한 사람의 마음에도 탐심이라는 죄악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이 탐심에 빠지면 눈이 멀고 맹목적인 인간이 되고 맙니다. 탐심은 나로 하여금 살아 계신 하나님, 내 삶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못 보게 만드는 죄악입니다. 우리는 생명과 물질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날마다 확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의 20절에 보시면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이것은 소유권의 문제입니다. 생명과 소유가 누구 것이냐? 내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세상 떠날 때 그토록 아끼던 물건 가지고 가는 사람 보셨습니까?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이 남긴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의 유언을 따라 그가 죽어서 들어간 알렉산더가 들어간 관에는 양쪽에 구멍을 팠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손을 관 바깥으로 내밀었대나요.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어 원통하다고 눈물을 흘렸던 나 알렉산더도 빈손으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그걸 증명했다는 것입니다. 내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잠시 맡긴 것에 불과합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리하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주인이 누구냐? 하나님이 자신이 주인이심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계신 것입니다. 둘째로 이웃을 바로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이웃이 눈에 뜨이는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눈에서 커튼이 열리고 이웃이 보이게 될 때에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웃을 발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자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이 짤막한 독백 가운데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어떤 단어입니까? \'나\'라는 단어 일인칭 대명사가 지속적으로 등장합니다.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리라. 내가 내 영혼에게...우리 말 번역에서 읽어도 적어도 여섯 번씩이나 나라는 단어가 지속적으로 등장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어리석은 부자의 의식 속에 얼마나 철저하게 자기 중심의 세계였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요한 칼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주셨을 때 그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들 중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거울 앞에 서는 사람과 창문 앞에 서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거울 앞에 서면 뭐가 보입니까? 내가 보이지요. 말하자면 물질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때, 또 내가 물질을 추구할 때 항상 그걸 가지고 나만 생각하는 사람, 이걸 가지고 내가 어떻게 써? 이걸 가지고 내가 어떻게 할까? 이것을 내가 어떻게 저금할까? 자기 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또 한 종류의 사람은 물질이 주어졌을 때 창 앞에 섭니다. 여러분 창 앞에서면 뭐가 보입니까? 내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창 밖이 보입니다. 창 건너편, 우리는 창 건너편에서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두 가지를 보아야 합니다. 창 너머에서 물질을 주신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물질은 내가 그냥 땀 흘려서 얻은 것이 아니라 내가 물질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건강, 능력, 상황, 환경, 이 모든 것을 주셨음을 보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창 너머를 보면서 왔다 갔다 하는 이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창 너머에서 내게 주신 물질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거울 앞에 서 있습니까? 아니면 창문 앞에 서 있습니까? 어떤 학생이 친구와 함께 여행을 하다가 옆에 친구가 있는데도 친구는 모른 척하고 자기 혼자 계속 과자를 혼자서만 야금야금 먹으니까 옆의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넌 교회다니면서 성경도 모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너 이런 말씀도 몰라?\' 그랬더니 이 친구가 먹다 말고 쳐다보며, \'야! 너 진짜 성경도 안 읽었니? 그렇게도 성경을 모르니?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웃을 보는 눈이 열려짐으로 하나님께 부요한 자인 참된 부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늘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발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된 부자는 누구냐?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부요한 자, 이것이 참된 부자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배부른 사람, 하나님의 생명으로, 하나님의 평안으로, 하나님의 기쁨으로, 그 하나님의 가치로 가득 차 있는 사람, 하나님으로 배부른 인생, 하나님께 대해 끊임없는 감사가 넘치는 인생이 진짜 부요한 삶이고 참된 부자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한번은 미국 순회 집회를 하는 도중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굉장히 부자를 만났답니다. 근데 테레사 수녀에게 뭐 좀 도와드릴 것이 있습니까? 뭐가 필요하십니까? 테레사 수녀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저요? 예수님만 필요합니다. 그 분이면 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면 족합니다.\" 그렇게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가 구원이신 것을 믿으십니까? 그리스도가 소망인 것을 믿으십니까? 그리스도가 능력인 것을 믿으십니까? 그리스도가 내 소망이고 구원이고 능력이고 나의 꿈이고 나의 자랑이고 나의 기업이고 나의 피난처고 예수가 나의 구원이심을 믿습니까? 예수로 꽉 찬 인생, 성령 충만한 인생, 은혜와 감사로 꽉 찬 인생, 정말 그리스도의 임재가 나의 행복이 되고, 사랑의 그리스도가 나의 자랑이 되고, 생명의 그리스도가 나의 프라이드가 되고, 소망의 그리스도가 나의 기쁨이 되고, 능력의 그리스도가 나의 자랑이 되어버린 인생이라면 누구나 지금도 이 고백은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십니다.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나는 감사할 뿐입니다. 만 입이 있어도 못다 감사드립니다. 이 탐심에서 참으로 자유한 인생, 은혜를 알고 주님께 깊이 감사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