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너 하나님의 사람아 (1월21일 교사임명주일) | |
| 디모데전서 6장 11-16절 브라질의 성자로 불렸던 미국 선교사 멜랜드(Doug Meland) 내외는 깊은 산골에 들어가 선교하며 평생을 사는 중에 네 번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곳 주민인 폴리오 인디안은 처음에 멜랜드 내외를 \"백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그들을 무기로 괴롭혔던 허다한 백인을 부르던 증오에 찬 명칭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그 후 멜랜드 내외는 의료 봉사로써 주민들의 목숨을 구하며 병을 치료하는 헌신적인 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를 부르는 명칭이 \"존경하는 백인\"으로 바뀌었습니다. 멜랜드 내외는 인디안의 언어를 열심히 배워 10년 뒤에는 그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유창한 말을 구사하게 되었고 생활도 그들의 풍습대로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멜랜드 내외를 \"백인 인디언\"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부상당한 인디언 소년의 발을 씻어 주고 있었더니 인디언들이 \"인디언의 발을 씻는 백인을 보았는가? 이 사람은 하늘이 보내준 사람들이다\"고 말하면서 그때부터 멜랜드 부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리었습니다. 본문 11절에 보면 바울 사도는 디모데를 향하여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불렀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더러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모세를 향하여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했으며, 사무엘 선지자를 \"하나님의 사람\"(삼상9:6)고 하였으며, 엘리야 (왕상17:18)와 엘리사(왕하4:7)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부르든지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 OO야!”라고 이름을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부끄럼이 없는 얼굴을 지녀야 합니다. 바울을 따랐던 디모데는 아직 어리고 수줍은 청년이었고 소화불량증세가 있는 병약한 젊은이 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는 소리를 듣기까지 신앙에 최선을 다하였으며 실제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일생을 빛나게 살았습니다. 이제 이 아침에 임명된 교사들과 성도여러분 ,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살아가려면 모름지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지를 알아보는 가운데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신분에 대한 철저한 자각을 가져야 합니다 강화도 지역에 처음으로 복음이 전파되자 많은 사람들이 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몇몇 교인들이 모여서‘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수를 잘 믿고 하나님 잘 섬기는 사람이 될까?’를 생각하다가 자신들의 이름을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부모님들이 지어주신 이름도 귀하여 간직해야 하지만 이것보다 더 귀한 것이 예수 믿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 것이므로 이름을 바꾸자는 결심을 하고 어떤 이름이 좋을까 의논하는 가운데 신앙인에게 꼭 필요한 이름, 네 가지를 찾았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을 믿으니 신(信)자, 두번째는 하나님을 늘 바라보고 경외하자는 의미에서 경(敬) 자, 세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고 해서 순(順)자, 마지막으로 성령을 받으면 능력 있는 사람이 되니 능(能)자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믿은 성도이니 일 (一)자를 붙여 신일, 경일, 순일, 능일 이라고 이름을 지어 신앙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화지역의 초대교회 전도인으로 수고한 분들의 이름을 보면 박능일, 김경일, 권신일 등을 꼽는데 이들이 바로 초기 강화지방의 전도인으로서 어떻게 하면 이름답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면 예수 믿는 사람답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바울 당시 디모데는 이방사회의 한 복판에서도, 향락이 판을 치는 곳에서도 요셉처럼 청년의 정욕을 피했습니다.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돈 문제앞에서도 깨끗하게 처신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자각과 결심이 없다면 세파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말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구원받은 확신과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랑을 가질 수 없었을 때 여지없이 실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동생 촬스 웨슬레의 찬송가에서처럼 \"만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라고 노래할 때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둘째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여기서 선한 싸움이란 \'고상한 싸움\'을 뜻하며 세상의 악한 싸움이 아닙니다. 세상의 싸움은 격렬하며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웁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는 믿음의 싸움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빌라도가 자기앞에 서신 그리스도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었을 때 \"네 말이 옳도다\"하며 의연하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받은 자들은 이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선한 싸움에 나서야 합니다. 스페인 격언에 “돈을 잃어버린 자는 큰 것을 잃은 자이다. 친구를 잃어버린 자는 더 큰 것을 잃은 자이다. 