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 오셨습니까?

제목 :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12월31일 송년주일)
   갈라디아서 6장 1-5절

  할렐루야! 지난 주간에 좋은 성탄절을 보내셨습니까? 지난 성탄절에 재작년에 일산으로 이사간 김정희집사님이 다녀갔습니다. 그 집사님은 멀리 가있으면서도 우리 교회를 그리워하고 예배의 자리를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는지 대화중에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살았던 날보다 남은 날이 더 복되시기를 바랍니다. 옆의 분들과 \"남은 날들이 복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마지막 주일이면 한 해를 돌아보며 부끄러움과 죄송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오늘은 저와 한 맘되어 한 해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용서를 구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 새로운 것을 갖지 못하는 이유, 새로운 사람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뒤에 것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나 잊지 못하는 것 때문입니다.  잊지 못하는 것이나 집착하는 것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으나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정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사해 보셔서 알겠지만 버리겠다고 생각한 물건들을 막상 버리려면 아까워서 다시 싸가지고 간 적도 있으실 것입니다. 저는 이사를 할 때마다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때는 다시 쓸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지금까지도 다시 쓰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갖지 못하고, 정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한 해를 정리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불안하고 초조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흐뭇하고 뿌듯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이 예배에 참석하셨습니까?  이 시간 고통의 찌꺼끼, 슬픔의 앙금, 미움의 잔재등 버려야할 것들을 모두 물동이의 물을 쏟아 비우는 것처럼 완전히 쏟아 버리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 축복으로 가득 채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군인은 대령에서 별을 달면 즉 장군이 되면 대우가 많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상사람으로 살다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기독교인이 되면서 받는 축복은 그런 것에 비할 바가 안됩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며,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고, 주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나라의 입국을 허락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구하면 받고, 찾는 이가 찾을 것이며,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대령에서 별을 달면 대우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높아진 만큼 의무와 책임도 커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도 하나님 자녀로서의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지나간 신앙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어떻게 신앙생활하며 살아왔는지를 반성해보면서 새해의 신앙적 삶을 다시 시작하는 귀한 시간이 되어지길 바랍니다. 신앙생활에는,
 
  첫째로, 주어진 의무도 감당치 못하는 신앙생활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은 스스로 잘 했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그러하지 않은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은 자기양심에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 무게가 모자라지 않음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간 바리새인과 세리를 예로 들면, 바리새인은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기도하고, 세리는 멀리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기도합니다.
 바리새인이 의무이행을 세리보다 잘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리새인보다 세리를 의롭게 여기셨을뿐더러, 바리새인에게는 의무이행의 실격판정을 내리셨습니다. 즉 다른 사람의 잘못을 헐뜯는 자치고 자기의 잘못을 말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위대한 문호 괴테의 집은 늘 그와 이야기를 하고자하는 자들로 붐볐으며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남의 험담이나, 자기자랑, 아니면 상스러운 말만 하다가 가는 사람들이 있었답니다. 괴테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정중히 \"휴지나 음식 부스러기를 우리 집에 흘리는 것은 괜찮습니다만 험담, 거짓, 교만, 더러운 말을 흘리는 것만은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말들을 내 집에 남기고 가지 마시고 모두 주워 가십시오. 추한 말들은 공기와 행복을 더럽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사람에게 부족한 것은 돈이 아니라 성실입니다. 성실은 인간 삶의 기본자세요, 행동원리입니다. 자기 의무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으레 남의 말을 잘 하는 것입니다.  사실 성실은 남보다 내게 더욱 유익한 것입니다. 의무를 잘 감당했는가 하지 안했는가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의 의무를 다할 때만이 성공하게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각자 스스로 자신의 의무를 이행치 못했음을 회개하고 더욱더 새로워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주어진 의무를 감당하는 신앙생활이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최선의 삶은 내게 주어진 삶의 매순간 순간을 의무를 감당하는 충성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충성이란 무엇입니까? 충(忠)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는 것이요, 성(誠)은 있는 힘을 다하여 일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후4:2)\"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핑계나 이유에서든지 내 의무를 다하지 못했습니까?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의무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입니다. 울면서라도 언약궤를 메고 벧세메스로 가는 두 마리의 암소처럼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귀한 존재들입니다. 일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지 필요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는 자들을 축복해 주십니다.
  나무를 심은 주인이 나무에게서 찾는 것은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서 찾으시는 것은 의무이행의 충성입니다. 우리들은 내가 이땅위에 사는 동안 할 일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주어진 일을 마칠 때까지 생명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삼국지를 보면 유현덕, 관운장, 장비가 의형제를 맺는데 \'적토마\'라는 관운장의 말이 너무나 빼어나게 준수하고 잘뛰어, 모든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며 갖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관운장이 전쟁터에서 죽으므로 \'적토마\'는 적장\'여몽\'의 소유가 됩니다. 여몽장군은 갖고 싶었던 적토마가 자기의 것이 되어 너무 좋았습니다. 그는 적토마를 극진히 사랑합니다. 그러나 \'적토마\'는 여몽의 마음에 아랑곳없이 몰 한 모금 마시지 아니하고 여몽의 것이 된지 5일만에 굶어 죽고 맙니다. 짐승의 일편단심도 이같을 진대, 우리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을 일컬어 짐승만도 못하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나의 주인이신 하나님앞에서 말씀대로, 뜻대로 신앙생활을 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잘 보여야 회복과 소생이 있습니다. 살 길이 열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살아왔기 때문에 마땅히 의무이행을 해야만 합니다.

