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바울된것 처럼

제목 : 사울이 바울된것처럼 (10월22일 주일)
       사도행전9장10-22절

   한참 유행하는 노래 중에 \'바꿔\'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바꿔\'가 열풍으로 바람을 일으킨 그 이유는 그 \'바꿔\' 라는 말속에 어떤 의미가 있고 그것에 대한 누구나의 공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사회이든 국가든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문제의식이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뭔가를 바꾸어야 한다는 갈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다 벗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갈아입는 역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세속적인 용어로 \'바꿔\'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문제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또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누구나 다 같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바로 나를 바꾸는 것입니다. 나를 바꾸는 신앙, 나를 바꾸는 개혁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바꾸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용기입니다. 나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힘입니다. 나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겸손입니다. 나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나를 바꾸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방인 전도를 위하여 사울을 바울로 바꾸셨습니다. 다메섹도상에서 예수의 핍박자 사울이 예수의 증거자 바울로 바뀌어진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바뀌어지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다메섹의 체험이 있어야만 합니다. 사울이 바울된 것처럼 동일한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울이 바울된 체험이 이루어지려면,

   첫째로 보는 시각이 바꾸어져야만 합니다.
 본다는 것은 가치관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보아야 할 것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을 주님으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핍박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던 예수님이 자신의 구주로 보이는 시각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보시는 눈으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야 합니다. 눈을 바꾸어야 합니다. 먼저 눈이 달라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울이 바울 될 때에 우리 주님이 하신 첫 번째 일은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을 벗겨내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세상적인 것, 종교적인 고정관념, 율법주의의 낡은 전통, 비뚤어진 편견 등으로 가리워 져 있던 눈꺼풀을 벗겨 내신 것입니다. 눈에서 비늘을 벗겨 내심으로 사울을 바울로 바꾸시고 있습니다, 시각을, 보는 눈을 바꾸시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시골교회에서 목회하시던 전도사님이 동네 깡패가 교회에 와서 술을 먹고 난장판을 만들어서 그들을 야단치다가 각목으로 머리를 맞고 한쪽 눈이 실명되었습니다. 그래서 한쪽 눈은 의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쉽게 피곤을 느끼고 눈이 아리고 아프고 쓰라렸습니다. 그러나 그 전도사님은 그 후 인생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그 청년을 용서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는 거의 교만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을 의지하고 당당했지만 이제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에게 반했다고 고백합니다. 그것도 한 눈에 반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참 목자의 모습을 지닌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한 눈을 잃었지만 그리스도의 눈을 얻게 된 것입니다.
   바꾸시기 바랍니다. 시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내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눈으로 보는 주님이 보시는 것을 보면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당파의 눈에서 다른 당파를 보면 모순덩이이고 내 교파의 눈에서 보면 다른 교파는 다 이단으로 보입니다. 이쪽에서 행하는 악은 선으로 보이고 저쪽에서 행하는 선은 악으로 보이는 세상입니다. 이제 그 모든 것을 넘어서서 시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지역감정의 망령도 이 시각을 바꾸지 않는 한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굴절된 시각, 왜곡된 사팔뜨기, 삐뚤어진 사시를 바꾸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 그리고 주님이 필요하셔서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잘못된 비늘을 벗겨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시각을 바꿈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말을 바꾸어야만 합니다.
