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잔을 높이 드는삶

제목 : 구원의 잔을 높이 드는 삶 (3월19일 주일)
     시편 116편12-19절


   우리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짧은 생애를 아쉽게 살아가면서 뭔가를 남기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간절합니다. 남긴 업적을 통해서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존경받는 인물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한평생 고생스런 인생을 살다가 이름도 없이 소멸되어 버린다면 너무 허무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생일이나, 승진, 개업등을 축하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면 그 가운데 목청 좋은 한 사람이 큰소리로 \"자! 여러분, 다같이 잔을 듭시다. 오늘 영광스런 승진을 하신 우리들의 친구 누구의 삶에 무궁한 영광과 행복을 위하여\"라고 하면서 잔을 번쩍 치켜들고 분위기를 잡습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잔을 한 층 더 높이면서 \"위하여!\"라고 합창을 한 후 잔을 한꺼번에 쭉 들이킵니다.
  오늘 성서의 본문에서 발견되는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라는 말씀 한 구절이 바로 이런 모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구원의 잔\"이란 말은 \"죽음의 올가미가 나를 얽어매고, 스올의 고통이 나를 엄습하여서, 고난과 고통이 나를 덮쳐올때에, 주께서 내영혼을 죽음에서 건져주시고, 내 눈에서 눈믈을 거두어 주시고, 내 발이 비틀거리지 않게하여 주셨으니\"(시 116:3-8)의 내용입니다.
  깊은 좌절과 절망의 자리에서 소망의 새 삶을 얻었을 때, 육신의 질병에서 다시 건강을 되찾게 되었을 때, 실망하여 멀리 떠났던 사람이 밝은 얼굴로 다시 돌아왔을 때, 기뻐하며 감사하며 드는 것이 구원의 잔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의 확신입니다.
  믿음에는 구원의 믿음과 생활의 믿음이 있습니다. 구원의 믿음은 강하고 약한 것이 없고, 잘믿고 못믿고가 없습니다. 구원의 믿음은 있든지 없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영접했다면 곧 믿는 자입니다. 내 것으로 받아들였는가 안 받아들였는가의 차이이지 잘 믿는다 못믿는다가 아닙니다. 강한가 약한가가 아닙니다. 구원의 믿음은 있는 것입니다. 생활의 믿음은 구원의 믿음이 있는 사람이 매일 매일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과정속에서 하나님을 의존해서 사는 삶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날마다 힘있게 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 자신을 의존하면서 살다보니까 힘이 없고 낙심되고 걱정과 염려속에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처럼 생활의 믿음은 약할 수도 있고 강할 수도 있으나 구원의 믿음은 약하고 강한 것이 없고 있든가 없든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침 여러분들은 이미 받으신 구원의 잔을 높이 드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잔을 높이드는 삶속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여기 한 신실한 믿음의 사람인 시편기자의 구원의 잔을 높이 드는 신앙의 모습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원의 잔을 높이드는 삶은,

    첫째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입니다.
 길지 아니한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위기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마치 험산준령을 넘는 듯, 거칠은 들판을 지나듯, 깊은 계곡을 헤매듯 지나온 삶의 자취를 돌아보면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주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그 이름을 찬양하며 감사하겠다는 말입니다. 성경 사무엘상 15장을 보면, 처음 이스라엘 왕이었던 사울왕의 슬픈 역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원래는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의 맛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지더니 사무엘선지자의 가르침을 왕권에 대한 간섭으로 생각하였고, 후에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사울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아주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뒤, 사울은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사무엘 선지자를 하찮게 여기면서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빙자하여 자신의 불신앙을 변명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생의 잔을 들고, 자신의 위대함을 자축하든지 아니면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송하고 기도하며 예배하든지 이것은 우리들의 삶의 결단이며 선택인 것입니다.
 우리나라 여성박사 1호인 김활난박사는 이화여대총장을 마치고, 당시 감리교감독이셨던 유형기목사님을 찾아가서 목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나이가 63세였는데 그 나이로서는 감리교 헌법상 목사가 될 수 없음으로 평신도로서 복음을 전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자 김박사는 \"보잘 것 없는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내가 이화여대에서 가르치게 된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감사하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임종직전에도 수많은 후배들과 제자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이여 울지마시오.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이제 또 하나의 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내가 죽은 후에 장송곡을 부르지말고 할렐루야 합창을 불러주시오\"라고 말했답니다. 김활란박사의 묘비에는 이렇게 씌여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자신의 업적을 자축한 사울처럼 살지말고 주의 이름을 높인 김활란박사처럼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사도의 신앙고백은 이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존귀히 되게 하려하나니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승리자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삶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사는 자들입니다.

