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과 불행

♣ 주일설교 2008-06-09 ♣
\"착각과 불행\"


눅12:13-21 / 권 다니엘 목사

    (본문)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세상을 살다보면 착각을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착각은 커트라인이 업다.\' 또는 \'착각은 차유다.\'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착각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착각을 하고 나면 씁쓰레집니다. 착각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았거나 내가 큰 손해를 보지 않았다면 그러한 착각은 그래도 괜찮은 편에 속하는 착각입니다.
   제가 중학교 때 아주 큰 착각을 한 것이 너무나 저에게는 충격이어서 지금도 잊어지지를 않는 사건이 있습니다. 제가 친구 집에 놀러를 갔는데 방안에 제 친구가 런닝 셔츠를 입은체로 뭘 먹고 있었습니다. 저는 장난기가 발동되어 친구가 있는 곳으로 살금살금 걸어가서 친구의 이름을 부르면서 손바닥으로 친구의 등짝을 있는 있는 힘을 다하여 내리 쳤습니다. 찰싹하는 큰 소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아\'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뒤 돌아 보는데, 제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제 친구의 사촌 형이 오래간만에 그 집에 놀러 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미안하고 무안해서 어쩔줄을 몰랐습니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착각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미안하다고 怜倖?했고, 그분도 이해을 했으니 말입니다. 

   정말로 우리가 해서는 안되는 착각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리고, 우리의 살아온 것을 일순간에 모두 헛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안타까운 착각, 불행한 착각이 있는데 우리는 만의 하나 이러한 착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승객·승무원 254명 가운데 228명이 사망한 1997년 8월 대한항공 801편 여객기의 괌 추락사고를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추락의 이유 중의 하나가 기장의 착각이었다고 합니다. 블랙박스 등을 통해서 확인된 사실에 의하연 당시 기장은 비행기가 착륙하기 얼마전까지 비행기 항로 유도를 위한 무선표지소가 활주로에 붙어있다고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기장 한 사람의 착각이 수백명의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것입니다. 정말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런 착각은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되는 착각이지요. 죽음과 연결된 착각입니다.

   사람의 생명과 연결된 착각보다도 더 불행하고 무서운 착각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우리의 영혼을 망하게 만드는 착각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한 착각이 얼마나 불행한 것인가 말해 주고 있습니다. 걸코 이러한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해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유산 문제를 좀 해결해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 당시 재산 상속은 형에게 우선권이 있어 형이 2/3를 차지하고 동생은 1/3을 갖도록 규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동생은 예수님을 이용하여 좀더 많은 상속을 얻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탐심을 물리치라\'라고 책망하시면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자는 밭에서 많은 소출을 얻었습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나에게 있는 곡식 창고가 가득차서 곡식을 더 쌓아 둘 수가 없으니 더 큰 곡식 창고를 지어야 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영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여러 해 동안 먹을 것을 충분히 곡식 창고 속에 쌓아 두었으니 이제는 평안히 먹고 즐기자.\'
   예수님은 이 부자에 대해서 \'어리석은 자\'라고 안타까운 평가를 내리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평가를 내리셨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부자가 세 가지 면에서 큰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첫째, 생명이 물질의 넉넉한 데 있는 줄 알았습니다.

   15절을 보면, 예수님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소유가 넉넉하다고 하여 생명을 어찌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 무력한 한 것입니다. 도리어 물질의 소유만을 추구하는 탐심은 인생의 목표를, 영혼이 아닌 육적인 것에 두게 함으로써 인생을 멸망으로 인도할 뿐입니다. 물질의 넉넉함이 오히려 영혼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 오게 할 수 있음을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돈, 돈, 오직 돈만을 벌기 위해서 뛰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물론 그 돈을 의미있게 좋은 일에 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돈 때문에 망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엄청난 상금의 복권 당첨자들을 추적해 본 결과 거의가 끝내는 불행해 진다는 조사보고가 있습니다.

   쥐를 100마리씩 두 그룹으로 분류하여 실험을 하였다고 합니다.
   첫번째 그룹은 음식을 넉넉히 주고 환경도 좋게 꾸며 주었습니다. 이 쥐들은 사람과 달리 포만감을 느끼면 더 이상 먹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포만감을 느끼는 양을 조사해 보았더니 쥐 한 마리당 하루에 평균 100Kcal 임을 알았습니다.
   두번째 그룹은 포만감을 느낄 정도 보다 약간 적은 85Kcal 만큼의 양을 주되 3회로 나누어서 공급을 했습니다. 이렇게 사육한 얼마 후에 이 두 그룹에 암을 유발시키는 화학물을 주사하였더니, 첫 번째 그룹의 발암정도는 65%, 두 번째 그룹은 4%로 나타났습니다.
   그 이유를 조사해 보았더니, 첫 번 째 그룹의 쥐는 병원균과 싸워서 이기게 하는 요소인 T임파구가 과식으로 인해 무력하게 되었기 때문임이 밝혀 졌습니다. 

