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이 뭐길래

제목 : 자식이 뭐길래? (5월14일 어버이주일)
     마태복음 15장 21-28절

 오래전에 \'사랑이 뭐길래\'란 TV연속극이 인기리에 방송된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자식이 뭐길래 그토록 사랑할 수 있었는지 처절할 정도로 진한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어버이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생각하는 가운데 영육간의 어버이를 생각하며 그들의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하는 시간들이 되어지시고, 우리 교회의 어버이되시는 어르신들 모두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강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738년 남이탈리아 캄파니아에 있는 폼페이 발굴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폼페이가 화산폭팔로 매몰된 것은 AD70년의 일이었습니다. 발굴단은 발굴하여 나가다가 눈물겨운 화석 하나를 발견하고는 잠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그것은 오른 팔에 아기를 껴안고 죽은 어머니와 아이의 화석모습이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용암으로 덮여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을 때 그 어머니의 마지막 관심사는 오직 아이였음을 증명하여 주고 있는 화석이었습니다. 이 화석을 보고 어느 누군가가 그 밑에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고\"(고전 13:8)
 오늘 본문은 자신의 딸이 귀신들린 고통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와 도움을 청한 사건입니다. 자식이 뭐길래 이 어머니는 그토록 예수님 발아래 엎드려야 하고 자식이 뭐길래 개같은 사람이라는 모욕을 당하면서까지 매달려야 하는 지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자식이 뭐길래\'의 사랑을 아십니까?

   첫째로, 자녀의 고통을 곧 어버이의 고통으로 아는 사랑입니다
  아끼고 사랑하며 귀엽게 기르던 딸에게 문제가 생김으로 딸은 어머니의 고민대상이 되었습니다. 딸의 문제와 불행이 곧 어머니의 문제와 불행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녀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곧 부모들의 것입니다. 가나안 여인의 모성애는 딸의 문제가, 고통이 자신의 문제와 고통으로 되어 자기속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찾아와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애원했던 것입니다. 자녀의 고통을 지켜보는 부모는 그 고통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세계 제1차대전에 출전했던 한 영국군인이 전투중에 파편을 맞아 두 눈을 실명하여 후방의 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어머니가 황급히 면회를 갔으나 병원측에서는 \'어머니의 마음만 더 상할 뿐\'이라며 면회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간곡한 모정의 호소에 병원측은 면회를 허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병실에 들어가보니 아들이 두 눈에 붕대를 감고 누워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아들의 이마에 손을 얹었지요. 그러자 아들은 울먹이며 \"어머니가 오셨군요\"라고 하더랍니다. 말없이 얹은 손속의 어머니의 마음은 그 어떠한 수백 마디 말보다 더 강하게 아들의 마음속에 닿았던 것입니다. 사랑은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없는 사랑의 애틋함이 지극한 사랑을 알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소로 가정을 택하여 인간들에게 주셨습니다. 참으로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은 어떤 문인의 글로도 표현할 수 없으며, 음악가의 노래로도 고백할 수 없고 웅변가의 웅변으로도 그 실체를 말할 수 없으며, 그 어떤 화가의 그림으로도 그려낼 길이 없습니다. 예나 오늘이나 부모들은 자녀의 문제와 고통을 자신들의 것으로 대치하며 괴로워하며 자식을 키웁니다. 그럼에도 자녀들이 부모를 싫어하고 모시지 않으려하며 귀찮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가슴아픈일주의 가슴 아픈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혹여 부모를 모시고 있다고 하더라도 은혜를 모르고 기쁨도 없이 부담스럽게만 여기고 있다면 그것은 효도가 아닌, 단순한 부양의 의무를 이행하는 어쩔수 없는 동거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모와 고통도 감수하는 사랑입니다
 가나안여인은 절망속에서 고통을 안고 주님께 \"내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으니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큰 소리로 애원하며 부르짖었으나 주님께서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고 묵묵부답으로 침묵을 지키시며 그냥 계셨습니다. 게다가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라고 가나안여인을 간접적으로 개취급을 하셨습니다. 가나안 여인이 다한 수모는 형언할수 없는 수치였습니다. 이 여인이 왜 이렇게 수모를 당했을까요? 그것은 단 한가지, 귀신들린 딸이 자신의 딸이요,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를 위한 것이라면 캄캄한 먹구름이 뒤덮힌 길도 마다하지 아니하시고 걸어 가십니다. 어떤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그것들을 헤치고 나가십니다. 우리를 위해 당하신 부모님의 수모와 고통은 글로 도저히 다 쓸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과학시간에 자석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수업을 재미있게 유도하기 위하여 학생들에게 \"M자로 시작하고, 여섯 글자로 되어 있으며,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란 퀴즈를 냈습니다. 학생들은 한결같이 모두 다 \'Mother\' 어머니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허나 선생님이 바라던 대답은 자석 곧 \'Magnet\'이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자기들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것은 생각할 것도 없이 무조건 어머니라고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온 세계의 시장은 국제화시대에 따라 국제시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Made in Korea, Made in U.S.A  Made in Japan등 상품마다 각 나라 상호가 붙어 있습니다. 모든 자녀들은 Made in mother입니다. 우리들은 어머니의 품안에서 만들어져 나온 작품들입니다. 어머니가 우리들의 Maker입니다. 따라서 미국의 6대 아담스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오늘의 나는 전적으로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다\"라며 자기에 관한 모든 영향을 어머니께 두었습니다. 뉴욕 맨하튼 항구에 서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의 조각가 바르톨디의 작품입니다. 그는 자유, 평화, 사랑을 나타내는 인생의 모델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다가 결국 자기 어머니의 인상을 조각했다고 합니다. 이 사회의 미래는 어머니들 손에 달려있습니다. 사랑의 대명사는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일본속담에 \'부모에 대한 효행과 불조심은 반드시 미리 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가 돌아가신후에 애달파하는 것이나 다 불타 버린 다음의 후회는 아무 소용없는 헛된 것일뿐입니다.

