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주여 내니이까 (4월8일 종려주일) | |
| 마태복음 26장 20-25절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도 죽음에 대한 심한 공포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손에 의해 수없이 죽어간 유대인들의 망령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히틀러는 자신의 미래를 예언할 사람을 데려 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 명령에 부하는 그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예언자를 데려 왔습니다. 이 사람은 미래에 대한 적중률이 100%입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예언이 빗나간 적이 없었습니다. 히틀러는 자신의 운명을 예언하라고 다그쳤습니다. 예언자는 한참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한 후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의 축제일에 죽을 것입니다. 당신이 떠나는 날은 유대인의 축제일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죽음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허무한 마음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슬퍼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죽음을 앞에 두고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유월절 만찬입니다. 평소에 예수님을 따르고 사랑하던 제자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예수께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십니다. 제자들은 서로가 얼굴을 바라보면서 아주 근심스러운 얼굴로 묻습니다. \"주여! 내니이까?\"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고 하시는 것입니다. 25절을 보시면 그때 예수를 팔기로 한 장본인 가룟 유다가 \"랍비여! 내니이까?\" 라고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오셔서 나를 파는 자가 있으리라 하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틀림없이 내니이까? 그럴 사람이 있습니다. \"내니이까\"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나는 책임이 없습니다의 고백입니다. \"혹 다른 제자가 예수를 파는 지는 모르나 나는 책임이 없습니다\"라는 표현입니다. 오늘의 현실에서 5무를 추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무능력이요, 둘째는 무관심이요, 셋째는 무감동입니다. 넷째는 무감각이요, 다섯째는 무책임입니다. 무능이란, 힘이 없다는 말입니다. 살아가는데 힘이 없습니다. 하겠다는 입은 있으나 할 만한 손발이 없습니다. 구원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현대인들은 무관심합니다. 사랑을 관심이라고 한다면 사랑이 없다는 말입니다. 모임에 관심이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무관심은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합니다. 그리고 무감동입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웃음이 없습니다. 웃을 줄 모릅니다.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책임감입니다. 가정의 주부가 주부로서의 책임을 느끼고 있으면 가족이 건강할 것입니다. 남편 되는 분들이 가정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할 것인데 무책임합니다. 지도자는 지도자로서의 책임감을 느낄 때 그 집단이 달라질 것입니다. 일을 맡겠다는 분은 있는데 책임질 사람이 없습니다. 책임을 회피하니까 남는 것은 탓 밖에 없습니다. 이건 누구 탓이다. 그러다 보니 싸움이 생깁니다. 아무리 정다운 신혼부부라 하더라도 서로가 탓만 하면 얼마 못 가서 살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이웃에 두 집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집은 날마다 싸우는데 다른 한 집에는 날마다 웃음소리가 그칠 날이 없습니다. 싸움 소리집 남자가 웃음소리집 남자에게 비결을 물었습니다. 어떻게 날마다 그렇게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습니까? 아 그건 간단합니다. 우리 집에는 모두 나쁜 사람들만 살아서 그렇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가령 밥을 짓는데 불을 많이 떼서 타 버렸다 하면 며느리는 제가 잘못했습니다. 물을 많이 부었어야 하는데 적게 부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시어머니는 내가 나쁘다 늙은 내가 불이라도 잘 보살펴야 하는데 내가 잘못한 것이다. 그러면 아들은 제 탓입니다. 물을 많이 길어다 놓았어야 하는데 적게 길러놓았으니 내가 나쁩니다. 시아버지는 아니야 내가 나무를 너무 많이 해다 놓아서 그렇다 이런 식으로 모두 내가 잘못했다. 내 탓이다. 그러다 보니 날마다 웃고 삽니다 라고 하더랍니다. 좋은 것은 당신이 한 것이고 못한 것은 내 책임입니다. 이것이 평화의 비결이라는 말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명색이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보호해야 할 제자들이 지금 누구 때문에 팔려가 죽게 된다는 데 내니이까? 라는 질문으로 자기는 아니라는 것으로 모면해 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진정 책임을 질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위선의 신앙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가룟 유다가 \"내니이까?\" 라고 말한 것은 완전한 거짓말입니다. 유다는 예수를 이미 팔려고 하는 계획을 다 세우고 와서 랍비여 내니이까? 이것은 얼마나 가증스러운 질문입니까? 여기에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제자들은 \"주여! 내니이까?\" 그랬는데 유다는 \"랍비여! 내니이까?