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복받게 믿읍시다 (9월3일 주일) | |
| 신명기 11장 26-29절 사람의 행위에는 언제나 평가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행위가 있는 곳에는 \'잘됐다 못됐다. 성공이다 실패다\'하는 평가가 있고 이에 따른 상벌, 칭찬과 책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로부터 권선징악(勸善懲惡)이니, 인과응보(因果應報)니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니 하는 말들이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같이 공부를 해도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부도 잘하면 상을 받고 못하면 낙오를 합니다. 다같이 사업을 해도 사업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업도 잘하면 돈을 많이 벌고 못하면 실패를 합니다. 다같이 운동을 해도 운동을 잘하면 금메달을 달고 못하면 낙오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 생활도 잘하는 사람이 있고 잘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받는 구원이라 해서 잘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이 아니라 신앙 생활을 잘하면 복을 받고, 못하면 징계를 받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사마리아에는 그리심산과 에발산이 마을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서 있습니다. 이 두 산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그리심산에서는 율법을 지키는 자에게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를 선포한 산입니다. 남쪽 유대인들이 시온산을 거룩한 산으로 생각하는 것같이 북쪽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을 \'거룩한 산\' \'사마리아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그리심산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드린 산인 모리아 산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도 사마리아에 가보면 그리심산에는 숲이 푸르게 우거져 있는데 에발산은 나무 한 그루 없는 돌산입니다. 그 이유는 그리심산은 축복을 선포한 산이고 에발산은 저주를 선포한 산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배경이 바로 이 그리심산과 에발산입니다. 신명기 11:26-29의 말씀은 모세의 설교의 결론 부분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해야할 일을 설교하면서 결론적으로 축복과 저주가운데 한가지를 선택하라고 요구합니다. 이 선택은 믿든지 안믿든지가 아니라 하나님이든지 다른 신이든지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하고 율법을 지키면 축복을 받을 것이나 다른 신을 선택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복된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복받는 믿음의 삶이 되려면, 첫째, 하나님과 다른 신을 바꾸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26절에 보면 \"내가 오늘날 복고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다른 신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 하였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나는 하나님만을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생활에서 하나님보다 우선하고,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이 우상이 되고 다른 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재물일 수 도 있습니다. 그것은 권력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지식이나 재능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나 재물이나 권력이나 지식이나 재능은 하나님 안에서 축복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보다 우선될 때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고, 고통이 됩니다. 지난번 옷로비 사건으로 열린 국회 청문회의 모습을 보면서 무척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쩌다가 국회 청문회에서 목사니, 전도사니, 권사니 하는 소리가 들려야 하고 교회니, 기도원이니, 성경공부니 하는 소리와 함께 수천 만원짜리 옷을 주었느니, 안 주었느니, 입었느니, 안 입었느니 하는 모습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까? 남편들의 권력과 재물이 하나님 보다 더 우선 했기에 징계를 받고, 수치를 당하고, 화를 당하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대우 그룹은 김우중 회장의 어머니 전인항 권사님의 믿음과 기도 위에서 한국 경제 발전에 견인차 노릇하며 대 재벌로 커온 기업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 가정에 신앙의 명맥은 끊어졌고 자신의 경영철학이 하나님이 되어 지구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세계로 뻗어 갔던 기업활동은 급기야 감당할 수 없는 부채가 되어 무너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결코, 정치 논리나, 경제 논리나, 어떤 권력의 논리가 역사를 지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무엇이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면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가난하던 때는 믿음이 좋던 사람이 생활이 좀 넉넉해지면서 교회가 멀어지고, 직장이 없을 때는 열심히 기도 생활하던 이가 직장이 생기니 기도 생활을 하지 않고, 사업이 잘 안 될때는 적은 일에도 감사 헌금을 하던 이가 사업이 잘되니 큰일에도 감사하지 않고, 입학시험 때는 새벽기도까지 하던 학생이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교회마저 안나오는 것은 모두 하나님과 다른 신과 바꾸는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축복을 저주로 바꾸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어느 부부가 싸움 끝에 꽤나 간이 큰 남자였던지 \'당신 것 모두 가지고 나가!