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주님을 따라가시렵니까 (6월10일 주일) | |
| 누가복음 9: 57∼62 옆사람과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예배의 자세를 바로 합시다\". 군대에 가면 훈련소에서 군인을 만드는 훈련가운데 첫 번 훈련이 제식훈련입니다. 그중에서도 부동자세를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부동자세인 차렷자세를 바로 가르치면 군인정신이 바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자세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예배시간에 어떤 자세를 가지고 계십니까? 몸을 비꼬고 있습니까? 다리를 꼬고 있습니까? 졸고 있습니까? 다른 행동을 하고 있습니까? 모두 예배의 바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집에 있는 부엌 칼, 그 칼이 선한 것입니까? 악한 것입니까? 부엌에 있는 칼은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습니다. 어머니가 그 칼을 가지고 요리하면 배고픈 자녀들을 먹여 살리는 칼이 됩니다. 그러나 강도가 들어와서 부엌에 들어가 그 칼을 가지고 나와 사람을 찌르게 되면 그 칼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 되어버립니다. 칼은 악하지도 않고 선하지도 않는데 엄마의 손에 붙잡히면 죽을 사람도 살리고 강도의 손에 붙잡히면 살 사람도 죽여 놓는 것입니다. 즉 칼을 잡는 그 사람의 정신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람에게 정신보다 더 중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자세가 삐딱한 사람은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생각을 해도 꼭 삐딱하게 합니다. 또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반드시 삐딱하게 말합니다. 함께 일하면 좋겠다 싶어서 일감을 맡기고 일을 시키면 비딱하게 일을 합니다. 참 문제입니다. 그런데 자세를 바로 가진 사람은 즉 믿음의 자세를 바로 가진 사람은 말을 해도 바로 합니다. 생각을 해도 바로 합니다. 일을 맡겨 놓아도 바로 합니다. 자세를 바로 가져야 합니다. 예배하는 자의 앉은 자세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의 자세 그대로 읽어 볼 수 있습니다. 회사 사장이나 높은 사람앞에 가서도 다리를 꼬고 앉아 있습니까? 그런데 이 자리가 어느 자리인데 다리를 꼬고 앉습니까? 목사 앞에 앉는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자리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은혜 받는 법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느 교회에서나 꼭 문제의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앉아 예배하는 자세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자세가 중요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겠다고 하는 자들에게 믿음의 자세를 바로 해야 잘 따라올 수 있다고 자세에 대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본문에 나오는 세 사람은 나름대로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지만, 예수님께서 보실 때 그 자세가 모두 합당치 못하여 거부당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을 따르는 바른 믿음의 자세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려면, 첫째로 성급한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정말 놀라운 헌신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만 본다면 이 사람은 완전한 주님의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사람의 자세는 장차 다가올 주님의 고난은 생각해보지 않은 맹목적인 열광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주님은 보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을 따라다니면 좋은 일만 생길 것으로 알고 큰 기대감에 부풀어 쉽게, 성급하게 따르겠다고 한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고난을 각오하고 결의를 다지면서 좇아가도 어려운데 하물며 아무런 각오도 없이 따라가는 자세는 참으로 무모한 것입니다. 성급하게 주님을 따르려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라고 말씀하심으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춥고 배고프며, 때로는 거친 대접과 모욕등 낮은 삶을 살아야함을 각오해야만 합니다. 출발은 서두르되 길은 서둘러서는 안됩니다. 서둘러 쌓은 담은 결국 무너지기 쉽고 서둘러 먹은 음식은 체하기 쉬운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쉽게, 성급하게 생각하고 뛰어가다가는 실망하여 주저 앉거나 넘어지기 쉽습니다. 어떤 신사가 전철을 탔습니다. 그런데 남루하고 보잘것없이 보이는 한 남자가 자기를 슬쩍 밀치고 지나쳤습니다. 그는 자기의 주머니에 이상함을 느끼고 만져보니 지갑이 없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와 부딪친 남자의 덜미를 붙잡고 분을 터뜨리며 그의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그러나 지갑이 없었습니다. 그는 창피를 톡톡히 당하고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아내에게 전화가 오기를 \"집에 지갑을 두고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 삶의 실수는 서두르는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신비하게 변화되신 예수,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신유의 예수만 보지말고, 머리둘 곳이 없으셨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제대로 보는 신앙적 자세가 필요합니다. 신앙은 눈에 보이는 좋은 것 때문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감정에 따라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로, 미루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나로 먼저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소서\" 자식으로서 부모의 장례식을 치루는 것은 당연한 도리입니다. 따라서 모든 일에 우선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 사람은 마땅히 본 받을 자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잘못은 없어도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주석학자들은 이 사람의 아버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노령의 부친이 계시니 부친이 돌아가실 때까지 집에 머물며 봉양하다가 부친이 돌아가시면 장례식을 치른 후 주님을 따르겠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주변사람들에게 신앙을 가지라고 권유하거나 믿는 성도들에게 봉사하라고 하면 인간적인 의무를 말하며 거절하거나, 혹은 뒤로 미루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신앙생활에서는 세상적인 그 어떠한 조건도 따라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육에 속한 것 때문에 영에 속한 일을 뒤로 미루지 말라는 말씀이십니다. 