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열려야 합니다

제목 : 당신도 열려야 합니다 (7월16일 주일)
      마가복음 7장 31-37절

 최근에 베스트셀러로 팔린 책 가운데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춤추는 사람이라는 스토리가 나옵니다. 미국의 오클랜드와 샌프란시스코를 연결하는 유명한 golden gate bridge, 금문교가 있습니다. 이 금문교로 가는 길에 17개의 톨게이트가 있습니다. 통행료 징수대 박스가 17개 나란히 있는데 어느날 이 책의 저자가 그중의 한 징수대를 통과하려고 보니까 그 박스 안에서 티켓도 끊어 주고 돈도 받는 사람이 음악을 아주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면서 돈을 받는 거예요. 근데 그 모션이 너무 재미있어서 \'뭘하십니까?\'라고 물어봤더니 \'파티를 열고 있습니다\' \'파티라니요? 누구를 초대하셨나요?\'  \'제가 제 자신을 초대했지요\'라고 대답을 하는 겁니다.
 얼마후에 다시 징수대 사이를 통과하면서 보니까 똑같은 사람이 거기서 음악을 틀어놓고 전에 보았던 동일한 모션으로 또 춤을 추면서 돈을 받고 티켓을 내주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파티를 열고 계십니까?\'라고 말하니까 \'아. 물론이지요.\' 조금은 호기심이 발동한 저자는 이런 질문을 했답니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은 파티를 열고 있지 않습니까?\'  \'아..저 사람들이요? 저 사람들 들어가 있는 박스는 말이죠. 관. 관입니다. 아침 8시 30분에 출근해서 오후 4시 반에 퇴근하기까지 저 사람들은 관속에 갇혀 있는 시체 들이란 말이예요. 시체.\'  이 색다른 대답앞에 더 호기심이 발동해서 계속 질문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저 사람들과 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요? 나는 중요한 미션이 있어요\'. \'미션이 뭡니까?\'  \'저는요. 댄스 교수가 될 예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서 돈을 받고 여기 연습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저 들의 방. 저 사람들의 방을 잘 보세요. 저게 닫혀있는 관이라면 제가 있는 이 박스 안은 열려있는 무대란 말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가 인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대의 비극이 있다면 외부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채 나만의 폐쇄된 공간. 닫혀진 공간안에서 혼자서 외로워하다가 외롭게 죽어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런 유형의 한사람을 만났습니다.그는 장애인이었습니다. 장애인중에서도 중증의 겹쳐진 불행을 앓고 있었던 장애인이었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말도 어눌한 거의 언어를 잃어버린 그래서 말이 거의 불가능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고통가운데 살고 있었던 사람.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한. 완전히 외부세계와 단절된 상태 속에서 살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끌리어 예수님 앞에 나 왔습니다. 예수님은 말할 수 없는 긍휼과 연민으로 이 사람을 쳐다보시다가 유명한 말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아람어로 에바다 본래 댐파다 라는 말에서 나온 말인데요. 열려라. 열려라. 이 한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사람의 귀가 열렸습니다. 또 입술이 열렸습니다. 그는 듣기 시작했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인생이 열려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열려져야만 합니다. 반드시 열려야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33절 \"예수께서 그를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귀에 넣고 침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 많은 무리들 가운데 공개적으로 이 사람을 대하신 것이 아니라 따로 홀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이 사람이 말을 못하고 듣지를 잘 못하니까 당황할까봐 이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따로 데리고 가셨을 것입니다. 또 이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안심시키려고 따로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벙어리 된 자를 개인적으로 만나고 계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4절에도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안다\"하였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냥 도매금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아십니다. 주님은 개인적 관심을 가지시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오십니다. 나만의 비밀을 아시고, 내 생각을 아시고 내 있는 것을 다 아십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볼 때 한가지 감동을 받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부를 때에 우리 각자 각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선한 목자되신 주님께서 그의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낸다고 하였습니다. 마리아야, 마르다야, 삭개오야, 베드로야,  예수님은 떠나간 자기의 친구의 무덤 앞에 가서 친구의 이름을 부릅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무슨 순간마다 어떤 사건마다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시는 주님 그러기 때문에 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을 갖기 원하십니까? 하나님과 개인적 접촉을 시도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이 귀머거리, 벙어리 된 자를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을 만나고 대화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대일로 만나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은 주님의 에바다라는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다양한 방법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께서 독특한 방법으로 치유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귀 먹은 사람의 양 귀에 손가락을 넣고 침을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치유하실 때 어떤 특정한 방법을 따르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 그 사람에게 맞게 대하시고 치료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규격화하기를 좋아합니다. 