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나의 하나님으로 (9월24일 주일) | |
| 시23편1-6절 우리 국민들의 희망에 관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들의 희망지수는 61점이라는 것입니다. 낙제를 겨우 면한 것입니다. 20,30,40대 남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당신은 얼마만큼 희망하는가 얼마만큼 희망적인가? 미래에 대해 낙관하는가? 등의 질문에 대해 응답자들은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할 때 61점을 주었습니다. 본래 인간은 자신의 미래를 낙관하는 강한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미래는 희망적으로 보다 나은 것으로 낙관하는 경향이 있음에도 자신의 희망점수를 61점이라고 한 것은 충격적인 점수입니다. 무엇 때문에 희망을 상실 하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응답자의 51.3%가 경제불황, 23.7%가 정치불안, 11.2%가 사회불안이라고 응답하였습니다. 이 시대의 상황이 희망을 빼앗아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부하고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구조가 우리의 희망을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꿈을 꺽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보고가 있습니다.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어느 나라에 태어나길 희망하는가에 대하여 우리 나라라고 대답한 사람은 겨우 52.7% 다른 나라라고 대답한 사람이 40.1%입니다. 20-40대 성인 중 10명중 4명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길 희망한다고 응답하였습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이민 갈 의향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5.8%가 그렇다고 대답했고 이 중에서 20대는 57%가 이 땅을 떠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20대 여성의 경우 무려 71.4%가 이민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구조가 여성들에게 더 절망적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런 수치는 우리들 대부분이 어떤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추측하게 해줍니다. 희망이 있어야 땀을 흘리며 열심히 삽니다. 땀흘린 것에 대한 대가가 주어져야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나 희망이 없으면 적당히 살아갑니다. 희망이 없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정부패를 일삼습니다. 희망이 없어진 자리에는 절망이 남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는 욕망이 차지합니다. 희망이 상실된 세상을 살면서 더욱 마음 아픈 것은 좌절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그래도 계속 희망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을 어디에서 만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무엇에 대한 희망(hope for)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무너졌을 때에 누구와 함께 다시 희망할 것인가(hope with)가 중요합니다. 희망의 상실보다 함께 희망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더 심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시편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십니다. 이 절망의 시대에도 시편의 하나님과 함께 다시 희망을 발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시편은 목자 되신 여호와(1절),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2,3절), 힘을 주시는 하나님(4,5절), 집주인 되시는 여호와(6절)를 증언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셔야 강한 믿음의 소유자가 됩니다. 이 아침에 시편 23편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만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나의 하나님은 인생의 어두움과 밝음 모두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인생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2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4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라고 하는 표현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하는 상반된 상황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푸른 초장이든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든지 두 가지 인생의 양면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고백입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세계가 있습니다. 행복의 세계가 있고 불행의 세계가 있습니다. 성공의 세계가 있고 실패의 세계가 있습니다. 기쁨의 세계가 있고 슬픔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맛보는 한 가지 세계만이 이 세상에 있는 줄로 착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습니다. 병이 깊고 항상 가정에 불화가 있고 불행을 당하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정말 빠져 나오기 어려운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맛보는 불행과 가난과 고통만이 지속될 것으로 일방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앞길을 내다보거나 계획하지도 못하고 절망하고 좌절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는 현재 잘살고 행복하고 그리고 잘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세상이 항상 잘될 줄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삶에 변화가 오고 아픔이 오고 질병이 오고 가난이 오고 실패가 오면 깜짝 놀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 세상에 햇빛만 주시지 않습니다. 때로는 어두운 구름을 보내어 비도 쏟아지게 하십니다. 인생이 항상 고생하는 것도 항상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항상 가난한 것만은 아닙니다. 항상 부요한 것만도 아닙니다. 때로는 건강하고 잘살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성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병들 때도 있고 실패하고 불행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양면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양면성이 있는 인생을 배후에서 섭리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은 분명히 하나님이심을 또한 믿어야 합니다. 푸른 초장에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하나님의 은총의 또 다른 하나의 통로임을 믿어야 합니다. 한 소녀가 골수염으로 두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병이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두 팔에까지 번져 마침내 두 손도 잘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생명은 구했으나, 팔도 다리도 없는 토막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거저 드러누워 남의 도움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이보다 더 불행한 경우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서 그녀의 삶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이후 큰 사명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중에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그날부터 뭉둥 팔에다가 연필을 동여매고 글씨 쓰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피나는 노력 끝에 드러누워 편지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녀는 먼저 자기와 안면이 있는 성도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기로 시작하여 점차 안면은 있지만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도 전도 편지를 썼습니다. 기도와 눈물로 간절하게 쓴 편지여서 그의 전도 편지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녀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감격해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 앞으로 나와서 함께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너무 행복하기만 하면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서 하나님을 잊고 지옥 백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천국 백성이 되어 믿음으로 살게 하시려고 때로 시련과 고통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행복하고 성공하고 승리하고 잘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지만, 어려움 당하고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것도 변장하고 온 하나님의 축복이란 사실을 알고 감사함으로 인내하고 소화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나, 원수들 앞에서도 하나님은 은총으로 우리를 돌보심을 믿고 시편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만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나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삶에 일일이 간섭하십니다. 1절에서 6절까지를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고, 인도하시고 힘주시고 영원한 집으로 이끄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는 목자와 양의 관계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사랑의 귀로써 언제나 귀 기울이심을 믿고 시편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양은 가을 철이 되면 수컷들이 서로 머리를 부딪히며 싸운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상처를 입으면 죽고 맙니다. 그리고 세균에 감염되면 무리전체가 몰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양 주변에는 항상 날파리들이 있는데 이 날파리가 양의 코 속에 알을 까면 구더기가 생겨서 결국 죽음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정을 낱낱이 아는 목자는 기름을 머리에 넘치도록 발라준다는 것입니다. 내 머리에 기름을 바르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양은 짐승 중에서 가장 약한 짐승입니다. 고집 센 미련한 짐승입니다. 양은 한번 곁길로 나가면 안 돌아옵니다. 게다가 양은 자기를 보호할 아무 무기도 없습니다. 오직 목자만을 의지하여야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약함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계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한계점을 알고 계십니다. 내 힘이 미치는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아셔서 내가 못하는 것은 절대로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마음의 상처도 싸매 주시고 인생의 상처도 싸매 주시는 것입니다. 일일이 간섭하시며 돌보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은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책임지시기 때문에 성도의 인생은 궁극적으로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시편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만나셔서 여러분의 인생이 항상 해피엔딩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나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끝까지 희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놀라운 희망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불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복으로 끝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영원한 불행은 없습니다. 인간은 최악의 상황에도 희망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희망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의 하나님을 만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986년, 소련의 반체제 운동가인 나단 샤란스키라는 사람이 강제노동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부인은 수용소 안에 감금되어 있는 남편에게 성경책을 들여보내 주었습니다. 그는 수용소 안에서 아침저녁으로 시편을 읽으며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자신이 언제 석방될 지 모르지만 그는 시편을 읽으면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소련을 떠나라는 명령과 함께 그가 석방되었을 때, 그는 수용소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소유물을 압수 당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가 늘 읽던 시편마저도 놓고 가야 했습니다. 그때 그는 \"나에게 소망과 용기와 믿음을 준 이 시편의 말씀 없이는 한 발짝도 떠날 수가 없다.\"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시편을 되돌려 받고 석방되었습니다. 시편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만나면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소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놀라운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양면성 모두를 섭리하시고 주관하시기에 어떤 고난도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 선하신 목자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절대적인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간직함으로 이 절망 같은 어두움의 세상에서 희망지수를 높여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