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3월26일 주일) | |
| 요한복음 9장1-7절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도자가 된 조니 에릭슨이란 미국여성이 있습니다. 그는 청소년시절에 다이빙을 하다가 그만 실수로 전신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사고를 당한 몇 년동안 불평도 하고 자기생을 저주도 하면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앞에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손가락 하나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전신장애자입니다. 그러나 이 형편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이제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지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입은 움직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붓을 달라고 했습니다. 입으로 붓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붓을 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이었으나 자꾸 하다보니 입에 좀 더 힘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완숙한 그림을 그려가기 시작했고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길렉터란 볼펜 만드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자기 회사 볼펜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광고를 해달라는 제안이었습니다. 그 청을 수락하면서 조니는 한 가지 조건을 달았습니다. 그림밑에 들어가는 싸인만은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붓을 물고 그림아래 쓴 글자는 \"PTL\"이란 알파벳 세자였습니다. 그것은 \"Praise the Lord.\" 즉 주님을 찬양하라는 말의 약자였고 그 후로 조니가 쓰는 모든 글과 그림에는 이 글씨가 붙어 다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조니에게 조금씩 조금씩 힘을 주셨고 그는 입술을 열어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으로써 전세계적으로 그보다 더 크게 쓰임받은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절망가운데 드렸던 그의 한마디 기도가 그로 인생의 방향을 잡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있다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맡겨주신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리고 그일을 위해서 하루를 온전히 드리고 있습니까? 우리가 반드시 하여야 할 일을 찾고 할 수 있다면 어떤 장애도 어려운 문제도 이겨나가게 될줄로 믿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매우 행복한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을 만나서 \"주님,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고 여쭈었다면 예수님은 아마 빙그레 미소를 머금으면서 \"그럼, 나보다더 더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하고 대답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행복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33년의 짧은 생애가 고난으로 계속된 가시밭 길이었음에도 행복한 삶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으며 또 무엇을 위해서 죽어야 하는 가를 분명히 아셨기 때문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께서 극적으로 구해주시고 난후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누구이며 왜 이 땅에 왔는가를 선포하다가 돌에 맞을 위협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발견하고는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를 고치는 일을 시작하십니다. 고난이나 좌절이나 피곤도 예수님의 하시고자 하는 일을 막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땅히 하여야 할 일들도 자신의 여러 가지 환경, 여건, 곤비함, 약함을 이유로 일하지 않고 있음과는 아주 대조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하는 기적을 행하시기 직전에 예수께서는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고 선포하십니다.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는 구절이 영어성경에서는 \"We must\"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아침에도 우리의 생애 역시 마땅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의 삶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의 뜻은, 첫째로, 우리는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하이덱거는 \'인간은 이 땅에 던지움받은 존재\'라고 했으나, 성경은 인간의 생을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던지움받은 존재가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도 보내심을 받은 존재임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보냄을 받았다는 것에는 두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보내신 분이 있고, 보냄을 받은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보내신 분은 창조자 하나님이시며, 보냄을 받은 이유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우연히 이땅에 던져저서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자 지금 여기에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 지금 자신이 해야할 사명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하는 일은 구원사역의 영적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소경이 눈을 뜬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을 제시하고자 하셨습니다. 구원받는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영적인 암흑속에 놓여져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방황하는 영적소경의 눈을 뜨게 하여 빛 되신 주님을 보게하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하는 것이 구원이란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위해서 주님께서는 보내심을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실로암이란 연못에서 소경의 눈을 치료하십니다.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실로암자체가 그리스도의 생애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실로암의 은혜가 즉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확신의 은혜가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기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땅에 오신 것처럼, 그분을 통해 구원받은 사람의 삶에도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내심을 받은 것처럼 지금 그분은 우리를 보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 이 땅에 보내심 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추운 겨울 디트로이트시에서 가장 유명한 정비사가 아침에 출근하다가 차가 그만 고장났습니다.