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오늘 하루만이라도 (8월6일 주일) | |
| 사도행전 1:1-5 어느 회사에 많은 사람이 근무하는데 단 한 사람이 그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사무실의 여직원인 이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자질을 가졌거나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없이는 사무실을 결코 움직여 나갈 수 없다고 모두에게 느껴진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녀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어느 날 내 인생이 변화되었어요. 내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서 \'단 하루 동안이라도 믿음을 실천하여 보라\'고 하셨어요. 사람이 일생 동안 약 50만 시간을 산다는데 그 많은 시간들 가운데 24시간 정도는 온전한 믿음으로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셔서 그렇게 해 보기로 결심했지요.\" 그녀는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성경 몇 구절을 읽고, 그 날의 모든 악한 생각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만이라도 나는 믿음을 실천하겠다\"고 되새기면서 그 날 아침의 일을 시작했습니다. 불친절한 말이 입술까지 올라올 때마다 짤막한 기도를 하며 물리쳤습니다. 어떤 두려움이 닥쳐올 때는 다시 기도하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게을러지려는 유혹이 들 때는 \"만일 주님께서 이 자리에 계셨다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실까?\"를 자문하면서 그날을 내내 그렇게 보냈습니다. 그 날 저녁 그녀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행복하고 만족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날에도 그렇게 살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마침내 그것이 그녀의 삶의 철학이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나는 믿음을 실천하며 살겠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렇게 사는 것이 더 쉬워졌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녀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꼭 있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다\"고하심으로, 우리들에게 하루 단위로 살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를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하루 즉 2000년 8월 6일은 내 생애의 첫날이자 마지막 날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인생은 오늘 하루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오늘 하루를 믿음으로 잘 살 수 있을까? 사도행전의 말씀에서 영적인 가르침을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은 의사 누가가 그가 존경하는 로마의 고관 데오빌로에게 먼저 누가복음을 써서 보내고 지금 두 번 째 글, 사도행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베들레헴에서 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신 것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오순절 성령의 강림이후에 제자들의 사역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역사는 성령 안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신앙으로 새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겠습니까? 첫째, 날마다 삶의 출발은 복음의 확신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1,2) 데오빌로는 이미 누가가 보내 준 복음서를 읽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는 다시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첫 번째 글과, 두 번 째 글을 잇기 위한 방법으로 쓰고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출발 지점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새로운 삶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삶의 분기점을 이룹니다. 그래서 인류 역사의 분기점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 오시기 이전 시대를 기원전이라고 하고 예수 오신 이후를 기원후라고 하여 역사의 분기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반드시 확인해야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시느냐하는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미국의 Laurie Beth Jones가 쓴 Jesus C. E. O. (최고 경영자 예수)라는 책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된 이유 가운데 하나를 자아정체감이 분명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과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긍정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하시킨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까지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존심이 약한 사람들이 지조가 약하고, 쉽게 상처를 입고 흔들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실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시는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막연하게 지금까지도 계셨으니 이제도 계시겠지 생각마십시오. 예수님 없이 전진하는 것은 결코 전진하는 것이 아니기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모를 보십시오. 예수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린 후 집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잃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동행중에 있겠지 하고 하룻길을 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중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흘 길을 예수님을 찾아 헤매면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성전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새롭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에 계시는가 확인하셔야 합니다. 둘째, 날마다 새로운 삶은 복음의 능력으로 출발해야 합니다(3)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에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계속해서 쓰고 있습니다.