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누구와 동행하고 계십니까 (6월3일 성령강림절) | |
| 요한복음 14장 25-26절 옛날 어느나라에 무사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전쟁에 나가기만 하면 두려워서 피해 다니기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우들에게 늘 조롱거리가 되곤 했습니다. 그가 한 번은 전쟁터에서 우연히 화살에 맞아 쓰러져 있는 적장 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의 목을 베어 돌아왔는데 알고보니 그는 적의 유명한 장수였습니다. 비겁했던 무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일약 용감한 무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후부터 그가 전쟁터에 나가기만 하면 용감히 싸워 혁혁한 공을 거두고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큰 영웅이 되었답니다. 기독교는 약한 자를 강하게 들어쓰시는 종교인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허물많고 약점투성이지만 어떤 계기로 가장 강한 성공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계기를 만드셔야 합니다. 오순절날 비겁했던 예수님의 제자들도 가장 강하고 담대한 자들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성령강림의 역사였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50일 후에 약속하셨던 \"성령\"이 마가의 다락방에 임했던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그래서 제단의 촛대상에도 제 가운의 스톨도 붉은 색으로 드리우는 것입니다. 뜨거운 성령, 가슴에 움직이는 성령, 그 성령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으십니까? 예수 믿으면 영원히 사는 것을 믿으십니까? 아멘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은 성령이 아니고는 할 수가 없는 말입니다. 성령께서 시키신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크리스챤(Christian), 그리스도인, 예수쟁이다\"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 있는 성령께서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갑자기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나고 마음이 불안해지고 갈등이 생긴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 속에 성령님께서 알려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잘 하는 사람이 어느날 소주방에 들어가려고 할 때 쉽게 들어갈 수가 없고, 주변을 한번 살피게 됩니다. 그래서 소주방으로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좀 걸립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부터 \'이러면 안되는데\'라는 소리가 들린다면 그 또한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간혹 그런 깨달음이 있었다면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예수를 고백하는 자와 함께 하시며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하나님, 바로 그분이 성령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과 동행하는 삶이 되려면 첫째로 내 안에 성령이 거하실 수 있도록 흠없이 성결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이라고 했습니다(고전 9:27). 왜 사도 바울이 자기 몸을 쳐가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 했을까요? 사도 바울은 단순한 죄없음이 아니라 우리 속의 작은 추함인 시기, 질투, 혈기, 분냄도 피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까? 이 자유로운 세상, 돈 몇 푼 들이면 나이도 감출 수 있고, 나이 들어 생기는 주름도 없앨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고 변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달라지고 변해도, 여전히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하고, 지켜져야 합니다. 변하는 것은 재미있지만, 무가치한 것입니다. 보석이 왜 보석입니까? 왜 값이 비쌉니까? \"변함없음\"때문입니다. 시간과 공간, 주변의 상황과 상관없이 \"변함없음\"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이 변해도 우린 보석처럼 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찾을 수 없었던 의인 열사람이 바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못된 사람, 못된 청소년이 많아도 \'내 자식, 내 남편, 내 아내는 아닐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내가 너 때문에 기쁘다, 내가 너는 믿는다, 내가 너하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으마\"라고 말씀하시게 할 수는 없을까요? 하나님이 우리 때문에 실망하지 않으실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과의 줄이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영국의 허드슨테일러 선교사가 중국 내지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중에 극도로 피곤하고 번민하여 좌절에 빠진 때가 있었습니다. 거룩해지려고 노력할수록 그 반대의 행동이 나오고, 믿어야 될 줄 알면서도 자꾸 의심이 생기고, 열매를 맺으려고 해도 열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실망과 좌절에 빠졌을 때, 그의 누이한테 편지가 왔습니다. \"오빠는 포도나무 가지에 불과하니까 그분에게 맡기고 의지하면서 쉬라\"고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포도나무가지는 영양분을 끌어 올리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꽃을 피우려고, 열매를 맺으려고 힘쓸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원줄기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으면 저절로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테일러는 자신의 인간적인 노력을 포기하고 완전히 주님께 맡기고 쉴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부터는 그는 주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많은 열매를 거두고,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영국케직 총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패배를 당했고 그래서 승리를 간구했으나 승리는 도무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저는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승리는 왔습니다.