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선의 기쁨

♣ 주일설교 2008-10-12 ♣
\'만선{滿船)의 기쁨\'


눅 5:1-11 / 권 다니엘 목사

  (본문) [1]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어부들이 고기를 잡으러 바다를 향해 나갑니다. 며칠, 한달, 혹은 여러 달 동안 파도와 날씨와 싸웁니다. 고기를 배에 가득채우고 돌아오면 어부들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찹니다. 그러나 배에 고기가 얼마 없는 상태로 돌아오게 되면 어부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찹니다.

  고기를 배에 가득채우고 돌아오는 만선의 기쁨은 그 어떤 기쁨보다 크다고 합니다. 어부들은 만선의 희망을 갖고 출항했다가 만선의 기쁨을 안고 입항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만선으로 돌아오느냐, 빈 배로 돌아오느냐 하는 것은 어부들로 하여금 극과 극의 감정을 갖게 만듭니다. 생계에 직결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게네사렛 호수는 갈릴리 호수입니다. 갈릴리 바다라고 하지요. 예루살렘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100 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수면은 바다보다 약 200m나 낮고 남북 길이가 21km, 폭이 12km 되는 맑고 깨끗한 호수이며, 어족이 풍부합니다. 이곳 주변 사람들은 고기를 잡는 일로 생계를 유지합니다. 즉 어부들입니다.

  이 호수에서 놀라운 일이 발생합니다. 고기가 배에 가득채워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단순히 가득 채워지는 정도가 아니고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힌 것입니다. 그것도 한배에 고기를 다 실을 수가 없어서 친구를 오라고 해서 두 배에 가득 채울 정도로 말입니다. 만선중의 만선입니다. 넘치는 만선입니다.

  어부들에게 최대의 소망은 만선입니다. 이 만선의 기쁨을 어떻게 체험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가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 못잡았는데 갑자기 만선이 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삶도 그런 것 같아요. 모두가 만선의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세상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잘 되지를 않습니다.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면서 멍들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하고 애쓰고 수고했지만 생각한 것 만큼 보람이 없고, 우리의 가진 것들을 하나 둘 잃어버리는 가운데 염려와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일들은 없는지요. 세상적인 갖가지 방법과 수단을 다 동원해도 우리의 마음은 더욱 더 번민으로 가득차게 되고 외로움과 허전함이 우리를 감싸고 있지는 않은지요.

  오늘의 본문의 사건은 베드로에게만 만선의 기쁨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만선의 기쁨을 주시고자 하는 주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진정한 만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내 배에 태워야 합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문제로 염려하고 고민하고 심지어는 극단적인 생각들을 하고 있지만 내 인생의 배에 예수님을 태워야 한다는 긴박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위태로운 응급환자가 생겼을 때 의사를 빨리 불러야 한다는 긴박감을 모두가 가지지만, 우리의 삶에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에 인생의 문제의 해결자요 진정한 치유자가 되시는 예수님을 급히 불러야 한다는 생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밤새 수고했지만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낙심가운데 이제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들어가려고 그믈을 씻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한 청년이 와서 배를 좀 태우달라고 요청합니다.
  얼마나 귀찮습니까? 고기도 못 잡았는데 얼마나 짜증스럽겠습니까? 하여튼 베드로는 예수님을 태우게 됩니다. 이것이 베드로에게는 놀라운 행운이었습니다.
  귀찮든 짜증스럽든 신경질이 나든, 힘들든, 죽고 싶은 생각이 들든,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싫든 좋든 간에, 억지로 든지 마지 못해서 든지 간에, 예수님을 내 인생의 배에 태우면 그 사람은 행운을 잡은 것이요. 그 인생이 달라지게 됩니다.

  다른 것을 내 인생의 배에 태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을 내 인생이 배에 태우기 전에 우선 에수님을 태우셔야 합니다.

  귀찮아도 예배 드리러 나오십시오. 억지로라도 기도하십시오. 속는 셈 치고서라도 성경한 번 읽어 보십시오. 우리 인생의 배에 어떠한 일이 생기는지..

