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내가 부득불 할 일입니다 (2월13일 주일) | |
| 고린도전서 9장 12-18절 전 세계 프로복싱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조지 포먼\'은 지금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시에서 전도자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조지포먼은 어렸을 때부터 학교가기 싫어했고 휴스톤 뒷골목 불량소년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날마다 마음을 졸이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1966년 당시 16세의 포먼이 동료를 반죽음이 되도록 폭력을 휘두른 사건을 지켜보던 당시 권투 지도자 \'브로더스\'가 \'조지포먼\'을 교화하기 시작하면서 권투선수로 키웠습니다. 포먼은 1968년 멕시코올림픽 헤비급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따고 1974년 알리에게 8회 KO패할 때까지 수백만달러의 돈방석에 앉아서 하나님도 어머니의 기도도 무시한 채 자신의 주먹만을 믿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적수가 되지않던 \'지미 영\'에게 판정패한후 자신에게 엄습한 죽음이란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중 하나님을 믿고 더욱 적극적으로 전도자로 변신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돈의 노예가 아니라 예수의 종이 되어 오직 복음 전하는 일에 자기자신의 명성과 재능 그리고 재물까지 다 사용하는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복음을 위해서 자신은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는 고백을 하면서 자신은 어떤 상황에 이르더라도 오직 자신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전파되어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을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됨을 기뻐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인의 삶의 내용과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면서도 자랑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부득불 해야 만 할 일임을 분명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바울처럼 전도를 부득불 내가 해야할 일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왜 복음전도가 부득불 우리가 해야할 일이 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첫째로, 복음전도는 구원받은 빚을 갚는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4-16말씀에서 사도바울은 복음의 빚진 자로서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이같은 고백은 곧 오늘 우리들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죄가운데 있었던 우리를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항상 빚진 자로서의 의식을 갖고 생활했던 바울의 삶처럼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빚진 자\'의 헬라어 \'오페일레테스\'는 \'채무, 죄\'를 뜻하는 히브리어 \'맛솨아\'의 번역으로 죄와 의무의 개념을 동시에 갖고 있는 말입니다. 즉 빚을 갚지 않는 것은 율법을 어긴 것임으로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이며 또한 반드시 갚아야만 하는 의무를 가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빚은 반드시 갚아야만 합니다. 바울이 빚진 자의 개념을 사용한 것은 빚을 갚지 아니하면 자기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백여년전에 이땅에 복음을 전파한 미국의 선교사들에게 복음의 빚을 졌습니다. 한국에 복음을 들고 왔던 \'토마스\'목사는 목베임을 당했고 그 시신을 토막내어 나누어 먹었다는 소문이 나서 한국인은 식인종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선교사를 파송하지 안했다면 오늘의 한국교회는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미국선교사들에게 너무도 큰 빚을 졌고, 그 빚을 갚기위해서 지금 전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올해 우리교회도 국내 및 해외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복음의 빚을 갚으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기도하고 선교하는 일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모두 빚을 갚는 사명을 감당하는 일임을 생각하면서 더욱 성실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복음전도는 예수님이 명하신 성도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마28:19-20에서 승천하시는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복음전도의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우리는 복음전도의 명령을 받은 자들입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전도는 명령형으로 기록되어 있지 부탁이나 당부가 아니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전도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하는 의무이며 사명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17절에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에 일본에는 \'가미가재\'라는 특공대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가미가재\'라는 폭탄비행기를 타고 적함에 돌격하는 특수임무를 띤 비행사들을 지원제로 뽑았는데 몇 십명을 뽑는데도 500명이 넘는 비행사가 혈서를 쓰며 지원을 했다는 기록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분명 가미가재 특공대는 일본역사에 있어서 순교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피흘림이었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한 나라를 위하여, 일본천황이라는 우상화된 인간을 위하여 혈서를 쓰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은 가미가재의 