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4월9일 주일) | |
| 누가복음 18장 1-8절 경북 어느 마을에 사람의 소원을 영험하게 맞추는 \' 돌할매\'라는 돌이 있다고 합니다. 소원이 있는 사람들은 돌할매를 한 번 들었다가 놓고, 잠깐 서서 그 돌에게 소원을 간절히 아뢴 후, 다시 돌을 들어 본답니다. 이때 돌할매가 가볍고 쉽게 들어지면 이루어지지 않을 소원이요, 무겁고 잘 들어지지 않으면 이루어질 소원이랍니다. 그런데 동리사람들이 그 돌을 원 자리에서 옮겨 놓았습니다. 이로 인해 원래 돌이 놓여 있었던 산주인과 동리 사람들 사이에 소송사건까지 벌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몰려와 그 돌을 들어보고 천원씩 놓고 감으로 조그마한 그 동리는 갑자기 새로운 벌이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 동네사람들은 돌을 지키기 위해 경비를 서고 철창으로 울타리를 쳐 놓았습니다. 돈벌이가 좋아지니 그 부근에 돌할매가 4개나 더 생겼답니다. 이런 것을 기가 막힌다고 하는 것입니다. 돌은 돌일뿐입니다. 로마에 가면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비는 \'드래비\'라는 분수대가 있습니다. 한 번 던지면 애인이 생기고, 두 번 던지면 애인을 만나게 되고, 세 번 던지면 애인과 사귀게 되고, 네 번 던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갑만 가벼워진답니다. 이제 방향을 바로 잡으십시오. 어리석고 부질없는 일에 마음쓰지 말고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한다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지금 곧 눈을 돌리고 마음을 향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소원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이루어주실 수 있는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나오는 재판관은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고 이기적인 삶의 기준을 따라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횡포자였습니다. 그리고 뇌물을 받고 재판을 하는 불의한 자였습니다. 이런 재판관앞에 소원을 가지고 온 사람은 억울한 원한을 갖고 있는 한 과부였습니다. 이 과부는 비천한 자요 소외된 자였습니다. 그러니 불의한 재판관은 그녀에게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돈도 없고 배경도 없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여인은 끝까지 매어달려 간청하는 지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녀의 끈질긴 애원은 재판관의 생각에 변화를 주었고 그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면 자신을 계속 괴롭히고 번거롭게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억울함을 풀어주었습니다. 결국 그녀의 소원을 풀수 있었던 힘은 돈의 위력이 아니라 오직 소원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간청하였던 자세였습니다. 주님은 비유의 결론부분에서 악하고 못된 재판관도 귀찮아서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거늘, 하물며 너희가 믿고 있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녀의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물며\'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반부의 부정적상황과 후반부의 적극적상황의 극단적인 강한 비교를 통하여 우리의 기도가 틀림없이, 꼭 절대적으로 이루어짐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하물며! 하물며!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물며\'의 진정한 의미는, 첫째로, 기도하는 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하고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불의한 재판관앞에서 애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공의롭고 인자하시며 기도를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모순이 많습니다. 무슨 일을 하고 해결할려면 인맥부터 찾습니다. 그리고 선물보따리, 돈 봉투를 싸가지고 이 사람 저 사람 찾아 다닙니다. 한 번 가서 안되면 또 찾아가고 또 찾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확실히 정립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누구시며 내가 누구인가를 바로 알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솔직히 생각해 보십시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하나님을 찾으셨고, 하나님앞에 얼마나 기도하셨습니까? 여러분들이 처해있는 문제를 가지고 얼마나 기도하셨습니까? 얼마나 간청하셨길래 하나님생각은 하지않고 내 생각으로 지레짐작하고 기도를 중단합니까?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주권자와 청원자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주권자는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래참으시겠느냐? 속히 풀어주시지 않겠느냐? 여기의 \'속히\'라는 말은 \'엔타케이\'로서 예기치 않은 때에란 뜻입니다. 스스로 안된다고 생각하고 기도를 포기하거나 단념해서는 안됩니다. 가난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을 도저히 이길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소원을 이루게 되었거늘 하물며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고 매달려 간청하는 자녀들의 기도를 왜 들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제부터 하물며! 하물며!를 가슴에 새기시고 한번에 안되면 두 번, 오늘 안되면 내일, 안되면 이틀,삼일, 안되면 일년, 계속 더 매달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강청하는 대상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라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낙심치말고 계속 생활화된 기도를 드리라는 뜻입니다 오리겐교부는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이어야 한다. 기도 따로 그리스도인 따로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도가 생활이며, 생활이 기도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불의한 재판관 앞에서 가난한 과부는 보잘것없는 존재요, 귀찮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매달리며 강청하는 간구를 하였을 때 불의한 재판관은 그녀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기다리지않는 조급증에 있습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한 걸음으로 너무 멀리가려고 하지 말라. 너는 걸음을 계속해야 한다. 한 마디말로 네가 누구인가를 말하려고 하지말라. 너는 말을 계속해야 한다. 일인치의 성장으로 너무 크려고 하지말라. 너는 계속 성장해야 한다. 