둘째, 예수님 앞에 내 자신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어릴 때부터 고기잡는 일로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게네사렛을 호수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디에 고기가 많고 없는 지 어느 시간대에 고기가 많이 몰리는지,  그런데 젊은 예수라는 사람이 배에 타서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난 뒤 다짜고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합니다.
  급한 베도로의 셩격에 화를 낼 만도 하고 들이받을 만도 하지만  베드로는 그 말씀그대로 합니다.
5절을 봅시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이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것들을 내려 놓는 작업을 했습니다. 본문에는 이 말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바로 나왔지만 그렇게 결정하기까지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마음으로 내려 놓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무엇을 내려 놓습니까?

  베드로는 자기의 자존심을 내려 놓습니다. 

  어부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으니 베드로가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겠습니까? 아니 그 전에 아무 것도 못 잡았다는 자체가 어부인 자기의 자존심을 뭉개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지요.
  \'너 나이가 몇 살이니, 너 고기 잡은 경험이 있나 나는 바다에서 살아온 어부야 너가 뭘 안다고..\'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자존심을 순식간에 내려 놓습니다. 베도로의 결단력은 참 멋집니다.

  또한 베드로는 자기의 지식을 내려 놓습니다

  베드로는 고기잡은 일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고기잡는 일에 대한 백과사전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고기 잡는 지식, 상식 이런 것을 다 내려 놓습니다.
  바울도 지식에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 모든 지식을 다내려 놓습니다. 빌립보서 3:8에서 바울은 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고 베드로는 지금까지의 자기의 모든 경험을 내려 놓습니다.

  베드로가 이 호수에서 쭉 고기를 잡아 오면서 그 시간 대에 거기는 고기가 없었다는 수많은 경험들, 밤새도록 고기 잡으려고 바다를 돌아다녔지만 못 잡았다는 경험을 베드로는 내려 놓습니다. 지식의 내려 놓은 것보다 경험을 내려 놓기는 더 힘듭니다. 그 이유는 자기가 그것을 실제적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존심과 지식과 경험을 내려 놓을 때 주님이 주시는 만선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들도 겸허하게 베드로에게 배웁시다. 우리들의 자존심, 지식, 경험들을 주님의 말씀 앞에 여지없이 내려 놓기를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6절을 봅시다.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아무리 알아도 순종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하겠다고 결심하고 결심해도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애기가 엄마 뱃 속에 잘 있었다고 하더라도 열 달이 차면 나와야 합니다. 열 달 만에 출산하지 못하면 애기는 죽을 수가 있습니다. 분만의 고통을 각오하고 출산해야 합니다. 결국 순종하지 않는다면 분만하지 않는 것와 같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출산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는 것처럼, 만선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무조건 그물을 던졌습니다. 변명도 없고 이유도 없고 투덜거림도 없습니다.만선을 기쁨을 맛보기 위한 마지막 거쳐야 할 과정은 바로 순종입니다.

  가나라는 지역의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는 난감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잔치접에 포도주가 떨어진다는 것은 혼인잔치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흥이 깨집니다. 하객들을 자기들을 잔치집에서 무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때 그곳에 초청을 받은 예수님의 어머니가 종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이 무엇을 시키든지 그대로 순종하라고, 예수님 종들에게 항아리 아구까지 물을 채워서 그것을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2:5-9을 볼까요.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순종하니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할렐루야.  .

  아브라람도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 이후에 아브라함에게는 놀라운 영육의 만선의 축복이 주어집니다. 

  착각하지 맙시다. 만선의 기쁨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을 통해서 온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우리는 무엇을 순종해야 할 것인가를 우리 스스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순종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게을러서, 하고 싶지 않아서, 고의로 불순종하는 경우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가 순종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서, 왜 하나님이 나에게 만선의 기쁨을 주시 않는가 불평하거나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자, 베드로를 봅시다. 베드로는 만선의 주관자되시고 만선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만선의 기쁨을 맛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두 배에 고기가 가들차는 만선의 기쁨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물고기가 아닌 영혼을 낚는 어부로서 만선의 기쁨을 보장받습니다.

   이제 우리의 빈 배만 바라보지 맙시다. 오늘 주신 말씀 그대로 행합시다. 그리하여 놀라운 만선의 기쁨을 만끽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