모든 일을 일정한 틀에 의해서 움직일려고 합니다. 언제나 원칙을 주장하고 하나의 방법만 고수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특정한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다양한 형태로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방법을 통해서만이 사역하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다양한 사역, 다양한 은사,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캘리포니아에 심리학자 레오 버스카글리아라는 사람의 글에 보니까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어떤 날, 할아버지 한 분이 암 진단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암 진단을 받은 그 날부터 이 할아버지가 난폭해지셨어요. 성격이 갑자기 난폭해 지셨읍니다. 식구들을 향해서 욕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욕을 퍼 붓고, 아무도 만나려고 하지 않고, 병실에 입원해서도 아무도 만 나지 않습니다. 간호원과 의사들에게도 포악하게 대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도와야 할까? 옛날 친구들을 들여 보냈읍니다만 친구들도 도움이 되지 못 했습니다. 소리를 내서 쫓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또 이 사람과 절친하게 지냈던 은사들을 보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카운슬러를 들여 보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그 동네에서 이 할아버지가 가끔 만나던 동네 꼬마가 하나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달려 왔어요. 식구들이 반호기심으로 그럼 네가 들어가서 할아버지 만나 봐라 들여 보냈어요. 그런데 이 삼십분동안 이 어린 소년이 할아버지를 만나고 나오더니 이 할아버지가 변한 거예요. 태도가 갑자기 누그러지고 부드러워지고 사람들도 만나시고 얘기도 하시고 변했어요. 하도 이상해서 그 어린 소년을 붙들고 사람들이 물어 보았습니다. \'너, 할아버지하고 무슨 얘기를 했니? \'그러니 그 소년이 아무 얘기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할아버지하고 그 이 삼십분 너는 도대체 뭘했니? 그랬더니 그 어린 소년이 대답하기를 \'저요, 할아버지하고 같이 울었어요.\' 이 할아버지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면서 함께 우는 순간, 더불어 껴안고 울던 그 눈물 속에서 이 할아버지의 아픔과 질병이 치유된 것입니다. 우리가 공감할 수 있을 때, 그 아픔을 함께 느낄 때 치유의 능력이 솟습니다.
 다양성을 받아주시는 하나님, 흑인도 받아 주시고, 황색인도 받아주시고, 백인도 받아 주시고, 가난한 자도 받아 주시고, 부자도 받아 주시고 얼마나 풍성하십니까?
 하나님의 다양성을 바라보십시오. 우리 각자에게 다르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하십시오.     다른 사람과 똑같은 방법으로 나에게 다가오시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많은 물질로 다가오시지만 나에게는 가난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으로 다가오시지만 나에게는 연약함으로 다가오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다가오시든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큰 역사를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족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모양으로 살든, 다양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가난하다고 원망하지 말고, 일이 안 된다고 짜증부리지 말고, 모든 일에 하나님이 역사하심이 있다는 것을 믿을 때 거기에 비로소 기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34절 같이 읽어봅시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예수님은 이 벙어리 된 자를 앞에 놓고 먼저 하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 병든자 의 아픔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탄식하며 기도합니다. 그 아픔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도 살아가실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나님께 그 병든자의 아픔을 위하여 구하셨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를 떠나서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한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 없으신 분이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얼마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살아야 하나요?
  신앙생활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도우심을 통해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임을 믿어야 합니다. 농부가 비의 도움을 구하듯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합니다.
     에바다! 늘 이 음성을 들어야 할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닫힌 폐쇄된 공간에서 외롭고, 괴롭고, 고통스런 이웃들. 주님은 아십니다. 주님은 당신의 마음 속 깊은 고통까지도 어루 만져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도 말씀하십니다. 네 닫힌 마음과 세계가 열릴지어다.   에바다. 열릴지어다.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이 임할지어다. 하나님의 구원이 임할지어다. 에바다. 이 말   씀이 우리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내게 다가 오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십시요. 내게 손을 내미십니다. 그리고 그는 내 눈을 만지시고, 손을 만지시고, 내 마음을 만지십니다. 내 깊은 고통의 상처들을 만지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바다. 내가 만약 그의 손길만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치유될 것입니다. 나는 변화될 것 입니다. 내 이웃들의 세상도 열릴 것입니다. 귀도 열릴 것입니다. 눈도 열릴 것입니다. 주님의 강력한 손길을 통하여 모든 것이 새롭게 열려지는 은혜와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