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하심에 대하여 확실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시작은 여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그것만이 우리의 죄악을 대속하여 주시며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서의 출발을 가능하게 합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아니하고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묘한 것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적당히 얼버무리면서 먼저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살면서 계속 깨닫게 됩니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인 폴 투르니에의 이야기입니다. 삼십 년 동안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를 받아온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의사는 그 여자의 과거와 의식을 분석하면서 그를 치료해 보았으나 별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투르니에는 이 여인에게 함께 기도하기를 제안했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자신의 잘못된 것을 낱낱이 의사 앞에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삼십 년 동안 고쳐지지 않았던 병이 갑자기 치료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여인이 말했습니다.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사람이 되었다. 이처럼 황홀한 자유가 있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예수님이 나를 고쳐주셨으므로 나는 주안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었다.\"고 좋아하였습니다. 우리의 새 출발은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에 있습니다. 새 출발을 원하십니까? 날마다 십자가를 붙들고 회개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셋째, 성령의 능력 안에 살아야 합니다.(4,5) 누가는 소중한 영적인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주는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이 실제로 우리 속에 현실화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신앙의 생명력은 성령에 있습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써 예수의 사역을 계속하게 하는 또 다른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역사는 성령 안에서 일어납니다. 한 때 세계를 주름 잡았던 권투 왕이었던 무하마드 알리라는 사람을 잘 아시지요. 그는 현재 파킨스씨 병에 걸려 투병 중입니다. 이 병 때문에 그는 지난 번 애틀란타 올림픽 때 성화를 점화 하러 나와서는 제대로 점화를 못 할 정도로 덜덜 떨었다고 합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왕년에 전성기 때 \"내가 최고로 힘이 세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자다.\"하고 큰소리치던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덜덜 떨면서 성화도 겨우 점화할 만큼 약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기자 회견을 하면서 이런 의미 있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람보다도 하나님이 더 강하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제가 이 병에 들었습니다.\" 인간의 힘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람이 만든 힘은 다 유한적인 힘입니다. 정보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세월이 흐르면 그것도 바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오고 가도, 아무리 세상이 급변해 가도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힘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성령의 힘은 힘 중의 힘이요, 유일한 능력입니다. 이 힘은 급변하는 세상을 이깁니다. 이리저리 엉켜 있는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꺾이지 않고, 거꾸러지지 않도록 우리를 굳게 붙들어 줍니다. 따라서 이 성령의 능력을 우리는 소유해야 합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꽤나 조급한 편입니다. 마치 옷을 꿰매야 한다는 의무감이 앞서서 실을 바늘에 묶어서 달려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일보다도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우선입니다. 실을 바늘에 꿰는 것이 우선이란 말입니다. 요즈음 심리학적 용어 가운데 \'탈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힘의 축적됨이 없이 계속 일하게 되면 마침내 지쳐서 기진맥진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은 무한한 능력의 공급선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는 한, 아무 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어떤 문제도 넉넉히 해결하시는 능력자체 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는 성령으로 하여금 예수님의 그 역사를 계속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으로 비유해 본다면 육신은 있으나 생명이 없다면 그것은 \'시체\'입니다. 그리고 생명은 있으나 자유롭게 일할 수 없다면 \'환자\'입니다. 모든 활동이 자유롭고 생산적인 사역에 동참하는 사람이 \'일꾼\'입니다. 이것을 신앙적으로 말하자면, 예수의 생명이 없는 사람들은 불신앙의 사람들로서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것이며, 생명은 있으나 하나님의 나라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연약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성령충만한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정말 귀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나라는 확장되고 교회 안에 온갖 좋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전도가 되고, 교회학교가 부흥되고, 성가대가 되고, 교회의 좋은 소문이 나고, 가정이 믿음 안에 서고,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성령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한다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는 해운대교회의 성령충만을 기도합니다. 시카고의 구두 수선공 \'드와잇 무디\'의 마음속에 성령충만하게 되자 미국과 영국에 새 역사가 일어났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성령충만하면 우리의 삶에, 교회에, 가정에, 일터에 날마다 새롭게 되는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리 길지 않는 한 평생을 살다가 하나님께서 오늘이라도 오라 하시면, 모든 것 다 버려 두고 빈손 들고 갈 텐데, 오늘 하루만이라도 새롭게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날 구원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튼튼히 붙잡고 부활의 생명으로 어깨를 펴고 힘있게 사시기 바랍니다. 성령충만하여 하늘의 권세로 열매맺는 일꾼으로 멋있게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