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칠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제목 : 가르칠것을 가르쳐야 합니다(5월6일 어린이주일)
  잠언 22장 5-6절

  월간 [아버지와 가정]이 초등학생 이상의 아들을 둔 아버지 88명과 만 13세~18세의 아들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아버지를 닮았으면 좋겠다\" - 아버지의 46%,
\"아들아, 너는 아버지를 닮지 말아라\" - 아버지의 28%,
\"나는 아버지를 닮고 싶다\" - 아들의 33%,
\"나는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 - 아들의 37%,
\"이 다음에 나도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아이들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
\"내 아들이 나를 닮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아버지들도 점점 줄고 있습니다.
  자녀가 자신을 닮지 않기를 바라는 아버지, 자녀가 자신을 닮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 결코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아이들 이런 가정의 자녀들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까요?  \'호프만\'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성숙한 도덕성과 가치관을 갖고 있으며 아버지와의 관계가 매우 좋다\"라고 했습니다. \'헨리 밀러\'라는 사람은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경험한 아이들은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 시대의 많은 청소년들은 친구까지도 경쟁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면 자살을 하거나 자폐증환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는 아이들을 이기적이고 계산적으로 가르친 부모들의 잘못된 사랑에 기인한 것입니다. 오늘 날 부모들의 자녀사랑은 자신들의 욕심과 기대로 인하여 비뚤어진 사랑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앞으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마땅히 가르칠 것을 가르치지 아니하면 우리의 자녀들은 영원히 불행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왜 자녀들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쳐야 합니까?

   첫째는 자녀들은 하나님의 보호대상입니다..
   이솝의 우화입니다. 낚시꾼이 작은 고기를 잡아 손바닥에 올려 놓았습니다. 잡힌 고기가 \"나는 작은 고기이니 풀어 주시고 이 다음에 가치있는 큰 고기가 되어 다시 만나요\" 하니 낚시군이 \"안된다. 너를 물속에 넣으면 다시는 네가 내 손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너를 잡은 이상 놓아 줄 수 없다. 바구니속으로 들어가거라\"하며 작은 고기를 자기 바구니에 넣었답니다. 여러분의 자식을 주님의 축복 바구니밖에 내어 놓고 후에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일랑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송아지가 고삐에 끌려다님이 부자유한 것같아도 그것이 복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고삐가 풀려져 제멋대로 이 밭 저밭 마구 뛰어다니다간 매밖에 맞을 것이 없답니다. 내 자식을 진리안에 가두어야 합니다. 그것은 구속이 아닙니다. 기독교교육은 자라나는 세대를 그리스도품에 안기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손이 얹어지게 하는 것이며,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축복의 말씀이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조롱속에서 살면 열등감을 배우고, 적대관계속에서 살면 싸움만을 배우며, 격려가운데서 살면 자신감을, 관용속에서 살면 인내를, 칭찬속에서 살면 존경하는 것을, 용서가운데서 살면 사랑하는 것을, 정직속에서 살면 진리가 무엇인가를, 신앙속에서 살면 천국을 배우며 자라게 될 것입니다.
  자녀들은 하나님의 크신 손으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요, 부드러우신 손으로 사랑받아야 할 생명들입니다. 믿음의 부모들은 내 자녀들에게 세상살이의 고통과 어려움을 만나도 유혹이 와도, 오직 주님의 사랑과 능력에 인도되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야 함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박목월 시인의 시가운데 \'빈컵\'이란 시에서 \"빈 컵속에 깨끗한 물을 담아 놓으면 예쁜 꽃을 꽂고 싶어지네...\" 우리 자녀들의 어두운 마음을 하나님 말씀의 빛으로 몰아내고 밝은 주님의 뜻을 담게 되면 그들에게서 아름다운 인생의 꽃이 피어 날 것입니다.

