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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장14 -20절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하루는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사람의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사람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이고 또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이 물음에 한참 생각하던 톨스토이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현재 \'당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을 귀히 여기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이 중요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 같은 깨달음으로 삶의 우선 순위를 바꾸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즘 유행하던 이정현이란 여자가수가 부른 \"바꿔 모든 것을 다 바꿔\"란 노래가 유행된 적이 있었습니다. 대선기간동안에 정치인들은 자기목적에 이 노래를 많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오늘 우리들은 바뀌어야 합니다. 아니 적극적으로 우리자신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외적으로는 신사적이고 신앙의 지식에 있어서도 다른 사람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고 신앙의 내력이나 연륜이 있어 남의 부러움을 사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 양심은 우리 안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앙 안에 있어야 할 뜨거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영혼에 대한 깊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이 꺼져 가는 숯덩이 같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냉랭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냉장고일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온장고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너무도 뜨거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사랑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말씀처럼 심중에 불이 붙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가 지적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행동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 속에 영혼을 사랑하는 깊은 애정과 뜨거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형제가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습니다. 그를 보고 동정 어린 표정으로 말합니다. \"참으로 먹을 것이 있었으면 좋겠네. 그렇게 입을 것이 없으니 참 안됐어. 마음이 안 좋네\" 너무 예의 바르고 깍듯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돕지 않습니다. 영혼을 정말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영혼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간직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꾸어지려면,
첫째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분명한 체험과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을 체험한 사람만이 그 사랑을 지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하나님 사랑을 체험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주님이 나를 깊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확신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며 호흡하며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경건한 수도자는 말하길 \"어 내가 살아 있네. 어 내가 물을 긷네. 어 내가 장작을 패네.\" 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였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주님이 계시다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힘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마음껏 소유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사랑! 거기에 우리의 삶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옛날 아라비아에 신앙심이 깊고 남에게 친절하게 대하기를 잘하는 유스후라는 훌륭한 추장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생면부지의 어떤 길손이 그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 쫓겨다니고 있습니다. 만약에 잡히면 나는 죽게 됩니다. 어떻게 오늘밤만 이 집에서 재워주실 수 없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유스후는 즉각 \"좋습니다. 어서 들어오시오 그리고 편히 쉬도록 하시오. 내가 하나님에게서 자유로이 많은 것을 받은 것처럼 당신도 나의 것을 마음대로 쓰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집 위에 밤과 낮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하늘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신의 집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게 하십니다.\" 하면서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습니다. 극진한 대접을 받은 길손은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길을 떠나려고 했습니다. 유스후는 겸손하게 다음과 말했습니다. \"여기 돈이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가서 급한 데에 쓰십시오. 그리고 이 말은 우리 집에서는 제일 좋은 말입니다. 안장도 벌써 얹어 놓았으니 어서 타고 떠나시오. 만약에 잡히기라도 하면 큰 일입니다.\" 너무나 뜻밖의 환대에 길손은 가슴이 메이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눈을 지그시 감고서 무엇인가 묵념이라도 하듯이 하고 있던 길손은 드디어 소리내어 울면서 말을 시작했습니다. \"아, 무어라고 말씀해야 좋을지 모를 당신의 아름다운 마음씨입니다. 사실을 바른 대로 말하면 나는 도저히 당신의 그와 같은 친절을 받을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나야말로 당신이 그지없이 사랑하던 단 하나의 아들을 죽인 사람으로서 당신이 아무리 저주한다 해도 할 말이 없는 악인의 표본인 이브땅입니다. 자, 어서 나를 죽이고 당신의 사랑하던 아들의 원수를 갚으십시오.\" 이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참 마음으로 참회하는 길손을 본 유수후는 조용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돈을 3배나 더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내가 이때까지 나의 사랑하던 아들을 죽인 사람을 미워하던 그 마음이 없어질 것입니다. 