   사울의 말은 처음에는 예수 믿는 것들 모두 없애 버린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바뀌었습니다. 예수 믿는 나의 형제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말을 바꾸는 것입니다.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적게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말의 농도와 품질을 높이라는 것입니다. 땅의 말 세상의 말에서 하늘의 말 거룩한 말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말을 바꿈으로 하나님의 앞에서 자신을 바꾸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상처를 내기도하고 치유하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고 세우기도 합니다. 말은 씨앗입니다. 안 된다 안 된다 하면 정말 안됩니다. \'죽겠다\' \'죽겠다\' 하면 정말 죽습니다. \'망할 자식\' 하면 망하고 \'망할 나라\' 하면 나라가 망하고 \'못된 놈\' 하면 못되고 마는 것입니다. \'못살겠다\'고 하면 못삽니다. \'지겹다\'고 하면 반드시 지겹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말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력이 넘치는 말로 바꾸어야 합니다. 말이 바뀌어야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어야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팔자가 바뀝니다. 운명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언어로 바꾸십시오. 창조의 언어로 바꾸십시오. 칭찬의 언어로 바꾸십시오. 그러면 내가 바뀝니다. 절망을 깨트리고 소망을 주는 말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죽이는 말은 하나님이 떠나시지만 살리는 말은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복을 주십니다. 나도 몰라볼 정도의 내가 되는 것입니다. \"말을 바꿔\"야 합니다.  부정적인 어법을 탈피하고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언어를 사용하려고 애씁니다. 남 칭찬 많이 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칭찬이 인생을 바꿉니다. 예쁘다고 하시고 훌륭하다고 하시고 고맙다고 하시고 기분이 좋다고 하시면서 살면 그 만큼 행복이 빨리 찾아 올 것입니다.
   \'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를 전라도 사투리로 하면 \'댕기기 옹색혀서 어쩐당가요?\'  \'빨간 벽돌집 아가씨 정말 예뻐요\'를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뻘건 부로쿠집 가시나 지긴다 지기\' \'이 콩깍지가 깐 콩깍지냐 안 깐 콩깍지냐?\'를 충청도 사투리로 하면 \'깐겨 안 깐겨?\' \'그 사람이 가씨인가?\'를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가가 가가가?\'라고 합니다. 우리의 언어에 사랑이 담겨야 합니다. 정이 담겨야 합니다. 우리의 말을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천국의 방언은 세 마디입니다. 미안해요. 괜찮아요(고마워요). 사랑해요. 천국 언어로 말을 바꿈으로 나를 바꾸고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삶의 형식과 틀이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결박하려는 삶의 패턴에서 예수 전하는 삶의 틀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을 적대하는 삶이 힘있게 예수님을 구주로 증거 하는 삶으로 변했습니다. 이제까지 살아 왔던 삶을 바꾸어 보는 것입니다. 집안의 가구를 옮기고 다시 배치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의 스타일을 바꾸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놀라운 변화가 여러분의 삶 속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최고의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삶의 패턴으로 새롭게 바꾸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밤새 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얕은 곳에서만 고기를 잡으려는 삶의 형식과 틀을 바꾸고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21장에는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내리라고 하십니다. 이제까지 왼편에만 그물을 내리던 삶의 형식을 바꾸어서 그 실패의 삶을 벗어나서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는 삶으로 전환하라는 것입니다. 실패하던 나의 삶의 패턴을 버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그리고 허락하신 삶의 패턴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삶의 패턴을 바꾸어보시기 바랍니다. 남이 나를 섬겨주길 바라며 살던 삶의 패턴에서 내가 남을 섬기는 삶의 패턴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한 발 앞서려고, 한차 앞서려고 하는 늘 앞장서려고만 하던 삶의 패턴에서 이제는 당신 먼저라는 삶의 패턴으로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미국 서남 침례교 신학교의 설립자요 교장인 캐롤(B.H.Caroll)박사가 하루는 시골 전도사가 와서 자기 집에서 잤는데 아침에 그 전도사의 구두를 닦는 것이었습니다. 전도사는 깜짝 놀라 못 닦게 하니 캐롤 박사님은 \"아닙니다. 하나님 사자의 구두를 닦아드리는 것이 내 영광이요, 기쁨입니다.\"라고 하더랍니다. 멋있는 발상의 전환입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감리교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3H, 즉 머리(Head) 가슴(Heart) 손(Hand)이라고 했습니다. 머리로 우리의 믿는 바를 이해하고 바로 보고 가슴속에 담아 뜨거움으로 사랑의 언어 생활을 하고 우리의 손으로 삶의 패턴을 바꾸어 섬김의 손길이 되게 하는 것이 감리교회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바꾸시길 원하십니다. 새롭게 지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나를 바꾸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이웃 앞에 정직, 겸손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낮은 자의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말씀 안에서 시각을 바꾸고 언어를 바꾸고 삶의 패턴을 바꾸어야 합니다. 신앙인이 체질 개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안에서 쓰임 받고 새로운 피조물로 주님을 높이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