특공대를 생각하면서 오늘도 죽어가는 수많은 이땅의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위하여 한 마디 생명의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일본천황의 명령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모두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의 명령을 성실하게 수행하기를 원하고 계심을 깨닫는 자들이 모두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복음전도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20:9에 보면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예레미야는 당시에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게 되었을 때 온갖 핍박과 수모를 당했지만 그래도 말씀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을 고백한 말씀입니다. 그는 그의 심정을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같아서 골수에 사무친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멸망해가는 백성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선지자의 심정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가족가운데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계십니까? 친구가운데, 형제가운데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이 있습니까? 그들의 영혼에 지금 얼마나 뜨거운 사랑을 갖고 계십니까? 그들이야 지옥에 가든 나만 구원얻어 천구가면 그만이라는 이기심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일본의 어떤 사람이 집을 수리하기 위해 벽을 뜯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집들은 \'어가베\'라하여 가운데에 나무를 얼기설기 대고 그 양쪽에 흙을 발라 만든 것으로 속이 비어있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런데 벽을 뜯다가 집주인은 벽속에 갇혀있는 도마뱀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마뱀은 그냥 벽속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가 벽 바깥쪽에서 박은 못에 꼬리가 꽂혀 꼼짝도 못하고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못은 주인이 10년전에 집을 지을 때 벽을 만들며 박았던 그 못이었습니다. 그렇다면 10년동안 움직일수 없었는데 어떻게 살아왔단 말인가? 주인은 너무도 놀라워 그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집수리를 멈추고 도마뱀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잠시후였습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못이 박혀있는 도마뱀곁으로 슬금슬금 기어왔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입에는 먹이가 한 입 물려있었습니다. 못에 박혀 꼼짝못하는 도마뱀은 다른 도마뱀이 날라다 준 먹이를 먹고 10년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주인은 도마뱀의 사랑을 느끼고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지극하고 끈질기고 눈물겨운 사랑이었습니다. 그 먹이를 날라다 준 도마뱀이 아버지인지 어머니인지 아니면 부부인지 형제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뭉클한 사랑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은 무엇입니까? 주는 것입니다.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올 때 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을 나누는 일에 인색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을 나누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이런 자들이 필요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복음전도로 나타나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여 지옥에 가는 그들의 영혼이 구원을 얻어 천국에 함께 갈 수 있게 되는 것보다 큰 사랑은 없습니다. 강남의 어느 큰 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봄날 아침 주일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예배의 부름이 끝나고 찬송이 시작되려 할 때 X세대나 입는 나시 T샤츠에 칠보바지를 입고 맨발로 슬리퍼를 끌면서 맨 앞자리로 가서 앉는 청년이 있는데 어느 누구도 그를 만류하지는 못했습니다. 별 사람 다봤다고 성도들은 속으로 욕을 하면서 주일예배를 드렸는데 그 다음주일에도 같은 상황이었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났습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주일아침 그교회 장로님이 \"젊은이, 나는 이교회의 장로인데 하나님앞에 예배드리러 올 때 그런 옷차림으로 오는 것보다 단정한 옷차림으로 오는 것이 어떻겠나?\"라고 말을 건넸을 때 그 청년의 대답입니다. \"저도 그런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실은 제가 몇 달째 단정한 옷차림으로 이 교회에 나왔으나 어느 누구 한 사람 저에게 따뜻한 웃음을 주지 않았고, 관심조차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옷차림을 하여 나오니 장로님께서도 저에게 말을 걸지 않았습니까?\" 그때서야 장로님은 자신이 장로로서 얼마나 무관심하게 교회생활을 해왔는가를 깨닫고 회개를 하였으며 이 이야기는 전교인에게 알려졌고, 듣는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과 성도 상호간에 사랑의 관심을 갖게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주위에는 지금도 자신에게 \"교회에 함께 나가자\"라고 말을 건네주기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잃은 자들을 찾으라고 우리에게 전도의 사명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전도는 부득불 해야 할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믿지 않는 불신자의 영혼구원에 대한 뜨거움을 가지고 자랑이 아닌 부득불 할 일인 전도에 앞장서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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