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49 담임목사 | 2000-12-03. 15:29 조회 : 1318 |
| 제목 : 내곁에 계신 주님 (12월3일 주일) | |
| 딤후 4:16-17 \"하나님은 어느 때까지 침묵하시고, 하나님은 왜 가만히 계십니까?\"라는 것이 하박국의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아니, 목사인 저도 순간순간 갖는 의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과연 어디 계실까? 세상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은 지금 어디 계실까?\'라는 질문이 바로 우리들이 갖는 의문입니다. 이런 질문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명쾌하게 대답을 잘 합니다. 신학을 공부한 사람, 특별히 예수 믿은지 오래 된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늘 나라에 계신다고 합니다. 위치도 거리도 모르며 답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은 보좌에 계시고,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 계시고 어디든지 계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옳습니다. 정답입니다. 그러나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대답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더 쉽게 \"하나님은 강단 근처에 계신가 보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교회에서 사람들이 앞 자리에 앉지 않으려 한다고 합니다. 안내위원들이 앞으로 가서 앉으라고 해도 왠지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 것 같은 앞 자리는 지은 죄가 많아서 앉지 못하겠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답도 맞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언제든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답도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왠지 나하고는 상관이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주님은 어디 계신가?\'하는 의문을 가장 쉽게 답한 분은 바울 사도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에 \"주께서 내 곁에 서서\"(~the Lord stood at my side~), \'주께서 내 편에 서서\'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주님께서 자기 곁에 계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여러분 모두도 바울처럼 \"곁에 계신 주님\"을 발견하고 고백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혼자라고 느낄 때 그때도 주님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 신앙생활하는 사람, 예수 믿는 일, 주의 일을(요 6:28-29)하는 사람은 사실 혼자라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9-16절에 보면 사도 바울도 가장 힘들 때가 혼자였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데마는 세상을 향해 가느라고 바울을 배신했고, 그 밖에 바울을 따르던 사람들도 모두 바울을 버렸습니다. 떠났습니다(딤후 4:16). 바울만 외로웠습니까?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던 예수님의 세상살이도 외로우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까지도 자기가 살기 위해서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한다면 \'때로 우리도 외롭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며 받아 들여야\' 합니다. 성경을 삶의 표준으로 삼고 사니 세상 사람들이 바보 취급합니다. 쉴새 없이 살아도 어려운데 주일성수, 예배참석, 봉사활동을 하고 다녀서 손가락질 받기도 합니다. 잘 먹고 잘 살기 어려운 세상인데 십일조, 감사헌금, 건축헌금, 선교헌금 등을 하니까 더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먹고 사는 것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들을 조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 상해 할 필요 없습니다. 외로워 할 필요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내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당의 정치인이 국회의원 선거를 위한 지역구 공천에서 탈락될 위기에 놓여있다는 소문이 나자 그 정치인은 \"아닐 걸. 설마 대통령이 날 버리지는 않을 걸.\" 하며 큰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정작 공천 발표에서 그 사람의 이름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버림받았다고 하는 서러움에 눈물을 흘리며 인터뷰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사람은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때로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마치 하박국처럼 \"하나님 언제까지 내가 기다려야 됩니까? 왜 내가 이런 일을 봐야 합니까?\"라고 생각할 만큼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어려움을 당할 때 그 때도 주님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 신앙생활하는 사람, 예수 믿는 사람이 모든 일에 어려움 없이 순탄하기만 할까요? 풍파 없이 모든 일이 순탄합니까? 아닙니다. 만약 누군가가 그렇게 얘기를 한다면 그것은 기독교를 샤머니즘적인 종교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어도, 신앙생활을 바르게 해도, 기도를 해도 어려운 일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 디모데후서 4장 17절에 보면 바울은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I was delivered from the lion\'s mouth. - NIV)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말은 죽을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처음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그 당시에는 예수 믿는 사람이 원형경기장에서 짐승의 밥이 되어 많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때 바울도 사자의 밥이 될 뻔했던 것을 상기하며 표현한 말입니다. 바울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습니까? 바울이 도둑질을 하다 붙잡힌 것도 아니고 강도 짓을 하다가 붙잡힌 것도 아닙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붙잡혔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바울이지만 힘들었습니다. 물론 좋은 일도 많았을 것입니다. 