내가 원수로 여기던 당신에게 후한 대접을 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원수를 갚은 것이 됩니다. 나는 이와 같은 고마운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레오 톨스토이의 이야기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를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인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야 합니다. 내가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성도 여러분을 통해 흘러 넘치는 역사가 이루어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열리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을 가진다고 하는 것은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땅속에 파이프를 박으면 거기서 물이 나오는 것처럼 믿음은 은혜가 흘러나오는 통로입니다. 은혜를 가장 많이 받은 것은 자신이지만 그것은 반드시 흘러 넘쳐야 합니다. 막히면 은혜의 통로도 막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적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향하여 흘러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래야 그리스도인의 세계가 살맛 나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인색합니다. 그 인색함을 회개합니다.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 가져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사랑을 소유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도 따뜻함으로, 적극적인 관심으로 표현되는 그 사랑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눈길이 다릅니다. 그 마음에 오아시스의 샘이 흘러 넘칩니다. 현대인들은 무관심으로 무장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카프카의 소설 중에 무관심의 클라망스는 다리 위에서 만난 사람을 도와줄까 하다가 그냥 지나치지만 뒤에서 그가 풍덩하는 소리와 함께 자살하고 맙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에게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합리화시킵니다. 마틴 부버의 회고 가운데 사랑과 관심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말하고 있는데 찾아왔던 사람을 자신의 바쁜 일 때문에 돌려보내며 나중에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그가 집으로 돌아가다가 달리는 열차에 뛰어 들어죽고 맙니다. 그때의 충격으로 마틴 부버는 그 무엇보다도 만남이 중요함을, 사랑의 중요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선한 생각이 떠오르고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생각되면 두 번 생각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두 번 생각하면 인색한 마음이 생겨서 은혜의 통로가 막힙니다. 완전한 선을 행하려고 기다리다가는 죽을 때까지 가도 선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불완전하고 우스꽝스러워도 작더라도 그 선행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이것이 신앙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시몬에게 물으시는 말씀은 네가 믿느냐도 아니고 네가 은사가 있느냐도 아니고 네가 방언할 수 있느냐도 아니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한다면 이웃 즉 양들을 먹이라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배운 것을 외우라고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3년 동안 공부한 것 A4용지 10매로 요약해서 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를 물으시고 양떼를 맡기셨습니다. 그 사랑이 흘러 넘쳐야 합니다. 이제는 누군가가 사랑의 불을 지피고 불을 붙여야 합니다. 누군가가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른 가뭄에 불타오르듯 불이 번지기 시작합니다. 기독교가 온통 불덩어리가 될 것입니다. 이 사랑의 불꽃을 살리는 성도,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주님을 사랑하는 이 사랑의 불로 세상을 바꾸어가야 합니다. 정말로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진정으로 우리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 내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입니다. 설교를 못 알아들어도 좋습니다. 교리를 몰라도 좋습니다. 믿음이 적어서 어디 나가서 예수 믿는다고 말을 못해도 좋습니다. 남이 볼까봐 식당에서 식사기도도 못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할 수 있으면 그는 분명히 중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부터 하나씩 세워 가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많이 비판하면서 자기는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좋을 걸, 저러면 좋을 걸 하면서 자신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나는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나는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가?\' \'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인가?\'를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와 교회는 형식은 훌륭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을 지나치고 못보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빠트리고 있습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열정입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이 주님사랑으로 세상을 바꾸어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탄은 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영혼을 제일 두려워합니다. 그는 진정으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불길로 세상을 바꾸어 가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누군가가 주님을 사랑하면 여러분도 맞장구를 치십시오. 그 사랑이 온전하여지도록 불을 붙이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잘 믿는다는 믿음이 헛것입니다. 자기 만족일 뿐, 사치스런 장식품일 뿐이지 진정한 기독교 신앙은 아닙니다.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조금만 더 희생함으로 불을 일으키는 뜨거운 중심이 있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것이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이 사랑으로 불붙는 역사가 이루어지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세상을 바꾸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