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위대한 그리스도인 입니다

제목 : 당신은 위대한 그리스도인입니다 (6월24일 주일)
      누가복음 13장 6-9절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는 \"나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가늠하는 척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즉 절대 복종하는 신앙이 가장 위대한 신앙이며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서로 인사합시다. \"당신은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6장을 보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시기 전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배를 만들어 피신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배를 만드는 장소가 아라랏산 꼭대기였습니다. 배를 만드는 조선소는 바다에 인접해 있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상식을 무시한 채 산 꼭대기에 배를 만들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명령에 순종한 노아의 태도입니다. \"그대로 하니라\"가 노아의 태도였습니다. 순종에 대한 결과로 노아와 그의 가족은 구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감리교단적으로 최근에 \"위대한 감리교회\"라는 주제로 서울에서 감리교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감리교회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위대한 모습이 많습니다. 요한 웨슬리의 신앙 부흥, 영적 각성운동은 피폐한 영국 사회를 구하는 무혈혁명을 일으켰고, 한국에 들어 온 감리교회는 근대화의 역사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으며 복음을 통하여 이 민족을 일제에서 독립시키는 업적을 쌓았고 개화의 역사를 이루게 하였습니다. 민족의 앞에 서서 이끌었던 위대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영의 흐름이 흐려지고 세상과 타협하고 기독교가 선구자적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됨으로 이제는 세상이 교회를 향하여 회개하라고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교회가 외면 당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더 이상 이대로 갈 수 없다는 자각에서 모두가 회개의 기회를 가지기 위하여 위대한 감리교회를 향하여 가고자 집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 땅에서 감리교회가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감리교의 정신은 사라지고 껍질만 남은 감리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두려울 뿐이라.\"고 말입니다. 위대한 감리교회를 이끌어가는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필요합니다. 바로 당신이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첫째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왜 포도원에 무화과를 심었습니까? 그것은 주인의 특별한 선택과 관심때문입니다. 특별한 은총을 받은 것입니다. 포도원에 심기운 무화과나무처럼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한 특별한 기대와 은총을 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무화과나무는 아무리 생각해도 못 생긴 나무입니다. 그 나무 잎도 잘 못생겼습니다. 또 나무도 곧게 자라 재목으로 쓸 수 있는 그런 나무도 아닙니다. 또 무화과나무는 관상나무도 아닙니다. 보기 좋은 나무도 아니고 동시에 꽃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열매 안에 꽃이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의 존재의 이유가 있다면 오로지 열매 때문입니다. 열매는 많이 열립니다. 그래서 성지순례가서 보니 이스라엘 길거리에 많이 심어놓고 그 과일을 먹도록 해놓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화과나무와 같이 보잘 것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무화과나무와 같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교회인 포도원에 심어놓으셨습니다.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목적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열매라는 목적을 위해서 무화과를 포도원에 심었던 것입니다. 무화과 나무는 열매가 없다면 존재의 가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열매에 있음을 분명히 깨닫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창조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단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데도 목적이 있습니다. 길가에 마른풀도 발에 걷어차이는 돌 하나도 존재의 이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지 다 나름의 목적과 이유와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신앙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1장에서 말합니다. \"나는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함을 입었다.\" \"이방인의 사도가 되기 위해서 나는 세상에 태어났다\" 라고 간증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확실합니까? 이 순간을 위해서 이 일을 위해서 내가 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은 당신에게 특별한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포도원에 심겨진 무화과나무들입니다. 이제 예수님 때문에 살고 예수님 때문에 죽을 수 있다고 고백하는 참 믿음의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책임을 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고 하니 과원지기가 나타납니다. 과원지기가 하는 말이 \'금년에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책임지는 신앙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스티븐 코비라고 하는 분이 쓴 성공하는 사람의 일곱 가지 습관이라고 하는 책에서 일곱 가지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을 말하는데 그 중에 첫째가 프로액티비티(Proactivity)입니다. 주도성이라고 번역하는데 그 말은 \'내가 책임진다\'는 뜻입니다.