자주 장사 루디아처럼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물질로 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물질로 돕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힘든 일이 더 많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의 추위에 벌벌 떨며 멀리,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두고 온 겉옷을 그리워하며 가져다 달라고 할 만큼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그래도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살려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적어도 인정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수 잘 믿어도, 신앙생활을 바르게 해도, 기도를 많이 해도,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마음 상해 할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 곁에 계셨다\"고 고백한 그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셋째로 시험당하여 괴로울 때 그 때도 주님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기 때문에, 주의 일을 하기 때문에 우리가 시험을 당하고 괴로워합니다. 여러분 예수 안 믿었으면 상대도 안했을 사람, 정말 대면하기도 싫은 사람이지만, 예수 믿기 때문에 꾹꾹 참아가며 얼굴 대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어떻겠습니까? 여러분 보시기에 \'목사라는 직분이 제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딱이다\'라는 표현을 써서 생각해 볼 때 어떠십니까? 제가 설교 준비를 하면서 제 스스로에게 질문해 봤습니다. \'정말 딱 일까?\' 그런데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때때로 저를 속상하게하는 사람이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저도 감정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폭 넓게 관용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수용에 한계를 느낄 때 가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는 \'목사 딱\'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말 사명이라고 생각하니까 하는 것이지, 어떤 일은 도저히 제가 하기 어려운 일도 많습니다. 목사이기 때문에 감당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 찬양하신 여러분들도 정말 성가대가 체질에 딱 맞아서 성가대를 하십니까? 정말 좋아서 하십니까? 교회학교 교사들도 체질에 딱 맞아서 하십니까? 안내위원, 주차위원, 주방에서 봉사하시는 분들도 그런 일을 하라고 아예 정해진 사람들입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앙 안에서, 예수 믿기 때문에, 사명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으로 살려면 사탄이 가만 두지 않습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꼭 찾아드는 속상함이 있습니다. 은혜 받고 감사한 마음에 벅차 있으면 가슴 쥐어 뜯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가슴을 쾅쾅 칠만 한 일들이 생깁니다. 사탄은 간교하게(창 3:1, 고후 11:3) 헐뜯음으로(욥 1:9) 광명한 천사처럼 가장하여 다가와서(고후 11:14) 범죄의 길로 유혹하며(창 3:1-7, 딤전 2:14) 믿음이 떨어지게 합니다(눅 22:31, 32). 그렇다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마음에 상처를 받고 믿음이 떨어지게 하는 흔들림을 받아도, 삶의 어려움이 다가와도 기도하며, 사탄이 좋아하는 낙심을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시험을 주십니다(고전 10:13). 감당키 어려운 시험은 피할 길을 내십니다. 설령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의 생각과 다르신 하나님은(사 55:8-9)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롬 8:28). 문제는 우리가 참고 기다릴 줄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까? 바울의 고백처럼 주님이 우리 곁에, 내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낙심치 않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천국의 소망을 갖는 것이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쓰신 글을 읽다가 참 재미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목사와 거지의 공통점이 있답니다. 1. 주는 대로 잘 먹는다. 2.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다. 3.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다. 4. 입만 가지고 산다. 5. 되기는 힘든데 한 번 하면 끝까지 한다. 6. 늘 손에 어떤 것을 들고 다닌다. 거지는 깡통을 목사는 성경을 들고 다닌다. 저는 이 글을 읽다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목사에게 비전이 없으면,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목적이 없으면… 거지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목사와 거지가 달라지는 것은 겉 모습에 있는 것,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생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비전에 있습니다.」 목적이 분명할 때 삶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분명한 목적이 없으면, 우리의 생활이 거지와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분명한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분명한 그 무엇을 발견한 사람들은 달라집니다.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셨는 데 왜 자기를 포기합니까?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정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포기하면 안됩니다. 자녀들이 속을 썩인다고 해서 자녀들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셨는데 왜 부모가 자식을 포기합니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해서 믿음을 포기하면 안됩니다. 믿음의 행진에는 언제나 방해가, 방해자가 있습니다. 외로울 수도 있습니다. 외롭습니다.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곁에 계십니다. \"주님 내 곁에 계시니\"라고 선언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믿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함께 찬양 내가 어둠 속에서 1. 내가 어둠 속에서 헤맬 때에도 주님은 함께 계셔 내가 시험당하여 괴로울 때도 주님은 함께 계셔 2. 내가 은밀한 곳에서 기도할 때도 주님은 함께 계셔 내가 아무도 모르게 선한 일 할 때도 주님은 함께 계셔 3. 힘이 없고 연약한 사람들에게 주님은 함께 계셔 세상 모든 형제와 자매들에게 주님은 함께 계셔 후렴) 기뻐 찬양하며 할렐루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야 우리모두 찬양 할렐루 할렐루야 주님 나와 함께 계시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