\'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내는 커다란 가방을 방 한가운데 쫙 열어 놓고 \'내 꺼 모두 가지고 가라고 했지요\' \'나 당신 하나만 가지고 갈래요 어서 가방 속에 들어가세요\' 남편은 어이가 없어 웃어 버리고 화해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금은 패물과 고급 의류와 가전제품을 싸가지고 나간다 해도 남편과 바꾸면 불행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다른 신과 바꾸지 않는 것이 복되게 받는 것입니다. 둘째, 과정과 결과를 바꾸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1:25에 보면 \"이 사람이 그 행한 일에 복을 받으리라\" 하였습니다. 여기에 \'행한 일\'이란 과정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오는 복은 결과입니다. 바른 과정이 없이는 복된 결과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과정이 무시된 결과론만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무슨 수단을 쓰든지 돈을 버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이고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당선이 돼야 승자이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교회를 부흥시켜야 성공한 목회자로 평가받는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세상 인심도 결과만 좋으면 과정에 대해선 관대합니다. 그러나 정당한 과정 없는 결과란 축복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은 결과주의 심정이 유별나게 강한 민족입니다. 오랜 농경사회에서 날짜에 쫓겨 농사를 서둘지 않으면 패농을 하거나 식량감수라는 낭패를 당하니 서둘수록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으니 빨리 빨리 하는 결과주의 체질이 되었다고 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식사를 해도 서양사람들은 2-3시간의 과정을 즐기는데 우리는 10분이면 뚝딱 먹어치우는 결과주의입니다. 거기다 물이라도 말아먹으면 5분이면 족한 것입니다. 물건을 만들어도 서양사람들은 꼼꼼히 과정을 중히 여기는데 우리는 과정을 뚝딱 넘어가서 결과만 챙기려 듭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벌써 잊혀져 가는 성수대교의 참사도, 삼풍백화점의 참사도 충실한 과정을 생각한 결과주의의 산물인 것입니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차근차근한 과정 없이 결과를 서두르는 것은 결코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충분한 과정 없이 빨리 은혜 받고 빨리 집사, 권사, 장로 되고 빨리 성공하고 정상에 오른 것만이 축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이라는 과정에 충실한 믿음이 복 받게 믿는 신앙입니다. 셋째, 행하는 것과 듣는 것을 바꾸지 말아야 합니다. 흔히, 교회출석 잘하고 설교 말씀 잘 듣고 성경공부 잘하면 신앙 생활 인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배참석과 성경공부를 신앙생활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실행이 빠지면 자기를 속이는 오히려 허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복 받게 믿는 믿음이란 잘 듣기도 해야 하지만 듣는 것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도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 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5-26) 하셨습니다. 서울 올림픽때 였습니다. 부산 앞바다에서 요트 경기가 거행하였습니다. 1989, 9, 24 요트경주에 이상적인 풍속은 15노트인데 그날은 시속 35노트의 험한 날이었습니다. 경기 중, 싱가포르의 두 선수가 균형을 잃고 거센 물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부상을 당하여 배의 균형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열심히 달리던 선수중 금메달 유망주 였던 캐나다의 로렌스 레무스가 즉각 조난당한 선수구조에 나섰습니다. 이로 인해 캐나다 선수는 메달 권에서 탈락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계속해 골인 지점에 맨 끝으로 들어 왔을 때 모든 관중은 기립하여 뜨거운 박수를 보내 주었습니다. 그는 금메달보다 더 소중한 것이 사람의 목숨인 것을 알고 실행한 사람입니다. 모든 선수가 다 메달보다 사람의 생명이 더 소중함을 알고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승을 포기하고 인명을 구한 것은 캐나다 선수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세계 언론이 찬사를 아끼지 아니했습니다. 금메달은 녹슬지만 올림픽사에 영원히 녹슬지 않을 기록을 한 페이지 남겼습니다. 이것이 행하는 믿음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우상을 바꾸지 말고, 과정과 결과를 바꾸지 말고, 행하는 것과 듣는 것을 바꾸지 말고, 복 받게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