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사는 즐거움

♣ 주일설교 2008-10-19 ♣
\'느리게 사는 즐거움\'


잠언 21:5 / 권 다니엘목사

  (본문)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느리게 산다는 것은 게으르게 산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말입니다. 거북이와 토끼의 이야기를 아시지요. 거북이가 느리게 갔지만 게으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도끼가 빨리 갔지만 게을렀지요..

  \'느리게 사는 즐거움을 가져라\' 이 말은 게으른 사람들을 위한 말이 아닙니다. 느림의 지혜를 터득하고 싶어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권면입니다. 

  현대의 모든 삶은 빠르게 진행되는 것 같아요. 비행기의 속도도 점점 빨라집니다. 기차의 속도도 빨라집니다. 한국에서 KTX가 서울과 부산간을 2시 40분에 주파합니다. 자동차도 성능도 좋아지고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모 자동차 쿠페는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6.5초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의 도달 시간은 4.7초 밖에 걸리지 않는 스포츠카가 한국에 수입된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빨라야 하는지요.  

  컴퓨터의 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인터넷 속도가 얼마나 빠릅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고속 인터넷을 지나서 초고속, 광속 인터넷망을 쓰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빨라지다 보니 우리의 생각과 행동 자체도 빨라지게 됩니다. 빨라질 필요가 없는 것 까지 빨라지게 됩니다. 빨라져서는 안되는 것까지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현대인들은 내가 바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보다 처진다고 생각합니다. 낙오자가 되지는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바쁘지 않으면 불안감이 생깁니다. 안절부절하게 됩니다. 자신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바쁘게 빡빡하게 스케줄을 잡습니다. 자기 자신을 바쁘게 만듭니다.
  약속이간이나 모임시간에도 일부러 늦게 갑니다. 자기가 바쁘다는 것을 은연중에 인식키려고 합니다.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를 않습니다.

  기차도 너무 빠르다보니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기가 힘들듯이 너무 바쁘게 살다보면 삶의 보람과 맛을 느끼기가 힘듭니다.

  어떤 분이 너무 빠르게 살고 있는 현대인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해 보라. 붉게 물든 석양을 바라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지는 않은가? 만일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어라. 가든 길을 멈추고 노을진 석양을 바라보며 감탄하기에 가장 적합은 순간은, 그럴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때이다.\'

  오늘 본문인 잠언 21:5에는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른다고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 삶이 조급해지면 모든 부분이 궁핍해집니다. 영적으로 궁핍해 집니다. 마음이 궁핍해 집니다. 우리의 삶의 질도 궁핍해집니다. 

  그렇다는 느리게 사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게으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지요. 오늘 본문에도 부지런하라고 말씀합니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다.\'
   느리게 사는 것이란 어떻게 사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을가요?

첫째, 여유를 갖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여유\'는 우리의 삶의 풍요롭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라는 자매의 집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준비하느라고 분주합니다. 그러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언니인 마르다가 자기가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동생 마리아는 도와줄 생각을 안하고 있으니 좀 도와주게 해달라고 주님께 불평하듯이 요구합니다. 그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0:41-42,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많은 일로 인해 분주해지니깐 염려가 생기도 불평이 생기게 됨을 지적히신 말씀이요, 바쁜 일상의 일을 멈추고 여유롭게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필요하다는 것을 교훈하시는 말씀입니다.   

  한 번은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붙잡아서 혈기등등하게 예수님께 데리고 오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라고 하고 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예수님을 고소하기 조건을 얻기 위해서 올무를 놓는 것이지요.
  이 때 예수님께 어떻게 하셨습니까? 급하게 대답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몸을 굽혀 땅에다 손가락을 무엇을 쓰십니다.
  이것을 무엇을 말합니까? 혈기등등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앞에서 여유를 갖는 것입니다. 조급해진 것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다구치듯이 묻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여러 말씀 안하시고 이 한 마디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또 몸을 굽히시고 땅에다 손가락으로 무엇을 쓰십니다.
  거기 모여있는 사람들이 양심을 가책을 받아서 한 명 두 명씩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손가락으로 땅에다 무엇을 쓰시는 이 예수님의 여유. 우리가 본받아야 합니다. 

  뭐 그렇게 바쁘십니까? 시간적으로 바쁜 것도 있지만 사실 우리의 내면을 냉철히 들여다 보면 대부분 우리의 마음이 바쁜 것입니다. 마음이 바쁘면 여유가 안 생깁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스피드\'가 강조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 쉼없이 반복되는 인생의 여정에서 스피드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여유\'입니다.

