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두려워 하십니까?

제목 : 왜 두려워하십니까? (6월4일 주일)
    마가복음 6장 45-52절

  어느 시골 할아버지가 아들집을 찾아 서울에 왔습니다. 그런데 서울역에 도착하여 보따리를 챙기다가 그만 아들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은 가장 중요한 종이를 잃어 버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그곳을 지나가던 한 청년이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젊은이, 그만 아들집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잃어버렸다네. 내가 도착하여 전화하면 역에 나오기로 했는데...\" 청년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종이를 찾아 주려는데 할아버지 신발밑에 하얀 것이 보였습니다. \"할아버지, 발을 옮겨보세요\" 할아버지가 발을 옮기자 신발밑에서 종이쪽지가 나왔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종이를 주워보더니 기뻐서 소리쳤습니다. \"여기 있네. 찾았네. 찾았어. 종이야 어디갔다 이제 왔니?\"
  세상 보따리 챙기다가 주님을 찾을 수 있는 믿음을 잃어버리고 걱정하며 사시지는 않습니까? 믿음을 발로 밟고 있으면서 두려워하고 사는 것은 아닙니까? 만약 그렇다면 발을 옮겨 보십시오. 새로운 믿음의 은혜를 입게 될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의 제자들은 벳세다로 가기 위하여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배의 위치는 바다 한 가운데 깊은 곳, 시간은 늦은 밤 사시경쯤, 상황은 심한 바람이 배를 거스렸고, 제자들은 풍랑과 싸우며 괴롭게 노를 저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물체 하나가 바다위를 육지처럼 걸어서 그들에게 다가왔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인줄 알고 놀라 두려워하며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자 물위로 걸어온 이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왜 두려워하며 사십니까? 왜 불안해 하며 사십니까? 왜 걱정하며 사십니까? \"내니, 두려워말라\"는 우리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두려워하십니까?

    첫째로,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란 분별을 잘못함으로 오는 상상력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도 바다위를 육지처럼 걸어오신 분은 우리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셨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함으로 유령으로 오인하여 극도로 무서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소리를 지르다\'란 \'아네크락산\'은 공포에 질려 떨며 비명을 지르는 것으로서 무서움에 위축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기적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이성과 경험으로만 판단했습니다. 본문은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라\"고 말합니다.
 \'둔하여지다\'란 \'페포로메네\'는 우둔해지는 영적으로 둔감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영이 둔해지면 판단이흐려지고 판단이 흐려지면 생활이 빗나가게 됩니다.
 생쥐 한 마리가 요술쟁이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있는 고양이가 무서워 살 수가 없었습니다. 요술쟁이는 그런 생쥐가 불쌍했습니다. 그래서 생쥐를 고양이 모양으로 만들어 주었지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개를 무서워했습니다. 요술쟁이는 생쥐를 다시 개 모양으로 만들어 주었답니다. 헌데 이제는 호랑이가 무섭다는 것이었습니다. 생쥐에게 실망한 요술쟁이의 말입니다. \"너는 겉모양만 바꾸어졌지. 마음은 계속 생쥐로구나. 넌 가망이 없다. 다시 생쥐가 되거라\" 이솝우화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우리의 두려운 문제해결은 겉모양만 변화되어서 안되고 근본적인 마음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보아도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바다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주님으로 바로 아는 믿음만이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령이나 허깨비가 아니십니다. 바다의 주인이며 정복자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둘째로, 예수님을 바로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일들은 우리로 하여금 무서운 두려움으로 놀라게 하지만 주님께선 새일을 행하시고 기적을 베푸심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물질, 질병, 직장, 인간관계의 풍랑으로 인하여 두려움을 안고 오늘 예배드리러 오신 분이 계십니까?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주님의 은총을 힘입어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오는 두려움은 스스로를 포기하게 만드나 주님을 향한 믿음은 소망의 길로 가게 합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은 놀라운 일들이 생기도록 역사합니다. 좋은 일을 만나게 합니다.
 우리의 안전은 하나님의 은혜안에 있을 때만이, 예수님안에 있을때만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맡겨야 합니다. 풍랑이 일고 있는 바다가 두렵다고 뛰어내리면 죽습니다. 풍랑이 일어나도 배안에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오셔서 풍랑을 잔잔케 해주십니다. 교회는 배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막연히 알고있는 상태에서 이제는 예수님을 바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인슈타인박사가 유대인이란 이유로 독일의 나치정부로부터 추방당하자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교는 그를 즉시 교수로 채용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가 강의를 끝내고 귀가를 하는데 자기 집이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답니다. 그 길이 그 길 같고 , 그집이 그 집같고 그런데 더 문제는 자기 집 주소를 모른다는데 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학교에 전화를 걸어 아인슈타인박사집 주소를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집주소를 가르쳐줄수 없다고 합니다. 그때 아인슈타인 박사는 어쩔수 없이 자기신분을 밝혔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십시오. 내가 바로 아인슈타인 박사요. 집으로 가는 길인데 내 집이 어디 있는지 잊어버렸답니다.\"
  기독교인이라서 주님을 당연히 믿고 있다구요? 천만에 겉으로만이겠지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예수님없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제 우리는 잘믿고 있다는 착각에서 깨어나 우리의 삶을 힘들게하는 풍랑을 잔잔케 해달라고 주님께 믿고 매달려야만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삶속에서 풍랑이 일 때 인간의 도움을 기대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믿음으로 인하여 놀라는 순간들이 날마다 이어져야만 됩니다.

