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어디에 감사의 근거를 두십니까 (7월8일 맥추감사절) | |
| 출애굽기 15장 22-27절 화단 구석에 장미 한 송이가 피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미는 얼마나 불평이 많았는지 눈만 뜨면 불평을 털어놓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장미는 밤이면 춥고 어두워서 화단에 못 있겠으니 거실로 옮겨 달라고 주인을 졸랐습니다. 주인은 장미를 화분에 옮겨서 거실에 두었습니다. 얼마 후 장미는 또다시 주인에게 불평을 했습니다. 여기는 나비가 찾아오지 않으니 창가에 옮겨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장미를 창가에 옮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장미는 창가에는 고양이가 지나다녀서 싫다며 방안 꽃병에 꽂아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다시 장미를 화분에서 꽃병으로 옮겨 방안에 두었습니다. 며칠 뒤 장미는 또다시 주인에게 햇살이 있는 바깥 화단으로 옮겨 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장미는 이미 뿌리가 잘려 시들어버렸고 주인은 장미를 뽑아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습니다. 장미처럼 아름다운 꽃이 왜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했을까요? 그것은 자신의 위치에서 만족하며 감사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마음 중에 가장 쉽게 늙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곧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서운한 일은 10년 가도 잊혀지지 않으나, 고마운 일은 열흘 못 가 기억에서 멀어집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인간에게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할 것이지만, 한 가지만 더 말하라고 한다면 서슴치 않고『감사』를 말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솔로몬 왕을 방문한 시바 여왕이 조화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너무 섬세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졌기에 실제의 꽃과 구별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혜의 솔로몬왕은 창문을 열어 벌들이 날아드는가 보고 조화를 구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조화는 아무리 아름답고 그럴듯해도 향기와 생명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에게서 감사가 빠져나가면 조화와 같은 것이 되고 맙니다. 꼭 있어야 할 생명 같은 것이 감사입니다. 감사는 승리이고 감사는 겸손이고 감사는 축복입니다. 성서의 모든 인물들은 그들의 형편에 따라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삶을 그 형편을 감사의 근거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직 인생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만을 감사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감사하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감사의 근거를 세상적인 기준이 아닌 하나님께 두는 복된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한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두어야 합니다. 불평을 넘어서서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구원해 주신 은혜를 깨달을 때에 원망을 극복할 수 있고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늘 감사드리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애굽을 떠나온 것은 출애굽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430년 동안이나 노예로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가로막았던 홍해를 가르고 마른땅같이 건널 수 있었습니다. 생각할수록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깨달을수록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할 때에 우리는 원망과 불평을 넘어서서 감사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를 나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근거하여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식물인간 된 남편을 위해서 수고하는 부인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십년 동안을 시중을 해도 아무 보답이 없습니다. 말 한마디가 없어요. 너무 답답하고 괴로워요. 눈을 한 번 뜨고 \"여보 고맙소\" 딱 한마디만 하는 것을 들어도 한이 없겠어요. 아무리 수고해도 소용이 없어요. 반응이 없어요. 말이 없어요. 느낌이 없어요. 깨달음이 없어요. 이게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것이지요.\" 감사하는 마음, 이 얼마나 귀중한 것입니까? 인간이 무상하다, 하는 것을 알면 불교인입니다. 인간의 삶에 도리를 알면 유교인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알면 기독교인입니다. 오직 은혜를, 모든 것이 은혜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알면 그가 바로 그리스도인이요, 신앙인 입니다. 일제와 공산 치하에서 민족 해방을 위하여 싸운 조만식 장로님은 일제하에서 여러 번 투옥된 일이 있었습니다. 옥중 생활 중에서 좁은 감방 안에 14인이 수감되어 있었는데 밤에는 14명이 함께 누워 잘 수가 없어서 7명씩 교대로 누워서 자는데 7명이 먼저 자고 나머지 7명이 뒤에 잡니다. 그런데 조 장로님은 일년 여 동안 단 하루 밤도 누워서 자는 일이 없었답니다. 그가 누워서 잘 시간에 몸이 허약한 사람이 보여서 그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고 자기는 앉아서 잠을 잤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은 조만식 장로님의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할 때에 그리고 그 감격에 사로 잡혀 있을 때에 자신을 희생하고 섬김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가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하여 깊이 감사드리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때에 원망과 불평을 넘어서서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못하실 일이 없다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강한 팔과 그 오른 손으로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실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 어떤 홍해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가르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십니다. 쓴 물을 단물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십니다. 반석을 쳐서 생수가 나오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백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근거하여 감사하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백두산 호랑이를 생포하는 장면이 TV에 다큐멘터리로 나온 일이 있습니다. 사냥개가 백두산 호랑이를 끝까지 추적하고 바위구멍까지 몰고 갑니다. 무서운 호랑이의 울부짖음과 그 아랑곳없고 막 덤벼대는 사냥개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냥개들의 당돌함에 오히려 호랑이가 깜짝 놀라서 겁을 먹는 것 같았습니다. 불타는 듯한 눈동자나 그 거대한 송곳니, 그 앞발을 막 휘두르고 있지만은 그 위용 앞에서도 당당하게 대들고 있는 개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어찌 개가 호랑이 앞에 대들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 뒤에 어떤 맹수라도 제압할 수 있는 포수가 총을 들고 서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데가 있어서 개가 호랑이 앞에 대드는 겁니다. 당당한 겁니다. 결코 비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믿는 데가 있어야 이길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때에 우리는 당당합니다. 겁낼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언제나 감사드리는 주님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선하신 하나님의 뜻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믿을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을 때에 우리의 감사는 힘이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깊이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당장은 아니라도 하나님은 분명히 그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들이실 것입니다. 가까이 있는 지름길을 외면하고 먼 광야 길로 인도하시지만 거기에도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고 그 뜻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홍해를 건너게 하심도, 마라의 쓴 물을 주심도, 광야 길을 걷게 하심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심도 다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그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만 바라게 하심입니다. 내 능으로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산다는 것을 알게 하고 믿게 하고 따르게 하심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쌔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목적이 있어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이 있음을 근거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데리고 낚시를 하기 위해서 배를 타고 멀리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낚시를 하던 중에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큰 폭풍우가 휘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파도와 싸우면서 완전히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깊은 밤이 되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세 부자는 완전히 절망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아들이 소리질렀습니다. \"아버지! 저기에 불기둥이 보여요!\" 아들의 말 그대로 저 멀리에 있는 불기둥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세 부자는 무사히 육지까지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세 부자가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근심스러운 얼굴로 남편과 두 아들을 맞았습니다. 남편은 이상한 나머지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여보! 우리가 이렇게 살아왔는데 반갑지도 않소?” 그러자 아내가 슬픈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보, 죄송해요. 사실은 어제 저녁에 부엌에 불이 나서 모두 타버리고 겨우 저만 이렇게 살아 남았어요.\" 그때서야 세 부자는 자기들이 보고서 온 불기둥이 그들의 집이 타면서 치솟아 올랐던 불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그 불 때문에 우리 세 부자가 이렇게 무사히 살아오지 않았소. 그 불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모두 죽었을거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시련을 우리에게 주셨는지를 생각하며 괴로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있음을 믿고 그 뜻에 근거를 두고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근거를 찾으셨습니까? 우리의 신앙과 감사의 근거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거기에 감사의 근거를 두고 이 감사의 절기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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