  세계적으로 빠른 명차들이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시속 몇백 Km까지 달릴 수 있는 차이냐,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이르는데 불과 몇 초 걸리는 차인가, 마력은 몇 백 마력의 차인가. 그러나 이러한 명차에 \'스피드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브레이크\'입니다. 잘 듣는 브레이크입니다. 브레이크가 없거나 불실하다면 그것은 이미 명차가 아닙니다. 아니 차가 아닙니다.
  스피디한 사회 속에서 여유는 브레이크나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여유가 있으면 내 삶을 다시 한 번 성찰할 수 있습니다. 여유가 있으면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여유있으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유태인들의 성공 비결도 바로 여유의 기술에 있다고 합니다. 즉 안식일과 안식년이라는 여유를 통해 영육을 재충전을 하기 때문에 창의적 성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성수주일합시다.

둘째, 욕심을 갖지 않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욕심을 갖지 않고 사는 것은 삶의 의욕을 갖지 않고 무력하게 사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세상을 살면서 가져야 할 좋은 욕심도 있을 수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러한 것들도 탐욕의 성격이 강하지요, 탐욕이란 가져서도 안될 것들을, 가져야 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가지려고 욕심을 내는 것을 말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는 야고보서 1:15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욕심 때문에 죄짓고 욕심 때문에 결국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욕심이 사람을 바쁘게 만듭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 명예에 대한 욕심, 이성에 대한 욕심, 권력에 대한 욕심, 성공에 대한 욕심, 출세에 대한 욕심. 이러한 욕심이 마음에 들어가게 되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머리가 분주하게 돌아갑니다. 방법을 찾습니다. 수단을 간구합니다. 생활이 바빠집니다. 조급해집니다.

  욕심이 생길 때 기도도 잘 안됩니다. 잘못 구하게 됩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이라고 야고보서 4;3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욕심이 앞설 때는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생각하지 못하게 됩니다. 

  직장에서 인정받으려는 생각,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생각, 남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생각, 남한테 과시해 보고 싶어하는 마음들 이러한 마음들을 들여다 보면 욕심이 그 바닥에 깔려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욕심들이이 나를 가만 두지 않습니다. 나를 쉬지 못하게 만듭니다. 나를 과로하게 만듭니다.
나를 분주하게 뛰어다니게 만듭니다. 주님과 차 한잔 하면서 다정하게 이야기 할 시간이 사라지게 됩니다.

  바울은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현재의 상황에 만족할 때,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옛날에 어떤 한 농부가 살았습니다. 그 농부는 부지런히 일했지만 사람들이 땅을 사서 자신도 땅을 사 둬야겠다는 생각과 욕심이 조금씩 생겼습니다. 그러나 돈이 없기 때문에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농부에게 한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누구시죠?\"
  \"저는 천사예요. 당신에게 땅을 드리겠어요.\"
  \"그게 정말입니까?\" 농부는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루동안 선을 그린 원 안의 땅은 모두 당신의 땅이 됩니다.\"
  그 말을 들은 농부는 바로 선을 그리며 땅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만큼 돌까? 아냐아냐 이게 어떤 기회인데 .. 저~ 만큼 돌자\"
  그렇게 농부는 하루 종일 쉬지도, 먹지도 않고 돌았습니다. 점점 해가 지면서 농부도 거의 도착점에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렇게 농부는 도찾점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이제 이 땅은 모두 당신의 것 입니다.\" 이렇게 천사가 말을 끝낸 순간, 농부는 숨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말을 타면서 먹지도, 쉬지도 않고 계속 탄 욕심 많은 농부의 최후였습니다. 

  욕심이 우리를 바쁘게 분주하게 조급하게 만들지 않도록 욕심을 내려 놓읍시다. 욕심이 우리를 망가뜨리지 못하도록 마음을 비웁시다.

셋째, 삶을 목적을 인식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빨리 달리는 고속열차에서는 바깥 풍경을 잘 감상할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 완행 열차를 타고 창가를 바라보면서 산도 감상하고 시골 마을도 감상하고 황금물결이 치는 들판도 감상하고 길가에서 손을 흔드는 동네 사람들도 감상을 합니다.

  우리가 바쁘게 살다보면 우리의 삶의 목적을 잊어버릴 때가 참 많습니다. 왜 사는 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바로 인식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사고가 나거나 병이 나서 병원의 침상에 눕게 되었을 때 그제서야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 내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내가 바로 살아왔는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되지요.

   한국 사람들은 마음도 바쁘고 행동도 바쁘다 보니 묵상을 잘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묵상은 느리게 사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축복이요 특권입니다.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존재를 인식하게 됩니다. 내 삶의 목적이 무엇이며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의 말씀을 꼭 기억합시다. 주안에서 여유를 갖고 삽시다. 욕심을 버리고 삽시다. 삶의 목적을 인식하면서 삽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많은 열매를 맺어드리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