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사람

제목 : 잊혀지지않는 사람 (3월25일 주일)
   로마서 16장 3-4절

 어느 미국 목사님은 잊을 수 없는 사람 하나를 미감리교회 기관지에 실었습니다.  1984년 겨울은 특히 추웠습니다.  미네소타주는 영하34도까지 내려갔습니다.  이렇게 추운 어느 겨울 주일에 부루클린파크 감리교회는 평소의 절반밖에는 교인들이 모이지 아니했습니다.  이날 출석한 88세의 골디 슈리버 할머니는 직접 운전하여 100세의 에나 헤밀톤의 집에 들려 그를 차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94세의 걷지 못하는 남자 친구 파크스 할아버지의 집에 가서 그를 태우고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담임목사님은 그녀의 열심과 헌신에 크게 감동하면서 치하하자 \"작은 십자가 일뿐입니다.  아직도 목숨을 바친 충성은 못됩니다.\"라고 답변하였답니다.  이 할머니의 모습을 어찌 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살다보면 문득문득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홀로는 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수밖에 없기 때문에 누구든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을 갖고 있습니다.
 목회한지 25년이 되었습니다만, 지난 25년 동안에 교회를 위해서 정말로 헌신적으로 충성하시는 교우들이 많았습니다.  그 분들의 이름을 열거할 수는 없으나 잊혀지지도, 잊을 수도 없는 분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성경말씀이 바로 사도 바울에게 잊혀지지도 잊을 수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순교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 바울은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며 잊을 수도 없고 잊혀지지도 않는 사람들을 떠 올리며 그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 로마서 1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의 이름들을 열거하면서 그동안 바울의 선교사역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동역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의 눈을 멈추게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들이 곧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입니다.
 이 부부는 바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들의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내놓았던 신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잊을 수 없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고마운 사람들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잊을 수 없는 사람들,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을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첫째로, 어렵고 힘들 때 짐을 나누어진 사람들입니다
  행복하게 일생을 잘 산 어느 부부가 60이 되었답니다.  가난하였지만 행복한 부부였습니다.  하도 내외간의 정이 두텁고 예수도 잘 믿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소원을 들어 주시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소원을 물었습니다.  \"아름답고 평안히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집을 하나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요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름답고 현대식 시설이 잘 갖춰진 좋은 집을 주셨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내 집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남편에게 소원을 물었습니다.  \"새 부인을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나보다 30살쯤 아래인 부인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요청도 들어 주셨습니다.  갑자기 남편의 나이가 90이 되어 버렸습니다.  30살 아래인 아내와 살게는 되었으나 너무 늙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인이 되었습니다.  인생을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다시 생각케 하는 말입니다  인간의 욕심이 끝없이 자기중심으로 뻗어나가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보여 주는 유머입니다.
  누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사람인가를 자기중심으로 헤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에게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잊을 수 없는 사람,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을 갖기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다른 사람에게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진리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황금률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모세도 40년의 출애굽 여정에서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출애굽기17장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아말렉 사람들이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아말렉은 잘 훈련된 군사들을 이끌고 와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살해하고 많은 것들을 약탈해갔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장정들을 모아 싸우라고 명령하였으나 오합지졸인 이스라엘 병사들은 아말렉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모세는 지팡이를 들고 산에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동안에는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세는 너무 피곤하여 높이 들었던 팔을 내려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아말렉은 다시 승승장구하여 이스라엘을 패퇴시키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충성된 동역자 아론과 훌은 돌을 가져다 놓고 모세를 거기에 앉힌 다음 해가 질 때까지 모세의 팔을 받쳐주었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아말렉 군사를 대파하여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여호수아와 아론과 훌이 모두 모세의 신실한 동역자들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그들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여호수아나, 아론이나, 훌이나, 갈렙 같은 사람들은 모세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은 모두가 어렵고 힘들 때에 함께 그 짐을 나누어졌던 사람들입니다.  환난 가운데 있을 때 도움을 주며 사랑을 나누었던 사람들이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동역자\'라는 말은 영어로 \'파트너\'(Partner)라는 말인데 \'협동자\' 또는 \'도움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희랍어 \'쉬네르고스\'라는 말에서 온 것인데 \'함께 일을 하는 사람\' 또는 \'돕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따뜻한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어려움 가운데서 남몰래 한숨짓거나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 가운데도 내가 알지 못하는 어려움을 안고 씨름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내가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준다는 것은 짧은 내 인생을 얼마나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일인지 모릅니다.  

  둘째로, 먼저 목숨을 내놓는 자들입니다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가리켜 \'자기들의 목을 내놓고 내 목숨을 살려준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의 목숨만큼이나 고맙고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먼저 자기의 목숨을 내어 놓으면 자기 혼자만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변(세계)의 모든 사람들까지도 살려내는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요나의 표적을 보십시오.  그가 죄를 짓고 다시스로 도망하다가 배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제비가 뽑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죽게되자 배안의 다른 사람들이 살아났습니다.  그도 나중에 다시 삽니다.  뿐만 입니까?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외치니 니느웨성이 구원받는 기적이 일어낫습니다.  이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원리를 가르치시기 위해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3)
 보통은 내가 먼저 살아야한다고 가르치는데 예수님은 친구를 살리기 위해 내 목숨을 먼저 버리라고 가르치십니다.  이렇게 가르치시면서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예수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가장 큰사랑의 본을 친구로서 보이시기 위해 십자가의 속죄의 제물이 되셔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신비한 진리의 기적을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그것이 부활의 생명입니다.  그제서야 제자들은 밀알의 교훈을 깨달은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일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텍사스의 부자 노인이 죽었는데 유서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30년 전에 집을 나간 외아들을 찾다가 끝내 소식을 접하지 못한 채 죽었습니다.  시에서는 그 노인의 집과 가구들을 경매에 붙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사진틀 하나는 5불을 불렀는데도 사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때에 경매를 구경하던 노파 하나가 손을 들었습니다.  노파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경매원은 1불만 받고 사진틀을 내주었답니다.  이 노파는 수십년 동안 그 집에서 일하던 하녀 노파였습니다.  그 아들을 어려서부터 돌보면서 아버지 이상으로 애정을 가졌던 할머니였습니다.  그 노파는 사진틀보다는 그 속에 있는 아들의 사진을 보고 손을 든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없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유서가 그 사진틀 속에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내가 생명처럼 사랑하던 내 아들의 사진을 가지는 사람에게 전 재산을 인계한다\"는 글이 적혀 있었답니다.  그 아들을 위해 정성을 다해 쏟았던 할머니는 비록 하녀였으나 어쩌면 그 아들을 생명처럼 아끼고 사랑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진이라도 소유하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집의 모든 것이 그녀의 것이 되었습니다.

  셋째로 예수님께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죽어야 산다\"는 예수님의 진리는 결국 많은 열매를 얻기 위한 신비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시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셨습니다.  그것은 단지 목숨을 버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고상하고 신의에 넘치는 모습만 보여주시기 위한 행위가 아닙니다.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시므로 자신만 다시 사시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영혼을 살리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는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뺏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께서 받았노라 하시느니라\"(요10:17-18)
 우리에게 잊혀질 수도, 잊을 수도 없는 분이 되시기 위해서 오셨고 지금도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나를 돕고 계시며 내 미래의 소망을 보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제 우리의 차례가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잊을 수 없는 친구가 되셨으니 우리가 이제는 예수님의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주어야 할 차례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면\"  그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비춰보면 내가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주는 길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어쩔 수 없이 하거나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나를 버리는 권세를 갖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목숨도 아끼지 않고 충성하고 헌신하다면 나는 하나님에게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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