\"라고, 내가 내 힘으로 노력해서 성취하려고 헛수고 하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이미 성취해 놓으신 것을, 믿음과 기도로 내 것을 만들고 내 힘을 빼고 주님께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기독교인들의 특권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예수 이름으로\"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했고 \"기도를 중단하는 것은 죄\"라고 했습니다(삼상 12:23).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성령께서 일하시게 하는 삶은 주님과 함께, 다 예수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이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자식과 부모는 항상 연락이 되어야 부모가 자식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부모의 노릇을 할 수 있고 도움을 줄 수가 있습니다. 연락이 끊기면 부모는 마음이 초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연락을 끊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연락을 끊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의 기도가 끊기면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귀가 막힙니다. 하나님과의 연락을 끊지 말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줄이 언제나 기도로 이어지는 복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어느 시골교회에 새벽기도를 잘 나오시던 할머니 한 분이 안 나오셔서 전도사님이 어디가 편찮으신가해서 심방을 갔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새벽기도회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유인즉 어느날 새벽기도를 하다 보니 전도사님 기도가 자신의 기도보다 소리도 크고 하나님이 전도사님 기도를 더 듣겠지 자신의 기도를 더 듣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할머니 마음에는 자기가 기도하는 시간에 하나님이 듣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다 같이 기도해도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문제는 내가 그분이 안들으실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은 모두 귀중한 존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천하보다 귀중한 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스스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만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회자와의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일을 맡긴 사람입니다. 귀히 여겨 기쁨으로 일할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특별한 사람을 대언자로 세우셨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목회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기도하고 사랑해 주며 도왔습니다. 혹 저를 미워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목회자와 원만치 못하면 예배가 싫어집니다. 그러면 자연히 주일성수를 하지 않게 됩니다. 교회가 싫어지고 직분도 귀찮아집니다. 자연히 성령과 동행하는 삶의 질서가 무너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만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속에 성령이 거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고백했다면 여러분 속에 성령께서 거하십니다. 문제는 그 성령이 계신 것을 믿고 그 분과 동행하고 그분의 힘을 빌어 그분의 힘을 가지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학자인 스코필드박사가 한 번은 버지니아 주 스탠톤에 있는 한 정신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스코필드는 병원을 안내하던 병원장에게 한 건장한 육체의 젊은 환자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젊은이가 난폭해지면 다루기가 매우 어렵겠습니다.\" 그러자 병원장은 \"예. 그렇지만 저 젊은이는 한 번도 자신의 힘을 발휘해 본 일이 없습니다. 자기는 힘이 없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지요. 그리고 항상 자기가 약하다고 불평하며 거기에 대한 약을 달라고 졸라댑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스코필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젊은이와 같은 사람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요! 내재하는 성령의 능력으로 많은 재능을 받은 교인들은 재능을 사용할 믿음과 지혜와 헌신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능력을 달라고 기도합니다만 이미 충분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리 비천한 자리라도 쓰임을 받고자 하는 자발적인 의지와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사용할 믿음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미 자기 속에 성령님이 계신데도 불구하고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데도 불구하고 \"나는 못해, 나는 안돼, 나는 틀렸어, 나 같은게 뭘해\"라고 스스로 맥없이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무리 힘이 들고 어려워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사십시다. 성령인 프뉴마의 원뜻은 우리말로 \'신바람\'이란 단어와 맞습니다. 신앙생활에 신바람이 나야 됩니다. 신바람이 나려면 진짜 신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세상적인 다른 바람으로는 안됩니다. 진짜 신바람은 영적인 성령의 바람이 우리안에 불 때 마음마다 기쁨이 일어나고, 마음마다 능력이 일어나고, 마음마다 변화가 일어나게 만듭니다. 우리에게 길이 열려질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을 고백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속에 계신 하나님, 성령을 발견하시고 그분의 가르치심과 생각나게 하심 그리고 동행하심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성령께서 \"함께 계시고 버리지 아니하시고 떠나지 아니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성령과 동행하는 승리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