그러나 신앙을 잃어버린 자는 모든 것을 잃은 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평생 노력하고 모았던 돈을 잃어버리면, 물론 쉽지는 않지만 다시 모을 수 있습니다. 또한 친구를 잃어버리면, 그 친구가 돌아올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언제가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절망 속에서는 삶을 지탱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살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비록 돈을 잃어버렸다 할지라도, 가까운 친구가 떠났다 할지라도, 믿음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잃어버린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해서 다시 찾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교인이 꿈을 꾸었답니다. 하늘 나라에 올라갔는데 아름다운 도성, 새 예루살렘이 있었습니다. ‘아! 저기가 새 예루살렘 도성이구나.’문을 두드리니까 수문장이 나오더니 문을 딱 막고 서서 이곳은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표가 있어야 합니다.” 무슨 표가 있어야 하냐고 했더니 ‘믿음의 표’를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믿음의 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20년 동안이나 교회를 다녔는데 새삼스럽게 무슨 믿음의 표를 달라고 하느냐고 그냥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수문장은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고 막아섰습니다. 그런데 마침 설교때 들은 베드로 이름이 번뜩 떠올랐습니다. \'이 사람은 나를 모르지만 베드로는 나를 도와주겠지.’ 그래서 베드로를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여, 내가 믿음의 표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좀 들어가겠습니다.” 그랬더니 베드로도 믿음의 표를 내기 전에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내가 그래도 교회 집사, 장로까지 했습니다.” 그랬더니 베드로는 화를 벌컥 내더니 집사, 장로까지 한 사람이 믿음의 표도 모르니 교회에서 얼마나 말썽을 부렸겠느냐면서 당신 같은 말썽꾸러기는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문을 꽝 닫아버렸습니다. 그 소리에 눈을 떠보니 꿈이었습니다. ‘믿음의 표’가 무엇입니까? 믿는 것 같지만, 실상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되는데, 의심, 걱정하며 확신없이, 믿음의 표 없이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참석하신 여러분은 어떤 경우가 있다 할지라도 믿음을 꼭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을 지키기위한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사람은 책임을 지고 일하며 맡은 일속에서 자라납니다. 1911년 1월 영국 런던의 시드니가 일대에서 경찰과 무장한 흉악범간에 총격전이 있었습니다. 순찰중인 경찰은 범인의 총질에 대응하여 응사했습니다. 이때 마침 한 우편집배원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유유히 그 길을 걸어와 범인이 있는 바로 옆집에 우편물을 배달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집스러운 자기 임무의 수행입니까? 총격전이 가열되자 범인이 숨은 건물에 불이 났습니다. 이번에는 소방차가 삽시간에 달려 왔습니다. 불을 끄러 접근하는 소방대원들을 경찰이 제지했지만 소방대장은 막무가내였습니다. \"불을 끄는 것은 우리의 직무이다. 경찰의 비상선같은 것은 런던 소방대 규칙에는 없다\"라는 것이 그의 말이었습니다. 마침 현장에 출동했던 당시의 내무장관 윈스턴 처칠의 직권발동으로 겨우 소방대를 만류하고 대기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책임의식이 철저한 사람들입니까? 이러한 사명수행의 정신이 해적의 나라 영국을 존경받는 신사의 나라로 만든 것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이와 반대로 행동하기 쉽습니다. 오히려 이런 구실 저런 구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내세워서 적당히 빠지고 편하게 지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마지막 날까지 최후의 시간까지 사명수행에 흠이 없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에 소홀히 하는 것은 죄중의 죄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훌륭하게 성취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람들이 된 자들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긍지를 가지며 책임을 느끼고 그 사명수행의 첨병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은 교사로서의 사명을 귀하게 이루십시오.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그 사명을 다할 때 곤경에 처한 시대를 구원하고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의 열매로 인하여 즐거워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름을‘개동(開東)’이라고 지었습니다. 동쪽이 열린다는 뜻입니다. 태양이 동쪽에서 뜨니 태양이 뜨는 것을 생각하면서 희망을 가지고 살라는 의미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이름답게 살지 못하니 그 이름이 변해“개똥”이 되어 버렸습니다. 또‘문동(文童)’이라는 이름을 지어 글 읽는 아이가 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름대로 살지 못하면“문둥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름다운 이름이 속된 이름으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는 위대한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 이름대로 영광스럽고 위대하게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어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결코 디모데보다 못할 것이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람된 자각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길이길이 하나님의 사람들로 불려질 것이며 하나님나라의 칭찬과 상급이 넘치게 될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