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자기를 잘 알아야 합니다 (1월14일 임원취임주일) | |
| 할렐루야! \'미인\'은 \'미소짓고 인사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옆의 사람과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북에서 내려온 어린이들은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라는 노래를 아주 참 재미있게 하더군요. 북한의 어린이들처럼 좀 톤을 높여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옛날 농경사회에서는 대가족이 함께 살았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손자 손녀 등이 한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산업사회가 되면서 핵가족화 되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명절에 뵙는 분으로 바뀌어졌고, 자녀를 조금만 낳는 가족 계획으로 요즘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이모, 고모, 삼촌\'등의 단어를 이해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 대부분의 가정 식구들이 전부 제 각각이고 혼자만의 세상을 사는 고립인생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여 자학증에 빠진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을 너무 과대 평가하여 교만과 자만증에 빠진 이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교만과 자만에 빠져 어디를 가든지 하나되지 못하고, 어울리지 못하고, 분열을 조장합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사회나 국가에서도 하나 되지 못하고, 어울리지 못하고, 분열을 일으키고 삽니다. 자기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언제나 반대되는 생활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분파를 만들어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 \'끼리끼리\'만 어울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안에는 \'고집\', \'이기주의\'나 \'끼리끼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올해 한 해 교회에서 충성할 일꾼들이 취임하는 주일을 지킵니다. 먼저 주님의 일꾼이 되기전에 자기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자기자신을 알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3-5절에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지혜롭게 자기를 생각하라는 말은, 첫째로, 자기 분수를 바르게 알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자기 자신을 자기가 잘 알고 있다\", \"나를 나만큼 아는 사람은 없다\"라고 생각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이 자기 자신을 제일 모르기 때문에 소크라테스 같은 철학자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습니다. 신앙은 자기발견에서 시작됩니다. 탕자도 자기를 발견치 못했을 때는 분깃을 챙겨 아버지를 떠나 방탕했지만, 자기를 발견했을 때는 죄악가운데 있는 것을 회개하고 돌아와 아들의 위치를 회복하였습니다. 신앙이 돈독하다는 말은 자기발견에 영적으로 익숙하다는 말입니다. 이사야선지자를 주목하십시오. 그는 웃시야왕이 죽던해에 성전에 올라가서 입술이 부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성전에 스랍들이 날며 거룩하다 창화할 때 자신을 영적으로 발견하였습니다. 자기를 발견할 때 하나님의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제단에 핀 숯불로 입술이 지져지는 자기발견의 체험이 있고난후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시는 사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사명은 자기분수를 알고 주안에서 자기를 발견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세워지는 임원들도 교회일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분수를 아는 , 자기를 발견하는 일이 훨씬 더 우선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자기분수를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로, 서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라는 뜻입니다. 4-5절에서는 \'사람이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듯이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지체가 되어야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머리이신 교회의 지체입니다. 해운대 감리교회라는 한 몸에 많은 지체인 우리들이 모였습니다.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function)을 가진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같은 직분\'이라고 했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기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각기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기 필요한 지체를 인간의 몸에 두셨습니다. 손, 발, 눈, 귀, 입 등 수많은 지체가 몸에 있습니다. 그리고 각 지체는 독특한 기능이 있습니다. 그 독특한 각각의 기능은 서로 교환될 수 없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할 수도 없습니다. 손가락은 손가락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고, 눈은 눈으로서의 역할을 할 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참조, 고전 12:21).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교회를 구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각 지체입니다. 교회안의 조화는 획일성속의 조화가 아닙니다. 다양성속의 조화이기에 아름답습니다. 우리들은 서로 다른 지체들이나 그리스도안에서 멋진 조화를 이뤄나가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이유는 다른 성도들이 자기와 같지 않다고 비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각 지체가 다양성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각 지체가 몸을 떠나서 존재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판문점에서 도끼만행사건이 있었습니다(1976.8.18). 