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살펴보았지만 얼른 원인을 찾아 낼 수가 없었습니다. 날씨는 춥고 어떻게 손을 써야할지 몰라 난감해하고 있는데 그 차 옆으로 세단 한 대가 지나가더니 앞에 멈춰 섰습니다. 노신사가 차에서 나오더니 \"도와 드릴까요?\"합니다. 일류정비사는 \'이 도시제일의 정비사인 나도 고치지 못하는 것을 누가 고칠 수 있겠는가?\'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노신사에게 자리를 내어 줍니다. 그 노신사는 몇 군데 만져보더니 시동을 걸어 보라고 합니다. 시동이 걸립니다.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누구십니까?\"라고 물으니 그 노신사는 말하기를 \'나는 이 자동차를 만든 헨리포드입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 그 자동차를 고칠 수가 있듯이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고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땅에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그 분은 지금 당신이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무엇 때문에 방황하며 무엇 때문에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헤매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고 계십니다. 지금 그분은 당신 곁으로 다가 오셔서 치료하기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모든 봉사가 궁극적으로는 구원을 위한 일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교회에서 일을 하건, 교회학교 교사를 하건, 성가대원으로 봉사하건, 임원으로 일하건 다 좋습니다. 그런데 일을 위한 일, 노래를 위한 노래는 아무런 유익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봉사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봉사가 되려면, 봉사를 통해서 주님을 나타내고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봉사를 통해서 내가 나타난다면 그것은 진정 주를 위한 봉사가 아닙니다. 즉 전도와 선교에 연결되지 않는 봉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구제는 그리스도인의 귀한 사명입니다. 그러나 구제는 불신자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증거하는 일,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감당할 수가 없는 사역입니다. 여러분들은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서, 하나님앞에 드린 섬김과 봉사가 빛되신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증거하는 데 얼마만큼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는지 결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증거는 우리가 아니면 할수 없는 일입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주께서는 지금 저와 여러분들을 이 세상에 파송하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간에 민감하게 사셨습니다. \'때\'를 말씀하시면서 일하셨습니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인자의 영광을 받을 때가 왔도다\" \"때가 이른 줄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이제 때가 이르렀습니다. 나로 그일을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바울도 시간을 계수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잃어버린 세월, 잃어버린 시간은 잃어버린 영혼만큼 비참하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저는 최근에 손양원목사님의 딸이 쓴 \"나의 아버지 손양원목사\"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손양원목사님의 생애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손 목사님은 자기 두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로 삼은 것으로 잘 알려진 분이지만, 이런 극적인 사건 하나가 그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아닙니다. 그는 매일매일을 순교적으로 사신 분이었습니다. 손양원목사님이 소천하기 직전에 남긴 최후의 설교 한 편이 있는데 저는 그 설교에서 그분의 인생전체를 보는 것같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설교제목은 \'죽도록 충성하라\'입니다. 그는 설교에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땀흘려 일하십시오. 눈물을 흘려 기도하십시오. 피흘리기까지 죄와 더불어 싸우십시오. 열과 성을 다하여 전도하십시오. 이것이 충성입니다. 이것이 순교입니다. 그래서 땀이 귀하고 피가 귀한 것입니다. 오늘 하루만 내 날이요 지금 이 시간만이 나의 시간인 줄을 아는 자가 날마다 충성할 것입니다. 그는 시간만다 순교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날마다 순교적자세로 그의 시간과 생애를 주 앞에 드렸던 손목사님의 생애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이 바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해야할 시간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가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길었기 때문에 행복했던 생애가 아니라, 고난이 없었기 때문에 행복했던 생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성취했기 때문에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윤동주란 시인도 젊은 나이에 일제의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했던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내게도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이 어두운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성경 한 권을 들고서 탐독했습니다. 그리고 조국의 미래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처지의 죄수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써 그의 생애를 마쳤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이 시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얼마나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까? 혹시 낭비하는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반드시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는 마음자세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을 끝까지 잘 감당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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