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 주일설교 2008-10-26 ♣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눅 11;14-26 / 권 다니엘 목사

   (본문) [14] 예수께서 한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벙어리가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기이히 여겼으나 [15]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16]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니 [17]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18]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단이 스스로 분쟁하면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19]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장이 되리라 [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1]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22]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저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23]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 되었거늘 [26]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예수님께서 한 벙어리 귀신을 내어 쫓습니다.  사람 속에 들어가 말을 못하게 하는 귀신입니다. 이 귀신이 나가자 그 벙어리는 말을 하게 됩니다. 이 것을 보고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가 귀신의 왕인 바알세블의 능력을 의지해서 벙어리 귀신을 내어 좋았다고 말합니다. 15절을 볼까요.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이것은 참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지요. 귀신의 왕인 바알세블이 자기의 부하인 귀신을 내어 쫓는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귀신의 세계가 무너지지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저들의 이야기를 일축해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귀신의 왕인 바알세블을 힘업어서 귀신내어 좋았다고 말하는 저들에게 즉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장이 되리라.\'고 도리어 질문을 던지십니다. 19절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너희의 아들들\'이란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이나 바리새인의 추종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도 귀신을 좇아내는 행위를 했다고 합니다. 이 당시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이나 그들의 추종자들중에는 귀신을 내어쫓는 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물, 연기 또는 마케루스라는 나무 뿌리를 이용하여 귀신을 내어 쫓고, 곧 이어 솔로몬이 비방으로 남겨 두었다는 주문을 외워 그 귀신이 다시 그 사람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들의 이러한 행위는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으나 유독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어 쫓는 이적에는 도리어 비방을 했습니다. 에수님의 이적은 자기들의 주술적인 방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했기 때문에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보다 예수님을 따를까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의 제자들이나 추종자 중에서 이렇게 귀신을 쫓는 자들의 능력이 어디서 온 것인가를 물어셨습니다. 귀신을 쫓는 그들의 능력의 원천을 묻는 에수님의 이 질문은 바리새인들로 하여금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게 하는 날카로운 질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그들의 귀신 추출 행위가 귀신의 왕 바알세블을 힘입은 것이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인 자기 자신들을 비난하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와 반대로 그들의 귀신 추출 행위가 바알세블을 힘입은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면 그들의 행위는 인정하면서 유독 예수님의 행위는 인정하지 않는 자기들의 부당성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내어 쫓은 기적은 인정하지 않고 자기 제자들이나 추종자들이 귀신을 내어 쫓는 일은 인정하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어 쫓은 것에 대해서 비난하는 것에 대한 옳고 그름을 바리새인 너희들 스스로가 공정하게 판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판단한다면 너희들이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제자들이나 추종자들 중 귀신을 내어 좇은 자들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9절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장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신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아주 날카로운 답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바리새인 제자들이나 추종자들 중 귀신을 내어 쫓은 자들이 바리새인들의 비난에 동조한다면 자기 스스로를 정죄하는 것이 되고 반대로 그 비난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기 선생들을 비난하는 것이 되는 동시에 예수님을 변호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어 쫓는 것 본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청합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란 엘리야가 기도해서 제단에 불이 떨어진 기적이라든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고 함께 광야길을 갈 때 불기둥이 나타난 기적을 말합니다  만일 예수님이 메시야라면 귀신을 내어 쫓는 기적 보다 더 큰 기적을 보여야 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귀신은 내어 쫓은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쫓아내신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20절,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단이 강하더라도 더 강한 예수님 자신이 사단을 내어 쫓고 자유와 믈질과 건강과 바른 삶을 찾아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21절,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저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그리고 에수님은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24-26절.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 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귀신이 나간 사람은 나간 빈 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빨리 다른 것으로 채워지지 않으먄 더 악한 귀신이 더 많이 들어오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맏는 우리들도 우리 속에 무엇이 채워져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속에 채워져 있어야 할 것이 과연 채워져 있나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 속에 진정으로 채워져야 할 것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면 우리는 빨리 채워야 합니다. 채우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나의 간절함과 사모함이 필요합니다. 나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요?

첫째, 성령으로 채워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리 속에 성령이 내주하십니다. 고린도전저 3장 16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말씀은 성령이 우리 속에 거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마음껏 일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는 항상 갈등과 싸움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8절,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말씀대로 \'육신의 소욕을 따르느냐, 성령의 소욕을 따르느냐\' 입니다.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이 강제적으로 이 문제에 개입하셔서 성령의 소욕을 따르도록 만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의지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소욕을 따르기 위해서 의지를 발동해야 하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로 성령으로 우리를 채우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채우는 것은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은 명령형입니다. 계속형입니다. 계속해서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해서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간구해야 합니다. 받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 받지 않으면 우리속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마음껏 일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성령께서 일하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영적으로 점점 말라 죽게 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우리의 육의 행실이 점점 말라 죽게 됩니다. 로마서 8장 13절을 봅시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그래서 성령으로 채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으로 채우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가 없는 것이지요.

둘째,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말씀을 하나님의 자녀들의 양식입니다. 말씀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결과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점점 메말라가고 병들어 갑니다. 우리의 믿음이 견고히 서시 못합니다. 즉 우리의 신앙기반이 약화됩니다. 선악에 대한 분별과 판단이 흐려집니다.
  세상의 거짓 교훈과 유혹과 미혹에 쉽게 넘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안에 거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우리를 채울 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면 그것은 다 응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말씀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는 어두움의 세력들이 거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마귀의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말씀은 능력이 권세요 영적인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를 채워야 합니다. 말씀으로 체우는 것도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투자가 필요합니다.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말씀을 연구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러기 위해서 시간도 투자해야 합니다. 사모해야 합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수고의 땀을 흘려야 합니다. 의자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으로 채워지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결정됩니다. 그 사람의 삶의 질이 결정됩니다. 비어 상태로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물질, 음란, 미움, 열등감, 권력, 욕심으로 채워지는 것을 그대로 두겠습니까?

  빨리 우리 속에 성령으로 채웁시다. 말씀으로 채웁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