그때 상관이 앞 머리카락을 잘라서 봉투에 담으라고 봉투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손톱을 깎아서 그것도 함께 봉투에 넣고 봉투에 주소와 이름을 쓰라고 했습니다. 왜 그러는지도 잘 모르고 하라는 대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만약에 너희들이 전쟁터에 나가서 죽어 시체를 찾지 못하거든 이것으로 장례를 지내려고 한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겁이 나던지, 다행히 비상사태는 지나갔고, 걷었던 머리카락과 손톱이 담긴 봉투를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그때 제가 그것이 제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라고 해서 제가 귀중히 여기고 간직했겠습니까, 다 버렸습니다. 지체는 몸에 붙어 있어야 귀하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붙어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무시하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이 거짓말입니다(엡 1:23, 4:12, 15-16, 5:29-30). 어떤 교회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손가락질하고 비난하기 전에 오히려 그 문제를 끌어 안고 기도합니다. 그 문제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며 괴로워할 줄 압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인 우리들은 누구에게 허물이 있거나, 상처가 있거나 더러운 부분이 있으면, 그것을 싸매고 감싸고 자기가 아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집과 이기주의는 교회를 교회 되게 하고 성도가 성도되게 하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면 여러분의 각 가정도, 교우관계도 서로 싸매고 감싸고 어루만져야 하며, 고집과 이기주의를 떨쳐 버려야 합니다. 셋째로, 지체끼리 서로 존중히 여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엡 1:23-24)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지체들은 말씀으로, 믿음으로 교회에 붙어 있어야 건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예수 믿는 가정이라면, 기도하는 가정이라면, 여러분의 가정에도 주님이 같이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가정도 모든 지체들이 자기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어머니는 어머니로서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그 역할을 바르게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체끼리 서로 존중하고,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고생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비극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지난 1992년 10월 신문에서 읽었던 좋은 글을 소개합니다. 일본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건설업자들이 스타디움 확장을 위해 그 주변의 지은지 3년 된 집을 헐게 되었습니다. 이때 인부들이 한 집의 지붕을 뜯다 몸 안쪽 꼬리에 못이 박힌 채 벽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살아 있는 도마뱀을 발견했습니다. 집주인을 불러 \"이 못을 언제 박았느냐\"고 물었습니다. \"3년 전에 박았습니다\" 주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도마뱀은 꼬리에 못이 박힌 채 3년을 살았다는 말인데, 너무나 신기해서 인부들이 공사를 잠시 중단하고 그 도마뱀을 지켜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고 와 못에 꼬리가 박힌 도마뱀에게 먹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못 박힌 도마뱀은 친구의 도움으로 3년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는 꼬리에 못 박힌 도마뱀처럼 자기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사람이 그를 위해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가족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 가운데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 지체이기 때문에 교회의 성도이든지, 한 가족이든지 서로 귀중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짐승들도 하는데 사람이 왜 못합니까.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이런 저런 이유를 달지만, 모든 것의 문제는, 불행의 원인은, 화목을 깨뜨리는 이유는 다 \'자기\'가 문제입니다. 은퇴를 목전에 두신 어느 장로님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십 여일 기다린 후에 겨우 배정된 입원실은 2인실이었습니다. 하루 10만원이 넘는 입원비가 부담스러워 일반 병실을 부탁하였고 여러날 후에 6인실로 옮기게 되었는데 그곳의 환자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큰 병이라도 있는 환자들인가 싶어 그곳에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달갑지 않았습니다. 걱정을 하던 차에 간호장교 출신인 친지를 통하여 같은 방 환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내막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환자들은 큰 병이 있는 것이 아니라 면역성이 약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혹시 장로님으로부터 전염될까 하여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 남에게 원인을 돌립니다. 문제는 \'나\'입니다. 여러분들 각기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이제 이제 자신을 위해서도, 가정을 위해서도, 교회를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불어 살며 귀중히 여기며 살며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 모두가 평안과 화목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있음으로 우리 가정이 평안하고, 내가 있음으로 우리 선교회와 속회가 부흥되고, 내가 있음으로 내 일터가 복 되고, 내가 있음으로 교회가 부흥되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최선을 다한 삶이 되어서 정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다른 사람에게 평안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진정한 교회 일꾼되어 승리의 기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