  남을 탓하지 않고 내 책임으로 알고 \"내가 하고 싶어 한 일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은 내가 하고 싶어서 내가 한 일이라고 할 때에 주도성이 살아납니다.  얼마전에 법무장관이 임명된지 하루만에 바뀌기도 하였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한 장관이 전문가도 아닌데 장관이 되었습니다. 염려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 장관은 취임식 석상에서 \'여러분은 열심히 자기 일을 하십시오. 저는 책임만 지겠습니다.\'라고 말함으로 박수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부부싸움을 하다가 막 화를 내니까 아내가 \"왜 당신은 계속 화를 내느냐\"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하는 말이 \"나는 본래 그렇지 않았는데 너하고 살면서 이렇게 됐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못난게 자기 책임이지 누구 책임입니까? 내 책임 내가 질 때에 그 순간부터 인간의 존재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책임을 내가 질 뿐만 아니라 남의 책임까지도 내가 질 수 있어야 성숙한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과원지기의 위대성을 찾아보게 됩니다.
   이 과원지기는 열매 없는 실패의 책임을 졌습니다. \"열매 없는 책임이 내게 있습니다. 내게도 있습니다\" 나무에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책임이 있다는 겸손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 할 때에 내려칩니다. 다 진멸 하겠다고 말씀하실 때 모세가 말합니다. \"하나님, 정히 그러시려거든 내 생명부터 먼저 취해주시기 바랍니다.\" 즉 이 백성의 죄 중에 내 책임도 있기에 형벌을 함께 받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마음입니다.
  마찬가지로 과원지기도 책임을 지겠다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책임을 지고 다시 1년 동안 수고하겠다는 것입니다. \'땅을 파고 거름을 주고 물을 주고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애를 쓰겠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과원지기가 많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할 때 그 포도원은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책임지는 신앙을 간직하는 성도가 바로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한 번 더의 기회를 통하여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무화과나무나 과원지기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게 됩니다. 그리고도 \'열매가 없으면 그때 찍으세요. 한 번 더 기회를 주세요. 마지막 기회(Last Chance)를 주세요\' 이렇게 요청합니다.
   다시 기회를 달라고 하나님께 말씀 드리는 것이 정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못했으니까 그만두겠다 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인들은 \'나는 지금까지 못했으니까 그만 둘래\' 하는 생각을 먼저 합니다. 그만두겠다는 소극적인 자세보다는 하나님께 다시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지님이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형을 선고했을 때, 형을 집행해야 마땅하지만 정상에 따라 일정기간 동안 집행을 유예하고, 그기간에 죄를 범하지 아니하면 형의 선고가 없었던 것으로 하여 끝나나, 죄를 지으면 가중처벌받는 것을 \'집행유예\'라고 합니다. 내게 다시금 주어지는 기회는 큰 축복의 복음입니다. 선지자 요나는 회개하므로 제2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니느웨성을 돌며 회개하라고 외쳐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유예받은 무화과나무와 같은 제2의 좋은 삶의 기회를 저버리고 거절하며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하나님을 저버리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3년을 기다렸습니다. 열매 없는 것을 알고도 1년 2년 3년을 기다렸습니다. 그 기다림이란 하나님의 기다림, 하나님의 인내를 말합니다. 즉 열매맺기를 기다리고 있었단 뜻입니다. 그러나 이 3년이 지난 다음에 주인은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땅만 버리느냐? 이 나무를 찍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깨닫고 주어진 마지막기회에 열매를 맺어 내야만 합니다. 기독교는 열매맺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열매가 없는 그리스도인은 참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열매를 구하실 때 열매를 찾지 못하는 기독교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심판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를 찍어내는 것입니다. 바로 내가 찍어내야 할 나무가 아닌지 정확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뉴욕의 역대시장 가운데 가장 유명한 명시장으로 알려진 사람은 라괴디아입니다. 그가 뉴욕시의 즉결 재판부 판사로 있을 때, 빵을 훔쳐먹다가 붙잡혀 온 노인이 기소되었습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노인에게 \"당신의 행위는 10불의 벌금형에 해당됩니다.\"라고 형을 내린 후 자기 지갑에서 10불을 꺼내 \"그 10불을 내가 내겠습니다. 이토록 배고픈 사람이 뉴욕거리를 헤매고 있었는데 내가 너무 잘먹고 잘살았으니 그 벌금으로 내는 것입니다.\"라고 했답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죄에 대해서는 벌을 내렸지만, 가진 자로서의 자신을 돌아보았던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닮지 못한 자신을 밝히 깨닫고, 자신을 회개하며, 열매를 맺는 삶이 되도록 힘쓰는 자들입니다. 그리하여 열매를 찾으시는 하나님께서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앞으로 보아도 뒤로 보아도 열매를 맺어내는 하나님의 사람즉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