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무엇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5월20일 주일) | |
| 누가복음 10장 38-42절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관심 있는 곳에 시선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구두를 만드는 분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구두에만 관심이 있답니다. 속옷을 만드는 분은 보이지는 않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의 속옷은 무엇을 입었을까에 관심을 가지게 된답니다. 이전에 어떤 부흥강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교회에서 어떤 할머니 성도님이 양말을 사주셨는데 교회만 오시면 목사님의 발만 쳐다보시며 관심을 가지고 계시더랍니다. 그래서 한번은 설교도중에 발을 번쩍 들어주셨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에 관심이 많으십니까? 미국의 신학자 \'폴 틸리히\'는 \"무관심은 죄\"라고 하였고,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드\'는 \"너무 무관심한 것도 병이지만 너무 한가지 일에만 집착하는 것은 더욱 큰 병리 현상\"이라고 말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이야기는 예수께서 여행 중 한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라는 자매가 영접하여 자기 집에 모셔서 되어진 이야기입니다. 언니 마르다는 무엇인가 예수님을 접대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보냈고,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여인의 다른 행동을 모두 나무라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모두 칭찬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마르다에 비해서 마리아 가 더 나은 편을 택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아래, 앞에 앉아있기를 즐거워했습니다. 그런 마리아를 예수님은 마르다 보다 나은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예수님과 하나님과 가깝게 있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삶 속에,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어떤 일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라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일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그 일에 \'가담\'하고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한 자리에 앉아 똑같은 말씀을 들어도 말씀에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는 사람, 오늘 교회에 와서 \'목사님의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예배 마치고 나가서 \'누구와 만날까, 누구와 전화를 할까\'라는 생각을 하고 앉아있는 사람은 설교를 들어도 전혀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대해 어떤 관심이 있으십니까? 얼마나 관심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삶 속에 어떤 관심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남의 얘기, 소문, 연예인, 스포츠, 돈, 정치, 명예에 관심이 있습니다. 신문을 보더라도 어떤 사람들은 정치면부터 보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경제면부터, 어떤 사람은 연예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어떤 사람은 TV 프로그램부터 봅니다. 어떤 사람은 만화부터 읽기 시작하고 어떤 사람은 광고부터 봅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것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중요한 것은 \'내가 관심을 가지고 사는 그 분야가, 그 일이 하나님의 마음에도 드는 일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보면 \'안트로포스\'라고 합니다. 그것을 영어로는 \'look up\' 즉 \"위를 보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하향성 동물이 아니라 위를 보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에 계신 하나님, 저 높은 세계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이 세상 땅에, 육체에,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얘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오늘 예배 드리는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더 관심을 많이 두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마르다와 마리아 둘 중에 누가 잘했느냐\'라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분명한 것은 그 상황에서 왜 예수님이 발 아래 앉아 말씀을 듣던 마리아를 칭찬하셨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았다고 해서 일평생 말씀만 듣고, 말씀만 묵상하는 그런 생활을 계속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일의 우선순위를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는 일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보통 너무 많은 일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자기가 일하는 것 때문에 자기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르다가 열심히 일하다 보니 자기는 열심히 일하는데 마리아는 가만히 앉아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있는 것을 보니 자기가 한심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거, 나만 바보 아닌가, 다 편하게 예수 믿는데, 나만 바보처럼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 말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나만 바보처럼 일하는 것 아냐?, 나만 힘들게 교회에 나와서 청소하고, 주방에 처박혀 고생하는 것 아냐… 누구는 예쁘게 차려 입고 쉽고 간단하게 얼굴 드러나는 일을 하는데…\'하면서 자신의 봉사와 땀흘림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사람들 중에는 얌체가 있습니다. 자기는 손 하나 까딱 하지 않고 입으로 다른 사람을 부려먹고, 정말 왕비처럼, 왕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내밀고 이름 내는 곳에만 나타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얌체들의 행동을 가지고 마음 아파하고 투덜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22장에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라는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얌체들 때문에 신경쓸 필요가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예수님을 초청해 놓고 너무 대접하느라 분주하다보니 예수님의 방문이 마르다 자신에게는 무익한 것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주일 날 교회에 와서 주방에서 봉사하고. 