    셋째로, 우리를 안전케하시는 분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주님께선 제자들이 탄 배를 목적지에 안착시키셨습니다. 인간사의 모든 일의 완성은 인간인 나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루어주셔야만 합니다.
 \"내니 두려워말라\"고 하신 그분은 누구십니까? 우리를 인생의 목적지에 안착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바로 믿는자는 주님으로 인하여 반드시 회복되어 건강,풍요,성공,구원의 자리에 이르게 하실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세군의 부드대장이 말년에 시력을 잃게 되었는데 아들은 차마 아버지께 그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아들의 마음을 알아챈 부드대장은 아들에게 \"다시는 네 얼굴을 보지 못하겠구나. 하지만 이 눈으로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일을 해왔음을 감사하자. 이제는 내 눈이 없어도 하나님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 \"라고 의연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과 나중이십니다.
 나를 처음부터 인도하신 주님께서 내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함께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이 험한 인생의 풍랑속에서 안전한 지대로 옮겨줄 것입니다.
 어린 두 자매가 \'예수님의 품 안에서 안전해\'란 노래를 부르며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헌데 언니가 동생에게 \'너는 안전하다는 것을 어떻게 아니?\'라고 물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꼭 붙잡고 있으니까 안전하지\'  언니는 \'아니야, 그렇게해도 안전치 않아. 만일 악마가 네 손을 딱 잘라버리면 어떡해?\'
 언니의 말에 동생은 놀라 인형을 떨어뜨리며 근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나 잠시후 동생의 얼굴이 기쁨으로 살아나더니 이렇게 언니에게 말합니다. \"언니, 아까 내가 깜박 잊은게 있었어. 예수님이 나를 꼬옥 붙잡아 주실거야. 악마는 예수님의 팔을 자를 수가 없어. 그러니까 나는 안전해.\"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의 손을 붙들면 불안전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시면 안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하고 흔들리는 괴로운 손, 고달픈 손, 두려움에 가득한 손을 붙잡고 계시면 틀림없이 내 삶의 목적지에 이르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완전하게 이뤄지는 곳은 예수님의 품안이기 때문입니다.
 \'왜 두려워하느냐? 내니 안심하라 두려워말라\'는 주님의 사랑스런 음성을 이 아침에 확인하고 들을 수 있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