 셋째로, 의무이상을 감당하는 신앙이 있습니다.
 의무이하가 불충성이라면 의무이행은 충성을 다한 삶이요 의무이상은 희생, 즉 순교의 삶입니다. 원래 순교란 진리를 파수하기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려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초대교회처럼 죽는 순교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뜻대로 살기 위하여 날마다 죽는 \'산 순교\'가 있습니다. 산 순교자로 이 땅위를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것입니다. 의무이상의 생활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크게 입을 수 있는 삶입니다.
 어떤 신학생이 학기말 시험을 앞두고 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어느 날 밤 강의실에서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 학생이 소속된 과의 교수가 지나가다 기도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내용인즉 \"시험을 치를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다 알게하시고 정답을 가르쳐 주옵소서\"였습니다. 교수가 그 학생을 불러 \"학생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기도를 했으면 공부를 해야지\"라고 하자, 그 학생은 \"교수님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것이 어디 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라고 하더랍니다.
 드디어 시험일이 되어 그 학생은 시험을 쳤습니다. 교수가 그 학생의 답안지를 보니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라고 써 있었습니다. 어이가 없어진 교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하나님은 다 이시니 100점, 너는 아무것도 모르니 0점\"이라고 채점을 하여 그 학생에게 돌려주었답니다. 분명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거나 전가해서는 안됩니다. 의무이행은 인간에게 있으며,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은 성공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공하기는 어려우나 누구나 성실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온전한 성공과 축복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으십니까? 어떻게 살아 오셨습니까? 의무이하입니까? 의무이상입니까?
 세계2차대전 당시의 포로 생활을 했던 한 영국 장교의 유고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1945년 4월8일 주일아침에 본훼퍼목사님은 지금 감옥에 갇혀있는데 그날 아침에 아침예배도 마치기전에 우락부락하게 생긴 독일군인 둘이 찾아와서 죄수 본훼퍼 우리를 따라와 그러더랍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이제 형장으로 나가는 길입니다. 그때의 바로 그 영국군인 포로된 군인하나가 말하기를 “목사님 이것이 마지막이군요. 안녕히 가십시오.”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본훼퍼 목사님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이것이 끝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이것은 내 생명의 시작입니다. 감옥생활은 끝났습니다. 내 자유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세상 고통스러운 생은 여기서 끝납니다. 영원한 생명이 시작 됩니다.\" 이렇게 간증하며 형장으로 나갔습니다.
 여러분 무거운 삶이 짓누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맡깁시다. 잘살고 못살고 성공하고 실패하고 오래살고 짧게 살고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그리 중요한게 아닙니다. 다만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깨끗하게 헌신하고 생명을 조금도 아깝게 여기지 않고 바쳐버리고 오직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고 덤으로 이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의무이상의 삶을 새해에는 사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새로운 창조적 역사가 있고 새로운 용기가 함께하실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