어린자녀를 돌보고 안내를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한다는 이유로 예배에 소홀해서는 안됩니다. 이 시간에도 젊은 엄마들이 어린이들과 함께 예배 드립니다. 그런데 어린이들을 돌보느라고 예배드리고 말씀 듣는 일에 소홀히 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반드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봉사한다는 이유로 예배에, 기도에,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 소홀히 합니다. 자기가 열심히 일한다는 이유로 무례합니다.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합니다. 자기만 내세웁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봉사를 많이 한다 해도 칭찬 받을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일에 더욱 더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다른사람이 하고 있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 땅에 사는 우리는 어떤 삶을 살든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고, 다른 사람이 지금 처한 위치와 행동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하고 있는 봉사에 대해서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다른 사람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인정해야 합니다. 나처럼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손가락질해서는 안됩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남편과 여러분의 아버지들이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생활 때문에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어떤 때는 눈물을 흘리고, 어떤 때는 부끄러움을 당하기도 하고, 심지어 생명을 걸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아버지와 남편을 얼마나 인정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아내, 여러분의 어머니는 어떻습니까? 집에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적은 돈으로 살림을 하느라 노심초사하며 자녀들을 키우느라 애씁니다. 여러분의 늙으신 아버지 어머니들은 어떻습니까? 땀흘려 살았던 과거를 잊으시고, 자녀들이 잘못될 까봐 노심초사하고 자녀들에게 부담될까봐 눈치보고 사시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은 어떻습니까? 공부 안한다고, 공부 못한다고 야단 치십니까? 그런데 사실은 공부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수학선생님의 얘기를 빌리면 고등학교 2학년쯤 되면 수학시간에 제대로 알아 듣는 아이가 20%, 조금 알아 듣는 아이까지 포함하면 30%정도의 아이들만 이해하고, 나머지는 모르면서 앉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생이 많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도 나름대로 고민이 있고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런 것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내가 땀흘리고 애쓰는 것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수고와 눈물을 보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부부간에 싸우고 그런 것을 가지고 형제간에 싸우고 심지어 교회에서 싸웁니다. 땀흘리고 애썼던 것, 마르다 처럼 정성껏 준비하고 대접하려고 애썼는데도 그 수고를 말 한마디로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교회의 목사님과 장로님이 교회 문제를 위해서 금식기도를 가셨답니다. 그 장로님은 공부를 많이 하셔서 박사학위도 받으셨고, 생활도 넉넉한 부자였다고 합니다. 그 두 분이 기도원에 가셔서 3일동안 금식기도를 하시고 기쁜 마음으로 내려 오는 중에, 교회 근처에 이르렀을 때 교회 집사님 한 분이 목사님과 장로님을 붙잡고 그렇게 금식하고 기도하셨는데 우리 집에 오셔서 기도해 주고 가시라고 막 조르더랍니다. 기도해 달라고 하는데 그냥 갈 수가 없어서 그 집에 갔다고 합니다. 그 여자 집사님이 쥬스와 크래커를 내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접시에 과자가 3개가 놓여있었답니다. 3일동안 금식을 했으니 목사님이나 장로님이 얼마나 배가 고팠겠습니까? 그래서 장로님이 속으로 \'내가 얼른 먹고 하나 더 먹어야지. 설마 목사님이 두 개를 드실까!\'라는 생각으로 한 개를 먹었답니다. 그런데 순발력이 목사님이 더 좋았나 봅니다. 목사님이 과자 한 개를 드시더니 또 하나를 얼른 입에 쏙 넣어 드셨다고 합니다. 그 순간 3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고 난 장로님이 \'야 정말 치사하다. 목사가 정말 치사하다. 치사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냥 우스운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공부도 많이 하고, 부자이고, 금식기도까지 하고 내려오신 장로님이 그 크래커 한 개 때문에 \'아 더럽다, 무슨 목사가 그 따위냐\'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는 것입니다. 3일동안 금식하고 기도한 것이 과자 한 개 때문에 모두 말짱 헛것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과자 한 쪽 때문에, 아니 반쪽 때문에 그동안 기도한 것, 봉사한 것을 다 쏟아 버리고, 땀흘리고 애쓴 것, 자녀를 위해 남편을 위해 수고한 것 모두를 다 헛것으로 만들어 버리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그동안의 수고를 말로, 행동으로 다 쏟아 버리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게 만들어 버리는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신앙생활하는 여러분, 세상의 삶을 살아야 하는 여러분, 우리가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하며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봉사해야 합니다. 남을 위해 수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은 해야 하지만, 그 땀흘림과 수고를 다른 사람들이 꼭 알아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 앞에 가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 했어\"라고 하나님께 칭찬 받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나님께 칭찬 받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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