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예수를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3월11일 주일) | |
| 마태복음 16장 13-20절 1988년 동계 올림픽에 앞서서 방영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중에서 슬라롬(Slalom)이라는 스키의 회전활강 경기를 훈련받는 맹인 스키선수들에 대한 특집이 있었습니다.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것이었습니다. 눈을 뜨고 볼 수 있는 스키선수들과 짝을 이룬 맹인 스키어들은 평지 위에서 어떻게 오른쪽과 왼쪽으로 방향전환 할 수 있는지를 배웠습니다. 그 과정이 마쳐졌을 때 그들을 스키회전 활강 경기를 하는 스키장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눈뜬 파트너들이 맹인 스키어들 곁에서 스키를 타면서 그들에게 \"왼쪽\", \"오른쪽\"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들이 그 소리를 듣고 순종할 때 그들은 그 코스를 돌 수가 있었고 마침내 결승점을 통과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로지 눈뜬 스키 선수들의 말을 의지하면서 결승지점까지 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의지하여 사느냐 아니면 듣지 못해 파멸되느냐는 코스였습니다. 크리스찬의 삶이라는 것이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실제로 어떤 인생길을 걸어가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눈먼 소경과 같습니다. 내일 일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는 오로지 눈을 뜨고 미래를 보시는 그리스도 되신 하나님의 말씀에만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의 인생길을 다 달려 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이 세상에 모든 것들을 신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한분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그분, 그리스도의 말씀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분의 손길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놓치면 우리는 충돌하고 넘어져서 파멸하고 맙니다. 우리가 오늘 봉독한 복음서의 말씀은 하나의 신앙고백으로, \'메시아의 신비성\'을 나타내는 주제입니다. 이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가이사랴 빌립보에 가셔서 이상한 질문을 하십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더냐?\"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제자들은 들은 소문대로 아무 뜻 없이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의미 있는 질문을 제자들에게 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다른 제자들은 갑작스런 질문에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에 베드로는 스승의 진의를 알아차리고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그 동안 자기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신앙고백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대답에 매우 만족하시면서 그를 크게 칭찬하고 천국열쇠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시몬이라는 그의 이름을 반석(베드로)이라고 바꾸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이제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주님이 우리에게도 이 아침에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물으신다면 누구라고 여러분은 대답하시겠습니까? 첫째로 그리스도되신 예수께 대한 신앙고백대로 믿고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하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물론 우리는 오늘 성경말씀대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그렇게 믿느냐?\'하는 것입니다. \"나는 정말 그리스도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는가?\"하는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는가?\"에 역시 \"예\"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문에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단순한 지식으로만 배워서 하는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내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고백되어지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미국의 흑인들은 아프리카에서 짐승처럼 잡혀와서 300년 가까이 노예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특히 남부지역은 날씨가 혹독하리만큼 더웠습니다. 쇠고랑을 찬 노예들은 담배농장과 목화밭에서 채찍을 맞으며 뙤약볕에서 일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을 영접한 그들은 그들의 아픔을 주님께 부르짖으며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420장)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또 나의 슬픔 알까. 주밖에는 누가 알아주랴 영광 할렐루야. 나 자주 넘어집니다. 오 주여 나 자주 실패합니다. 오 주여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또 나의 슬픔 알까. 주밖에 누가 알아주랴 영광 할렐루야\" 이 찬송은 끝도 없이 계속되어지는 고통속에서, 지식적으로 알고있는 신앙고백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의 삶속에서 고통을 아시는 주님께서 생명을 인도하고 계심을 확실히 믿고 부르는 찬송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신앙고백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울렸을 것입니다. 마침내 1865년 링컨은 흑인노예 해방을 선언했고 오늘날 백인들은 흑인들의 삶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그때 고통 가운데서 울부짖었던 흑인노예들은 지금은 천국에서 환호하며 승리를 자축할 것입니다. 신앙고백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얼마나 그 고백처럼 삶속에서 믿고 움직이느냐가 훨씬 더 중요함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그리스도되신 예수께서 당신의 삶을 돕고 있음을 확신하느냐하는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 가운데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돌보고 계십니까? 이 질문에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안내자요, 구원자이심을 믿고 체험해야 합니다. 어느 부인이 공장에 출근하여 일하는 중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부인의 딸이 몹시 아프며 열이 펄펄 끊는다는 전화였습니다. 그 부인은 즉시 조퇴를 하고 약방에 들렸습니다. 