    셋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어머니는 온갖 수모를 다 당하면서도 자기가 찾은 바른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귀신들린 딸에 대한 자신의 애절한 간구가 무시되고 거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위축되거나 멈추지 않았습니다. 본문 25절의 \'절하며\'란 헬라어는 \'프로세퀴네이\'로서 미완료시제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가나인여인이 엄청난 멸시속에서도 계속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여인은 예수님만을 자신의 진정한 고백의 대상으로 믿고 있었으며 진리에 대한 바른 눈이 열려져 있었습니다.
 여인의 겸손한 신앙은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고백하며 더욱 더 주님께 접근합니다. 상 아래 떨어지는 부스러기 은혜로도 족할 수 있는 영적자세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절대적 신앙이 필요합니다. 이 신앙은 거절당하는 것같아도 거절당하지 않습니다. 외면당하는 것같아도 외면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에게 결국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축복의 말씀이 임했던 것입니다. 가나안 여인이 받은 축복의 선언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거절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침묵과 거절속에 숨어있는 축복을 끌어내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힘써 간구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얼굴을 주님께 향하고 인내하고 나가면 결국 우리의 소망은 이루어질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신앙이 복된 삶의 열매를 가져옵니다.
 제가 사오정 얘기 듣다가 아.. 때때로 신앙인들도 사오정처럼 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봤습니다.   사오정 시리즈에 보니까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사오정이  식당에 갔습니다. 그래서 자기 먹을것을 주문합니다. \'돈까스와 우유  주세요\' 그랬더니 뭐라고 대답을 하냐면요 주인이 돈까스는 없습니다 그래요.  사오정이 \'그래요? 그러면 돈까스와 커피주세요\' 그랬어요. 아니 그러니까 주인이 화가 나서 돈까스는 없단 말입니다 그랬더니 \'아..알았습니다. 그러면 돈까스만 주세요\' 그랬답니다. 이 말을 아예 알아듣지  못하신 분들도 있어요. 그게 바로 사오정입니다. 알아듣지 못하시는 분들이 바로. 상대방이 뭐라 그러던  집요하게 계속해서 자기의  메뉴를  고집하는 이 우직함. 이 사오정의 우직함이 신앙인에게도 좀 필요합니다. \'나, 포기할  수 없어요.  하나님 꼭 주셔야 되요. 하나님. 이것이 제가 단순한 욕심을 위해서 그럽니까? 나의 생존과 관련된 것입니다. 하나님. 그래야 우리 가정 더 잘 하나님 섬길 것 아닙니까? 하나님  주세요.\'  계속해서 주 앞에 나와서 구하세요.
 조금만 어려움이 닥치면 금방내 포기하고 마는 여러분의 신앙은 아닙니까? 기도하다가도 조금 상황이 어려워지면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인내치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는 아닙니까? 신앙생활은 한 번 어떻게 하여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단 한번의 시도로 목적에 도달한다는 것은 어려운일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신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핍박받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내하며 부르짖는 신앙을 자녀를 향해 가져야 합니다.
 부모인 내 가슴에는 생명의 빛이 있으나 내 자녀의 가슴에는 어둠이 들어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 마음에는 사랑이 있으나 자녀들의 마음에는 미움과 증오가 쌓여있는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부모는 자녀들에게 어두움의 권세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이미 들어가있는 어둠의 권세가 추방되도록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간절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연어가 죽을 때 새끼앞에서 죽으면서 새끼들이 자기 몸을 뜯어 먹고 영양을 보충하기를 바란답니다.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한다면 모든 복의 근원이 되는 신앙을 심어주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우리 신앙의 주체요, 사랑의 주체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속에서도, 거절속에서도 복을 끌어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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