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을 자랑 할수 있습니까?

제목 : 약함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3월12일 주일)
           고린도후서 12장 7-10절


   빅터 프랭클이라는 사람은 유대인 정신과 의사입니다.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때문에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인 아우슈피츠와 다카오흐에서 2년 반동안 엄청나게 고생을 했습니다.
  프랭클은 6백만명의 유대인들이 고문을 당하며 죽어가고 병들어 죽어가고 절망하여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고난을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삶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게 됩니다. 왜냐하면 같은 환경에서 어떤 사람은 병들어 절망하여 죽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그 환경 속에서 그대로 이기고 나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수용소 안에서 \'의미요법\'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학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똑같은 고난가운데서도 고난의 의미를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서 그의 인생이 전혀 달라지는 것을 봅니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어려움에서도 어떤 사람은 오히려 그 고난을 디딤돌로 삼아서 더 성장하고 더 빛나는 인생을 살아가는가 하면 또 어떤사람은 같은 환경속에서도 좌절하고 파멸해버리는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했습니다. \'가시\'라는 헬라어는 장미송이에 붙어있는 가시 정도가 아니라 말뚝이나 혹은 뾰족한 창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육체에 말뚝이 박혀있다는 뜻입니다.
  조그만한 가시 하나가 손 끝에 들어가도 견딜 수가 없는데 살 속에 말뚝이 박혀있다고하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런데 이 육체의 가시가 어떤 것인가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학자들이 추축하기는 안질이 아니겠는가? 혹은 간질이 아니겠는가 그렇게들 보고 있습니다.
  여하튼 사도바울에게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큰 지장을 주는 육체의 약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가시를 좀 뽑아줄 수 없습니까? 하나님 이 가시가 너무 아픕니다. 이 가시 때문에 복음을 전파하는 데 지장이 됩니다. 하나님 이 가시를 좀 뽑아주세요. 없애 주세요.\" 하나님 앞에 세 번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나님의 응답은 이것이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이것이 네게 없으면 안된다. 네게 있어야만 네가 온전한 사람이 되어진다. 네게 이 가시가 있어야만 내 종으로 끝까지 쓰임받는다> 바울은 하나님의 이 응답을 듣고 그때부터는 자기의 약점과 자기의 아픈 부분을 오히려 자랑하게 되어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에게 있는 이 고난과 이 부족한 면때문에 의기 소침하여서 낙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다 주시지 않습니다. 누구나 한 가지의 가시는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있는 가시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을 아프게 하는 가시는 무엇입니까?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그 한 가지가 무엇입니까? 내 평생 소원인 이것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를 괴롭게 하는 질병은 무엇입니까? 이것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 보세요. 내게 필요한 것, 내게 있는 가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통해 바울처럼 오히려 아픔과 약점을 자랑하며 큰 은혜속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약함을 자랑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약함으로 인해 기도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왜 가시를 자랑하고 감사해야 되느냐? 가시는 기도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있었기 때문에 간절히 세번 기도했습니다. 가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도록 만듭니다. 기도할 수 있는 가시라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고난이 주는 유익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고난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무릎을 꿇게하고 기도하게 하면 그 고난은 유익하고 축복된 고난입니다. 반대로 기도 하지 못하게 하는 풍요와 번영은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내게서 기도룰 빼앗아 간다면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그것은 나에게 저주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인들에게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지는 책은 \'천로역정\'이란 책입니다. 영국의 청교도 가운데 한 사람인 존 번연이 쓴 책입니다. 주인공 기독도라는 사람이 장망성을 떠나서 천성을 향해서 갈 때 닥치는 갖가지 유혹과 위험을 극복하면서 천국까지 도달하게 되는 것을 쓴 내용입니다.
 어느 한 골짜기를 지나가는데 사자가 으르렁거리고 있습니다. 꼭 그 길을 지나가지 않으면 천국까지 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뒤에서 음성이 들립니다. \"가 보아라\" 그래서 사자가 있는 그 쪽을 향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한번 가 봅니다. 가보니깐 사자의 몸이 양쪽의 말뚝에 묶여있어서 한 가운데로 지나가는 사람은 잡아먹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았어요. 그래서 그 기독도가 그 가운데롤 걸어서 그 위험한 순간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가 보기에는 위험과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정도로 나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다 묶어놓았다는 뜻을 포함한 이야기들입니다.