하나의 행동으로 모든 것을 이루려고 하지말라. 너는 계속 행동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형편에서도 발길을 거두거나 돌이켜서는 안됩니다. 만일 우리가 낙망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식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강한 것들을 두렵게 만드는 약한 것들이 있습니다. 모기는 사자에게 두려움을 주고, 거머리는 코끼리에게 두려움을 주며, 파리는 전갈에게 공포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작다고 약하며 크다고 강한 것입니까? 믿음이 문제입니다. 믿음안에 들어오면 큰 것도 약해지고 작은 것이 크고 강하게 되어집니다. 여러분들이 약하십니까? 믿음이 약한 것입니다. 강하십니까? 큰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인자가 올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비유의 결론을 맺으십니다. 기도의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중국의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회개하게 된 것은 그 어머니의 한 맺힌 기도의 산물이었습니다. 그 모친이 언젠가 자기 집을 떠나 80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그 아들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바로 그 시간 그 아들은 어머니 집에서 전도지를 보고 있던 순간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내가 다 이루었다]는 주님의 말씀 앞에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나중에 아들이 회개한 간증을 어머니께 하게 될 때 알게 된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그는 중국 선교사로 사명을 받아 배를 타고 중국으로 오던 항해 중이었습니다. 그 배는 불행하게 식인종들이 사는 섬으로 잘못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배가 섬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보았던 식인종 수백 명이 잡어 먹을 먹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춤을 추면서 창을 들고 바닷가로 몰려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선교사 테일러를 실은 배의 사공은 이 섬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했으나, 바람 때문에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절망의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사공이 하는 말이 \"이젠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낙심의 말을 하였습니다. 그 때 테일러가 그 사공에게 말하기를 이제 우리가 할 일이 하나 더 남아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배 안에는 신자 네 사람이 타고 있지 않은가? 이제 각각 자기 자리에 돌아가서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시간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의 기도는 터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순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들이 기도를 계속하던 그 시간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꾸어지고, 그 바람을 받은 배의 돛이 돌면서 그 식인종의 섬에 들어가게 됨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기도는 낙심할 상황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고 하면 하나님께서 역사를 일으켜주심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하물며\'는 하나님의 은총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은총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적요소입니다. 은총은 우리이게 보이지않는 양식이며, 이슬같이 임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인간이 이러한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위한 수단임을 알아야 합니다. 은총과 기도는 그래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은총이 없으면 우리의 기도는 헛된 것이며,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의 은총도 우리의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기도는 은총을 받기위한 신앙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야곱의 벧엘 사닥다리는 우리의 머리맡과 하늘에 닿은채 놓여져 있으며, 하나님의 천사는 하나님의 은총과 우리의 기도사이를 왕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의 의복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은총의 옷이 되어야만 하고 , 그리스도인들의 식사는 주님과 함께하는 성찬식이 되어야하며,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적인 행동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이 되어야만 합니다. 한 젊은이가 섬에 살며 기적을 일으킨다는 도인을 찾아나섰는데 섬에 가기도전에 폭풍우를 만나 육지에서 한 노인과 몇 날을 지내게 됩니다. 배가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젊은이는 그 노인이 씨고구마에 물을 주는 것을 보고 노인의 어리석음을 탓했습니다. 사흘 후 고구마에서는 연한 싹이 돋아났습니다. 젊은이가 떠나려고 할때 그 노인은 고구마싹을 가리키며, \"젊은이, 생명이 자라는 기적을 봐요. 그 도인은 만날 필요가 없다오. 그 도인이 바로 나요. 최선을 다하여 사는 날이 바로 기적의 날이라오\'라고 했답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은 우리의 생활밖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멀리 찾아가지 마십시오. 기적은 내 생활속에 있습니다. 바로, 지금, 이시간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을 약속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말씀을 믿고 기도를 해도 기적이 안 일어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기적을 볼 만한 믿음이 없거나, 기적을 일으킬만한 기도를 하지 않아서입니다. 안팎의 유혹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중단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면서 열심히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물며\'의 은총으로 늘 기도하십시오. 불의한 세속적 재판관도 강청하면 소원을 들어주는데 하물며 택한 자녀들의 부르짖는 기도를 응답하시지 아니하겠습니까?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하물며\'의 은총입니다. 이제 오늘 이시간에도 임하시는 \'하물며\'의 은총을 받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