   이처럼 첫 번째 그룹의 쥐들이 느긴 포만감이 결국은 쥐의 생명에 위협을 주듯이 사람들이 더 갖고자 하는 끝없는 탐욕도 우리의 영혼에 침투하는 병원균에 저항할 힘을 무력하게 만들어 결국의 영혼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부자와 같은 착각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둘째, 영혼의 주인이 자기인 줄 알았습니다.

   부자는 이제 큰 곡식 창고를 지어 곡식을 가득채웠습니다. 그리고 자기 영혼에게 \'이제는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자\' 라고 말을 합니다.
   부자는 자기의 생명이, 자기의 영혼이 자기 것으로 착각하면서 자기의 영혼에게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마치 자기의 영혼이 자기의 말대로 평한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생명의 주인을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인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오늘 밤에 하나님이 그 생명을 취하면 부자의 모든 소유는 부자와는 아무 관련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어느 분의 시어머님을 병원으로 심방간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완고할 뿐만 아니라 완악한지요. 전혀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믿는 며느리를 얼마나 박해를 했는지..
   목사님이 몇 번 병상으로 심방을 했지만 심방온 목사님을 그 분이 들어쳤다. 매쳤다 갖고 놀고, 목사님이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도록 무안을 줘 버리는 그러한 할머니였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은 심방을 가고 싶지가 않았는데 하도 부탁을 하고, 또 어머님께 허락을 받았다고 해서 그런 줄 알고 심방을 갔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허락을 받은 것이 아니더라고요.
   심방을 가보니 별써 얼굴이 다릅디다. 이야기를 붙여 보려고 하는 데 다른 데를 쳐다 보는 겁니다. 그래서 그 쳐다 보는 곳에 제가 서 버렸습니다. 제가 복음을 제시하니깐 자기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딴청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몰라도 괜찮다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뭘 알아서 입학하는 것입니까? 몰라서 배우기 위해서 입학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고 계속을 복음을 제시하니깐 이제는 \'당신이 이야기 하는 것 다 아니깐 그만 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질병을 갖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병이 들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자기의 생명이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큰 소리를 칩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그분에게 한 마디하고 병상을 떠났습니다. \'당신의 병이 낫지 않고 죽음이 다가왔을 때는 지푸라기도 잡으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 때라도 예수님을 잡으십시오. 예수님은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는 완전한 의사이십니다.\'
   암이 전이 되고 몸의 여기 저기 문제가 생기고 마비가 오니깐 자식들이 말해 주지 않았어도 자기가 죽을 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된것이지요. 결국 그 분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그분은 다행입니다. 죽기전에 자기의 생명이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말입니다.

   우리의 영혼과 생명이 내 것이라는 착각은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는 것이 지혜로운 줄 알았습니다.

   부자는 자신을 위해서 재물을 쌓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재물을 쌓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재물을 쌓는 자는 결코 만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선 좀더 재물을 쌓으려는 욕심이 더 생겨 물질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자신을 위해 물질을 쌓게 되면 그 물질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그 물질이 사용되어지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합니다. 재물에 하늘에 쌓아두는 자는 하나님께 부요한 자입니다. 하늘에 물질을 쌓아 두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물질을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려운 자들을 위해, 선한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물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어떤 철새가 하늘을 날다가 내려다보니 아래에 많은 먹이가 널려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철새는 배고픔을 못이겨 그 먹이가 있는 장소로 내려가 실컷 주워 먹었다고 합니다.. 먹이에 정신이 팔려 결국 그 새는 그곳에 눌러앉고 맙니다.
  다시 1년이 지나자 동료 철새들이 날아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 철새는 자기도 이제는 합세해 보려고 날으려 했으나 너무 살이 많이 쪄서 날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또 다시 1년이 지나자 동료 철새들이 고향으로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다시 시도해 보았으나 전번의 반도 못 오르고 그냥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세 번째 겨울이 지나게 되었을 때 철새는 몸이 너무 비대해져서 고향으로 날아갈 꿈을 영원히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되어 혼자 외로이 살다가 쓸쓸히 죽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물질을 쌓게 될 때 우리는 영적으로 비대해 지게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둔해지게 됩니다. 진작 하늘을 날아 하나님의 나라를 향할 때 우리는 날지 못하는 처지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씀이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 부자의 착각은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만드는 착각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심각한 불행을 초래하는 착각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착각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의 주관자요 소유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물질을 벌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대로 물질을 사용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로운 자라고 칭찬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