 이렇게 신앙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들이 천로역정에 기록되어 있는데, 원래 번연은 복음을 전하다가 천주교의 핍박을 받아서 감옥에 들어 갑니다. 활동적인 번연이었기 때문에 감옥에 갇혀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까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그 지루함 때문에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오늘 본문과 같은 그런 음성이 그에게 들려 왔습니다.  내가 비록 감옥에 갇혀있지만 주님께서는 나에게 좋은 은혜를 주시고 계시는구나, 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구나, 이 사실을 깨닫게되자 미치도록 답답했던 그 감옥이 천국으로 변합니다. 그는 12년 간이나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매일 주님과 깊은 기도의 교제를 나눕니다. 이전보다 더 주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합니다. 감옥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글로 남겼습니다. 이것이 \'천로역정\'이 된 것입니다. 그는 말로 전도하는 것보다도 이 책을 통하여서 훨씬 더 많은 영혼을 주님께 인도할 수가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하나님께 원망하며 불평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번연은 원망대신에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밖에 있을 때 보다도 더 큰 은혜를 받고 더 큰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가시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 가시가 육체적인 질병이 될수도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녀의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라는 신호입니다. 그 가시 때문에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기도하세요. 작정하며 기도해 보세요. 특별한 기도의 시간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보세요. 바울에게 응답하신 하나님, 번연에게 응답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응답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둘쩨로, 약함으로 인해 겸손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가시 때문에 감사한 것은 그 가시가 바울을 겸손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직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천국에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듣고 또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하기를 \"말할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측량할 수 없는 체험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가 쓴 성경은 다 하나님 나라의 계시를 받아서 쓴 것들입니다.
 그에게 있는 능력은 대단했습니다. 사도행전 12장 19절에 보면 바울이 직접 안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지고 가서 병자 위에 얹으면 병자가 벌떡벌떡 일어나고 귀신들린 사람에게 그 손수건을 얹으면 귀신이 나가는 이런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 누구를 고치고, 누구를 어떻게하고 굉장히 자랑하다가 결국 교만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교만하지 못하게 육체에 가시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 가시 때문에 바울은 교만할 수가 없었습니다. 겸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종으로 하나님 앞에 끝까지 쓰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입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에게 버림받습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이 물리치십니다.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잠언 16장에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떠하든지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됩니다. 사람은 조금만 자랑할 것이 있으면 교만해집니다. 조금만 있어도 사람이 달라집니다. 돈없던 사람이 조금만 있게되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권세없던 사람이 조금만 있으면 달라집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부어주고 축복해 주어도 변하지 아니하고 언제나 겸손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축복을 계속해서 부어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겸손해야만 주의 종이 되어지고, 겸손하기 위해서는 가시가 필요하고, 가시없이는 겸손할 수가 없는 자신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인정했기 때문에 그 가시를 오히려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찾게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하는 그 가시는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나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한 공로자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 머무르게하는 울타리로 생각하고 나의 가시와 모자람과 약함을 자랑할 수 있기 바랍니다. 오히려 그것이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만드는 줄로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공동번역에는 <내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내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강한 자 안에서 드러내면 그 사람이 강해서 그런 능력이 나오는줄 알지만 약한 자 안에서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지면 이는 약한 자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인 줄 알게 되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강한 자, 강한 환경, 좋은 곳에서 역사하지 아니하시고 없는 것, 약한 것, 병든 사람 속에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약할 때에, 내가 아플 때에, 내게 가시가 있을 그 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때가 내 인생 속에서 가장 강할 때인줄 믿고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살다보면 우리가 가시 때문에 약해질 때도 있습니다. 질병으로 육체가 약해질 때도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가정이 약해질 때도 있고 사업이 약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때인줄로 알고, \'이 때가 하나님께 서 역사하실 때구나, 이 때가 하나님을 만날 때구나, 이 때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바울처럼 약함을 자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약함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우리는 승리하는 사람도 될 수 있고 약함 때문에 약함만 바라보다가 낙심하여서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약할 때 좌절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약할 때가 기도할 때인줄 알고 약할 때 기도하여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연약한 것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면 그 연약한 것, 그 가시는 축복입니다. 연약함이 하나님의 은혜를 간직할 수 있는 울타리가 되어집니다. 그러기에 약함을 자랑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