\"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제자들이 말하는 주여와 유다가 말하는 랍비라는 말과는 다릅니다. 유다가 예수를 볼 때에는 단순한 선생으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점입니다. 주님은 다 아십니다. 유다는 예수가 랍비인 선생이니까 모르는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미 다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내니이까? 속이려고 하였으니 그것이 얼마나 무리수입니까? 거짓말이란, 모르는 사람에게만 통합니다. 예수님 앞에는 거짓이 통하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가 하는 내니이까? 이 말은 가증스러운 거짓말입니다. 왜 이렇게 거짓말을 하게 되었을까요? 요한복음 13:2절에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라고 한 것을 보면 마귀에게 사로잡힌 것입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입니다.(요 8:44) 이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우리는 순간마다 성령으로 사로잡힌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한 대학이 20명의 몸에 소형녹음기를 부착하여 하루종일 한 말을 분석하여 본 결과 8분마다 거짓말을 한 번씩 하더랍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200번 정도가 되는 셈입니다. 그는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많거나 남들에게 이것 저것을 부탁해야 할 것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정치인, 병원의 안내원, 언론인, 변호사, 세일즈맨, 정신과 의사 등이더랍니다. 대표적인 거짓말이 있는데 부동산중개업-물건 급매, 옷가게 주인은 이월 상품세일, 은행 금융업은 최고의 수익률, 구두점-업종변경 완전정리, 중국 집-예, 지금 바로 갑니다. 개인 택시는 모범운전자, 노래방-최신곡 완벽구비, 철도청-역에 오시면 언제든지 타실 수 있습니다. 아파트-신규 분양 교통요지 지하철역에서 5분 거리, 정육점-우리 가게에는 한우만 팝니다. 한약 재료상-우리 가게에서는 국산만을 취급합니다 등이더라는 말입니다.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를 넘어뜨리는데 사용하던 거짓말 무기로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아 갔던 사단은 우리 주님 오실 때까지 되풀이하여 사용할 무기는 거짓말입니다. 캐리 로버트슨 목사는 사단의 거짓말 유형은 세 가지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는 사단이 말하기를 사람들은 절대로 도덕적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쉽게 편하게 살아라. 너에게 이익이 돌아오지 아니하는데 적당하게 살아라. 이것이 사단이 하는 말입니다. 다음은 너희들은 대다수의 대중들이 주장하는 것을 무조건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혼자 독불장군 의로운 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변화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그냥 되는대로 살아라. 우리가 믿는 것은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주 안에서 성령으로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사단은 이것을 부정하려고 합니다. 사단은 불신하게 만들어서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 하였는데, 사단은 믿지 못 하게 하여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갑자기 영적으로 믿어지지 않거나 의심이 들어오면 이것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나는 배신자가 아닙니다의 강한 부정입니다. 내니이까? 이 말은 나는 아닙니다 라는 말입니다. 주여! 나는 아닙니다. 가룟 유다 같이 나는 배신자가 아닙니다 라는 말을 제자들이 한 것입니다. 로마의 시저에게는 부르타스라는 배신자가 있었고, 예수님에게는 가룟 유다라는 배신자가 있었습니다. 배신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적으로 삼는 것입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입니다. 왜 유다가 배신자가 되었을까요? 그의 삶의 철학이 잘못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물질제일주의자였습니다. 여러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고 하면, 그 사람의 삶의 철학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좋아하며, 무엇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가를 알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여자 들이 남자친구를 만나러 나갈 때 남자 친구 고르는 법이 있다고 합니다. 나갈 때에 계란을 하나 들고 나가서 상대방 남자에게 계란을 건네주라는 것입니다. (ㄱ) 받아 들면서 이거 삶아먹으면 좋겠다 라고 하는 이는 예선 탈락이라고 합니다. (ㄴ) 계란이 네 얼굴을 닮았구나 하면 매너가 좋으니 봐 줄만 한 남자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ㄷ) 계란을 귀에 대고 삐악 삐악 병아리 소리가 들린다. 금방이라도 샛노란 병아리가 튀어 나올 것 같다 라고 하면서 눈이 빛나는 사람이라면 합격시켜도 좋다는 것입니다. 오늘에 묶여있는 이가 아니라 생각이 창조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매사에 돈 돈 하는 사람은 돈 때문에 시험에 들거나 낭패를 당하기 쉽습니다. 이미 가룟 유다는 예수에게 향유병을 깨뜨려 부을 때, 그 여인에게 이 돈을 허비하느냐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더면 좋을 뻔하였다 라고 말한 일도 있습니다. 천국 철학, 예수 철학이 아니라 돈 철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주여! 내니이까?\" 라고 하는 무책임을 버리고 책임적 존재로서 언제 어디를 가던지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랍비여! 내니이까 라고 하기 전에 자신을 살펴 진실하고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