    둘쩨로, 결심한 대로 사는 삶입니다
  세계의 최고봉인 히말라야 정상에 오른 등반대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등산은 자신과의 싸움이며, 의지의 훈련입니다. 힘들 때는 멀리 내다보지 말고 그저 한 걸음, 한 걸음만 내딛으면 됩니다. Only one more step!\" 이것이 정상에 오르는 방법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들은 처음 먹은 마음의 결심을 적당히 바꾸어 보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잔을 높이드는 삶은 결심한 대로 끝까지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앞에 결심한대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마음의 결심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게 될 임박한 분위기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말을 들은 베드로는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이 두 번 울기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이번에는 힘주어 말합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이번에는 모든 제자들이 서로 질세라 베드로처럼 다투어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패했습니다. 그들의 결심과 다짐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실패했어도 그후 그들이 결심한대로 마침내 승리했습니다. 이 제자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기독교가 이 땅위에 편만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말부터 앞세우는 결심들이 빈말로 끝나 실없는 사람이란 소릴 들을까봐 염려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장담하던 제자들은 마침내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해내고야 말았다는 것입니다.
 결심은 말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살리라고 말하고, 그렇게 살 수 있다고 믿고 확신해야 합니다. 입으로 말하므로 환경의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앞에서 믿음으로 하는 말들이 예언처럼 이루어지게 됩니다.
  시편기자는 오늘 본문에서 똑같은 표현을 두 번 거듭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맹세한 것은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다 이행하겠습니다.\"(14, 18절)
 왜 모든 백성앞에서 하겠다는 말입니까? 주님께 한 맹세가 은밀한 중에 혼자서 한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앞에서 공개으로 한 것인만큼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 때 맹세한대로, 결심한 대로 살겠다고 선언하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삶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인생의 채널을 믿음이라는 사이클에 맞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화면에는 온통 감사의 사건들로 가득찬 드라마가 끝없이 펼쳐지게 됨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구원의 잔을 높이 드십시오. 그리하면 감사의 잔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것에게 까지 관심을 가지실까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까?  언젠가 동물의 왕국이란 프로그램에서 펭귄들의 생태를 본 적이 있습니다. 남극에서 서식하는 황제펭귄들이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게 되면 해변에서 둥지를 트는데 암컷과 수컷이 2주간마다 번갈아가며 알을 품어서 55일이 지나면 부화가 됩니다. 그런데 어떤 곳은 수천 수만 마리의 펭귄이 해변에 새까맣게 떼를 지어 있는데 놀라운 것은 색깔, 몸매, 울음소리가 다 비슷한데도 두 주간동안 물속에서 놀다가 정확하게 자기 짝을 찾아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파트너의 울음소리로 분간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면서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다. 너희에게는 머리카락까지 다 세셨다\"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미물인 펭귄도 자기 짝을 찾는데 하물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사신 당신의 자녀들을 왜 돌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내가 내 자신을 아는 것보다 더 정확히 나를 아시고, 내가 내 자신을 돌보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랑으로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 그 사랑의 손길로 나를 오늘 까지 인도하셨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믿음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감사를 잃어버리기전에 감사의 제물을 드리며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살아왔든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앞에 서있습니다. 지나온 시간들속에서 감사를 찾고, 내일 주실 은혜를 기대하면서 구원의 잔을 높이 드시기 바랍니다. 이제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며 노래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고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맹세하고 결심했던 지난 삶을 저버리지 말고 그 결심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감사의 제물을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