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선포는 당신의 인생을 바꿉니다

♣ 주일설교 2008-07-06 ♣
\"믿음의 선포는 당신의 인생을 바꿉니다\"


민 13:25-14:10 / 권 다니엘 목사

   (본문) [25] 사십 일 동안에 땅을 탐지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회보하고 그 땅 실과를 보이고 [27]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젓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28]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14: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6]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윱灸?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예수믿는 사람들은 자칫 잘못하면 내 인생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운명론, 또는 숙명론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미 나의 인생이 다 하나님에 의해서 미리 정해져 있는데 내가 무엇을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를 만세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하시고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운명론을 말하거나 숙명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가운데서 아름답고 멋지게 설계하고 세워나가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성경구절이 로마서 12:1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그러한 삶을 살아가라는 적극적인 권면이요 명령입니다. 우리는 이제 구원받았느니 하면서 마치 감이 감나무에 떨어질 것을 누워서 기다리는 식으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가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또한 성경은 구원받았다고 가만히 있지말고 적극적으로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빌립보서 2:12을 볼까요.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오늘의 본문은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바로 눈앞에 두고 12명의 정탐꾼을 보냈는데 그들이 돌아와서 가나안 땅에 대해서 그들이 본 바를 보고하는 내용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긍정적인 보고, 믿음의 보고를 합니다.

   부정적은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절망에 빠집니다. 통곡을 합니다. 원망합니다. 이렇게 절망하는 백성들에게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선포를 합니다.
   8절,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절,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믿음의 선포를 한 여호수와 갈렙 만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기업으로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여호수아와 갈펩처럼 믿음의 선포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선포란 무엇일까요?

첫째, 믿음의 선포에는 \'그러나\'가 없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이렇게 모세에게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27절과 28절을 봅시다.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젓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과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가나안 땅은 너무나 비옥한 땅임을 그들도 인정을 합니다. 참 종은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사람들은 강하고 성들고 견고하고 커서 우리가 가나안을 점령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포는 \'그러나\'가 없습니다. \'그러나\'는 이유와 변명을 대는 말이요. 불신을 드러내는 말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무시하는 말이요, 부정적인 말과 생각을 유도하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 두 바구니나 남기신 기적을 아시지요. 한 어린이가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왔다는 것을 예수님께 제자 안드레가 보고를 하면서 어떤 말을 했는지 아십니까?  요한복음 6:8-9을 봅시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그는 부정적인 선포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추후라도 이러한 말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압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된 것을 압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압니다. 하나님이 주실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라고 안드레처럼 생각하고 말한다면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러나\'를 사용한 열 명의 정탐꾼과 그 말을 듣고 절망하고 원망하고 불평한 사람들은 한 사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의 약속 자체를 무효화기키고 마는 엄청난 일을 저지러고 말았던 것입니다. 

둘째, 믿음의 선포는 눈에 보이는 것을 뛰어 넘습니다.

   믿음을 가진 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지 않습니다. 열 명의 부정적인 보고를 한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가서 본 것은 과장은 있었지만 사실이었습니다.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크다고 28절에 보고를 했는데, 사실 가나안 사람들은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성은 견고하고 큽니다. 특히 여리고 성은 대단한 성입니다. 견고한 요새입니다. 점령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될지 모르는 견고한 성입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본 아낙 자손은 아주 장대한 자손입니다. 그들 앞에서 자기들은 마치 메뚜기와 같이 작아 보였다고 33절에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고 판단하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 스스로 못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31절을 봅시다.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믿음의 선포를 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뛰어 넘어서 보고 있습니다. 눈에 안보이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물론 여호수아와 갈렙도 가나안 땅의 실상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보는 것으로 끝나지를 않았습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을 떠났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두려워하지 말자. 그들은 우리의 밥에 불과하다.\' 14:9의 말씀이지요.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족속들의 보호자가 그들을 떠난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아무리 강하다 할찌라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그들은 우리의 밥에 불과한 것을 보고 있습니다.

   로마서 8:24의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는 말씀을 기억합시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좋아했다 슬퍼했다 하지 맙시다. 

셋째, 믿음의 선포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에서 나옵니다.

   믿음의 선포의 근거는 하나님의 약속이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렇게 믿음의 선포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절망하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수아와 갈렙은 8절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을 인도하신다는 것과 하나님께 이스라엘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입니다. 출애굽기 3:17을 봅시다.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면 우리의 믿음 자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편안할 때는 몰라도 어려움이 오게 되면 우수수 낙엽처럼 믿음이 떨어지게 됩니다. 모래 위에 세운 집인지 반석 위에 세운 집인지는 홍수가 나고 폭우가 쏟아지면 드러나게 되듯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인지는 그 사람에게 환란이 오고 고난이 올 때 드러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그렇게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놀라운 이적으로 애굽에서 꺼집어 내시고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걸어건너게 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면 그것으로 그 사람은 끝날 수 잇습니다. 마치 가나안 땅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얻지 못하고 다 광야에서 죽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약속을 붙들고 끝까지 견디는 자는 약속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넷째, 믿음의 선포는 우리의 인생을 바꿉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믿음으로 개척해 나가고 믿음으로 일구어 나가고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고 믿음으로 찯대해 져 나가야 합니다.
  믿음의 선포를 하는 사람의 인생은 그 선포 그대로 됩니다. 불신의 선포, 부정적인 선포를 하는 사람의 인생도 그 선포 그대로 됩니다.

  열명의 정탐꾼들이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라고 불신의 보고를 한 그대로 그들은 가나안 땅 사람들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보고한 그 순간부터 그들은 이미 패배한 것입니다. 그들이 보고를 볼까요. 14:2,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부정적인 말 그대로,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발을 디디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불신의 선포와 부정적인 선포를 한 사람은 자기 인생을, 하나님이 그렇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얻지 못하는 인생으로 바꾸고 말았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러나 믿음의 선포를 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기 인생을,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넉넉히 얻는 성공하는 인생이 되게 했습니다.

   1800년대 초반, 덴마크에 남들보다 글솜씨가 뒤떨어진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열한살이 되어서야(우리나라도 말하면 국민학교 4학년의 나이입니다.) 겨우 글 비슷한 것을 써 주위에 돌렸으나 조롱을 받고 말았으며, 한 아주머니는 그 아이에게 \"네 글을 보느니 차라리 다른 일을 할 것을 그랬구나\" 라고 말하였습니다.
   크게 실망하고 집에 돌아온 이 아이에게 어머니는 꽃을 보여 주며, \"네 글은 아직 봉오리가 맺지 못했구나, 그러나 언젠가는 봉오리가 맺고 꽃을 피울거야, 걱정마라.\" 하면서 그 아이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이 미숙한 꼬마가 누구인줄 압니까? 인어공주, 미운오리새끼 등의 수많은 작품을 써,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준 위대한 작가 안데르센 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아주 부족해 보였지만 그 아이의 미래를 바라보고 \'언젠가는 봉오리가 맺고 꽃을 피울거야\'라고 한, 어머니의 믿음의 선포가 그 아이를 그 선포 그대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 아이의 인생을 바꾸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열 명의 정땀꾼이 되겠습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이 되겠습니까? 결국 우리가 선택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지혜롭게 선택하는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