  둘째로 자녀들을 믿음으로 키워야 합니다
  옛사람의 글가운데 \"자식을 낳는 것이 어려움이 아니요. 기르는 것이 어렵고, 기르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며 가르치는 것이 어렵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린아기로 태어나 유년기와 소년기를 지나 청년기를 거쳐 장년기에 이르게 됩니다. 어린 날의 어제가 오늘의 나를 만듭니다. 다시말하면 지금의 나란 존재는 유소년기를 거치는 동안에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자녀들이 어떠한 형태로 굳어지기 전에 말씀안에서 가르칠 것을 가르쳐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보다 더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 아무런 구속이나 제약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학교 담장을 헐어 버렸다고 합니다. 좀 확 트인 분위기속에서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실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담장이 있을 때는 아이들이 운동장 전체에 흩어져서 마음껏 뛰어 놀았는데, 담장이 없어지고 난 뒤에는 아이들이 운동장 가에는 가지 않고 운동장 한 가운데 모여서 놀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실험을 한 교육학자 도브슨 박사는 말하기를 \"아이들에게는 울타리가 필요하다\"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정신적인 울타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향한 믿음입니다. 믿음이 인간의 삶을 보호해주는 정신적, 영적인 울타리가 되어 집니다. 그런 하나님의 울타리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인격과 삶을 바로 세워 나가게 됩니다. 자녀들에게나 부모들에게 있어서 행복의 가장 확실한 기초는 믿음으로 행할 바를 가르치는 신앙교육입니다.
 세계에서 청소년 범죄가 가장 적은 민족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유대민족은 2천년동안 유랑민족으로 세계를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러면서도 유대의 전통과 유대의 신앙과 유대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그들의 각 가정에 쉐마(Shema)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 가정은 어느 가정을 막론하고 조그마한 가죽 상자안에 쉐마가 들어 있습니다. 쉐마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란 뜻입니다. 그 상자속에는 모든 유대인들이 가슴속에 새겨야할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쉐마는 구약성경 신명기 6장 4절부터 9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이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로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의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핵심은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유대민족을 바로 세운 것입니다. 간혹 교인들의 가정에서 어렸을 때에는 교회에 잘 보내다가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쯤되면 아이들을 교회에 안 보내는 가정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할 까 싶어서입니다. 대학 입학시키기 위해서 교회에 그만 나가게 하고 공부를 시킵니다. 그런분들은 아이가 대학 입학하느냐 못하느냐하는 점은 염려하면서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대학 졸업장을 받느냐 못받느냐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올바로 보이는 사람으로 성장하느냐 안하느냐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자녀들을 믿음의 울타리안에서 자라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셋째로 이러한 주님의 명령을 주관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자녀들에 대한 교육적 방법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강경해야 할 때 너그럽지는 아니한가? 엄하게 단속해야 할 것임에도 가볍게 넘어가는 것은 아닌가? 날카롭게 반응해야 할 때임에도 쓸데없는 관대함을 보이지 아니했는가? 돌보아주어야 할 때 바쁘다는 이유로 무관심하지 아니했는가? 지금 꼭 필요한 것을 뒤로 미루어 놓지는 아니했는가? 이제 나의 자녀교육을 하나님께서 검증하시도록 내어놓고 기도하며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들은 내 자녀들이 자신의 의지를 억제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으로 키워내야 합니다. 말을 배울 때부터 기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영어 단어 몇마디를 외움에 기뻐하지 말고 기도하는 말속에서 크게 기뻐해야 합니다. 어떤 가정에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가 주기도문을 정확히 외우고 있었습니다. 깜짝놀란 목사님이 \'주기도문을 외우게 했느냐\'고 묻자 \'아니에요. 우리가 늘 가정예배를 드리며 주기도문을 했더니 저렇게 배웠어요.\' 라고 했답니다.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행함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앞서가며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서 무한한 가능성을 볼 줄 알아야만 합니다. 내 자녀들의 마음의 정원에 세상의 잡목이 심겨져 우거지기전에 성경나무를 심어 우거지게 해야만 합니다.
 바르게 가르쳐야할 부모들이 배워야할 자녀들에게 마땅히 행할 바를 가르쳐 주지 못하여 훗날 그들의 자녀들이 잘못된다면 하나님께서 분명 그 책임을 부모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교회학교 교사들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영혼들을 잘못 관리하여 성경말씀을 배우던 아이가 한 명이라도 탈선한다면 하나님께선 직무유기의 책임추궁을 하실 것입니다.
 어느 날, 어느 초등학교 교실, 담임선생님이 화가 나서 벌개진 얼굴로 한 아이를 호되게 꾸중하고 있었습니다. 까닭은 아이가 미술시간에 크레파스를 가져오지 않은 것입니다. 아이는 너무나 어려운 가정형편을 말할 용기가 도저히 나질 않았습니다. 교사는 아무말이 없는 아이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버럭 고함을 쳤습니다. \"다음부터는 훔쳐서라도 가지고 와!\"라고........ 그로부터 17년후, 그 아이는 지존파의 대부 김기환이라는 이름으로 사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초등학교때 그 선생님의 한 마디가 제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김기환의 최후 진술입니다. 김기환에게는 안팎으로 마땅히 가르칠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명심하셔야 합니다. 무심코하는 부모의 말 한 마디가, 어른들의 말이, 교사의 한 마디가 생각없이 부지붕에 던진 말이,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가르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교육은 잘못을 방임해서도 안되고 진정한 사랑과 인격이 결여된 가르침도 아닙니다. 진리안에서 책망해야 하며 사랑으로 지도해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녀들앞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서있습니까? 행할 바를 행하게 하고 가르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책임적인 위치에 서있음을 자각하는 어른과 부모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