스펄젼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가정마다 달력이 세 개씩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이 만든 달력인 삼백 육십 오일로 된 달력입니다. 그런데 안방 침대 머리맡에 가면 마귀가 달력을 걸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것의 모양은 사람이 만든 달력과 똑 같은데 한 장 들추면 정월 초하루가 아니라 \"내일\"이라는 것입니다. 또 한장 들추면 또 내일입니다. 일년 365일이 전부 내일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마귀는 속삭입니다. \"너희 가족이 하루를 다함께 쉬는 날이 오늘뿐이 아니냐? 목사님도 그것을 알아! 그러니까 오늘은 놀러 가고 내일 가라. 오늘만 살고 죽느냐? 내일 가라\" 이렇게 살면 일년을 헛살고 평생을 헛살게 됩니다. 내일로 미루는 사람은 마귀 시간표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하나님의 달력은 첫장을 들추어도 오늘, 또 들추어도 오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지 않습니까? 오늘에 충실한 사람은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그 어떤 것보다 앞세우고 신앙 생활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유부단하지 마십시오. 내 신앙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겨나가는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요구하실 때는 언제나 무엇이나 양보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여기고 미루지 않고 순종하는 바른 믿음의 자세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육신에 붙잡힌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이는 주님의 제자가 되고 싶기는 하나 아직도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자의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선 이 사람에게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교훈은 가족관계를 금지하신 것이 아니라 가족 때문에 예수를 따르기를 꺼려하는 자에게 내리신 처방입니다. 이 사람의 경우, 작별인사를 통하여 결심이 번복, 또는 포기할 가능성이 있음을 아셨기 때문에 금지하신 것입니다. 영국이 아프리카를 지배할 때, 똑똑한 아프리카 청년을 영국으로 데려다가 공부를 시키면 나중에 그 민족의 지도자가 되겠다 싶어서 한 청년을 택했습니다. 그 사람에게 전액 장학금을 주기로 하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와서 공부하라고 통지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이 \"공부하러 가겠습니다\"고 약속을 하면서 한 가지 단서를 붙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의 연세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이제 40세라고 합니다. 이 사람이 영국 갈 수 있겠습니까? 장차 언젠가 따르겠다는 것이 아니고 즉각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믿음의 쟁기는 힘있게 잡아야 하고, 잡았으면 뒤돌아보지 말아야 하며, 끝까지 갈아내야만 합니다. 내 삶속에 성령의 감동이 왔습니까? 사람과 의논하거나 합의해서는 안됩니다. 동의를 구해서도 안됩니다. 내게 온 성령의 감동을 사람의 입과 맞추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기쁘게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사명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 때문에 사람이 내게서 멀어지고 떨어져 나가도 우리는 그 길을 가야만 합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의 기술자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십니다. 계란을 깨지 않고서는 후라이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를 버리지 못하면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두 마리의 토끼를 좇는 자는 한 마리도 못잡는다는 서양격언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의 쟁기를 잡은 우리에게 뒤를 돌아보는 이유와 변명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분명히 믿기는 믿고 충성하기는 하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일조하고 봉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실 때 곧바로 순종해서 실천해야지, \'형편 되면 하겠다\', \'빚 갚고 나서 하겠다\', \'아이들 키워놓고 하겠다\' 이렇게 하다가는 죽을 때까지 못합니다. 돈 벌어서 헌금하겠다는 사람, 대체로 헌금하는 것 못보았습니다. 얼마가 되든지 지금 딱 잘라서 낼테면 내고 말려면 말 것입니다. \'내일 하겠다\', \'얼마 후에 하겠다\' 하는 말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일꾼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입니다. \'나중에 엄청난 일을 하겠다\', \'진짜 마음 먹고 큰 일을 한번 해 보겠다\'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주님을 따르시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바로 그것부터 해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그동안 갈아놓은 신앙의 밭을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너무 많은 세상 이유 때문에 이리 삐뚤 저리 삐뚤, 끊기고 닿고, 둘쑥 날쑥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제 부터는 신앙의 밭을 주님의 뜻대로 갈아가시길 바랍니다. 주님뜻대로 살기로 했네(x3) 뒤돌아 서지 않겠네. 이세상 사람 날몰라줘도 (x3) 뒤돌아 서지 않겠네. 세상등지고 십자가보네(x3) 뒤돌아서지 않겠네. 이제 주님을 따르는 길이 고난과 고통의 길이라고 하더라도 변치 않고 끝까지 주님의 뒤를 따르는 믿음의 자세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모든 여건과 환경이 맞지 않더라도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바른 믿음의 자세를 가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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