약을 사서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가보니 너무 정신없이 차에서 내리느라 자동차 키를 차안에 두고 차문을 잠근 것을 알았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집으로 빨리 가야 하는데 차문을 열 수 없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차 주변을 둘러보니 낡은 옷걸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주어서 열어보려 했으나 한번도 해 본 경험이 없으니 열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없이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딸아이가 몹시 아픕니다. 차문을 여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을 보내주세요\" 기도를 마친 후 기다리려니 지나가는 헌차 하나가 가다가 멈췄습니다. 온 몸에 문신 투성이며 넝마같은 청바지를 입은 험상궂은 남자 하나가 내렸습니다. \"아뿔싸\" 기가 막히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거의 절망상태이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그 남자는 다가오더니 무엇이 문제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차안에 열쇠를 두고 문을 잠갔다고 했더니 1분도 안되어서 차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부인은 너무 고마워서 인사를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이렇게 좋은 사람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인의 감사 인사를 받던 그 남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못됩니다. 나는 차량절도범입니다. 차도둑질을 하다가 붙들려서 몇 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한시간 전에 겨우 출소하여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이 소리를 듣던 부인은 더욱 크게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전문가를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살든지 죽든지 예수님께서 언제나 그리스도로 내 곁에 계셔서 나를 돕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이 질문에 \"예\"라고 자신있게 대답하실 수 있는 분은 위대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라고 고백하는 사람의 삶 속에 예수님은 언제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내 생명의 한가운데서 내 삶을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고백하는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따르느냐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제자들을 택하시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형제 곧 베드로와 안드레가 고기 잡는 것을 보시고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언제든지 제자를 부르실 때에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예수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따라 가기만 하면 우리는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죤 쌔미스는 찬송가 377장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의 빛 가운데서 주님과 함께 걸을 때 우리의 길 위에 놀라운 빛을 비추어 주시네. 우리 그의 뜻을 행하는 동안 그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머무시네. 주님을 따르며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과 늘 함께 머무시네. 의지하고 순종하세. 예수 안에서 행복해 질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네. 오직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뿐이라네\" 찬송 원문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주님만 따르면 됩니다. 1980년 동계 올림픽 후에 \'하이든의 효과\'라는 유행어가 생겨났었습니다. 미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선수였던 에릭 하이든(Eric Heiden)이 5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생긴 말입니다. 처음 4개의 경기에서 하이든은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고 마지막 1000m경기에서 그는 올림픽 기록을 깼을 뿐만 아니라 14분28초13으로 세계신기록을 수립하였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살았던 사람 가운데서 가장 빠른 남자 스피드 스케이터로서 인식되었습니다. 스포츠 신문기자들도 알고 있었고 모든 코치나 감독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또 하이든과 함께 경기를 하는 모든 경쟁자들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명백한 사실은 경기를 하는 선수들 가운데 에릭 하이든과 같은 기록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경기 때에 그를 기피하는 선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와 함께 경기를 하겠다고 야단들이었습니다. 심지어 그와 경기를 하면 결코 그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그와 함께 경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그와 함께 경쟁을 하면 언제나 최고의 기록을 그들 자신이 세울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하이든이 500m경기에서 우승했을 때 2등을 한 사람은 러시아의 유지니 쿨리코프였습니다. 그는 2등을 했지만 그의 생애 가운데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웠습니다. 하이든이 1000m경기에서 우승하였을 때 2등을 한 사람은 캐나다의 가에탄 바우쳐선수였습니다. 그도 역시 개인 최고기록을 세웠습니다. 모든 경기에서 똑 같은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은 비록 하이든에게 우승을 빼앗겼어도 그들의 생애 가운데서 모두 최고의 개인기록을 세웠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경기를 할 때마다 하이든을 따라가며 어떻게 해서든지 그와 같이 달려 보려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이 \"하이든 효과\"라고 불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전혀 경쟁이 되지 않는 우수선수와 함께 달리면서 그와 같아 보려는 노력이 결국은 새로운 개인기록을 세울 수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이 \"하이든 효과\"는 마치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처럼 들립니다. 우리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수도 없고 행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계신 곳에 함께 따라가기만 하면 우리는 지금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주님만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진정 따라 가야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